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캔사스 주의 모 고교 동창생들로 구성된 캔사스Kansas는 1974년 CBS의 거물 돈 커쉬너에게 발탁돼 셀프 타이틀 앨범 <Kansas>를 선보였다. 당시 6인조 진용은 리드 보컬 스티브 월시Steve Walsh, 바이올린과 보컬의 로비 스타인하트Robbie Steinhardt, 베이시스트 데이브 호프Dave Hope, 드러머 필 어트Phil Ehart, 리드 기타의 리치 윌리엄스Rich Williams, 키보드와 기타의 케리 리브그런Kerry Livgren. 이후 심포니 록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캔사스는 1975년 초 2집 <Song for America>, 같은 해 말에 3집 <Maque>를 공개해 획기적인 장르를 개척했다. 이들의 명성이 지구촌에 알려진 것은 1976년 말 4집 <Leftoverture>에서 싱글 커트된 ‘Carry on wayward son’이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첫 플래티넘 앨범을 획득하면서부터다. 이듬해 연말 5집 <Point of Know Return>에서는 불후의 발라드 ‘Dust in the wind’가 탄생하면서 캔사스는 확고한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1978년 더블 라이브 앨범이자 6집인 <Two for the show>와 이듬해 5월 7집 <Monolith>에 이르기까지 4연속 플래티넘(4~7집) 행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1980년에 접어들면서 솔로 앨범을 각각 공개한 스티브 월시(<Schemer Dreamer>)와 케리 리브그런(<Seeds of change>)의 외도(?) 때문인지 캔사스의 인기전선은 다소 차질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스티브 후임으로 들어온 리드 보컬 John Elefante의 목소리가 선보인 8집 <Audio Visions>는 1980년 9월 ‘Hold on’을 히트시키며 그런 대로 인기를 유지해 나갔으나, ‘Play the game tonight’을 수록한 1982년 9집 앨범 <Vinyl Confessions>를 끝으로 그룹의 심벌이었던 로비 스타인하트마저도 탈퇴해 캔사스는 사면초가의 위기를 맞기에 이른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없어지면서 심포닉 록의 이미지가 약해진 캔사스는 1983년 5인조로 10집 <Drastic Measures>를 발매했지만 처음으로 상업적인 참패를 맛봐야 했다. 캔사스는 1984년 여름, 초기 캔사스의 향수를 느끼는 팬들을 위해 통산 11집이자 히트곡 모음집인 <The Best of Kansas>를 공개하며 휴지기에 들어갔다.
1984년 베스트 앨범은 ‘심포니 록의 제왕’ 캔사스가 걸어온 10년 발자취다. 스티브 월시의 청아한 리드 보컬과 코러스로 시작되는 출세작 ‘Carry on wayward son’이 서막을 연다. 이어 로비 스타인하트의 동화적인 휘들이 인상적인 5집의 타이틀 트랙 ‘Point of know return’이 흐르고 나면 John Elefante의 청아한 목소리가 캔사스를 버텨냈던 ‘Fight fire with fire가 대조적으로 진행된다. 곧 불후의 철학적 발라드 ’Dust in the wind’가 잊혀진 친우를 만나는 듯한 어쿠스틱 분위기를 빚어내고 나면, 스타인하트의 현악기가 다시 푸근히 감싸오는 2집 타이틀 곡 ‘Song for America’가 스티브 월시-케리 리브그런의 트윈 기타의 초기 사운드로 손짓을 하는데, 다소 세련되지 못한 느낌은 있지만 순수한 열정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뒷면에서는 먼저 유일한 미공개 작품 ‘Perfect Lover’가 리치 윌리엄스의 다이내믹한 기타로 펼쳐진다. 8집에서 John Elefante가 낭랑한 목소리로 녹음한 데뷔곡 ‘Hold on’이 이어지는데 작곡자인 케리 리브그런의 나무랄데 없는 기타 간주가 인상적이다. 이어 새로 가입한 Elefante의 건반연주 솜씨가 목소리와 함께 합격점을 얻어냈던 8집 수록곡 ‘No one together’가 장엄한 후주로 짙은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캔사스의 음악적 리더 케리 리브그런의 탁월한 스타인웨이 피아노 전주로 시작해 Elefante의 서정적인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명곡 ‘Play the game tonight’이 흐른다. 기타와 키보드에 능한데다 ‘Dust in the wind’ ‘Carry on wayward son’ 등을 작곡한 케리 리브그런의 두말 필요없는 명곡이다. 끝으로 명반 중의 명반으로 꼽히는 <Leftoverture>의 삼총사 로비 스타인하트(바이올린)-스티브 월시(리드 보컬·키보드)-케리 리브그런(리드 기타·키보드)이 엮어내는 서사시 ‘The Wall’로 캔사스의 10년 권세는 막을 내린다.
스탭들은 캔사스의 후반기 부진을 팬들에게 사죄하는 뜻에서 예전의 히트곡들을 모두 새롭게 디지털 방식으로 다시 커팅하는 성의를 보였다. 따라서 팬들의 라이브러리 필수 목록에 오를 만한 가치가 부여된 음반이기도 하다. 늘 고고학적인 분위기로 캔사스의 이미지를 독특하게 형상화했던 CBS 그룹의 탁월한 일러스트레이터 스티브 카버Steve Carver의 멋진 자켓 디자인도 눈길을 자극한다. 국내에는 1986년에 라이센스로 발매된 이 음반에 대해 당시 음반 속지 소개글을 쓴 팝 칼럼니스트 전영혁은 “캔사스의 이 히트곡 모음집은, 두 번째 앨범부터 신선미를 잃어가는 대부분의 그룹에 비해 그래도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품위를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을 쉽게 읽어낼 수 있는 음반”이라고 평했다. 그는 “캔사스는 핑크 플로이드와 킹 크림슨, 그리고 Yes와 ELP 등으로 대두됐던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 록의 엄청난 공격에 홀로 맞서 미국의 자존심을 지켰던 심포닉 록의 대명사였다”며 “삶이란 바람 속 티끌 같은 것이라고 읊조린 그들의 심오한 음악세계는 록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페이지의 한쪽을 장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