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제와 격세 지간이다 . 우리는 이런시기에 보릿고개를 만나 먹지를 못했으나 지금은 배불리 먹고 남아도는
음식이 청계천을 요염시켰다. 배고픈 아픔을 모르는 젊은 세대 라면이라도 끓여먹지 이렇게 말한다..???
간절한 기도
기억하고싶지 않은 마음아픈 기도
답십리 판자촌
비닐 움막집
살곶이다리부근에서 만난소녀
송정동전농배수펌프장(철거전)
송정동제방.새마을 사업 시작시기
우물가의 모녀
웃고있는 동심
이발소가 있는 판자촌 풍경
재활용 우산 만들기
철교아래 토굴
청계천 하류 송정동 판자촌 전경.jpg
청계천 활빈교회
쳔변의 아이들 놀이
판자촌도 못되는 움막집에서 살았다
여기서도 세들어 사는 사람이 많았다면------
집집마다 몇 가구씩 살았으니....
판자촌
판자촌 골목 풍경
판자촌 길가 풍경
판잣집 벽지 만들기
한양대 부근 판자촌 전경
한양대살곶이다리부근전경
한양대살곶이다리부근전경
다음은 연합뉴스 기사 전문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관장:김우림)은 지난 2월 8일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씨(野村基之, 1931년생, 日本 山梨縣 거주)로부터 70년대 청계천 하류 사진자료, 스크랩북, 한국지도 등 826건을 일본현지에서 기증을 받아왔다. 노무라씨는 목사이자 기독교 사회운동가로서 1968년 한국을 첫 방문한 이래 70년대 중반까지 당시 답십리를 중심으로 청계천 하류 판자촌의 가난한 거주민을 대상으로 구호활동을 벌였던 독지가이다.
노무라씨는 이 자료들을 서독 등에 구호를 위한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현재 국내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70년대 청계천 하류의 모습과 판자촌 거주민들의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어서 청계천의 역사 뿐만 아니라 도시사, 도시빈민, 기독교 선교활동 등에 대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사진에 등장하는 지역은 현재 성동구 마장동·사근동·용답동·송정동 일대에 해당한다.
첫댓글 옛추억을 더듬어보는 순간들입니다 ,
소중한 자료 잘보았슴니다.
70년대라면 농촌에서도 그런집이 하나도 없었는대
그리고 서울처럼 못살지 않았어요
초가삼간 이지만 다들 농촌의 풍경들이 좋았던것 같아요.
근데 변산이님께서 이거 편집해서 올렸던데요..
좋은집카페에다가요..보기가 훨씬 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