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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1부에 이어서 이 누가복음에서 기록하고 있는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성육신에 대한
2부 말씀을 여러분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1부에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이 그 하나님의 신성한 생명을 소유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을
가진 자들로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과거 안에 있는 계획으로 인하여 구주께서는 성육신 하셔서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오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이 생명나무 열매가 아닌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인성이 훼손되고 손상되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이 인성을 되찾고 회복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하신 것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 26절 27절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이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셨지만 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의미하는
것은 아주 확연하게 다른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내적인 부분으로서 속사람 속 부분을 의미하는 반면에 바로 하나님의 모양은 외적인 형태로 보이는 부분
곧 겉 사람인 몸을 가리킨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속사람은 어느 정도는 하나님과 같은 정도로 창조되었으나 생명나무의 실과를 지속적으로 취할 때
얼마만큼 하나님과 같이 창조된 속 사람인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해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 1장 25절과 26절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창조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모든
항목들은 그 종류대로 지어졌지만, 사람만큼은 사람의 종류대로 지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졌다라는 것입니다.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1:25 하나님께서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으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1:26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 위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말씀하시고, 인간은 바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것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을 내용물로 담음으로 말미암아 신성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로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첫 사람 아담의 그 내용물에는 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통한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상징하는 선악과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생명 대신에 죽음을 내용물로 담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제품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닮은 자가 되지못했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을 담음으로 말미암아 곧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이신 하나님을
담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닮은 복제품과 같은 자들이 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담지 못하고 죽음을 상징하는
죽음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사단과 닮은 사단의 복제품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바로 하나님의 모양을 취하지 못한 자들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닮은 똑같은 복제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내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그리고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하나님의 외관을 가지기 위하여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졌지만 첫 사람 아담이 이 일에 있어서
실패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내적 존재인
닮은 자들로 인간을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영원과거
안에서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이 계획안에서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야 하고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모양이 있어야 하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복제물이 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온전하고도 완전히 하나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과 내용이 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사람 안에 내용물인 바로 생명의 하나님을
소유받게 하기 위해서 구주께서 성육신하셔서 바로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오시는 이러한 일들을 하셨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내적 존재를 나타내는 속 부분인 하나님의 형상 안에는 신성한 속성들이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하나님의 이 신성한 속성은 바로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인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이고 빛은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이 거룩하심을 통하여 나타나고 또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하나님의 참 존재에 관한 하나님의
어떠함을 행위를 통하여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움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어떠함은 행위로 나타나는 면에서 의로우시다라고 말씀하는 것이고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그 어떠함에 대한 본성에 있어서는 거룩하시다라는 것으로 성경은 우리에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주요 특성이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인 내적 존재인 하나님의 형상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인간은 이렇게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네 가지 주요 특징인 사랑과
빛과 거룩함과 의로움이라는 이 신성한 속성들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창조되어졌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내적 존재인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이 피조된 사람인 이 첫 사람 아담은
이 하나님의 신성한 신적인 속성을 담을 수 있는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담을 수 있는 이 신성한 속성들인
네 가지 주요 특징인 하나님의 특별한 이 속성들인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능력을 가졌지만 이 능력은 온전하고도 완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하는 일을 통하여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 온전해질 수 있기 위해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취하는 일이 첫 사람 아담에게 필요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이 생명나무의 실과가 아닌 선과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비록
타락하여 인성이 훼손되고 손상되었지만 이런 타락한 상태 안에서도 어느 정도 사랑과 빛과 의롭게 될 수 있는 능력과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질 수 있는 능력이 부분적으로 조금씩은 완전히 상실되지 않고 훼손되어진 채로 손상되어진
채로 남겨져 있었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손상되어지고 이 훼손되어진 바로 그러한 인간의 잃었던 인성을 되찾고 회복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하셔서
이 신적인 속성들을 인간의 삶을 통하여 나타냄으로 말미암아 최고의 도덕적 수준으로 나타나신 인간적인 가장 아름다운
품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이 인간들의 미덕들을 가진 분이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을 통하여 인간이라는 이러한
하나님의 생명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부어짐을 통하여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부어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온전해질 수 있도록 바로 인성을 되찾고 회복할 수 있도록
모든 일들을 도우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셨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 모든 영광들을 버리고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단지 구원하시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바로 이 변질되고 훼손되고 손상된 인성을 온전히 고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로 인도된 모든 사람들을 회복시킴으로
말미암아 바로 하나님과 같은 닮은 자들로 이렇게 제2의 창조를 하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계획과
목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렇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닮은 곧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에 있어서 아담이 전적으로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둘째 사람 곧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마지막 아담이 성육신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아담이 에덴동산 안에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이신 하나님을 소유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에 성공하였더라면 바로 두 번째 사람이신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세상에 성육신 하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이 일에 아담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곧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일에 있어서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아담이 오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과거 안에서 사람을 이렇게 창조하셔서 바로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가 되도록 계획하셨다 라는 것은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헤아릴 길 조차 없는 그 오묘하신 하나님의 지혜안에서 이러한 일들을 계획하셨다 라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성은 정말 온전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일을 아담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그 첫 사람 아담의 인성은 손상되었고 훼손되었고 정말 상실되어질 정도로 완전히 망가졌다 라는 표현이 옳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성육신하심은 사람의 창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계획하셨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사람만큼은 이 사람의 존재를 따라
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특별히 창조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물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의 모든 방면들은 자신의 존재에 따라 지어진바 되었지만, 사람만큼은 사람의 종류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되었다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보이지 아니하는 속 부분인 하나님의 내적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모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인간을 사람을 지었는데 사람의 모양은
보이는 부분인 외적인 모습 우리의 몸과 같은 보이는 외적인 모습 외관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자신과 닮은 똑같은 복제품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한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어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닮은 복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그 어떠한 모든 인격들을 상징하고 있는 하나님의
어떠함인 신적인 속성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그 능력은 생명나무에 실과를 취할 때 그 하나님의 그 어떠함을
담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의 실과를 두셨던 것입니다.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할 때 하나님의 그 어떠함 곧 신성한 속성들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고, 그 생명나무의 실과를
지속적으로 취할 때 계속적으로 그 생명나무의 실과를 끊임없이 취할 때 하나님의 그 어떠함인 신성한 속성들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닮은 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곧 복제품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짐으로 말미암아 똑같이 하나님과 닮은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그 내적 존재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외적 부분인 겉부분인 보이는 부분인 그분을 표현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모양대로
지어졌다라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오늘의 이 말씀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을 창조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분을 거꾸로 말한다면 그분을 온전히 표현하기 위하여
그분의 완전한 닮은 자들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라는 것입니다.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이 생명이신 하나님을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생명나무의 실과를 통하여
생명이신 하나님을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인간의 심령 안에 담아둬야만 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의하여 피조된 이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은 하나님의 이 온전한 목적을 그만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훼손시키고 손상시킴으로 말미암아 실패하고야 말았다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담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에 있어서 아담이 실패하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 사람으로서 구주께서 2천년전에 오셔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두 번째 사람으로
곧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이 목적을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셨다는 것은 첫 번째 아담 두 번째 아담 세 번째 아담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사람이었던
아담이 하나님의 계획을 손상시킨 일을 두 번째 사람인 마지막 아담이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창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되어진 것이 하나님의
참 창조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번째 사람인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들 안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그 영원과거 안에서 설정해 놓으신 그 계획에 따라 하나님의 그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하셨지만
그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은 하나님의 그 목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망쳐 놓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첫 번째 사람 대신에
다른 어떤 사람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창조하시는 대신에 하나님 자신께서 친히 세상에 오셔서
둘째 사람 곧 마지막 아담으로 오셨다라는 것이 고린도전서 15장 47절 말씀인 것입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안에서 이 첫 번째 사람이 무너뜨린 이 이루지 못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버지 안에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영 안에서 이 일을 계획하시지도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무너뜨린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영원과거 안에서 아들 하나님 안에서 둘째 사람 곧 마지막 사람으로 되어 오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들 안에서 사람이 되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원대하신 계획을 한번 가만히 상고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버지 안에서 이 계획을 이루시지 않으셨습니다.
영 안에서 이 일을 성취하시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다만 아들 안에서 둘째 사람이 되어 오심으로 말미암아
곧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들 안에서 마지막 아담이신 사람이 되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절에서는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도 이 말씀을 뒷받침하고 있죠.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이 육신으로 친히 나타난바 되셨다라고
디모데전서 3장 16절은 이 말씀을 또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첫 번째 사람이었던 아담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하나님을 크게 실망시키고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망쳐 놓았으므로 말미암아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영원과거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바로 아들 하나님 안에서 두 번째 사람이신 마지막
아담으로 되어 오시기 위하여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둘째 사람으로 오신 마지막 아담이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정말 찬미를
온전히 드려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은 바로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인간을 하나님과 닮은 복제품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하게 하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셨으나 이 뜻이 이루어지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창조하시지 아니하시고 친히 하나님께서 아들 안에 오셔서 함께 오심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바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것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아들 안에서 사람이 되시기 위한 이 일 때문에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서 사람인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출생하셨던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인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성령님으로 잉태되어서 사람 처녀에게
나심으로 말미암아 피조되지 아니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바로 성육신 하신 구주께서는 성령님으로 잉태되셨고 그리고 사람인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출생하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이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는 성령님으로 잉태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본질을 소유하셨고 그리고 마리아의 몸에
수태되어서 출생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본질을 소유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이 두 가지 종류의 본성을 가지고 계신 유일한 분이신데 그분은 하나님의 본성인
하나님의 본질과 사람의 본성인 사람의 본질을 두 가지 가지고 오신 바로 하나님 이시면서 사람이신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너무나 귀한 분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인류 가운데 오직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만 이 하나님의 본질과 사람의 본질인 이 두 본질의 합성체이기
때문에 이 구주로 오신 주 예수님은 너무나 놀라운 분이요 너무나 귀한 분이요, 너무나 신비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귀한 분이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 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이시고 합성체이심으로 말미암아 참
하나님이셨고 참 사람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가리켜 우리는 하나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주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이 첫 사람 아담과 달리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한 인간의 삶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온전한 구주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사람으로 오신 주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을 지닌 분으로서 또한 사람의 본질을 지닌 분으로서
참 하나님이셨고, 참 사람이신 구주께서는 이러한 신성한 속성들인 사랑과 빛과 거룩함과 의로움을 지닌 자로서 33년 반
동안의 생애를 사심으로 말미암아 그 속성들을 지닌 주 예수님의 신성한 본성은 모든 인간적인 최고의 아름다운 품성들을
지닌 사람으로서 구주의 인간적인 본성을 통하여 삶으로 표현되고 나타내졌다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인간적인 미덕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내적 존재인 신성한 본성인 하나님의 사랑을 내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자로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소유한 자들, 하나님의 의로움을 소유한 자들, 하나님의 거룩함을 소유한 자들이 이 세상에서 최고의
아름다움 품성을 가진 자들이 바로 주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특별히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사셨을 때 그분이 행하신 일들이, 그분이 사람들을 접촉한 일들이
도대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한 일인 것인지 아니면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사랑한 것인지 아주 구별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은 왜냐하면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바로 주 예수님의 신성한 본성이 바로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해서 나타내졌기 때문에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인지 아니면 사람으로서 행하신 일들인지 우리가 분별하기는
너무나 어렵다라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3년 반 동안의 공생애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의 사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동시에 사람의 사랑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의 사랑과 참 사람의 사랑을 보여 나타낸 것이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삶을 통하여 나타내진 것이
바로 신성한 생명이 충만한 사람의 삶을 사신 주 예수님의 사람의 생애의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 10장 25절부터 37절 사이에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그러한 불쌍한 자에게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상징된 주 예수님께서 다가가셔서 그를 치료하시고 포도주와 기름을 주어서 치료하실 뿐만 아니라 또 여관에 보내주어서
그가 온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전체적으로 인간적인 사랑의 미덕을 통하여 표현된 사랑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누가복음 7장 36절부터 50절 사이에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한 죄 많은 여인인 바로 이 마리아라는 여인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또한 신성한 사랑의 속성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사랑의 미덕을 통하여 그 마리아라는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탕감해 주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하나님이 사람들을 그 여인을 사랑한 것입니까? 아니면 주 예수님이 사람으로서 그 여인을 사랑한 것입니까?
예, 강도를 만난 자를 치료하시고 구원시킨 일이 하나님으로서 그 강도를 만난 자를 구원시키신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으로서
그 강도 만난 자를 사랑한 것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가복음 23장 39절부터 43절 사이에 십자가 위에서 한편 강도가 자신의 마지막 간절한 생명의 부르짖음으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를 할 때 내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그 강도를 구원해 주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에 나타난 사례들을 통하여 주 예수님은 참으로 인간적인 사랑을 발휘하셨지만 그 인간적인 사랑 안에는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본성이 그 분 안에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졌다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 강도를 만난 자를 치료하시고 구원하신 그 사랑은 인간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죄 많은 여인 마리아와 그 십자가 위에 죽어가는 그 한편 강도를 구원하신 일들은 바로 신성한 사랑으로 충만 된
인간적인 사랑으로 그 여인 마리아를 구원하신 것이고 또한 그 한편 강도를 구원하심은 신성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강화되고
고양되고 증대되고 확장되고 아주 부유해진 인간적인 사랑으로써 바로 그 신성한 사랑의 속성을 지닌 인간적인 사랑의
미덕들의 품성을 통하여 표현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그 한편 강도가 마지막 죽어가는 그 최후의 주님을 향한 간구를 통해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던 그 강도가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온갖 죄로 인하여 기인된 이 타락한 본성을 지닌 채 하늘로 인도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땅에 속한 인간의 첫 사람 아담에게 속한 타락한 본성을 소유하지 않은 자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하늘로 인도된 주님의 나라에 함께 합류된 모든 사람은 온전히 첫 번째 사람을 통하여 소유하게 된 타락한 본성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둘째 사람으로 오신 마지막 아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전히 회복된 사람들이 하늘로
인도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 강도를 만난 자 또는 죄 많은 그 여인이 주님께 죄를 탕감받고 구원을 받는 일들 한편 강도가 구원을
받는 이 일들은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바로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한
바로 이 성육신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해서 이 일들을 이루시기 위하여 참 하나님으로서
참 사람으로서 사랑을 보이셨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이들이 주님을 접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일들은 인간적인 사랑을 통하여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성한 사랑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인간적인 사랑과 신성한 사랑이 동시에 합성되어져야만 이룰 수 있는 구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실 수 있고 유일한 구원자의 자격을 가진 자로서 구원하실
수 있는 것은 인간적인 사랑을 지니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성한 사랑을 동시에 가졌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할
수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신 것은 신성한 사랑만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사랑만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 일들에 대한 것은 구원하시는 사랑에 대한 위대하심을 통하여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적인 사랑과 신성한 사랑이 동시에 나타나질 때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신성한 사랑으로 충만되어진 공생애를 통하여 인간적인 사랑으로 무엇이 나타났습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신성한 내적 존재인 신성한 속성이신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이 바로 이 신성한 속성들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접촉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미덕이 강화되고 고착화되고 고양이
되고 부유해지고 풍요로워지고 증대되고 확대되어진 인간적인 사랑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시킬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들을 신성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충만해지고 강화되어지고
확대되어지고 확장되어지고 고착화되어지고 고양되어지고 (정신이나 기분 따위가 북돋워져 높아지다) 풍요로워진
인간적인 사랑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신성한 사랑과 인간적인 주님의 사랑에 의하여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성경의 신뢰들을 통하여 예를 들자면 구체적으로 강도를 만난 자를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상징된 주 예수님께서 이 치료하시고 구원하시는 일들이나 또 막달라 마리아의 죄를 탕감해 주시고 또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온 죄 많은 여인 또 똑같은 이름의 마리아라는 여인의 죄를 탕감해 주신 이런 일들 그 십자가 상에서의
한편 강도를 구원시키신 이러한 주님의 일들은 위대하신 주님의 사랑 안에서 발생되어진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도대체 얼마나 큽니까?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도 더 크고 바다보다도 더 깊은
그러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 주 예수님이라고 우리가 찬송을 부릅니다.주 예수님의 사랑은 그와 같은 종류의 깊고 넓고
큰 사랑일까요? 그것을 뛰어넘어 그분의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과 신성한 사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그 크고 넓고 높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주님의 사랑이 단지 인간적인 사랑뿐만이 아니라 신성한 사랑
또한 가지고 있다 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된다는 것입니다.바로 주 예수님의 사랑 곧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 사람을
접촉할 때 그들을 구원하신 그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이며 그 인간적인 사랑은 신성한 속성을 지닌 신성한 사랑 안에서
바로 나타내진 그러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사랑은 신성한 속성을 지닌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이신 신성한 사랑으로 더불어
충만되어지고 강화되어지고 풍요로워지고 부유해진 인간적인 사랑과 동시에 참 신성한 사랑의 연합이 있었기 때문에
이 귀한 사랑을 통하여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내적 존재 안에 있는 이 신성한 사랑이 공생애를 통해서 나타나진 3년 반 동안에 살아오신 구주의 삶을 통해서
이 신성한 사랑이 표현되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성한 사랑의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계획이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30년 동안의 생애의 삶과 특별히 3년 반 동안의 공생애의 삶인 33년 반 동안의 삶은 신성한 속성들로
말미암아 충만되고충일되어지고 고양되어지고 강화되어지고 증대되어지고 확장되어지고 풍요로워지고 부요로워진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해서 나타내지고 표현된 삶의 모습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는 바로 이러한 신성한 속성들을 지닌 신성한 사랑과 인간적인 미덕들을 가지신 인간적인
사랑을 가지신 분이셨기 때문에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인류의 구주가 될 자격이 있다 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삶은 표면적으로 외형적으로는 나사렛 출신의 비천한 자의 삶의 모습인 인간적인 삶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여지지만 그 안에는 내재되어진 신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산 분이셨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삶은 인간적으로 아주 신성한 삶을 사셨고 또한 신성적으로 매우 인간적인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적으로
신성하고 신성한 인간적인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성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적인 미덕을 통한 인간의 사랑을 동시에 가진 자로서 삶을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셨음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놀라운 신비한 역동적인 구원의 능력이 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단지 인류를 성령님으로 잉태하신 신성한 속성을 지닌 신성한 사랑만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 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주 예수님께서는 신성한 사랑만으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사랑만으로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인간적인 사랑 안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신성한 사랑을 가지시고 인간적인 사랑의 가장 최고의 아름다운 미덕의 품성들을 나타내는 삶을 통하여 최고의
인간적인 사랑을 가진 분으로서 그 신성한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을 동시에 가진 이 두 사랑의 연합되어진 결과들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그리스도가 되셨다라는 것입니다.
이 인간적인 사랑과 신적인 사랑의 두가지 사랑의 연합이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이 사랑은 얼마나 신비한 사랑입니까?이 사랑은 얼마나 귀한 사랑입니까?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증거 하는 누가 복음을 통해서 나타내 주신 이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하나님 사람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으로서의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구원하는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
누가 복음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내적인 존재인 신적인 속성인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되어진 것을 공생애를 통해서 나타내는 삶을 통하여
그분의 최고의 아름다운 품성들 최고의 아름다운 미덕들이 이렇게 나타내진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으로서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으로 나타내진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바로 이러한 신성한 생명으로 충만되어져서 인간적인 미덕들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최고 수준의
인간적인 사랑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주 참 온전한 그리스도가 되실 수 있는 자격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주 예수님께서는 그냥 자격을 가지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생명나무의 실과는 이러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인 신성한 하나님의 사랑과 정말 온전하고도 영원하고도 신성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되어졌는데 사람으로 구주께서 성육신 하심으로 말미암아 참 하나님과 참 사람으로서의
주 예수님의 그 공생애의 삶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누가복음은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그 미덕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그 내적 존재 보이지 아니하는 속 부분인 신성한 속성들인
사랑을 표현하였고 빛을 표현하였고 보이지 않는 거룩함을 표현하였고 의로움을 표현하는 삶을 사셨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성한 속성들을 가짐으로 신성한 속성들을 표현하는 인간적인 미덕들을 가진 자의 삶을 가졌기 때문에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그리스도의 자격을 가진 자로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가 있었고 우리를 구원할 자격이
합당하게 있으셨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이러한 전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죽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바로 하나님을 사람 안에 담게 하기 위해서 사람 안에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하여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우주 전체에 포함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만유를
포함하는 죽음을 성취하신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구속자로서
만유를 포함한 죽음을 당하셨다는 것을 입증하고 재가하는 그러한 방면으로써 죽은 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그분을
부활시키셔서 일으키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활하신 구주께서는 40일 후에 하늘에 오르셔서 보좌에 앉으셔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시고 만유의 머리가 되어
주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사도행전 1장 2절에 기록된 대로 바로 승천을 통하여 바로 경륜적인 능력의
영을 믿는 자들 안에 부어주실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기이한 사랑을 통하여 이 인간적이면서도 신성한 사랑을 지닌 이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을 동시에 가지신 이 두 사랑의 연합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참 사랑의 능력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그리스도가 될 자격이 있으셨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성육신을 통하여 첫 사람
아담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하지 못하고 선과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러서
인성이 손상되어지고 훼손되어진 타락한 인성을 온전히 회복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들 하나님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시기로 그렇게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기록된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성육신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 결과인 것입니다.
그분의 성육신은 이 첫 사람 아담을 통하여 훼손되어지고 손상되어진 잘못된 인성을 되찾고 회복시켜줘서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그분 자신의 모양대로 아담을 지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생명나무의 실과가 아닌 선과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은 타락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계획을 망쳐버리게 되었고 그릇되게 하였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이 인성 안에서 뱀으로 변신한 마귀가 그 첫 사람 아담을 유혹하여 실족시킴으로 말미암아 그 첫 사람
아담 안에는 타락한 인성인 죄가 들어오게 됐던 것입니다.죄는 바로 마귀의 악한 본성이죠.
마귀의 악한 본성이 죄인 것입니다.선과 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 실과의 열매는 마귀의 악한 본성인 죄를 상징하고 있고
생명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선한 본성인 생명과 사랑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아담이 실족하여 타락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성 안에 죄가 들어오고 마귀의 악한 본성이
스며들으로 말미암아 육체가 그릇되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귀의 악한 본성이 타락한 아담 안에 존재했지만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인류가
타락한 인류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류들 인류의 인성 안에 마귀의 악한 본성인 죄가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성 그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인성은 불완전해지고 훼손되어지고 손상되어지고 그릇되어지고 잘못되어져서
제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치 하나의 기타가 있다 칩시다. 기타에 줄이 도레미파솔라시도의 그 조율이 맞춰지면 자신의 그 맞춰진 조율을 통해서
제 음을 발휘함으로 말미암아 조화롭고 온전한 음을 나타낼 수 있고 표현될 수 있지만 만약에 그 줄이 헐겁게 풀어져
있다 라면 제대로 된 자기 음을 내지 못하는 것처럼 바로 타락한 인성 안에는 마귀의 악한 본성이 있지만 창조된 인성이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고 비싼 기타가 있다 할지라도 손상되어진 줄이라면 제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에 그 기타는
존재하나마나인 것입니다. 그랬을때 주님께서는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인성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을 하시고 승천을 하셨던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아들을 죄의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우리를 회복시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즉 타락한 인성의 모양으로 사람의 형체를 가진 자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3절에는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아시나니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곧 죄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의 모양 사단의 모양으로
사람의 형체로 보내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성을 되찾고 타락한 인성을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되찾기 위해서 육신이 되셔서 이 세상에 성육신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죄를 탕감해 줌으로 말미암아 구원하셨다 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을 구원하시고 난 후에는 그 구원한 자를 온전히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도 챙겨주셔야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 10장 25절부터 37절에 기록된 강도를 만난 자를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상징된 주 예수님께서
그 강도 만나 죽어가는 자를 위해서 치료해 주시기 위하여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여관에 데리고 가서 치유가 온전히 될 때까지
돈을 들이면서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그를 온전한 자신이 있던 삶의 모습을 되찾게 하기 위해서 일하시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구덩이에 어떤 자가 빠졌다 칩시다.
그 깊은 구덩이에 빠진 자는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 주지 않으면 절대 밖으로 나가서 구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가 동아리 줄을 내려서 사랑의 줄과 사람의 끈을 내려주심으로 말미암아 그 깊은 죽음의 구덩이에 빠져 있는
자를 구출해 주었다 칩시다. 구출해진 자는 그곳에서 3일, 4일, 5일, 10일 동안 기진맥진한 채로 있음으로 말미암아
구출은 받았지만 바깥으로 나왔을 때 온전한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기가 매우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원래 있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마치 집을 나간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주 성령님과 아들
하나님이 애쓰시고 아버지 하나님이 그를 영접하여 살찐 송아지와 아주 좋은 옷들과 모든 것들을 예비하여 그를 온전히
치료하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처럼 사람을 구원하시고 난 다음에는 회복되게 하시기까지 그분께서는 주 성령님을 통하여
일하시는 장면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타락한 사람을 구원만 시킬 뿐만 아니라 회복하여서 온전한 상태로 제 기능을 발휘할 때까지 돌보아 주시는
장면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가는 사람들은 주님에 의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이며 또한 주 성령님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회복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지고 변형되어진 사람들이 하늘에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주 성령님을 통하여 회복됨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지고 또 되찾음으로 말미암아 변형되어져야 됩니다.
주 예수님에 의하여 구원받은 자들은 변화가 되어지고 변형이 되어져야 되는데 회복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변화가 되어지고
되찾음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됨으로 말미암아 변형되어지는 것이 높은 산에서의 주 예수님의 변형의 모습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사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바로 보여 이 변형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바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고 있는 이 세 제자들을 통하여 모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이와 같이 변화되고 변형되기를
간절히 갈망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땅에 계셨을 때 타락한 상태로부터 구출되어진 인성을 지니신 구주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아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곧 성육신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되찾은바 되고 회복된 인성을 온전히 입으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믿는 모든 타락되고 손상된 인성들 안에서 주님의 최고의
신성한 사랑과 최고의 인간적인 사랑으로 그들을 이끌고 계신 장면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제자들을 포함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주님을 믿는 자들의 인성은 원래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성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그 인성은 지속적으로 그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유지하고 보존하여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그 신성한 인성이 신성 안에 들어가는 곧 사람이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변화와 변형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들은 선악과의 열매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손상되고 변질된 인성을 가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원래 하나님 안에 들어가 살 수 있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변화와 변형을 가질 수 있는 인성을 가졌으나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했을 때 그 인성이 변화되고 변형된 것이었는데 생명나무의 실과가 아닌 선악과의 실과를 취함으로
마귀의 악한 본성을 지닌 죽음을 가져오는 손상되고 변질된 죄의 인성을 가지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자신의 죽음과 3일 후에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세 번에 걸쳐서 계시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이 두 종류의 인성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이신 신성한 사랑과 인간적인 신성한
사랑으로 인하여 고양되고 회복되고 부유해지고 고착화되고 확대되고 증가되고 확장되어진 그러한 주님의 인성을 통하여
바로 변질되지 않을 수 있는 그들의 인성이 회복되고 되찾게 됨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이 주 예수님과 같은 인성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 들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바로 신적인 속성과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변화와 변형을 주시기 위하여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세 번에 걸쳐서 계시해 주신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종류의 인성이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에 의하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실족되어져서 손상되고 변질된 인성이 있고, 또한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변화와 변형을 가질 수 있는 인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하지 않고 선악과의 실과을 취함으로 말미암아
변화와 변형이 오히려 마귀의 악한 본성인 죄의 인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적인 속성을 담는 그러한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담을 수 있는
주님의 인성을 소유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자신의 제자들에게 곧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타락한 인성들이 회복됨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지고 온전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변형 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인성을
소유하여서 신적인 속성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응된 사람이
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졌고 그 내적인 존재와 외적인 형태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모습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성육신 하셔서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은 자들
자신을 닮은 그러한 복제품이 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성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부어짐으로 말미암아
신적인 속성을 가진 자들이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의 표현을 위한 자들이 되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그 내용물이 되시려고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의 실과를 두시고 동산 중앙에 사람을 거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그 크신 신비하시고 오묘하시고 귀하신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성한 속성들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창조되어졌으나 사람이 하나님과 닮은 자들이 되는 것에 있어서 철저히 아담이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타락하고 잘못되어지고 훼손되어진 인성을 바로잡고 회복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그 인성을 소유하게 하여서 하나님의 그 신성한 속성들을 소유하여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바로 영의 거듭남과 변화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었고
그리고 인성을 회복하고 되찾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살고 있었던 아담은 어떠한 삶을 살았어야 됩니까?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사도 베드로 선생님과 사도 요한 선생님이 사도행전 1장 2장에서 나타난 것처럼
그러한 온전한 정말 회복되고 온전케 된 변화되어진 삶과 변형되어진 삶을 살았어야만 되었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은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변화된 삶 변형되어진 삶을 통하여
온전해진 것처럼 그도 그러한 삶을 살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저버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영원과거 안에서 성육신을 통하여
아들 하나님 안에서 둘째 사람이 되어 오셨던 것입니다.곧 구주께서 성육신하여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 구주께서 성육신하심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육신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이 두 번째 사람이신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변질되어지고 손상되어지고
훼손되어지고 상실되어진 모든 인성들을 높이 끌어올리고 이끌어주시고 고양시켜주시고 강화시켜주시고, 단단하게 해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부요롭게 해주심으로 말미암아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온전케 해 주시는 것이 바로 구주의 성육신 하여
오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바로 이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회복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열한 제자들이 주님의 인성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 주님 안에 있는 신성한 속성들인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삶을 그들이 가지게 됐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과 내용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사람의 복제품이 되게 하기 위해서 사람 안에 생명과
내용물이 되시려고 사람 안에 하나님이 들어가시기 위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하신 다음에 또한 우리를 온전하고 완전케 하는 변화되어지고
변형되어진 삶을 살 수 있도록 곧 완전히 회복된 사람으로서 주님의 인성을 가진 자들의 삶을 가질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2천 년 전에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친히 우리를 이끄셨지만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에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를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이끄시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그 육체 안에는 바로 하나님이 계셨으며 그리고 그 영이신 하나님 또한 그 영께서 성육신 하신 주님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을 통하여 바로 보혜사 성령님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성령님
안에 이제는 아들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아들 하나님이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함께 사역을 우리를 온전케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인성의 온전하고도 완전한 회복을 위하여 주님께서 성육신을 통하여 가능하게 하셨던 것들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주 성령님을 통하여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오늘도 일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구주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성육신 하신 이유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활 승천을 통해서 주 성령님을 대신해서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사람을 이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회복됨을 통하여 변화시켜주시고 온전케 함을 통하여 변형시켜 주셔서 주님의 인성인 신적인 속성들을
소유받은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된 사람이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일들이 성취되는 것들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장 3절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소유하도록 그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계획하셨고 그래서 계획하신 일들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람을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지으셨지만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공시키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이 계획된 일들에 대한 말씀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굉장히 난해하고 깊은 말씀임으로 여러분들께서 제삼 제사 깊이 묵상하셔서
하나님의 깊고 내밀한곳 까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알고 깨닫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예전에 하박국서 호세아서를 할때 사람의 줄 사랑의 끈 예수그리스도의 기원이 영원과거안에 있다는 것 또한 이 말씀을 통하여 다시금 상고할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말씀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먹을 쥘때 우리가 엄지가 없는 주먹을 쥘때는 온전한 힘이 들어가 지질 않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무엇이관대 우리이 생명이 되어주시려고 우리가 담을수 있는 내용물이 되어 주시려고 친히 그 짓이겨 지시면서 갈기 갈기 찢겨지시면서 까지 그 생애를 사시고 기름틀에서 짜여지시고 그 귀한 기름을 우리에게 내어주셔서 치료해주시고 회복해 주시고 지금까지도 계속적으로 성령님을 통해서 힘주시고 밀어주고 계신지 그런 하나님의 사랑앞에 저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는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도무지 그 사랑을 갚을 길이 없사옵고 그저 두손모아 감사와 찬양과 영광만 올려드릴 뿐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