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꽃피울 공단 문화
이성칠
국가공단이 있는 구미는 2000년도 평균연령이 28.3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었다. 전국 무역수지 흑자의 약 68%를 구미공단이 차지했다. 처음 전자공단으로 출발했으며 섬유산업도 큰 역할을 했다. 전국의 12개 대기업 합섬 공장 중에서 8개가 소재했다. 1공단 조성 당시 수출탑 인근에 위치한 광평초등학교(구, 구미동부국민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공사 차량이 많이 다녀 고학년생들은 선생님들과 교통지도를 했다. KPI(현 코오롱), 한국도시바(현 한국전자), 선산섬유(폐업) 등 3개 회사가 가장 먼저 입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화동, 신부동, 장동, 패기, 신늪, 자죽이 등 눈 감으면 다가올 꿈속의 고향땅 모습들을 마음속에 묻고 공단동이 생겼다. 고향을 잃은 이주민들은 인접한 신평2동에 새로운 터전을 일구며 실향의 아픔을 공장 굴뚝 높이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날려야만 했다.
1970년대에 이어 8, 90년대만 해도 공단동은 젊은 청춘 남녀들에겐 꿈의 직장을 안겨주었다. 포도에 펼쳐진 벚나무엔 집채만 한 보름달이 와글와글 피웠고, 언덕과 하수구를 가린 공간엔 개나리 뿅뿅뿅 피어났다. 선남선녀들 환하게 홍조 띄운 얼굴에 청춘들의 페스티벌이 끝없이 펼쳐졌다. 전국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공단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의 현대판 화신으로 공돌이와 공순이로 불렸던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거룩한 분들이 밤을 낮삼아 구슬땀을 흘렸다.
그 당시 구미공단에는 근로자들의 문화가 살아있었다. 2교대, 3교대 속에도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눈꺼풀 짓누르는 고통을 감내하며, 목 연필 꾹꾹 눌러쓰면서 소설가가 되고 시인이 탄생했다.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겐 밥벌이도 안 되는 글쟁이의 길에 경험하지 못한 감흥이 나온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노동자 중에서 시인이나 소설가 같은 문학도들이 나왔으며, 대학교수로 나가는 문인도 있었다. 아 그러나 배부른 문화는 결코 그들의 나아가는 길에 생산과 수출 경쟁만을 덧씌워 더 이상 공단 문화는 지속될 수 없었으니, 오호통재라 아니할 수 없다.
초기의 공단본부에는 근로자들의 꿈을 키우고 새롭게 다양한 길을 개척할 수 있는 홍보부서가 있었다. 오직 전국에서 모인 선남선녀들을 발굴하고 함께 나아가는 데 힘을 실어주는 부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경쟁력과 구조조정으로 더 이상 여유를 주지 못했으니, 지방의 근로자들에게는 한계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당시에 이름을 알린 문인으로 노동자 시인 육봉수, 계명대 문창과 교수 장옥관, 소설가 최해걸 등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명멸했다. 구미공단이 펼쳐지지 않았다면 전국에서 몰려올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리학과 양반 문화에 절은 고장에서 일탈한 문화예술인들을 찾아보기는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낙동강 오리알이란 속담이 회자한 적이 있다. 한마디로 낙동강은 천정천이어서 폭우가 쏟아지거나 태풍이 몰아치면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특히 오늘날 공단동, 인동동, 진미동 지명을 쓰는 지역은 과거 공단이 조성되기 전에는 낙동강의 범람으로 주변과는 괴리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 동기들은 당연히 결석 처리가 되지 않는 수업을 공치는 날이 된다. 70여 명 학생 중 많을 때는 20여 명이 듬성듬성 빠졌다.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의 근황이 궁금해서 종일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리들이 강변 모래톱에 낳은 알은 물론이고, 땅콩밭과 사과나무와 수박밭이 통째로 잘려 나가곤 했다. 그런 낙동강 모래 뻘에 신의 경지라고 할 반도체가 나왔다. 이는 금싸라기 쏟아진 유일한 내륙 구미전자공단이 박정희 대통령의 선견지명으로 태동하였다는 점이다.
이제는 다시 공단 문화를 부활해서 꽃피우도록 하자. 지방자치가 성숙한 시대이다. 더군다나 글로벌제이션과 로칼리젠이션이 통합된 글로칼리제이션(세방화) 시대에 K-Culture, K-POP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더구나 노벨문학상을 받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56년의 역사를 가진 구미국가산업단지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 넣자. 성숙한 시민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문화예술단체와 언론과 방송, 문화예술인이 앞장서자. 특히 대구 경북의 든든한 뿌리를 갖고 있는 매일신문과 함께 하자. 젊은 도시 세계적인 글로벌 공단을 빛낸 젊고 유능한 문학인을 발굴하자. 더불어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공유하자. 대구 경북을 아우르고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구미공단의 옛 영화를 공단 문화와 더불어 삶의 질을 높이도록 하자. 지방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확실한 진리를 깨닫자. 인구가 줄고 일자리가 줄고 지방소멸이 어디나 다 일어난다고 호도하거나 말하지 말자. 전국의 지방이 그렇더라도 구미는 그렇지 않다는 확고한 신념과 강력한 의지와 단합된 결기가 절실하다. 최상의 공단 문화로 구미가 살아 꿈틀대며 웅비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