서궁(西宮)에 쌓이는 한(恨)
- 인목대비의 폐위(廢位) -
이때 조정에서는 이이첨이 앞장을 서서 대비를 폐위(廢位)시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다.
좌의정 정인홍은 원래부터 이이첨과 한패이면서도 이번 일에만은 겁을 집
어먹었는지, 혹은 만대에 누명을 쓸 것이 두려웠음인지, 슬며시 발뺌을 하
고 시골집에 내려가 누워버렸다.
또 영의정 기자헌(奇自獻)은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고
"이런 짓은 간사한 무리들의 짓이다. 나도 이 자리에 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하고서 영의정의 벼슬을 내놓고 강릉 고향으로 물러나 다시 오지 않았다.
이이첨은 심복인 우참찬 유간(右參贊 柳澗)을 자기 집으로 불렀다.
"지금 영상도 없고, 좌상은 시골 내려가 누워 있으니 일을 할 사람은 당신
과 우의정 한효순(韓孝純)밖에 없소. 빨리 대사를 결정해서 조정의 여론
을 실천하게 하오."
대비를 폐하는 지령을 내렸다.
유간은 부리나케 한효순을 찾아 이이첨의 말을 전했다.
우의정 한효순은 백대의 누명을 들을지언정 세도 이이첨의 말은 반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유간의 손을 잡고
"어떠한 방법을 취했으면 좋겠소. 유참찬 좀 가르쳐 주구료."
하고 물었다.
"만조백관을 대궐 안에 모아놓고 대비의 죄악을 밝힌 후에 폐하는 게 가한
가 부한가 가부를 쓰라고 하시오. 이렇게 하면 일은 쉽사리 처결될 것이
아니겠소? 대감이 이번 일에 공을 세운다면 영의정은 떼어논 당상입니
다."
한효순은 공명에 눈이 어두웠다. 영의정이 된다는 말에 뻔히 옳지 못한
일인 줄 알면서도 당장 대궐로 들어가 정원 승지를 불렀다.
"조정에 중대한 공론이 있으니 어서 만조백관을 초청케 하오."
승지들도 역시 이이첨의 심복들이었다. 한효순이 대궐로 들어오기 전에
벌써 이이첨한테서 연통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승지들은 곧 만조백관한테 초패를 놓았다. 삼공(三公)과 육조판서 이하 참
판, 참의, 정랑, 좌랑까지 불렀다. 이이첨의 직계부하들이며 대북의 일당
들은 오늘 돌연 부른 것이 무슨 일인지 대강 짐작들은 했으나 미관말직의
벼슬아치들은 까닭을 알지 못하고 모여들었다.
반나절이 넘어서야 모든 사람들은 모여들었다. 이때 전관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까지 합하여 구백삼십여명이나 되었고 그 중 종실(宗室)만도 일백칠
십여명이나 되었다.
우의정 한효순은 가장 크나 큰 국사나 처리하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역적 김제남의 따님인 대비는 그의 아들인 영창대군으로 왕위를 계승시키
려 하여 열 가지 큰 죄악을 범하였소. 그러니 이미 전하와 모자의 정은
끊어진지 오래오. 어머니 아닌 사람을 어머니로 모실 수는 없소. 만조백
관들은 그를 폐위시키라 하오. 여론에 따라 가부를 묻는 것이니 여러분은
가부를 표시해 주기 바라오."
이렇게 말하자, 처음부터 이이첨의 주구가 되어 폐모론을 주장하던 대사간
윤인(尹隣)이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외친다.
"옳소. 벌써 폐모를 했어야 할 터인데 오늘날까지 끌어 내려온 것은 전하
께서 너무나 인정이 많은 탓이라 하겠소. 빨리 백관에게 가부를 물어 처
단하오."
윤인은 팔을 걷어 붙이고 떠들어 댄다.
'자아, 그러면 만조백관들은 두 줄로 갈라서서 가(可)하다는 사람은 좌편
에 서서 이름을 쓰고 부(否)하다고 하는 사람은 우편으로 열을 지어 자기
이름과 붓자(否字)를 쓰시오."
한효순이 명령을 내린다. 어느새 정원 승지는 미리 준비해 놓았던 사선상
두 개와 명단책 두벌을 서리(胥吏)를 시켜 만조백관 앞에 양편으로 갈라
놓는다.
대사간 윤인이 가하다는 자를 쓰는 줄의 맨 앞을 섰다. 그 바로 뒤로는 대
사헌 정조(鄭造)가 대섰다. 이 두 사람은 본래부터 폐모론을 주장하던 자
들이다. 폐모론을 주장한 이후에 이이첨의 눈에 들어서 미관말직인 당하관
으로 있던 두 사람은 일약 대사간과 대사헌이 되었다.
뒤를 이어 대북의 소위 명사들이 꼬리를 이어 폐모하는 것이 옳다는 줄에
대섰다. 여기 붙어서 눈치를 살피는 아전들, 서리들이 힐끔힐끔 남의 눈치
를 살피면서 가자(可字)쓰는 줄에 대어섰다.
이때 원임대신 이항복한테 수의(收議)를 하러 나갔던 칙사가 돌아왔다.
"백사 정승의 수의문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효순이 그 수의문을 받아 만조백관에게 피로하며 읽는다.
"신은 벌써 반년 동안이나 중풍에 걸려 아직 병중에 있소. 누가 전하를 위
하여 이런 일을 만들도록 하였는지 몰라도 자고로 어미가 악해서 비록 죄
를 지었다 하더라도 자식은 어미를 죄 줄 수 없소. 아버지가 자애스럽지
못해도 아들은 효도를 극진히 해야 하는 법이요. 도대체가 이러한 것은 논
의하는 것부터가 불가하오."
반대하는 대답이 분명하였다. 국가의 동량이었던 이항복이 폐모론에 반대
하는 것이 분명해지자 만당의 공기는 삽시간에 변하였다. 그때가지 힐끔힐
끔 대북 일파의 눈치만 살피던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 둘 반대론의 나오기
시작했다.
한효순도 원래는 줏대가 없고 주변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이이첨과
같이 악랄한 위인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대북의 직속 당파도 아니
었다. 그는 의외로 반대론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겁이 슬며시 났다.
결국 이날의 공론은 찬반(贊反) 양론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폐모론을 주장하는 대북 일파들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해 무서운 공
격을 가해왔다. 우선 이항복에 대하여는 처참의 형을 가하라 하였고, 양사
(兩司)에서도 그의 말이 발만(發慢)하니 삭탈관직하라고 들고 일어났다.
임금은 전조(前朝)의 대신을 죄 줄 수 없다 하여 여러 가지로 반대해 보았
으나 조정은 벌써 대북 일파의 손에 들어 있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항복을
북청으로 귀양보내고 말았다.
이후부터는 거의 날마다 대비의 죄를 들고
"지금 뿌리를 뽑지 않으면 훗일 해 되는 일이 많아질 것이요."
하고 대비를 없애라는 상소가 계속해 들어왔다. 임금은 하도 기가 막히고
귀찮아졌다. 무엇 때문에 이들이 이렇게까지 악착스럽게 폐모하라고 성화
를 부리는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임금은 마침내
《내 덕이 없어 임금이 된 후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나 매우 유감스럽다.
전번에 친형 임해군을 죽이고 또 어린 영창대군을 죽였다. 이것은 생각만
하여도 형제의 정으로 잘못 된 것을 알고 있는데 지금은 또 종사를 위해
폐모를 시켜야 한다니 내 죄 더욱 큰 것을 느낀다. 내 무슨 죄가 많아 이
런 변을 당해야 하는고! 경 등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라.》
하고 글을 내려 다시는 그런 소리를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성군(仁城君) 이하 여러 종실들이 일어나 나라를 위해
대비를 폐하라고 떠들었다. 모두가 대북의 사주를 받아 일어난 괴뢰들이
었다.
그 다음 해인 광해군 육년 이월 십일일 마침내 빈청회의(賓廳會議)에서는
임금의 한탄도 개의치 않고 좌의정 정인홍 이하 예조판서 이이첨 등이 모
여서 폐모의 절목(節目)을 결정했다.
즉, 명나라에서 준 존호(尊號)와 본국에서 준 옥책(玉冊)과 옥보(玉寶)를
빼앗고 대비라는 명칭을 서궁(西宮)이라고만 하고, 국혼 때 내린 납폐(納
幣) 등속을 비롯하여 왕비의 어보(御寶)나 표신(標信)을 회수하고, 출입할
때 연(輦)과 의장(儀仗)도 폐지해 버리고 일체 문안과 숙배를 폐하여 후궁
과 같이 대우를 한다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또 그 절목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들어 있었다.
《대비는 아비가 역적의 괴수가 되었고, 그의 몸이 역적 모의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자식이 역적의 추대한바 되었으니 이미 인연은 종묘와 사직에
끊어진바 되었다. 그가 죽은 후에 나라에서는 거애(擧哀)를 하지 아니하고
복(服)을 입지 아니하며 신주는 종묘에 들어갈 수 없다. 또 서궁의 담을
더 높이 쌓고 무장(武將)을 두어 지키게 하되 그 수직 군사의 행동은 병조
에서 감독하고 내시는 두 명, 별감은 네 사람만 두게 한다.》
대강 이러한 것들이었다.
승지는 곧 이 결정을 받들고 대비에게로 갔다. 대비는 영창대군이 죽었다
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만 있었다. 몇 번인지 목을
매어 자진(自盡)을 하려고 한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궁녀들은 대비에게
자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머리도 그냥 흐트러뜨린 채 밥과 음식을 물리
치고 누워 있는 대비 앞에 돌연 내시가 승지를 인도하여 들어왔다.
승지는 우선 열가지 죄목을 읽고 폐모의 선언을 내렸다. 대비는 방 안에서
궁녀들에게 부축되어 오뚝이 앉아서 모든 선언을 다 들은 후에 이(齒)를
바드득 갈았다. 별안간 문을 벼락치듯 열어젖혔다. 오뚝이 앉아서 승지를
호령한다.
"승지야, 듣거라, 만고에 자식이 어미를 폐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자식이 어미를 어찌 폐하느냐? 나는 상감보다 나이 적은 젊은 계모다마는
상감의 아비가 친히 친영례(親迎禮)를 거행하여 맞이해들인 정정당당한 적
모(嫡母)다. 알아 듣겠느냐? 제 아비가 정해놓은 어미를 어떻게 자식이
마음대로 쫓아낼 수 있느냐. 상감한테 내 말을 전해라. 폐모를 할것이 아
니라 죽여버리면 만사가 다 해결될 것이 아니냐고. 공연히 세상이 시끄럽
게 떠들썩할 것 없다. 나를 빨리 없애버려라. 왜 못하느냐? 맘대로 하는
것을! 나를 어서 죽여버리라 해라!"
어린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던 대비에게 어디서 그
런 기운이 솟아나는지 쨍쨍한 목소리로 승지를 꾸짖는다. 승지는 고개를
숙이고 부들부들 떨고만 섰다가 슬며시 피하여 나가버린다.
대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늙은 궁녀들에게 영을 내린다.
"먹을 것을 좀 가져 오너라. 이제는 내가 살아 저놈들이 망하는 꼴을 좀
보아야겠다."
악에 받친 대비는 스스로 자청해서 먹을 것을 청했다.
"옳으신 생각이십니다. 그저 오래 오래 사시어서 눈으로 저 자들의 망하는
꼴을 보셔야지요."
늙은 궁녀는 대비를 위로한다.
조정에서는 폐모를 선포한 후에 서궁(西宮)의 담을 더 한층 높이 쌓아 올
리고 군사를 풀어서 철통같이 포위해 버렸다. 그러나 이럴수록 대비는 악
착같이 살아야 한다고 마음 속으로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고 다짐했다.
친정 아버지도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 어린 아들도 불을 질러 숨이 막혀서
죽게 했다. 금이야 옥이야 사랑해 주던 늙은 남편 선조대왕도 꿈같이 세
상을 떠나 돌아갔다. 다만 남아 있는 혈육이라고는 생사를 모르는 친정 어
머니 노씨와 열살밖에 아니 된 정명공주 뿐이다.
늙은 어머니와 어린 딸, 핏줄이 엉킨 두 여자만이 남아 있을 뿐 자기의 몸
은 이제 혈혈단신 홀몸뚱이다. 그러나 이제는 도리어 살아야겠다고 반발했
다. 소금밥에 피죽을 끓여 먹고라도 오래오래 살아서 조정이 되어가는 꼴
을 보리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