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요란한 소나기가 내리긴 했지만,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맑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여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 틈틈이 좋아하는 동네를 찾곤 했다. 최근 서울공예박물관 개관 소식을 듣고 사전 관람을 위해 안국동을 찾았다가 북촌 골목을 구석구석 누볐다. 몇 년 만에 와도 고즈넉한 풍경은 그대로다.
▼ 2021년 7월 개관한 서울공예박물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북촌은 조선 시대 권문세가들이 모여 살았던 지역으로 ‘안국동 윤보선 가옥’처럼 옛 모습을 간직한 한옥들을 볼 수 있다. 골목을 누비며 걷다 보면 안국동, 가회동, 삼청동 등 저마다의 특색이 뚜렷한 동네를 지나게 되는데 오랜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는 건물과 모던한 건축물들이 공존해 있는 이곳은 북촌만의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비교적 낮은 건물들로 탁 트인 전망 덕분에 종로 일대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독 도서관 근처의 골목길에는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안창호 선생님의 모습 등이 그려진 벽화를 볼 수 있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풍경이 반갑다.
발 가는 대로 걷다가 ‘풍년쌀농산’이라는 분식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 속으로 생각하면서 빈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활짝 열린 문으로 진짜 참새가 들어와서 그만 웃음이 터졌다. 정겨운 풍경이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나면 매점으로 달려나가 사 먹던 떡꼬치가 얼마나 그립던지. 요즘 이런 동네 분식점을 보기 힘들뿐더러 주변에 떡꼬치를 파는 곳도 많지 않다. 웬만한 음식들은 집에서 뚝딱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어 그 시절의 음식들은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되었는데 스쳐 지나가는 길에 ‘떡꼬치’라는 단어가 어찌나 크게 보이던지.
그리움 탓일까? 오래되어 조금은 낡은 분식점에서 사 먹는 떡꼬치에 행복감이 가득 채워졌다. 어른이 되어서 사 먹는 떡꼬치는 어릴 때 먹던 것만큼 아주 맛있진 않았지만 그리움 가득한 맛이 입안에 가득 퍼지며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삼청동 문화거리에서 경복궁 쪽으로 걸어가면 바라캇서울, 학고재, 세운아트 스페이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등 크고 작은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일대를 '경복궁길 미술관거리'로 명명하고 있다.
삼청동 가는 길 초입에 독특한 조형물이 전시된 건물이 있다. 세계 최대의 고대 예술품 수집가이자, 아티스트인 파에즈 바라캇의 서울 갤러리이다. 벤틀리에 역동적이고 화려한 색을 입힌 작품이 눈에 띄는데 바라캇 갤러리의 회장, 파에즈 바라캇의 작품이다.
▼ 바라캇 서울 Barakat Seoul
‘국제갤러리’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방문할 때마다 종종 함께 들르는 곳이다. 1982년 개관한 이곳은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과 그 흐름을 접하고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국제갤러리는 2개의 건물로 나뉘어 있는데 대로변에 개성 넘치는 K1 건물과 골목 안에 차분한 분위기의 K2 건물이 있다. 이날 있던 전시는 K1, K2 두 공간을 모두 사용하였기에 차례대로 방문하면서 감상할 수 있다.
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K1, K2
○ <Daniel Boyd : Treasure Island> 전시기간 : 2021. 06. 17.(목) - 08. 01.(일)
○ 주소 :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소격동 59-1)
○ 운영시간 : 평일 · 토요일 10:00 - 18:00 / 일요일 · 공휴일 10:00 - 17:00
○ 홈페이지
▼ 국제갤러리 K1
다니엘 보이드 : 보물섬 (Daniel Boyd : Treasure Island)
국제갤러리 앞을 지나다가 점묘화처럼 표현된 작품을 보고 궁금한 마음에 찾았다. ‘다니엘 보이드(Daniel Boyd)’ 작가는 이곳에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별도로 제공된 종이(종이에는 작가에 대한 설명, 작품의 의도, 작품명 등이 적혀 있다. 작품을 모두 보고 난 후, 읽어보면 작품 하나 하나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외에 갤러리 내부에서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온전히 작품만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땐 마치 색맹/색약 테스트지나 매직아이, 점묘화가 연상되었는데 수많은 점들이 모여서 한 덩어리를 이루며 작가의 메시지와 개성을 드러냈다. 이곳에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진 않겠다. 직접 작품을 보며, 느끼며 추후 작가의 의도 등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의 작품은 모두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찰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선조들의 존재로부터 시작합니다."
- 다니엘 보이드(Daniel Boyd)
▼ <Untitled (FAEORIR) 2021>, oil, acrylic, charcoal and archival glue on canvas, 122 × 92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Untitled (DWB)>, 2021, Oil, watercolour and archival glue on paper mounted to linen, 95 x 129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 국제갤러리 K2
▼ (왼쪽) <Untitled (TIM)> 2021, Oil, acrylic, charcoal and archival glue on linen, 213.5 x 168 cm
2F
▼ RIVERS, 2021, single channel video with sound by Leo James 6 min 1 sec Edition 1/3 + 1 AP
국립현대미술관은 좋아하고 자주 찾는 미술관 중의 하나다. 종종 경복궁 일대를 걷다가 그냥 지나치거나 잠시 들르기도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사전예약이 필수다. 이날 당일 예약이 모두 마감이 되어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7월 21일부터 내년 3월까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 한국미술명작> 기획전시가 진행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관람 예약 후 방문하도록 하자.
국립현대미술관 외부 마당에는 놀라운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 갤러리와 미술관 마당 등에서 진행되는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2021:멀티버스>는 기술 발전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의 양상을 다양한 형식의 예술과 기술을 통해 자유롭게 도전하고, 질문하며 사유해보는 전시다. 다양한 퍼포먼스와 전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가들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작품 속에 담긴 의도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 《다원예술 2021 : 멀티버스》 김치앤칩스 <헤일로>, 2018, 99개의 로보틱 거울모듈, 미스트, 태양, 바람, 18,500 × 4,800 × 8,100mm.
작품 설명 : 태양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99개의 로보틱 거울들이 물안개로 태양 빛을 반사한다. 하나의 태양과 반사된 99가닥의 태양 빛줄기는 허공에 원을 그리며 또 다른 태양을 우리 눈앞에 초대한다. 찰나의 후광은 자연, 기술 그리고 사람의 기다림을 통해 일시적으로 구현되었다 사라진다. <헤일로>
복작복작한 삼청동 일대를 벗어나 조용한 경복궁 옆 담벼락을 따라 걸어가면 어느새 경복궁 앞에 이른다. 코로나 상황으로 지칠 때면 이처럼 좋아하는 골목길을 천천히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잔잔한 위로가 된다.
▼ 아름다운 경복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