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울림 제32차 대전문화유산답사 >
대전 도심 속 유적을 찾아서
○ 일 시 : 2020년 10월 24일(토) 09:00-14:30
○ 집결시간 및 장소 : 오전 9시 대전시청
○ 코 스 : 대전시청역 1번출구 앞(09:00)-상대동 고려시대 유적(9:30)-괴정동 유적(10:30)-테미오래 대전전투 기록전(11:20)-점심(12:20)-대전육교-(13:30)-대전시청(14:30)
오랜만의 답사 후기입니다. 반갑습니다.^^
한참을 쉬었습니다. 7월 답사 이후 3개월을 넘겨, 10월 24일 대전문화유산울림의 제32차 답사가 있었습니다. 참가인원은 기대보다 많지 않았지만 일당백인 참가자들과 대전 도심속 유적을 찾아 햇살 좋은 가을날을 함께 했습니다. 답사일정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 결정한 답사였습니다. 평소에 가보기 어려운 곳인데다 지나치면서도 의미를 제대로 새기지 못했을 도심 속 우리 생활과 닿아 있던 답사지를 다녀와 함께 공유합니다.
시청역에서 만나 처음으로 갔던 곳은 상대동 고려시대 유적입니다. 고려는 왕건이 918년 창건하여 1392년 조선의 건국 전까지 475년간 존속했던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고려는 고려할 게 많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사료도 유적도 많이 부족하여 연구가 미흡합니다. 대전에서도 고려역사라고 하면 망이망소이의 난을 기억하는 것이 전부였었는데 상대동 유적이 발견되면서 대전의 고려시대 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상대동 유적은 2006년 이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는 공사가 시작되면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SD 1호’와 ‘SD 2호’로 이름 붙여진 대형 건물터는 각각 동서 98m와 남북 107m, 동서 45m와 남북 90m의 담장 안에 여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 구조였고 그 중 SD 1호 건물은 우물과 연못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건물들을 잇는 동서방향의 도로도 발견되었고 특히 도로 유구에서는 가로수의 흔적과 수레바퀴 자국이 조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건물터가 무엇을 하던 곳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데 발굴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고려 왕의 행궁이었을 것이다. 고려 유성현의 관아터였을 것이다. 관리들이 쉬어가는 원이었을 것이다. 주로 세 가지의 의견으로 나뉘는데 이들이 복합적으로 엮여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합니다.
고려를 개국한 왕건이 후삼국통일을 위한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에 건립한 국가 사찰인 개태사가 바로 근처에 위치한다는 것도 이 건물터의 용도에 대한 중요한 힌트로 보입니다. 또한 고려왕실과 대전의 연관성을 찾아보면 고려 현종이 1011년에 공주에 6일을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 때 공주절도사 김은부의 맏딸이 현종의 세 번째 왕비가 되는데 이후 두 딸이 더 왕비가 됩니다. 고려 8대 현종의 세 번째 부인 원성왕후 김씨, 네 번째 부인 원혜왕후 김씨, 일곱 번째 부인 원평왕후 김씨 세자매가 김은부의 딸이며 공주 출신입니다. 원성왕후가 낳은 아들이 제9대 덕종, 제10대 정종에 오르고 원혜왕후의 아들이 제11대 문종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런 상황을 보았을 때 이 당시 고려 초기 공주 즉 현재 대전의 위상은 상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상대동 유적의 커다란 규모 또한 그에 기인하지 않았나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한편 상대동 유적이 발굴되면서 당시 짓고 있던 아파트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례적으로 우리나라 고려 시대 연구자들 백여 명이 발굴현장을 다녀가면서 압박하고, 지역의 전문가들과 역사문화단체들이 유적의 중요성을 알린 결과 계획했던 아파트 한 동은 짓지 못하고 유적을 보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상원초등학교 운동장과 천년근린공원, 트리풀 5단지 안의 연못 등에 그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이 유적들이 사적으로 지정되어 문화재의 위치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괴정동 유적입니다. 괴정동은 우리나라 청동기 유적의 상징성을 가진 곳입니다. 청동기 시대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그 농경문청동기가 바로 대전 괴정동 출토라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발굴 당시 괴정동이었지만 지금은 내동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습니다. 1967년 7월 채마밭을 갈다가 발견된 유적은 기원전 4세기경의 초기철기시대 무덤으로 추정되었고, 바로 이곳에서 방패 모양 청동기를 비롯한 여러 점의 청동기와 곱은옥, 간석기, 토기를 포함하여 총 17점의 유물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대전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발굴유적이자 전국적으로도 최초로 청동기가 세트로 발견된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유적 발굴 이전에도, 알려지지 않은 청동기시대 무덤을 발굴했다는 동네 주민들의 증언들로 보아 괴정동, 현재 내동 주변 땅속에는 청동기시대 마을과 무덤들의 흔적이 묻혀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세 번째 답사장소는 테미오래 6호관사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전쟁·대전전투 70년 기록사진전이었습니다. 전쟁기억,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지난달 29일부터 10월 31일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미군들이 촬영한 전쟁당시 대전의 기록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쟁 중에도 오가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7월 6일의 대전역 사진과 대전 전투에 임박하여 소개된 대전역의 휑한 사진의 대조는,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전시의 제목과 맞닿아 특별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대전 원도심의 모습, 그 와중에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건물들, 지금은 아파트 가득한 둔산동이 대전 비행장이었던 시절의 모습 등을 참가자들과 함께 둘러보며 70년 전 전쟁의 참상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판암동에 들러 맛있는 점심을 먹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대전육교입니다. 대전육교는 1969년에 건설된 경부고속도로의 시설물로, 근대 산업화의 상징성과 함께 건설 당시 국내 최고 높이의 아치 교량으로서 우리나라 근대기 토목기술 역량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1970년 7월 7일 개통한 경부고속도로에서 난공사중에 손꼽았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올해 6월 24일 국가등록문화재 제78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높고 파란 가을하늘과 어우러진 대전육교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대전시청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한 잔 하려고 들른 ‘동네까페 로와’. 그 길 건너에서 대표님이 부르십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마을의 역사가 남아있었습니다. 가양동의 두껍바위.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 수백년간 동네사람들과 함께한 바위였습니다.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름난 문화재도 당연히 좋지만 우리 주변부터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전 도심 속 유적은 특히나 혼자서는 찾아가기도 의미를 새기기도 어려운데 울림 답사를 통해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가볼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회원님들, 참가자님들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함께 못해 아쉽지만 알찬 답사후기로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