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사회융합자율 201812003 양준하
레닌의 국가혁명론은 아주 단순한 명제로 도출할 수 있다.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은 근대 부르주아 국가의 완전한 해체이다. 그러한 해체작업은 ‘프롤레타리아’ 계급만이 달성할 수 있다.” 레닌의 주장은 사회주의 혁명의 필수적 목표를 부르주아 국가체제의 파괴로 보는 것이고, 그것의 혁명주체를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자신의 경제적 존재 조건으로 인하여 그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되며,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와 역량을 부여 받는 독특한 계급이기 때문”이다.
레닌의 주장은 혁명방법과 혁명주체에 대해서 매우 폐쇄적인 입장을 가진다. 물론 그의 주장의 근거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애초의 근대국가시스템과 사법제도라는 것의 출발이 부르주아지 계급의 소유권 보호를 위해 형성된 것이니, 국가는 그 기본 성격상 자본에 편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한 사회의 구성방식을 설명할 때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토대가 이데올로기, 법, 문화, 국가와 같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고 보았으니, 당연히 새로운 생산관계를 추구하는 사회주의 혁명에선 다른 형태의 상부구조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레닌이 계속 주장하는 것처럼 러시아 혁명이 낮은 수준의 부르주아지 혁명에 그치지 않고 프롤레타리아 혁명까지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도 분명 있을것이다. 다만 (그것이 과연 ‘진짜’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는가와 상관없이) 레닌이 건설한 소비에트 연방은 실패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당시 소련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레닌이 그토록 경멸하던 ‘관료제’와 ‘비민주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다.
혹자는 이것의 실패를 스탈린주의의 실패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실패가 아니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소련의 실패가 사회주의적 시도 전체의 실패로 읽혀선 안 된다. 다만 이 주장이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죄가 없으며, 무결점하고 오류가 없다고 말한다면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레닌은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모습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한 영역으로 남겨둔다. 특히 레닌은 각 지방의 코뮌 자치제도를 존중하면서 그것이 중앙집권적인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하[1]는데, 이러한 중앙주의가 자칫 강력한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관료제로 오염될 위험에 대해서는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혁명의 주체 역시 노동자 계급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노동자 계급이란 계급성 자체가 모호해지고, 민중을 움직이는동력은 계급모순 외에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그것이 더 큰 운동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 가치절하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의 국가는 마르크스나 레닌이 바라보던 국가와 많이 달라졌다. 그 역할은 점점 비대해졌으며, 시장에 대해서도 당시보다 훨씬 크게 개입하고 있다. 레닌이 변절자라 부르던 ‘부르주아 사회주의’는 ‘복지국가’라는 변화된 국가체제를 만들고, 인민 대중의 삶을 전보다 훨씬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2] 물론 레닌은 근래 신자유주의의 등장을 보고 “거 봐라, 자본주의에 타협적인 개혁은 분명 실패한다고 하지 않았냐”며 콧방귀를 뀔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그 각인은 사람들에게 유산처럼 남아 구시대로의 회귀를 거부하게 만든다. 우리의 수업자료-마르크스의 <국제 노동자 협회 발기문>을 보면 당시 노동자 계급의 비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만약 지금 자본과 국가권력이 그렇게 돌아가자고 말한다면 그들은 필히 민중의 거센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수백년 간의 투쟁을 통해 더 나은 노동환경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변절된 진보일지라도 진보는 그 자체로 자본과 권력에게 부담을 주고, 민중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중요한 것은 끊임 없이 민중들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지, 혁명의 방법과 주체 가지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문제제기는 틀리지 않았고 그 주장이 변혁의 방법으로 고려되야 함은 분명하지만, 당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원칙만 고수하는 것은 변화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그렇기에 레닌의 국가혁명론은 '21세기 수준'에 맞게 다시 고려해야 한다. 그 출발이 바로 ‘열린 자세’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만을 진정한 혁명 취급하는 레닌의 폐쇄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 주장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1] “만일 프롤레타리아트와 극빈농민층이 국가권력을 스스로의 수중에 장악한다면, 스스로를 각 꼬뮌으로 자유스럽게 조직한다면, 자본을 공격하고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함에 있어서 그리고 철도, 공장, 토지 등의 사유 재산을 국민전체, 전체사회로 이전시킴에 있어서 모든 꼬뮌이 행동을 통일한다면, 이것은 중앙주의가 아닌가?”, 레닌, <국가와 혁명>, p. 391.
[2] 물론 ‘소련의 등장’이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한 주요 요인이란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