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영혼(靈魂)
▲윤창중 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꼭 10년 전 이맘때-2002년 6월29일, 나는 도쿄 나리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엄청난 뉴스에 접하면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비행기에 있는 동안 까맣게 몰랐던 뉴스 - 북한 경비정이 서해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를 공격해 6명의 국군이 목숨을 잃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일본 전역이 전쟁 공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다음날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한일월드컵 결승전 겸 폐막식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 당장 돌아갈 비행기도 없었다.
결승전을 내 눈으로 봐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하필 대한민국 안보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왜 내가 여기에 있나하는 자책감을 갖고 요코하마 경기장으로 가 관중 속에 섞였다.
▲장병들은 적군의 총탄에 죽어나가는데 노벨평화상 이미지만 추구하던 김대중 대통령은 월드컵 축 구경하러 일본으로 가버렸다. 영혼 없는 대통령의 상징적 예화다.
그런데? 스타디움 전광판에 대통령 김대중과 부인 이희호 부부가 나란히 귀빈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닌가!
주체할 수 없는 충격! 이 상황에서? 그리고 이런 대통령을 갖고 있는 국가의 국민이라는 게 너무 부끄럽고, 한스럽고.
명색이 제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는 국군통수권자가 제 나라 장병들이 죽어나가는 참혹한 상황에서 저 자리에 앉아있는 대통령.
김정일에게 돈 퍼다 줘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제 나라 군대가 몰사 당해도 자신이 한반도 평화의 구세주라는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시치미 뚝 떼고 특별기 타고 일본으로 날아온 DJ.
▲상암경기장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자료사진)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가 2002년 6월25일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준결승전이 열린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방문,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난 그 자리에서 결심하고, 결심했다. 내가 지상(地上)에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DJ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결코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리라! 결코!
귀국한 다음날-6월31일, 순국 장병들의 합동 장례식은 삼일장으로 치러졌다. 대통령 김대중, 국무총리 이한동, 국방장관 김동신 누구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DJ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장, 통일부 장관,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를 지내며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임동원, 그는 6월4일 <조선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영결식에 대통령과 군 수뇌가 참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당시 우리 해군이 (작전) 통제선을 넘어간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름은 금석(金石)에 깊이 새겨 역사 속에 묻어놓아야 한다.
1976년 8월18일,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를 제거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도끼와 몽둥이로 무참히 살해한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미군에게 말한다.
미군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국군이 미루나무를 반드시 베어내겠다.
한미 양국은 만약 북한이 저항하면 신의주까지 치고 올라갈 작전계획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3군사관학교 졸업식에 나가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고 외친다.
한반도가 제2의 전쟁에 빠져들 수 있는 순간들.
드디어 미루나무 제거 작업 시작!
박정희는 청와대 집무실에 철모와 군화를 갖다놓고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만약 북한이 또 도발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인 내가 철모 쓰고 군화 신고 전쟁을 진두지휘하리라!
얼마 전에 작고하신 박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비서관 박승규 선생으로부터 들은 증언.
사건발생 이틀만에 김일성은 유엔사령부에 사과하고야 만다.
대통령에겐 영혼(靈魂)이 있어야 한다.
그 영혼이란? 국가다.
그게 있어야 국민을 감동시켜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다.
언론인 류근일 선생은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중이던 1961년 4월 남북 학생회담을 제안했다가 5·16 직후 박정희의 혁명재판소에 의해 징역 15년을 선고 받고 7년 6개월 간 형무소에서 청춘을 보냈고,
신문사 현역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20년 10개월을 선고 받고 형무소에서 또 10개월을 보냈다.
모두 합치면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무려 8년 4개월을 형무소에서 살았던 류근일
이게 어찌 간단한 형벌인가!
그러나, 류근일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가 서거하자 당시 자신이 살았던 경기도 부천 시청에 마련된 박정희 빈소를 찾는다.
“박정희와 화해하겠다.”
미뤄 짐작컨대, 박정희가 국가에 대해 갖고 있던 영혼에 대한 감동? 인정?
이런 게 심장 속에서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에 박정희와 화해했을 것이다.
두 거인(巨人)의 화해라고 말하고 싶다.
MB가 집권하는 동안 가장 가슴 뭉클하게 한 감동적 장면은 62년 만에 하와이 미 공군기지를 거쳐 귀국하는 6·25 참전용사의 유해를 맞이하기 위해 서울공항에 나가 국방장관 김관진과 함께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난 군대갔다오지 않은 대통령에 대해 살짝 용서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MB는 29일 열리는 제2연평해전 10주년 기념식에 대한민국의 종묘사직을 지키는 국군통수권자의 자격으로 무조건 참석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모윤숙의 시(時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낭송해야 한다.
“산 옆 외따른 골짝이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만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
가슴 속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6·25를 앞두고 대한민국을 지켜주신 모든 애국 시민들에게 이 시를 헌시(獻詩)하고자 한다.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정치평론가/전 문화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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