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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땅을 치며 통곡할 날
마태복음7:24~29
2005년 8월 7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7: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설교:
몇 달 전 제 집안어른이 所天(소천)하셔서 장례가 있었는데 5남 1녀 중 넷째아들이 장지에서 下官式 할 때 제일 큰소리로 울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괜히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다섯 아들 중 제일 속 썩인 아들이 그 아들입니다. 고인이 30년 우체국장을 하시고 정년퇴임하고 집 한 채 구입하여 그 집에서 나오는 세돈 받아 살려고 사놓았던 집을 홀라당 날려 버린 아들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지하셋방살이하며 5년을 고생 시켰습니다. 그렇게 후회되고 그렇게 통곡할 놈이 왜 그렇게 속을 썩였노? 생각하니 부화가 나서 입관예배를 마치자마자 산에서 내려와 버렸습니다.
더욱이 가관인 것은 예배가 마쳐지자마자 자기들끼리 제사를 지낸다고 제상을 가지고 올라가고 제사하면서 아이고 아이고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니 또 화가 났습니다.
고인이 마지막에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는데 죽어서도 불효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사상 차릴 형편이면 살아계실 때 잡수실 것을 하나라도 더 사드리지 하는 생각이 나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살아계실 때 속을 그렇게 썩이다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땅을 치며 통곡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는 사람들은 다들 꼴값하고 하고 있네 하며 욕을 합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땅을 치고 통곡할 날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이 언제입니까? 주님이 오시는 그날,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 그날, 그날이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통곡을 할 것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그렇게 전도를 받았는데 왜 내가 그때 안 믿었을까? 부모님이 권사님인데 왜 자나 깨나 소원이시던 그 소리를 들어주지 못했을까? 옆집이 교회였는데 왜 그 가까운 교회를 못나갔을까? 복음 전도를 여러분 들었는데 왜 깨닫지 못했을까? 땅을 치고 통곡해 본들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종들을 통해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고 은혜 베푸시고 계십니다. 당신이 세우신 종들을 통해, 그리고 성경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바들을 계속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산상수훈 마지막 부분입니다. 마태복음 5,6,7장에서 주님은 천국의 백성으로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강령을 교훈하셨습니다. 복음의 진수이고 성도의 윤리 계명들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십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반석위에 집을 지어라, 모래위에 지은 자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나중에 땅을 치고 통곡할 날이 반드시 온다./
그러기에 그날에 땅을 치고 통곡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믿음 생활이 반석위에 지은 온전한 믿음의 집을 짓는 것이 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1. 듣고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24절을 보세요.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여기 “나의 이 말”은 무엇입니까?
작게는 주님의 가르친 산상수훈 마태복음 5,6,7장의 말씀이고 크게는 성경 말씀 전체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귀로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똑같이 들었지만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공사는 기초공사입니다. 많은 사람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지만 기초공사가 제일 중요합니다.
언젠가 서울의 어느 빌딩을 건축하던 공사현장이 건축도중에 무너졌습니다. 기둥이 미쳐 마르지도 않았는데 그 위에 한충을 더 올리려다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입니다. 인부 여러 명이 죽고 다쳤습니다. 저는 그 뉴스를 듣다가 “잘 무너졌다.” “지금 무너졌으니 그 정도지 다 짓고 무너졌으면 수백 명 수천 명 죽일 뻔 했다”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요? 기초가 잘못되면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도 헛수고입니다. 오히려 무고한 사람이 죽게 됩니다. 그러기에 기초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기초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행하여 반석위에 집을 지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사람은 장차 닥칠 어떤 환난풍파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입니다. 얼마 전에도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震度6, 만약, 우리나라에 그와 같은 지진이 났다면 아마 어마어마한 사상자 속출할 것입니다. 수많은 집이 무너졌을 것이고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 일본은 그런 지진 속에서도 피해가 적은 것일까요? 든든한 기초와 지진대비가 철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성도도 그래야 합니다. 신앙의 집에 언젠가는 강진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질병의 강진, 시험이라는 강진, 물질문제라는 강진, 핍박이라는 강진이 닥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 진도가 6은 고사하고 3도만 되도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든든한 기초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며 겸손과 순종으로 담대하게 사는 것입니다.
2.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말씀 중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말씀은 행한 대로 갚으리라는 것입니다.
에스겔18:30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16:27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했습니다.
로마서2:6~8에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그러기에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기에 영광의 복을 누리나 어리석은 자는 통곡할 날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로 들어날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듯이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고린도전서3:10~15절 그날에 우리의 공력이 나타날 것인데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은 그대로 남게 되나 나무나 풀, 짚으로 지은 집은 불 타버릴 것이란 말입니다.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그날이 언제 입니까? 그날이 주님이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지혜로운 자인가 어리석은 자인가를 속히 분별해야 합니다. 만약 이것에 대한 대비가 없이 주님오시면 그때 땅을 치고 통곡해도 소용이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에 합당한 비유를 여러 곳에서 들어 주셨습니다. 열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행함의 신앙생활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3. 행치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누가?, 왜? 말씀을 삶속에서 행치 못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문제집/ “~~ 무엇이 아닌 것은?” 이런 문제가 많이 나옵니다. 그때 아닌 것을 빼면 나머지는 다 그런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자는 아닌 답이 무엇인가를 암기하지 않고 그런 것이 뭔가를 찾아 암기하고 이해합니다. 한번 그래 놓으면 다음에 그 문제의 유형이 어떤 형태로 변형되어 나와도 능히 답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도 그렇습니다. “~ ~하지 말라” 이 말은 단순히 “하지 말라”로 듣지 마시고 무엇을 하면 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면 심판받을 받는다, 아 그렇구나! 나도 그러지 말자가 아니라 나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비판과 정죄보다는 축복과 칭찬을 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칭찬하고 어떻게 축복할까를 생각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못하는 것일까?
1)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두 귀를 갖고 있습니다. 왜 두 귀야? 어떤 이는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려보내라고 두 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두 귀를 주신 것은 소리의 방향을 제대로 파악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두 귀가 있기에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금방 감을 잡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오묘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귀에 대해 말한 말 중 정말 무서운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듣고 제대로 반응을 보이면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들을 귀가 없어서 듣지 못한다면 이것은 정말 큰 비극인 것입니다.
똑같은 설교를 하는데도 어떤 이는 듣고 아멘, 아멘 하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기에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사람 구경을 하고 찬송가나 주보를 뒤적 뒤적거리다 갑니다. 왜요? 들을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이 귀에 들어온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비극적인 사람의 또 한 부류는 듣기는 잘 듣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생활 속에 행함이 없습니다. 이 또한 머지않아 땅을 치고 통곡할 사람입니다.
문제는 누가 더 크게 통곡할까요? 들을 귀가 없어 전혀 듣지 못해 행치 못한 사람과 듣기는 들었는데 행함이 없는 사람, 누가 더 큰 문제의 사람일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잘 행하는 자는 기쁨과 영광의 날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여 행치 못하면 머지않아 주님 이 땅에 오시는 영광의 그날이 땅을 치며 통곡할 날이 될 것입니다.
2) 자기 편리한 대로 말씀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는 그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십니다. 내 형편과 처지를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 이것을 가감하면 그것이 곧 무서운 죄악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형편을 이유로 불순종 합니다. 보다 더 낫다는 생각으로 불순종합니다. 그것이 곧 교만이고 그것이 곧 불순종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받았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한 것을 기억하신다며 그들을 진멸하라고 하십니다.
삼상15:1~3
15:1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5: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전쟁터에 나간 사울 왕은 아말렉 왕 아각과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 기름진 것은 죽이지 않고 그냥 잡아왔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그의 행동을 보시고 그를 왕을 세우신 것을 후회하십니다.
삼상15:11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울 왕은 왜 다 진멸치 않았습니까? 자기 생각을 개입시킨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뭐 그렇게까지 할 것까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잡아와 하나님을 섬기고 그것으로 예배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 자체가 교만이고 불순종입니다.
삼상15:22~23을 다 같이 읽습니다.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邪術)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성도 여러분!
순종, 복종 이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과 내 형편을 고려치 말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순종이고 그것이 곧 복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형편대로 적용하고 내 편한 대로 해석하면 그것은 하나님 머리위에서 놀려는 교만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행하는 자 되어 기쁨과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발 내 편한대로 我田引水(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땅을 치고 통곡하는 불행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3) 말씀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성경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부족하고 그러기에 그 말씀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정말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그분의 말씀에 대해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게 될 것이고 결국 그 말씀을 행하게 되어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학자의 말 한마디, 판사의 말 한마디, 그 말에 가치가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 한마디,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그러니 그 말의 가치를 알고 행하는 사람은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가치를 모르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요? 그 말을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아멘?
왜 사울 왕이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행치 않았을까요? 제가 보기에 그는 그 말을 선지자의 말로 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 말이 그렇게 심각한 결과를 가져 오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이 집을 짓는데 건축업자가 모래 토사위에 여러분의 집을 짓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냥 둘 것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육신의 장막인 집은 그러면 안 되고 여러분의 믿음의 집은 왜 그렇게 모래 위에 집을 짓고 계십니까? 바람이 불 것입니다. 창수가 날것입니다. 그러면 금방 무너질 것입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지금부터라도 반석위에 지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곧 행함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말씀을 듣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머지않아 땅을 치고 통곡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