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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나님의 기쁨이 되자 (잠 28:7-9)
한성진목사
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8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이 시간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엡5:10에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했습니다. 성경에 시험해 보라는 말씀이 몇 개 안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롬12:2에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참으로 고민하며 시험해 봐야 할 문제가 이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생을 살려면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인생에서 절대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의 사람이 되려면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고 싫어하시는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7절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이 말씀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부모와 관련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비"라는 말은 물론이고 "지혜로운 아들"이란 말에서도 상대적으로 부모를 전제한 말입니다. 즉 우리 믿음이 부모를 기쁘게 할 것이냐? 욕되게 할 것이냐? 그 관점에서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 “음식을 탐하는 자”는 ‘대식가, 난폭자’라는 뜻인데 ‘건달’로도 번역되기도 하는 낱말입니다. 건달을 음식을 탐하는 자로 표현한 것은 부어라. 마셔라. 이런 방탕과 깊이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방탕한 자와 사귀는 것은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정답이 정확히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하고 지키고 우리를 죄악으로 물들게 하는 것들과 멀리 하는 것입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를 보세요. 창26:34-35에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했습니다. 우리 믿는 자의 최고의 기쁨은 돈도 아니고 옷도 아니고 자녀들의 믿음 아닙니까? 그런데 믿음보다 세상 기준으로 살아가니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얼마나 그 어머니 리브가가 고통스러웠으면 창27:46에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했겠습니까? 에서도 그랬는데 야곱까지 그렇게 된다면 큰 슬픔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에서는 부모의 실망을 만회하기 위해서 본처들 외에 또 다시 축복의 통로가 아닌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들과 결혼하게 됩니다(창28:9). 부모를 위해서 한다는 것마저 부모를 더욱 실망시키는 짓을 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전혀 읽지 못한 불효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기쁘시게 하려면 성경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비 수준의 신앙입니다. 요일2:13에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했습니다. 부모가 되니까 비로소 아비의 마음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중을 깨닫고 좋아하시는 것을 하고 싫어하시는 것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기쁨이 되려면 하나님의 관심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8절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늘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해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약간 비꼬는 말인데 고리대금으로 남을 물려가며 돈을 축적하는 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재산을 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결국은 가련한 이웃을 돌보는 경건한 자에게로 그 재산이 옮긴다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전2:26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잘못된 방법으로 돈 벌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빼앗으신다는 말입니다.
율법에서 형제에게 이자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레25:35-36에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자 없이 도와야 하는 것은 율법이었습니다. 이 율법 때문에 유대인들은 세계 모든 도처에서 성공했습니다.
혈육이나 믿음의 형제에게 이자를 받는 것도 그런데 고리대금은 죄악 중의 죄악입니다. 년리 3~4할도 높은 건데 대부업자들이 수천 프로를 요구해 서민들에게 피눈물을 먹이고 있습니다. 이런 약탈적 대출과 흡혈귀적 금융이 지하경제에 존재한다는 것은 참으로 심각한 일입니다. 돈을 빌려주고 신체포기각서까지 요구하는 일도 있습니다. 신체포기각서란 갚지 않으면 장기를 떼어낸다든지 인신매매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큼 무서운 각서는 '자필서명과 인감도장만 찍힌 백지차용증', 이게 뭐냐면 채권자가 맘대로 자기 이름 적고 금액을 청구하면 줘야 하는 증명서입니다. 또 '자필서명과 인감도장만 찍힌 백지어음', 또는 '자필서명과 인감도장만 찍힌 공정증서 위임장', 이것도 그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그 중에 '자동차 포기각서'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사채업자들이 넘겨받은 자동차는 십중팔구 대포차로 돌아 다니게 될 것이고, 만에 하나 교통사고 (특히 뺑소니 사망사고)라도 발생하면 내가 다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각서는 법적으로 효력이 없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그 이전에 그들이 이를 이용하여 일을 끝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의로우십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다 아시고 본문 잠언에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의 돈을 결국은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에게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슨 일로 그 모든 재물을 다 엎어버리고 알거지가 되거나 죽게 되고 사회에 환원된 그 재물은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착한 일을 더 많이 하라고 하나님께서 옮겨 주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기쁨과 진노의 극대 극이 나타납니다. 이웃을 해치는 자는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이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의 대상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길이 여기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아버지십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관심에 관심을 갖고 이 땅에 고통 받는 이웃을 돌아번다면 하나님의 큰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의 큰 관심은 육신의 구제만이 아닙니다. 영혼의 구제도 있습니다. 최고의 이웃 사랑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도 죽어 지옥불로 떨어져가는 그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도와 선교에 힘쓰는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를 부강하게 하십니다. 마치 악인들의 것을 다 빼앗아서 주신다는 말씀과 똑 같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쁨은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의 육체와 아울러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기쁨이 되려면 주의 뜻안에서 기도하되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9절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여기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제 사용대로 기도하는 것은 가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기도란 일방적으로 자기 욕구를 하나님께 강요하거나 떼를 쓰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누는 인격적 교제로 그 분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는 상호간에 신뢰 속에서 드려지는 기도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사욕을 버리고 먼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기도를 잘해야 합니다. 기도 내용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 기쁨인데 기도를 잘한다면 이건 하나님의 대단한 기쁨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15:7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은지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 넘치게 주셨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잘했던 것이 기도였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기도에서 찾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당시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기복적인 기도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엎드리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도우십니다. 그래서 롬8:26-27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일반기도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만 방언을 하면 여기에 더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칼빈 선생은 기도줄이 완전히 잡혔을 경우는 방언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이 말은 기도가 되지 않을 때 방언하라는 말입니다.
방언은 통역이 되면 유익이나 통역이 되지 않아도 유익합니다. 알지 못하는 말을 한참 하고 나면 기도를 방해하는 내 머리에 잡다하게 꼿힌 필들이 다 흐트러지고 성령께서 소원을 불어넣어 주시므로 마음에 소원이 일어나게 됩니다. 기도 많이 하되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 이것은 보물입니다.
12세기 이집트의 시내산 입구에 있는 성 캐더린 수도원에 유난히 헌신적인 수도사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수도사 두 명은 평생 함께 합력하여 기도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잠자는 것과 식사하는 일 등 모든 일을 교대로 함으로써 한 순간도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엔 수도원의 배려로 이 두 사람에게 작은 방을 기거하게 했을 때는 두 사람은 서로 보지 못하지만 벽을 뚫어 손목을 쇠사슬로 묶고 기도를 시작하고 끝낸다는 신호로 쇠사슬을 잡아당기면서 평생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수도사는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죽어 작은 관 속에 나란히 뉘어졌다고 합니다. 이들의 천국 상이 얼마나 클까요?
그런데 그만큼 혹은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중심을 이해하고 그 중심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며 그 뜻 안에서 기도하되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바울이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멀리 하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이웃을 사랑하되 하나님의 진정한 관심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여 구제하고 전도하고 선교하고, 하나님의 중심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진실한 기도의 사람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