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소를 기다리던 사람들

[석염]

출소를 기다리던 사람들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자유를 억압당해본 사람이면 그 소중함을 깊이 느낄 것이다. 특히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이라면 그들 심정은 더 절박할 것이다. 이 기본적인 욕구를 제한함으로써 죄 값을 치르도록 하는 곳이 교도소일지도 모른다. 내가 함께했던 재소자들! 그들도 출소할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일찍이 내가 근무했던 제주시험장은 해발 200m고지의 중 산간 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연구실 유리창을 통하여 우뚝 솟은 한라산 영봉과 이어지는 산줄기들이 만들어 내는 형형색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펼쳐진 목장과 너른 들판, 그리고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곤 하였다. 자유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시설물이 이웃에 있었다. 높은 언덕위에 우뚝 솟아있는 성채 같은 건물이었다. 마치 중세기 영주들이 살았던 성곽처럼 거대한 이 건물은 제주교도소였다. 이름만 들어도 께름칙한 건물을 하필이면 왜 저 곳에 설치했을까! 마치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시샘하여 객기라도 부리는 양 아주 눈에 거슬리는 건물이었다. 그 건물 속에서 범죄자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교도관들이 어우러져 숨막히는 분위를 연출할 것 같은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제주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축산기술을 교육시켜 달라는 요청이 왔다. 재소자들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여도 범법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여 재범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그래서 출소 후 스스로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도록 기술교육을 실시하니 협력해 달라고 했다. 교육대상자들은 수형생활을 잘 수행하고 있는 모범수들로서 출소가 임박한 사람들이었다. 먼저 교육수준을 농업계 고등학교에 맞추기로 하였다. 농업계 고등학교 축산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여 매주 하루는 교도소 강당에서 두시간 강의교육을 실시하고, 다른 요일에는 우리 시험장으로 이동하여 실험축사와 실험포장에서 실습하도록 하였다.

처음 출강하던 날 교도소의 육중한 벽 앞에 섰다. 벽 입구에는 쇠창살문이 무겁게 닫혀있었다. 그 위에 “무서워하지 말라”라는 커다란 글씨체의 문구가 더욱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사무실에서 출입증을 받고 입구에 이르자 무거운 쇳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힘찬 구령과 함께 경례를 했다. 재소자 중의 모범수라 했다. 강당으로 이어지는 복도 양쪽에는 각종 작업실들이 있었고 재소자들이 할당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강당에서 나의 강의를 듣는 재소자들은 정말로 특별대우를 받는 그룹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소자들은 진지한 모습으로 나의 강의를 경청하였다. 처음에는 교도관들의 감시 속에 분위기가 경직되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문도 하고 물음에 답변도 하며 좀 더 자유스런 분위기로 발전하였다. 

강당은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교실로서 손색이 없었지만 청강생들이 맨 바닥에 열을 지어 꼿꼿이 앉아 있는 모습이 불편하고 안쓰럽게 보였다. 마치 군대의 사열행사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는 교육장 하고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교육 중에는 교도관들이 자리를 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그것은 내 마음일 뿐이었다. 종교나 사회단체에서 방문행사가 있을 때는 우리의 강의실은 재소자 수용실로 옮겨졌다. 이럴 때면 나도 본의 아니게 쇠창살 속에 갇힌 죄수신세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키는 간수가 없어서 교육하는 분위기는 더 좋게 느껴졌다. 교도관들의 감시만 받다가 외부인을 자유롭게 접하니 더 친밀감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교육이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고, 마음과 마음이 열려야 옳게 진행될 수 있는 과정이었다.

현장학습 날이면 수강생들은 교도소가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우리 시험장에 도착하였다. 교도관 두 사람이 총을 메고 교육생들의 일 거수 일 투족을 감시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상적인 교육은 기대할 수 없었다.  더구나 안개가 낀다거나 비라도 내릴 것처럼 어둑해 지면 교육생들은 바로 교도소로 철수 하였다. 교도관들에게 교육생을 범죄자요 감시의 대상일 뿐이었다. 현장학습을 끝내고 교도소로 돌아가면 재소자들은 원위치로 복귀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복장검사를 하여 혹시라도 숨겨왔을지도 모를 물품의 존재여부를 검사한 다음 건물로 수용하였다. 교도관들에게는 교외학습 출장이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나 교육생들은 교도소의 담장 밖 공기에 더 매료되는 인상이었다. 무거운 쇠창살문을 나와 바깥바람을 쐬어 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소망이었겠는가! 그래서 이 날만은 자유스러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현장 곳곳을 탐방하는 것으로 교육을 대신하였다. 어느덧 내 마음속에는 그들이 재소자가 아니라 나의 동료요 학생들로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계획했던 교육과정을 마쳤다. 그러자 교도소 측에서 또 하나의 요청이 왔다. 교육을 시켰으니 축산관련 자격증을 받게 해 달라고 했다. 교도소 측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일지 모르지만 사전에 계획도 없이 즉흥적인 처사에 난감하였다. 원서를 접수시키기 위해서는 수험자 개개인의 신상정보가 필요했다. 교도소 측으로부터 신상자료를 넘겨받고는 내심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선량해 보이던 교육생들의 죄상이 너무나 컷기 때문이었다. 죄인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은 그들 모습을 떠올리며 죄인으로 받아드려야 하는 갈등을 느껴야 했다. 죄의 근원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의문과 함께 심경이 착잡하였다. 쇠창살 속에 함께 있으며 지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러한 개인 신상자료를 외부에 공개하려는 교도소 측이 이해되지 않았다.  교도소 측이 지향하는 교육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의구심이 생겼다. 진정 수감자들에게 갱생의 길을 열어 주고자하는 취지였는지 아니면 교도행정의 실적 쌓기 용 행사였는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재소자들의 죄상을 감추어 주는 것이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는 것보다 나은 처사라고 교도소 측을 설득하고 자격증 취득계획을 취소 시켰다.

  재소자들에 대한 교육을 끝내고 얼마 후 나는 다른 곳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그 이후 재소자들과의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이따금 교육생들 중 몇몇의 얼굴이 떠 오르곤 하였다. 출소 후 그들은 담장 밖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셨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축산기술교육이 사회에 적응하여 새 생활을 찾는데 얼마나 도움 되었는지는 가늠해 볼 수 없었다. 교육생들 중 한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은 나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었기를 기대하고 싶을 뿐이다

(2014. 8. 2)

[나룻배]

수감자들의 죄상이 어떠한 것들이었는지 차마 말씀하기 힘든 점 이해가 갑니다. 죄는 미워하더라도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처음 석염선생님께서는 수감자를 죄인으로 대하기보다 우리와 똑 같은 사람으로 대하려고 하셨는 점은 정말 훌륭한 판단이셨습니다. 비록 죄를지었더라도 교육을 통하여 강사와 영적 교감이나 공감이 이루어져 그들이 출소후 바르게 살아갈수 있다면 교육효과는 대단한 것입니다. 비록 죄인이지만 따뜻한 마음과 자비심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여 그들이 감화되어 새로운 사람, 올바른 사람으로 바뀐다면 그리고 출소후 사회가 따뜻한 마음으로 그들을 수용해 줘야 할 것입니다. 낙인 찍지 말고 말입니다.

[석염]

처음 수감자들을 대할 때 죄수들이란 선입견 때문 꺼림칙 했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지나다 보니 동료들 처럼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같은 기관에 계속 근무해었다면 출소 후에 한 번 찾아왔을 사람도 있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후 대관령으로 전보발령 나는 바람에 잊혀진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 하는 말은 명언입니다. 이런 일로 교도소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 한편을 써 볼수 있었으니 다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좋은 평가와 의견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대경상록자원봉사단]

자유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교육을 하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석염]

변변치 않은 내용을 읽고 격려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보현]

좋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제주도에 교도소가 있는줄 몰랐습니다.다정한 성품과 정겨운 강의로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많이 치유 하셨을 것입니다 수고 하였습니다.

[석염]

돌이켜 보니 공직생활 중 겪은 경험 중 하고싶은 얘기들이 많습니다. 칭찬과 격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