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8] 임규문(林奎汶) - 나의 지주되신 하나님 6. 애틋한 어머니의 사랑 1 뜻길을 출발하기 전에 나에게는 늙으신 홀어머님과 처, 그리고 2남 1녀의 자녀가 있었다. 내가 가정을 떠나올 때 일가친척들은 모두 만류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대했다. 가정을 이끌어 가야 할 가장이 의지할 곳 없는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게 되니 불효 자식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 그러나 60세를 바라보는 어머님만은 그렇지 않았다. “사나이 한 번 큰마음을 먹고 결심한 바가 있다면 만난을 무릅쓰고 뜻 이룰 때까지 고생을 각오해야지, 3년만을 고생하기로 결심하다니……” 하시면서 꼭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을 하셨다.
3 나는 어머니의 교훈에 힘입어 그동안 7년간을 개척길로 떠돌아다녔다. 어머니는 이곳저곳 일가친척 집을 전전하시며 눈칫밥을 얻어먹으러 다니셨고, 처는 어린 아기를 업고 행상길에 올라 집안 살림을 꾸려 나갔으며, 8살짜리 큰 아이는 갈 곳이 없어서 개척길로 돌아다니는 나를 따라다니다가 한때는 춘천에서 고아원 생활을 해야 했다.
4 나는 삼척(三陟)과 철원(鐵原), 원주(原州) 지역을 거쳐 지구장 대신 지구 순회사가 되어 강원도 전역을 순회하며 다녔다. 내가 횡성교회(横城敎會)에 있을 때 풍문에 들려오기를 ‘나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죽어야겠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전해 듣고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
5 그 해 늦은 가을 읍내의 거리에서 개나리 보따리를 옆에 끼고 서성거리는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꼭 7년 만에 보는 어머님의 얼굴이었다.
6 내가 보고 싶어서 머나먼 강원도까지 찾아온 어머니셨지만 나는 따뜻한 밥 한 그릇 못해 드리고 곳곳의 부흥집회 때문에 바삐 돌아다니는 나의 궁색한 모습을 보다 못해 “문전걸식을 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길을 떠나려고 하시다가 머리가 아프다고 자리에 눕기를 세 차례, 그 후 21일 만에 뇌출혈로 숨을 거두셨다.
7 “흩어진 처자식을 한데 뭉쳐 살아야지” 하신 전날 밤의 그 말씀이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