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분명히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는가?
하나님은 편벽 없이 모든 사람의 믿음을 ‘물’ 곧 ‘말씀’이라는 유일한 잣대로 정확하게 재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모만 보고 똑같은 잣대로 재시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 연륜, 직분, 행함, 더 나아가 깊은 마음까지 두루 감찰하신 후 종합점수를 내시지요. 즉 ‘이 사람의 믿음은 1단계이다. 2단계이다’ 이렇게 판정하기에 앞서서 각 사람의 면면을 세밀하게 감찰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판 날에 그 누구도 억울하다 호소하거나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천사들과 하나님의 일곱 영, 네 생물 같은 영적 존재들이 각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리는 영들을 통해 우리의 말과 행실은 물론 깊은 중심까지 감찰하시지요. 하나님께서 이처럼 정확한 측량에 심혈을 기울이시는 이유는 흠을 잡아 믿음을 깎아내리거나 징벌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회를 주시고, 더 나아가 상을 주실 마음으로 정확하게 측량하시는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믿음을 정확하게 측정하신 결과 ‘믿음의 1단계’로 판정이 나면 구원받을 자격을 얻습니다. 본문에서 에스겔이 물을 건널 때 물이 발목까지 차오른 상태가 바로 믿음의 1단계를 나타냅니다. 믿음의 1단계는 ‘구원받기 위한 믿음’ 또는 ‘성령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일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매우 큰 사건이자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셨습니다. 한 영혼이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면 하나님과 주님, 천국 백성들이 크게 기뻐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 살아났으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천하를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기뻐하십니다.
이처럼 구원에 대해 궁구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를 절절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져 주신 희생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지요. 그런데 혹시 ‘구원쯤이야, 나는 당연히 구원받았지’ 하고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분이 계십니까?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좁은 길 가기를 싫어하는 분이 계신지요?
2. 구원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경우
1) 복음을 듣고도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도 인류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3장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즉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지옥 판결을 받은 상태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사실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이 교회 밖 세상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있지요. 지금부터 설명해 드리는 경우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 해당합니다.
2) 교회에 다니지만 믿음 없이 억지로, 또는 자기 유익을 위해 다니는 경우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단에서 아무리 진실만을 증거해도 의심하고 자기 생각이나 지식, 세상 이론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판단, 정죄합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이래서는 성령을 받을 수도,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도 없지요. 오히려 ‘사단의 회’를 만들어 교회를 어렵게 하거나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사교의 장’ 또는 심리적 안정을 취하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이들은 구원, 천국과 지옥, 성결 이런 영적인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과의 사귐이나 사업, 명예 같은 세상사에만 관심을 두지요. 어떤 사람들은 오직 이생에서 복을 받기 위해 교회에 다닙니다. 기독교를 여러 종교 중 하나로, 신앙생활을 단순히 종교 활동으로 인식하지요. 이들은 교회에 다니는 목적을 천국이 아닌 이 땅의 삶에 둡니다. 그러니 교회에 다닌다 한들 어떻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3)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갖지 못하거나 가졌다가 잃어버리는 경우
이런 사람들은 구원받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 나름대로 천국과 지옥도 믿습니다. 다만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해서 ‘믿음’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요. ‘교회에 다니면 구원받겠지’ 이런 식으로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는 대표적인 예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한 번 성령을 받으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구습을 좇아 죄를 지으며 살지요.
초신자 때 믿음이 연약하여 한두 번 죄를 짓는 정도가 아니라, 수 년, 수십 년 교회에 다니고도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죄를 버리기 위해 힘쓰고 애쓰지도 않고 죄를 버려야 한다는 개념조차도 없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노력도 심히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주일 성수와 십일조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후에 설명해 드리겠지만 구원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행함들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성도들은 할 수 있을 때만 하고 스스로 판단하기에 어려울 때는 하지 않습니다. 행하든 행하지 않든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는 천국 처소와 상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신앙생활 합니다. ‘천국이 다 같은 천국이지 뭐’ 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든 대충 하든 다 똑같은 처소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요. 혹 알아도 이를 참으로 믿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한 발, 교회에 한 발을 딛고 적당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어찌 말씀대로 살든 살지 않든 모두에게 구원을 허락하시겠습니까? 또 신앙생활을 대충 했건 열심히 했건 똑같은 처소와 상급을 주시겠는지요?
마태복음 16장 27절에 예수님은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 후반절에 주님은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 중 한 곳에 들이십니다. 충성한 대로 상급을 주시구요.
이처럼 성경 곳곳에 이런 말씀들이 있음에도 이를 믿고 더 좋은 천국 처소와 많은 상급을 침노해 나가는 성도는 많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진리를 바르게 가르쳐 주는 인도자를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스스로 진리를 깨닫거나 믿기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리 진리를 가르쳐 주어도 영적인 체험이 없이는 마음으로 믿기 어렵지요. 즉 천국과 지옥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인도자가 진리를 적당히 재단하고 왜곡하여 잘못 가르치는 경우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최근 미국의 한 교단이 동성애자 목사 임명을 허용했습니다. 교회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교단 대표들이 하나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4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지요. 오늘날 이처럼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해 안일한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믿음의 1단계에 머무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믿음의 2단계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지요. 죄를 싸워 버리지도, 충성하지도 않습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천국보다는 이 땅의 삶에 중심을 두고 살아가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구원은 받는다 해도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데에 그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구원받을 믿음이나마 가지고 있으면 다행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제자리걸음을 하면 그 믿음마저 잃어버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시험 환난이라도 닥치면 너무 쉽게 시험에 들고 구원에서 멀어지지요. 한 번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이 보장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성도들에게 “구원을 이루라”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셨지요.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해도 흐려질 수 있음을 알려 주시며 경계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했습니다.
4) 믿음이 있고 진리를 안다 하면서 다시 죄를 짓고 구원에서 멀어지는 경우
이 경우는 진리를 잘 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상황과는 다릅니다. 구원의 선도 분명히 알고 영적인 체험도 있는 경우를 말하지요. 어떤 사람은 주님을 영접한 후 마음이 뜨거워서 열심히 신앙생활 합니다. 듣고 배운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지요. 죄를 버리기 위해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충성합니다. 주의 종이나 일꾼이 되어 ‘가르치는 사명’도 감당합니다. 그러다가 한순간 큰 죄를 범하여 충만함을 잃거나 조금씩 조금씩 다시 세상을 취하면서 뜨거움이 서서히 식어갑니다. 회개하지도 않고 이런 상태에 머물면 다시금 죄악에 물들어서 결국 구원받을 믿음마저 잃어버리고 말지요. 다시 말해 성령이 소멸되고 맙니다.
이처럼 믿음의 1단계, 2단계, 더 나아가 3단계의 행함을 보이던 사람도 자칫 잘못하면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육을 버리지 않으면 다시금 구습을 좇아 세상을 취하거나 범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반석 곧 흔들리지 않는 믿음 위에 설 때까지, 더 나아가 영으로 들어가기까지는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사단에게 틈을 내주어서는 안 되지요.
성도 여러분, 혹여 오늘 말씀드린 구원받지 못하는 네 가지 경우 중 자신에게 해당되는 분야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 구원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