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유일무이한 군(郡)인 기장은 보석같은 청정지역이다. 달맞이고개에서 출발, 쪽빛 동해바다와 그림같은 갯바위를 감상하며 내달릴 수 있는 해안도로는 나라땅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라는 7번 국도에 버금가고 내륙의 크고 작은 옹골찬 봉우리들은 까탈스런 산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이른 봄엔 희귀 야생화가 가장 먼저 고개를 내밀고 여름이면 신록과 계곡으로 유혹한다. 만추땐 억새와 단풍이 손짓을 하고 시계가 드넓은 한겨울엔 동해바다와 회동수원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어쩌다 무작정 내달리고 싶을땐 쭉뻗은 종주능선이 산길을 열어준다. 무엇보다 기장의 산에 서면 부산의 산이란 산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듯 기장의 산은 많은 산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큼 양적 질적으로 상식을 초월한다. 울산과 인접한 장안쪽의 북동부 지역은 시명 불광 삼각 함박산 석은덤이, 양산과 경계를 이루는 정관의 북서부 지역은 용천 백운 망월산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심장격인 중부지역은 금정~백양 종주능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달음~천마~치마(함박)~문래~철마산의 동서 종주능선이 도사리고 있고 해운대구 반송과 인접한 남부 내륙지역엔 무지(운봉) 개좌 (회동)아홉산이 터를 잡고 있다.
이번 주는 설 연휴때 온 가족이 부담없이 떠나기에 안성맞춤인 무지~개좌산을 찾았다. 흔히 이 코스는 무지~개좌산을 거쳐 금정구 회동동에서 기장 철마면을 잇는 도로 상에 위치한 개좌고개를 넘어 아홉산으로 능선을 옮겨타 철마면 밤나무 추어탕집 내지 회동수원지 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 하지만 산행팀은 하산길 막바지에 가시밭길을 헤쳐가며 최근 독자들이 끊임없이 주문하는 원점회귀 코스를 만들었다.
산행은 동부산대 인근 산불초소~잇단 부부묘~지능선~등산로 체육시설~백운사 갈림길~잇단 돌탑~무지산 정상(454m)~실로암 공원묘지(안부)~개좌산 정상(449m·산불초소)~철탑~운봉고개(독립가옥)~철탑~임도~철탑~성모수녀회 철망담장~사거리~성모수녀회~반송여중 순. 순수 걷는 시간은 3시간20분 안팎. 하산 즈음 길찾기에 약간 유의해야 하는 것 이외에는 시종일관 여유롭다.
들머리는 해운대구 반송동의 동부산대학과 반송여중 정문을 잇따라 지나 오른쪽에 열린 산길. 다행히 입구에 산불초소가 서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울창한 송림이 소반마냥 펑퍼짐하게 펼쳐져 있어 명명된 '반송(盤松)'이란 지명답게 소나무 숲길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곳도 재선충을 피해갈 수 없었던듯 훈증처리한 흔적이 역력하다. 제대로 대접받았다면 여느 절집의 대웅전 기둥감인 아름드리 소나무의 그루터기에는 비닐이 그대로 씌워져 있다. 처참함 그 자체다. 오롯이 펼쳐진 한적한 오솔길. 재선충이 못내 원망스럽기만 하다. 나무 사이로 동부산대 건물이 얼핏 보인다.
잇단 부부 묘를 지나면 본격 오르막. 13분쯤 뒤 지능선에 닿는다. 정면은 무지산. 평탄한 왼쪽 오솔길로 간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왼쪽 금정산 주능선이, 오른쪽엔 장산에서 달음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펼쳐진다. 6분 뒤 길 좌우에 벤치와 운동기구가 널려있다. 등산로 체육시설이 끝날 즈음 갈림길. 왼쪽은 백운사, 운봉마을 방향. 백운사는 최근 우담바라가 피어나 유명해진 사찰.
무지산은 직진한다. 한굽이 오르면 우측에 시야가 트인다. 야산을 축으로 아파트촌인 윗반송과 주택밀집지인 아랫반송이 확연히 구분되고 장산 금련산 황령산 배산이 확인된다. 잇단 돌탑을 지나면서 급경사 오름길. 정상까지 가는 25분 내내 오르막이다. 도중 과거 산불로 인해 그을린 나무들이 안쓰럽다.
드넓은 정상에는 '무지산'이라 적힌 정상석과 큰 암석이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정상석 양쪽 옆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조성돼 있다. 한눈에 봐도 부산을 에워싸고 있는 산야와 산록, 그 사이로 터를 잡고 있는 도심, 그리고 기장쪽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이 기회에 한번 곰곰이 살펴보자. 정상석 뒤 정면 거문산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문래봉 곰래재 치마산 철마산 달음산, 치마산 뒤로 석은덤, 골프장 왼쪽 시명산, 그 뒤 대운산이, 달음산 앞 (철마)아홉산, 고리원전과 바다, 일광산 기장읍내 산성산 양달산 장산 태종대 봉래산 금련산 황령산 엄광산 구덕산 승학산 백양산 금정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재밌는 점은 발을 딛고 있는 무지산에서 왼쪽으로 개좌산 (회동)아홉산 윤산 금정산이 남북방향으로 나란히 달리고 있다. 개좌산 정상은 11시 방향 산불초소가 보이는 곳이다.
| | 산행 막바지 운봉고개에선 수려한 소나무가 시선을 붙잡는다. |
직진하면 개좌산 방향. 우측 실로암공원묘지를 보며 7분쯤 걸으면 안부에 닿고 거기서 다시 7분쯤 오르면 개좌산 정상. 산불초소가 있고 회동수원지가 약간 보이는 것 외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 하산은 산불초소 약간 못미쳐 왼쪽으로 열린 산길로 내려선다. 초소 뒤로 직진하면 개좌고개.
카키색 낙엽이 켜켜이 쌓인 보석같은 내리막 소로이다. 흠이라면 약간 미끄럽고 나뭇가지가 진행을 불편하게 한다는 점. 30분쯤 뒤 철탑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간다. 이어 무덤을 지나 만나는 갈림길에서도 왼쪽으로 내려선다. 경작지를 가로질러 내려서면 운봉고개. 참고로 여기서 산행을 끝내려면 왼쪽으로 계속 내려서 운봉마을을 거쳐 들머리에 닿는다. 산행팀은 100% 원점회귀 코스를 내기 위해 운봉마을쪽으로 25m쯤 가다 우측으로 두 번 방향을 꺾어 '산불조심' 플래카드가 붙은 길로 오른다. 독립가옥을 지나면 이내 철탑에 닿고 이곳을 지나면 임도와 만난다. 여기서 임도 대신 산길로 가기 위해 억새가 시작하기 전 왼쪽에 열린 산길로 오른다. 50m쯤 가다 왼쪽으로 내려선다. 우측에 석대매립지.
산길은 나 있지만 아주 거칠다. 곧 임도와 만나지만 바로 산으로 오른다.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무덤과 철탑을 연이어 지나면 억새길. 왼쪽으로 올라 무명 봉우리를 넘어서면 길없는 급격한 내리막.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내려서면 길이 보이고 다시 오르막길이 기다린다. 이내 만나는 갈림길. 눈앞에 철망담장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임도. 10m쯤 가면 사거리. 왼쪽으로 간다. 사실상 산행은 끝. 철망문을 연이어 두 번 통과해 계속 철망과 나란히 달리다 개울 위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면 도로. '(재)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아이들의 집'을 지나면 곧 들머리 산불초소에 닿는다.
◇ 교통편 - 반송 동부산대·반송여중 지나면 들머리
| | 왼쪽 위 상단 가오리찜에서 시계방향으로 논고둥무침 동동주 추어탕 |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으로 가는버스를 타고 반송동 정류장에서 내린다. 305 183(이상 좌석버스) 129-1, 189, 189-1, 188, 115-1, 73번. 동래 금정쪽에서 탈 경우 정류소에서 내려 역방향으로 가서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간다. 에스오일 주유소를 지나 해원산부인과를 보고 우회전해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간다. 동부산대와 반송여중 정문을 지나면 곧 들머리를 만난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석대화훼단지를 지나 동부산대학으로 좌회전한 후 반송여중 정문 바로 위 후문으로 들어가 학교 안에 주차하면 된다.
맛집 하나 소개한다. '원조 석대추어탕(051-523-7819)'. 석대화훼단지 맞은 편에 위치해 있다. 25년 전통의 추어탕 전문집이다. 비결은 가마솥과 장작불. 때문에 국물맛이 깊고 진하다. 미꾸라지는 충남 논산시 강경과 당진군 합덕의 토종만을 고집한다. 삶은 미꾸라지는 채에 대고 손으로 으깬 후 쌀뜨물과 미꾸라지를 삶은 물을 섞어 끓인다. 산행 후 동동주와 곁들여 먹으면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가오리찜과 논고둥무침도 일품이다. 추어탕 5500원, 동동주 4000원, 논고둥무침 가오리찜 7000원.
◇ 떠나기전에 - 지도엔 운봉산, 정상석엔 무지산 표기
사실 산행팀은 운봉고개에서 코스를 약간 늘렸다. 산행시간이 약간 짧았고, 무엇보다 100% 원점회귀를 만들기 위해서다. 어린 자녀와 함께라면 운봉고개에서 운봉마을을 거쳐 내려와도 상관없다. 운봉고개를 지나 거친 산길 대신 임도를 따라가도 된다. 특히 자녀와 함께라면 임도를 권하며, 철망담장이 보이는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무지산은 국토지리정보원이 발간하는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운봉산이라 표기돼 있다. '무지산 산악회'가 세운 '무지산'이라 적힌 정상석 때문에 운봉산 대신 무지산이 널리 알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운봉산(雲峰山)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이곳에서 놀때 속인의 눈을 가리고자 구름이 항상 끼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무지산은 산에 풀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의미이다.
개좌산은 개와 관련된 전설로 인해 명명된 산이다. 그 사연은 개좌고개 한쪽편 대리석에 새겨져 있다.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잠든 주인인 효자 서흥을 구하고자 수십차례씩이나 개울로 달려가 온 몸에 물을 묻혀 끝내 서흥을 구하고 숨을 거둔 충견에 대한 이야기다.
글·사진 = 이흥곤기자 hung@kookje.co.kr 문의 = 국제신문 산행팀 (051)500-5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