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길’을 걷는 사람들
미도봉사회 鄭仁淑 회장
노인이 되면 옛날이 그립고 고향이 그립다. 그래서 도시의 중심부인 도심(都心)에서는 엄마의 품속같이 푸근한 사랑방 같고 시골다방 같은 그런 곳을 자주 찾는다.
대구 중구 중앙대로 77길 옆엔 진골목길이 있다. 진골목은 결상도 말씨로 ‘길다’를 의미하는 ‘질-다’에서 기원한다. 과거 대구 읍성의 남문이 있었던 구 대남한의원 사거리를 통과해 종로로 50m 정도 뻗어 들어가는 골목이다.
외국인들이 대구에 오면 ‘근대로(路)의 여행’ 코스인 이곳을 꼭 둘러본다.
지금은 그리 길지 않다. 남송초밥과 ‘시나브로다방’ 에서 정소아과의원, 백록식당, 혜성식당, 거창식당, 미도다방, 石齊 徐丙五선생 생가터 흉상((胸像) 있는 곳과 송정식당, 종로전당포, 미조식당을 지나서 옹심이메밀칼국수 식당까지 이다.
그 중간에 미도(美都)다방이 있고, 주인이 미도봉사회(美道奉仕會) 鄭仁淑 회장이다. 미도다방 정문에 붙어있는 전상렬 시인의 시(詩) 뒷부분이 이곳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가슴에 훈장을 단 노인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풀어놓고 차 한 잔 값의 추억을 판다. 가끔 정여사도 끼어들지만 그들은 그들끼리 주고받으면서 한 시대의 시간 벌이를 하고 있다.”
미도다방과 정인숙 회장은 TV와 신문 등에 수없이 보도되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鄭회장의 고향은 청도인데, 할아버지가 재산을 많이 물려주었으나 부친이 재정보증을 잘 못써서 머슴 3명을 데리고 농사를 짓던 부유한 살림이 하루아침에 거들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7남매의 맞이인 정인숙은 할 수없이 고등학교를 졸업 하자마자 다방의 카운터로 취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처음은 음악다방으로 시작해서 40년 전 鄭여사가 27세 때부터 美都다방 마담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鄭회장은 올림머리에 한복 정장으로 언제나 똑같다. 시골 다방 분위기에 어울리는 자태로, 타고난 미색을 잃지 않고 고결하며 우아한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고향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노인들이 매일같이 단골로 붐빈다. 넓은 공간에 그림족자, 옛 소품들이 시골다방처럼 중후한 멋을 풍기며 장식되어 있다.
경기가 좋을 때에는 하루 2천여 명의 손님들이 왔는데, 요즘은 하루에 300 ~ 400여 명의 손님들이 찾는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평균 나이는 80세가 넘는다.
과거의 단골노인 외에 두 부류가 더 추가되었다. 한 부류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외지인들과 골목투어에 편승하는 손님이고, 또 한 부류는 옛 아날로그 다방의 분위기 탐색 차 찾아오는 젊은 층이다.
여늬 다방에서 잘 내어놓지 않는 영양과자에 연신 손이 가며 두리번거리는 낌새를 보면 그들은 영락없는 이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앉아 있는 노인들도 취재의 대상이다.
노년 단골들은 이들 일회성 방문객을 의식하고 의젓해지며 느닷없이 쇼맨십을 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 요즘 풍속도이다. 꽉찬 다방에는 연로한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하고 있다. 크게 떠드는 손님도 없다.
미도다방이 시골다방과 다른 점은 담배를 피우고 장기나 고스톱을 하는 그런 곳이 아니라, 시인묵객들이 담소를 나누는 원로들의 차원 높은 공간이다.
요즘 시내 중심엔 한 집 건너마다 커피숍이 생겨나서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까페라떼’ 등 차 종류도 많다. 그러나 미도다방엔 진하게 우려낸 약차(藥茶)와 계란 노른자와 견과류가 동동 떠있는 쌍화차가 인기다.
거기다가 푸짐하게 내놓는 전병과자가 인기다. 필자도 쌍화차를 대할 때마다 그 옛날 지방에서 공무원과 신문기자시절이 생각난다,
세월이 흘러 鄭여사도 법적으로 노인이 되었으나 마음만은 청춘이다. 몇 년 전 62세 때는 바쁜 가운데도 영진전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학구파다.
돈을 벌어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50세 때 마음이 통하는 단골손님 6명 ‘아름다운 길’을 가자고 美道奉仕會를 7명이 창립 하였다.
초대 회장은 이태원 씨, 2대는 권경도 씨, 3대는 김시억 씨, 4대는 신종웅 씨가 맡았으며, 8년 전 5대 때부터 정인숙 회장이 맡고 있다.
金時億 씨가 명예회장이며, 朴淵鐸 회장을 비롯, 淡水會 회원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회원이 180여 명이나 되는데, 후원회원이 100여 명, 일반회원이 80 여 명이다. 후원 회원은 연간 1구좌가 10만 원인데 2~3구좌를 후원하는 사람도 많다. 회원들의 연령은 50대 후반부터 90대까지 다양하다.
봉사 후원 대상도 여러 곳이다. 고등학교 1학년생 4명에게 매달 10만원 씩 연간 120만 원을 졸업할 때까지 지급한다. 또 독거노인 7명에게 매월 5만 원씩 별세할 때까지 지급한다. 그리고 ‘작은애수의 집’ 장애인 13명에게 1년에 1~2회 금일봉과 노래 악기공연과 시낭송 등을 해준다는 것이다.
매년 3월 29일 정기총회 때에는 다문화가족, 탈북자, 불우가정 5명한테 30만원씩 전달한다. 특히 88세(米壽)와 90세(九旬)인 노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선물을 드리고 있다고 한다.
鄭회장은 180여 명 회원들의 길흉사에 직접 참석하여 모두 챙기고, 특히 고령 회원들이라 별세하는 분이 많은데, 빠짐없이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늘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다.
현재 한국휴게음식업협회 대구지회장, 3.1보국연합회 재정위원장 등도 맡아 활동하고 있다. 鄭회장은 사회봉사 공로로 보화원(補化院)에서 주는 보화상(補化賞)을 수상했으며, 장관상, ‘자랑스러운 중구 구민상’ 등을 수상하였다.
<‘淡水’ 李守萬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