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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1) 천주교와 개신교는 다른 종교인가?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형제 교회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성 요한 23세 교황은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을 선포하면서 사도좌로부터 갈라진 동방 교회와 개신교 17개 교파의 35명 대표를 참관인으로 초대했습니다. 이는 동·서방 교회의 분열과 종교개혁으로 갈라진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가 오랜 반목을 뒤로하고, 신앙의 공동 유산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 일치 운동이라는 순례 여정을 함께 걷자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초대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국의 천주교와 개신교는 같은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성경과 교리 해석의 차이를 ‘다름’을 넘어, ‘이단과 오류’로까지 비난하며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이에 가톨릭평화신문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가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함께 어울려 공동의 신앙 고백을 하는 희망을 담아 편찬한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에 담긴 내용을 저작권을 소유한 위원회의 협조를 받아 연재합니다.
천주교와 기독교(개신교)는 서로 다른 종교인가요?
천주교와 기독교(개신교)는 같은 그리스도교로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 다시 말해 구원자, 메시아로 고백합니다. 중국을 통해 전래된 ‘기독’(基督)은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음역 한자어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를 한자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천주교’(天主敎)라는 용어도 본래 하느님을 ‘천주’(天主)로 고백해 온 선교 초기 역사와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에 가톨릭 신앙을 전한 예수회 마테오 리치는 중국 유학(儒學)의 정신을 존중하여 서구의 ‘신’(神, God) 개념을 ‘하늘의 주인’으로 번역하여 사용했고, 우리 신앙 선조들도 ‘천주’를 믿는 종교라는 뜻에서 가톨릭교회를 ‘천주교’라고 지칭했습니다.
이렇게 천주교와 기독교는 모두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를 가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517년 종교 개혁 이후 가톨릭교회로부터 갈라져 나간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개신교’(改新敎)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개항 이후 서양의 선교사들이 개신교 신앙을 전래할 때 자신들이 전하는 종교를 천주교와 구분하기 위해 ‘예수교’ 또는 ‘기독교(개신교)’ 신앙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와 기독교(개신교)가 마치 다른 종교처럼 여겨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대다수의 개신교 신자는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지칭하면서 천주교 신자를 다른 종교인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라는 말이 ‘그리스도교’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해서 천주교 신자가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지칭하지도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라는 말이 개신교를 지칭하는 말로 관행처럼 오래 사용되어 왔기에 쉽게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는 모두 이천 년 전 나자렛 예수님을 통하여 참된 구원과 영생의 희망을 얻은 같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천주교의 ‘성당’과 개신교의 ‘교회’는 서로 다른가요?
본래 ‘성당’과 ‘교회’의 원어는 같습니다. 곧 라틴어로는 ‘에클레시아(ecclesia)’이고 영어로는 ‘처치(church)’입니다. 「천주교 용어집」은 “에클레시아는 본디 ‘교회’(하느님의 백성)이지만, 건물을 가리킬 때에는 ‘성당’이라고 한다”고 규정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하느님께서 불러 모으신 백성으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반면 천주교 용어 ‘성당’과 개신교 용어 ‘예배당’ 또는 ‘교회당’은 신앙 공동체가 모여 하느님을 경배하고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를 뜻합니다. 이런 구분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건물 또는 장소를 의미하는 ‘성당’의 명칭을 ‘천주교○○동 성당’으로 통일하여 표기합니다. 반면 개신교는 선교 초기부터 일정 시기까지는 ‘○○예배당’, ‘○○교회당’이라고 표기했지만, 현재 대부분 ‘○○교회’라는 표기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천주교 신자가 “○○동 성당에 다닙니다”라고 말하거나, 개신교 신자가 “○○교회에 다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란 사실을 밝히는 동시에 자신이 소속된 교회 공동체를 알리는 방식으로 보편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개신교 신학자는 교회 건물에 공동체 명칭으로서 ‘○○교회’라는 현판을 사용하되, 장소를 표현할 때는 ‘○○교회 예배당’이라고 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마치 장소적인 건물로서 인식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 “예배당에 모였다.”, “예배당에 간다.” 등의 표현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교회’라는 용어는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모두 신앙 공동체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기에, ‘성당’을 천주교로 대신하고 ‘교회’를 개신교를 대신하는 의미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삼가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2) 그리스도를 표방하는 교단들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이단들
개신교 교단들 가운데 그리스도교를 표방하고 있지만 개신교 안에서는 이단으로 여겨지는 교단들이 있습니다.
먼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흔히 ‘안식교’, ‘안식일교’ 또는 ‘재림교’라고도 불립니다. 이 교단은 1863년 미국에서 개신교 근본주의, 회중주의, 특히 예수님의 실제적이고 급박한 재림을 강조하면서 일요일이 아닌 성경의 제칠일 안식일을 따라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라고 믿으며 출범한 교단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토대로 재림 운동이 강조되면서 엘런 화이트라는 17세 소녀의 예언을 바탕으로 그녀를 선지자로 섬깁니다. 기본 교리는 그리스도교 정통 교리를 따르지만, 예수 재림 후 전천년설, 제칠일 안식일, 채식주의, 영혼 멸절, 곧 사람이 죽으면 소멸된다는 등의 독특한 교리를 가르칩니다. 이 때문에 정통 개신교의 교단들에 의하여 여전히 이단 논쟁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삼육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는데 삼육대학교나 삼육 외국어 학원은 안식교의 중요한 선교기관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19세기 미국의 재야 성서학자 찰스 테이즈 러셀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결성된 그리스도교 회복주의 성향의 종교 단체입니다. 이들은 삼위일체론과 영혼 불멸, 지옥 등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느님과 동등한 분으로 여기지 않기에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들은 1세기 초기 교회의 모습을 간직한 교회라는 확신으로 교회를 운영하며 성경과 「파수대」, 「깨어라」등의 책자와 잡지 등을 배포하며 포교 활동을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천황 숭배 거부와 양심적 병역 거부로 고초를 겪기도 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병역을 거부하고 수혈을 거부합니다.
흔히 몰몬교로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신경과 신학을 따르지 않는 소위 ‘회복된 개신교’를 표방하며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설립된 교단입니다. 조셉스미스 주니어의 계시 체험에서 유래한 몰몬경을 경전으로 삼으며 정통 교단과 차별화된 믿음을 강조합니다.
‘통일교’는 문선명을 재림 주, 메시아로 믿는 신흥 종교로 1954년에 창시되었습니다. 그는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활동하며 ‘원리 강론’이라는 핵심 경전을 토대로 정치 활동과 기업 활동을 통하여 개신교와 전혀 다른 가치를 가르칩니다.
최근에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신천지’ 또한 정통 그리스도교에서 벗어난 신흥 종교이자 개신교에서는 사이비 이단으로 강하게 비판받고 있습니다. 신천지의 공식 명칭은 ‘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 성전’이고, 요한 묵시록을 중심으로 1984년에 이만희가 창립해 ‘성경 비유 풀이’를 통해 성경을 해석하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포섭해 포교 활동을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또한 1964년에 자칭 재림 예수인 안상홍이 창시한 신흥 종교로서 ‘하나님의 교회 세계 복음 선교 협회’로 활동합니다. 초대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였음을 강조하면서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키고 성만찬은 유월절에, 십자고상은 우상이며, 12월 25일은 성경에 없는 이방 종교의 축제일이라고 주장하며 정통 교리에 벗어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3) 하느님과 하나님
신을 다르게 부르는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고, 개신교에서는 왜 ‘하나님’인가요?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의 일치에 첫 번째 걸림돌은 신의 이름을 ‘하느님’과 ‘하나님’으로 다르게 부르는 것입니다. 신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엘로힘’, 그리스어 ‘테오스’, 라틴어 ‘데우스’, 영어 ‘갓’을 천주교와 개신교가 다르게 번역하는 경우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천주교는 본래 가톨릭 신앙의 보편성을 뜻하는 하늘의 주인을 섬기는 종교라는 의미로 하느님을 ‘천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1977년 「공동 번역 성서」가 발간되면서 이전부터 널리 사용해 온 순수한 표준어인 ‘하늘님’의 국문법적 표현으로 ‘하느님’이란 용어가 교회 안에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입니다. 우리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은 ‘하늘’이 곧 ‘유일한 분’이시며,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이름에 내포된 ‘하늘’은 초월적이고 유일한 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가장 겸허한 방식임을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국에 전래된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천명한 종교를 뜻합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경우는 선교 초기부터 천주교와 구별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전하고자 한국 사회에 만연한 보편적 신(神) 신앙과는 다른 절대적이고 초월적이며 성경에 계시된 유일한 신을 강조하여 ‘하나’라는 수사적 표현과 존칭인 ‘님’의 합성어인 ‘하나님’을 공식적인 하느님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하나님은 모두 그리스도교의 신, 곧 히브리어 엘로힘, 그리스어 테오스, 라틴어 데우스, 영어 갓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이해하고 강조하는 관점에 대한 차이가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사상적 차이를 만들기도 합니다.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 중에는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불어야만 한다고 강조하면서 독단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반면에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에도 전례나 대화에서 어쩌다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처럼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편견과 오해는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니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부와 목사는 어떻게 되나요?
천주교에서 신부가 되는 과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사제 양성 교령’(1965년)이 발표된 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개정되어 온 「사제 양성 지침」을 따릅니다. 물론 사제 양성 과정에 지역 교회의 특성이 존중되지만, 보편 교회의 지침에 따라 매우 엄격하고 긴 양성 과정은 공통적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현재 6개 대신학교(서울, 대구, 광주, 인천, 수원, 대전)에서 7년의 정규 교육 과정(대학 4년과 대학원 2년, 부제반 1년)과 별도로 1년의 사목 실습, 그리고 2년의 병역 의무(현역 또는 대체 복무)를 거쳐 사제 후보자를 선발합니다. 신학생은 양성 과정 중에 신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방학 때는 다양한 사목 현장에서 사목 실습을 한 뒤, 엄격한 성소 식별 과정을 거쳐 부제로 서품되어 성직자가 됩니다. 이어서 소속 교구장 주교나 그 권한을 위임받은 주교로부터 안수를 받아 사제가 된 다음에 성찬례와 성사를 집전하는 직무 사제직을 수행합니다.
반면 개신교는 교단의 특성에 따라 목사가 되는 과정이 매우 다양합니다. 한국 개신교의 주류 교단인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경우 일반 대학 과정(장로회 신학대학교, 4년)을 마친 다음 장로교단에서 인정하는 신학대학원(3년)을 이수하고 일정 기간 전도사 생활과 ‘목사 고시’를 거쳐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기독교 대한 감리회의 경우 소속 대학교(감리교 신학대학, 목원대학교, 협성대학교)에서 대학 과정(4년)을 밟더라도 신학대학원(3년)을 졸업한 다음 교단의 규정에 따른 교육 과정을 이수한 뒤 목사 고시를 거쳐 목사가 됩니다.
이 밖의 다양한 개신교 교단에서는 자체 신학교를 운영하여 목사를 양성하고 있고, 외국의 신학 대학을 졸업한 다음 목사 고시를 통해 목사 안수를 받기도 합니다. 개신교의 목사 양성은 교단마다 기간과 과정이 서로 달라 통합된 교육 과정이 없습니다.
‘성직자’라고 불리는 가톨릭 사제와는 달리 장로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 목사는 루터의 만인 사제설을 바탕으로 목사 안수 이후에 설교와 예배를 인도하는 ‘교역자’, ‘목회자’로 불립니다. 그리고 장로와 집사들이 통상 교회의 운영을 맡는 것이 천주교와는 다릅니다.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4) 십자고상과 십자가
예수님 수난 형상 새겨진 천주교의 십자고상
천주교의 십자고상과 개신교의 십자가는 왜 서로 다른가요?
십자가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성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대속의 희생양으로 바치셨고, 이로 말미암아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가장 중요한 구원의 신비가 십자가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본래 로마 제국에서 최고의 흉악범에게 내려지는 고통스러운 사형 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에 십자가는 동시에 승리의 표징이 되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천주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희생 제사를 기념하는 성찬 전례를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왔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희생 제사가 이루어지는 제대 주위에 십자고상을 세워 두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한 천주교 신자의 신앙생활에서 십자고상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중요한 영성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천주교는 보이는 표징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성사(聖事)의 신비를 강조하면서 전례적 표징을 많이 사용합니다.
개신교 또한 십자가를 예배당의 중심에 두고 소중한 신앙의 표지로 삼지만, 십자가에 예수님의 수난 형상을 새겨 두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첫째,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십자가에 두지 않으려는 부활 신앙을 고백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형상이 자칫 우상 숭배로 흐를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바오로 사도의 신앙 고백에서 “믿음은 들음에서”(로마 10,17) 온다는 신조를 강조하여 설교와 찬양을 통한 내적 회심과 성경 말씀을 듣는 신심의 형태로 발전한 영향도 있습니다.
최근 천주교에서도 문화적인 변화로 십자가를 예술적인 형상으로 제작하여 성당에 고상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을 새겨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규정상 미사 거행 때 제대 위나 그 주변에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세워 두어야 하므로, 이것이 제대 십자가를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한편 개신교 교파들 가운데서도 성공회와 루터교의 경우에는 십자고상을 전통으로 간직하고 있고, 천주교의 사순 시기에 해당하는 고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기간을 보내기도 한다는 점을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개신교 신자도 성지 순례를 하나요?
천주교 신자에게 성지 순례는 아주 익숙한 말입니다. 한국의 103위 순교 성인들의 발자취가 새겨진 성지가 전국 각지에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지 순례는 순교 성인들의 삶과 영성을 배우고, 그분들이 남긴 신앙의 증거를 몸소 체험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신심 생활의 중심입니다.
성지 순례는 본래 예수님의 발자취가 있는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그 흔적을 따라 순례하며 예수님께 필요한 은총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과 역사에서 훌륭한 영적 발자취를 남긴 성인들의 출생지와 삶의 현장, 그리고 순교의 장소를 방문하고 기도하는 것도 천주교 신앙 감각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그런데 개신교는 예수님의 발자취가 있는 이스라엘 성지를 방문하는 성지 순례를 하기는 하지만, 천주교처럼 성인의 발자취가 있는 곳을 순례하지는 않습니다. 개신교 신앙에는 성인을 공경하는 신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오직 성경만으로’의 정신을 따르는 개신교는 성경에 적혀 있지 않은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사도들의 신앙 전승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에서 성인에게 구원의 전구를 청하고, 성지 순례와 보속 행위, 선행을 통하여 성화되고자 노력하는 것과는 달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개신교는 성인의 사적지를 방문하여 하느님께 기도를 청하는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개신교 신자들은 선교사의 묘지를 방문하여 그들의 업적을 기리거나, 비그리스도교 지역을 방문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 순례를 합니다.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5) 사제의 독신과 목사의 혼인
예수님 모범과 말씀에 따른 사제 독신제
신부는 독신을 지키고 목사는 왜 혼인을 하나요?
성직자와 목회자의 혼인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민감한 주제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아닌 정교회와 성공회, 개신교 교단에서는 목회자의 혼인을 허용합니다. 정교회와 성공회의 신부나 개신교 목사 가운데 독신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교회 신부는 보제(가톨릭의 부제) 서품 이전에 혼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서품 이후에는 혼인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님의 모범과 말씀(마태 19,12 참조)에 따라 사제 독신제가 시작되었고, 이는 바오로 사도의 모범과 권고(1코린 7,32-35 참조)에도 근거합니다. 사제 독신제에 대한 전통은 300년경 엘비라 지역 공의회(규정 33조)에서 시작되어 이리베리다노 지역 공의회와 446년의 카르타고 공의회, 그리고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재확인되었습니다. 그 뒤 1917년 보편 교회법에 사제 독신제가 명시되었습니다.
천주교 신부가 독신을 지키는 이유는 혈연이나 가족에 매이지 않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 교회의 일꾼으로서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로 서품되는 것은 개신교 목사 안수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성품성사는 축성이나 성사의 성격을 지닌 종교적이고 전례적인 행위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오로지 당신에게서 나올 수 있는 ‘거룩한 권한’을 교회를 통해서 행사하도록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품성사를 축성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를 위하여 선별하시어 권한을 부여하시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38항 참조)
성품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표징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제의 독신은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독신의 표징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인 교회에 완전한 헌신과 자기 봉헌의 의미를 드러내는 새로운 삶의 표징이기도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79항 참조)
반면에 개신교의 목사는,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성직 제도를 부정하고 모든 신자가 동일한 사제직을 수행한다는 ‘만인 사제설’ 또는 ‘만인 제사장설’에 따라 신앙 공동체의 필요를 위한 직무를 수행합니다. 따라서 목사의 혼인은 평신도의 혼인 생활의 품위와 같은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평신도와 동일한 혼인의 삶의 형태를 통하여, 신자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공감하고 가정을 이루고 돌보면서 동시에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합니다.
신부가 착용하는 로만 칼라(성직 복장)를 목사가 해도 되나요?
가톨릭교회에서 로만 칼라는 수단과 함께 천주교 성직자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성직자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의 목 부분에 두르는 흰색의 로만 칼라는 혼인을 하지 않고 정결을 지킨다는 독신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또한 로만 칼라는 주교에게 순종한다는 뜻과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가톨릭교회에 순종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로만 칼라는 8세기 이후 나라별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로만 칼라는 교황이 거주하는 로마의 양식으로, 16~17세기부터 로만 칼라로 규정되었습니다. 1565년부터 1582년까지 개최된 밀라노관구 공의회에서 성직자에게 초기 형태의 로만 칼라를 착용하도록 하였고, 17세기부터 가톨릭국가들에서 성직자가 관행으로 로만 칼라를 착용하게 됐습니다.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1724년 12월 20일 교령으로 로마의 성직자에게 로만 칼라의 착용을 의무화하였고, 1725년에는 전 세계 성직자에게 이를 준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의 하나로 성직자 복장을 간소화하면서 개량된 로만 칼라를 성직자가 착용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로만 칼라는 성직자의 권위나 명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섬김과 봉사의 표징이고, 성직자의 신원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현재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개신교 목회자가 개량된 로만 칼라를 착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루터 교회는 18세기부터 공직자가 착용하던 칼라를 간소화하여 목회자 신분을 드러내는 복장으로 착용했습니다. 또한 감리교 감독과 성공회 주교도 로만 칼라를 착용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교단과 상관없이 목회자 신분을 드러내고자 목사가 로만 칼라를 착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일부 개신교에서 로만 칼라가 개신교 목회자 복장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지만, 로만 칼라가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을 지닌 성직자 복장이라는 점은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히려 일부 개신교에서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복장을 받아들여 현대적 셔츠 형태로 개량해서 착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