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이호아에서 온 편지(4)
아무리 재미있고 폼 나는 일이라도 너무 벅차면 싫어진다. 건강에는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던 허 병장도, 낮에는 수시로 헬기 타고 공중을 날고, 밤에는 잠 잘 새도 없이 서류 작성하고, 이런 날이 겹치니까 과로로 감기가 잦고 이가 솟아서 발치를 해야 하고,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
서너 달까지는 체면상 다른 말을 못하다가 5개월쯤 되어서 부관 김중위에게, 너무 힘이 드니 어디 파견을 좀 내보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러나 쇠꼬챙이 같은 김중위는 들은 체도 안 했다. 귀국할 때까지 꾸준히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허 병장은 참모에게 부탁했다. 허 병장보다 세 살이나 아래인 김중위에게는 씨도 안 먹혔지만 허 병장보다 세 살 위인 참모 곽 소령은 꽤 속 깊은 대답을 했다.
“허 병장, 많이 힘들지? 나이도 있고….”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인 것 같았다.
사실 곽 소령은 그동안 허 병장을 유용하게 부려먹어 왔다. 영어가 필요한 경우에 슬쩍 참모실로 불러서 개인적으로 부탁한 것이 여러 건이다. 허 병장이 운전도 할 수 있다는 것도 곽 참모로서는 매우 유용한 일이었다. 번호판도 없는 지프차 한 대를 인근에 있는 PX에 숨겨두고는 허 병장에게 키를 주면서 여러 심부름을 시켰다.
밤에 PX에 가서 뒷문에 이미 기다리고 있는 이 준위(PX장)를 만나면 준비된 물품들을 차에 가득 싣는다. 허 병장은 곽 참모가 알려준 숲속 마을 가정집(마의 집)에 가져다주고 봉투에 담긴 달러를 받아다가 곽 참모에게 건네면 임무 끝이다. 오가는 과정에 부대 정문과 검문소가 있지만, 헌병참모님 심부름이라고 하면 그냥 통과다.
미군 비행장 PX에 가서 고가의 물건을 구입해 오기도 했다. 호루를 씌운 번호판 없는 지프차, 계급장도 없는 모자를 쓴 운전수 허 병장. 낮에는 병장 달고 헬기에 올라 캄란으로 닌호아로 퀴논으로 날아다니며 귀국 박스 검열하고, 밤에는 틈틈이 참모 쫄개로 공팔 치고…. 국내에서 모범 공무원으로 칭송 받던 허동준, 그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자신의 꼬락서니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루는 부관 김중위가 허 병장을 자기 책상 앞으로 불러 세웠다. 허 병장은 계급 앞에 차렷 자세였다.
“참모님한테 짜옹을 잘 하는가 봐.”
‘짜옹’이라는 월남 말의 정확한 뜻은 잘 모르지만 아부한다는 말로 들렸다.
“네?”
“참모님이 허 병장 파견 내보내래. 투이호아 검문소로…. 퀴논 비행장도 가깝고 좋지.”
비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부관의 표정이 얄밉다. 조사계 서 병장이 비껴 쳐다보며 (“쪼잔한 놈”이라고) 입술로만 말한다.
작전계 업무에 능숙한 허 병장을 본부에 그냥 놓아두고 부려먹는 것은 곽 참모 뿐 아니라 부관 김중위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곽 참모가 직권으로 허 병장을 투이호아로 내보내는 것은 나름대로 속이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부터 가까이 지내던 황 상사(투이호아 파견대장) 앞으로 허 병장을 보내 놓으면 부관의 눈치 보지 않고도 허 병장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으니까.
* * *
오전 근무를 마친 허 병장은 파견대로 들어가지 않고, 마침 마을 쪽으로 가는 지프가 있어서 거기에 편승하여 밖으로 나갔다. 마의 집에 가서 좀 쉬었다가 퀴논 비행장 구내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간편한 양식으로 저녁을 먹고 밤 근무를 하려는 것이었다. 오전 근무인 경우, 오후는 자유롭게 쉬고 밤 근무에 들어가도 된다는 것이 파견대장 황 상사의 방침이다. 외국에까지 와서 너무 빡빡하게 근무할 필요가 뭐 있나, 좀 쉬면서 근무하자, 이러는 것이 황 상사의 인생관이다.
몇 채의 집이 드문드문 보이는 숲속 마을에, 다른 집과는 꽤 동떨어져 있는 집이 마의 집이다. 울타리도 없고 일정한 출입문도 없다. 주변에는 수십 년 된 갖가지 나무들이 울창하다. 나무에는 노상 해먹(hammock)이 매어져 있다. 허 병장은 그 해먹에 누워 흔들거리며 뚜엉과 실없는 말을 지껄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허 병장이 마의 집에 도착하니 집 안은 조용하고 뚜엉이 혼자서 해먹에 누워 흔들거리고 있었다. 엉덩이를 탁 치니,
“어, 허 빙장!”
하며 벌떡 일어났다.
“임마. 허 빙장이 뭐야, 형님….”
하니까, 놈은 머리를 긁적이며,
“아, 헹님!”
하면서 해먹에서 내려왔다. 그러면서 녀석은 자꾸 집 쪽을 흘금거리며 봤다. 허 병장이 의문스럽다는 눈짓으로 함께 집 쪽을 바라보니 뚜엉이 낮게 말했다.
“비엔. 비엔 하사.”
“변 하사?”
“응.”
<계속>
첫댓글 해먹- 그물 침대, 넓게 짠 질긴 천의 양 끝을 기동에 묶어 그물처럼 매달아 만든 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