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 살아있다
최 화 웅
나는 통영을 고향처럼 사랑하고 아낀다. 그것은 젊은 날 스쿠바다이빙과 윈드서핑을 즐기던 해상레저의 현장이었고 등단 이후에는 문학의 안식처가 되었으며 나이 들어서는 정든 사람들과 자주 만나는 곳이 되었다. 귀 기울이면 통영에서는 바다가 속삭이는 해조음을 들을 수 있다. 통영은 한려수도가 시작하는 곳으로 깨끗하고 맑아서 그림 같다. 그리고 행동하는 휴머니스트와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H형과 아우 H가 아름다운 인생의 마무리를 하고 있는 곳이어서 더욱 마음이 가는 곳이다. 민선 이장을 하겠다던 H형은 회갑을 넘기면서 부산의 병원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마지막 봉사를 했다. 고희를 넘기고서는 그 일마저 접었다. 기자였던 H아우는 회갑에 기자직을 은퇴하고 사업을 하다 가족들에게 물려주고 고향 통영으로 귀향하여 물 맑은 풍화리에서 팬션을 짓고 갖은 허브를 기르며 올해로 고희를 맞았다.
통영바다는 진종일 바닷물이 들어왔다 밀려나가는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바다의 숨통이다. 아니 하늘과 바다가 소통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현장이다. 젊은 날에는 한산섬을 비롯한 사량도와 연대도, 소매물도와 욕지도 등 주옥같은 섬마을을 두루 쫓아다니며 다이빙과 서핑으로 조류의 숨 가쁜 물살을 헤쳤고 나이 들어서는 통영항을 둘러친 남망산과 미륵산, 망산을 비롯한 산길과 동피랑과 서피랑을 잇는 언덕길 따라 여유로운 산행을 즐겼다. 그런 시간 속에 큰 족적을 남긴 윤이상과 이중섭, 박경리와 유치환, 김춘수와 전혁림, 김상옥과 유치진에 이어 꺼지지 않는 열정을 불태운 진의장 까지 통영에서 태어난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왔다 작품과 일화를 남긴 정지용은 미륵산에 올라 “나는 통영의 풍경을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술회했고 백석은 그리든 천희(千姬)를 찾아 '사랑하다 죽는다.'며 세 번이나 들러 여러 편으 시, 통영을 남겼다. 그에게 있어서 통영은 사랑의 설레임과 배신이 배어 있는 곳이다.
나는 최근 투석치료가 비는 날을 틈타 아내와 함께 통영을 다녀왔다. 통영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은 힐링의 기회도 되었다. 그중 하나는 통영 앞바다를 배경으로 두 마리의 갈매기가 하늘로 비상하는 옥상외관에 널직한 계단 아래 숨어사는 풍경이 조용히 우는 국제음악당을 보고 놀랐다. 경남권 첫 클래식 전용공연장 통영국제음악당이 오는 시월에 문을 연다. 남북한 방문기를 쓴 루이제 린저는 윤이상을 두고 ‘상처 입은 용’이라고 일컬었다.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국제음악제와 윤이상 국제음악 콩쿠르가 해마다 열려 세계 음악연주가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통영시 도남동 1번지 언덕바지에 자리 잡은 통영국제음악당은 1,300석 규모의 콘서트 홀과 300석 규모의 다목적 홀을 갖추었다. 음악당 데크에 올라서서 바다를 바라보라. 천상의 대파노라마다.
다음은 세계인의 양심을 울린 휴매니스트 전재용 선장의 고향이다. 전재용 선장은 통영수고 출신으로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명87호>를 타고 인도양에서 1년 동안의 긴 참치잡이를 마치고 부산항으로 귀항하던 1985년 11월 14일의 일이었다. 남중국해를 지날 무렵 SOS를 외치며 절규하는 보트피플을 보게 된다.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낡고 작은 거룻배에 96명의 월남난민들이 타고 있었다. 전 선장은 사실을 회사에 타전했으나 “관여치 말라.”는 지침을 받고 계속 운항을 하다 “모든 책임은 선장인 내가 진다.‘는 단호한 판단으로 뱃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월남 난민 96명의 생명을 구했다. 노약자와 여자들에게는 서원 침실을 제공하고 환자는 선장실에서 응급처치를 했다. 이렇게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식량이 떨어지자 전 선장은 “걱정마라. 어창의 참치를 먹기로 하자.”고 서원들과 난민들을 안심시켰다. <광명87호>가 부산남항에 입항했을 때는 기쁨과 안도보다는 전재용 선장에게 해고통지서가 날아들었고 기관에 연행되어 심한 고초와 조사를 받아야 했다. 통영의 휴매니스트 전재용 선장은 그 이후 어느 회사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재취업의 길이 봉쇄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고향 통영으로 돌아와 물 맑은 풍화리포구에서 우렁쉥이 양식업을 시작했다. 진종일 태양이 뜨고 지는 통영에는 조선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이념논쟁으로 한편에서는 슬픈 고향일망정 인간과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숨통을 튼 고장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통영연극에술축제도 회를 거듭할수록 통영다운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세계 4대 성인인 공자,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도 조국과 고향에서 배척당했다고 하지 않던가? 문인상경(文人常經)이라 문인들이 서로를 경시하지만 통영은 그렇지 않다. 존중과 배려가 통영의 전통이 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에게 있어서 고향 더불린은 슬픈 고향이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마저 이념논쟁의 희생물이 되고 죽음의 항해를 하던 난민을 구한 휴매니스트가 은둔한 통영에 더 넓은 화해와 눈부신 공감이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울려주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다. H아우는 돌아오는 자동차 트렁크에 손수 재배한 불루베리와 매실, 토마토와 오이, 가지와 고추, 무우를 한 박스 실었다. 활어를 취급하는 중앙시장과 없는 건어물이 없다는 서호시장에서 해풍처럼 드센 통영의 인심을 느껴보자. 오, 에메랄드빛 바다가 출렁이는 통영이여. 그 바다의 길, 우리 마음에 영원무궁하리라!
첫댓글 아..통영 바닷가..바다 내음이 가슴속 깊이 느껴집니다. 좋을 글 고맙습니다.
통영이 역사적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정감어린 글 감사합니다.^^
광명 87호 전재용 선장님을 통영에 가면 만나뵙고 싶습니다.
통영 아름다운 도시를 마음의 화폭에 스케치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통영이 기억에 남고 인상적이었어요!^^
더위에 건강은 어떠신지요..
코끝에서 그리운 통영 앞바다의 내음이 물씬 나는듯 하네요.
오래전 전선장님의 마음 짠하던 기억도 되살아 나구요.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