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지킨다는 것
요즘 따라 아는 사람의 이름이 금방 생각이 안 나서 격정이다. 노화 현상이러니 스스로 위로하면서도 두려운 생각이 든다. 지인의 부인이 십여 년 동안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가 나중에는 자식과 남편도 몰라보게 되었다. 결국 치매 관련 병원에서 수년간 지내다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족이 겪었을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컷을까 짐작한다. 주변에 그러한 가정이 의외로 많이 있다. 그래서 나도 그러한 일을 겪지 않으려고 두려운 마음에 운동도 하고 유사 의학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편이다.
화투가 치매에 좋다고 해서인지 시골의 마을회관에서 노인들이 화투 놀이를 자주 한다. 적은 돈으로 하는 놀이이지만 놀이와 도박의 차이가 일반인이 판단하기에는 애매하다고 한다. 화투 치는 사람의 수입에 따라 판톤이 달라지고, 경찰은 그 금액을 기준으로 도박 여부를 판단해서 입건 여부를 가린다.
1970년 중반 이후에는 기술자들이 만 5년 동안 중동에서 근무하고 병역을 면제받는 제도가 있었다. 그 혜택을 받은 고등학교 후배를 1980년 대 이란 현장에서 만났다. 십 년 이상을 더운 모래사막과 민가도 없는 삭막한 곳에서 얼마나 힘이 들고 세월이 안 갔을지, 내가 3년을 지내고 보니 알 것 같았다. 휴가도 1년에 한 번, 두 번째 해에서는 9개월에 한달 휴가를 준다. 휴가는 현장 출발과 복귀까지 포함하는지라 실제 휴가는 이십 여일 정도이다. 자식이 아빠를 아저씨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는 금요일이 휴일이다. 후배가 목요일마다 화투 멤버를 데리고 내 방에 놀러 왔다. 세월을 보내려면 고스톱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첫해를 보내는 선배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십년의 고수와 초보의 차이는 돈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직원들은 한 달에 물값 백 달러를 받는다.
고스톱을 치기 위해서 점당 백원인데도 격우 한 달을 버티는 정도였다. 돈은 잃있지만 삼 년의 세월은 잘 지나간다. 지금도 그 후배들이 우리 집에 가끔 놀러 와서 우리 집 마당에서 캠핑 하며 자고 간다. 물론 그때처럼 고스톱을 치자고는 하지 않는다. 그들이나 나나 고스톱을 안한지는 한참 됐다. 내가 이란 현장에 있을 때는 한국인 근로자가 이천 명이 넘었다. 건축. 기계, 용접, 페인트, 철골 등등 다양한 직종의 기술자들이 있었다. 그중에 현정이라는 직종이 있는데, 그들은 기술이 없고 현장 정리와 기사들의 심부름 및 보조 역할을 했다. 그 직종에 도박사 두 명이 위장 취업을 해서 현장에 왔다. 다른 근로자들에게 화투를 가르치고, 담배 내기를 해서 잃어주며 몇 개월의 사전 공작을 벌였다. 그 후에 서서히 도박이 시작되어 큰돈을 잃는 사람이 생겼다. 돈을 잃은 사람들은 집에서 돈을 보내오는데 먹지를 싸서 보내라고 했다. 그래야 엑스레이를 통과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이란은 이슬람 혁명 후인지라 음란물 반입을 단속한다는 이유로 우 편물 검색이 있었다. 하지만 테헤란을 통과한 두툼한 우편불은 현장 근처인 뷰샤 우체국에서 불빛에 비추면 검은색인데, 편지를 개봉하면 돈이 나오곤 하니 그들이 편지를 뜯는 일이 벌어졌다. 우체국에서 돈 빼먹는 재미에 편지를 자주 개봉하니 내용이 다른 사람과 바뀌는 우스운 일도 생기곤 했다. 결국 도박으로 폭력 사건이 발생하여 대사관에서 도박사 두 명을 국내로 압송하여 마무리되었다.
십여 년 전까지도 상가에서는 화투를 많이 쳤다. 그때 배운 화투실력으로 선배들과 치면 내가 승률이 상당히 높아서 선배들이 '꾼'이라고 놀리고 했다. 그 돈으로 다음 날부서에 음료수 돌리며, 선배들께 돈을 잃어줘서 고맙다고 하면 "이제 너랑은 안 친다."고 했다. 그런데 또 다른상가에 가게 되면 복수심 때문인지 나를 꼭 끼워 주었다. 요즘에는 그런 모습이 없어져서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오락으로 어쩌다 할 뿐이지, 내 위에 수많은 고수가 있다는 걸 나도 잘 알기에 기를 쓰고 할 마음은 없다.
동창 중에 도박으로 아직도 교도소를 드나드는 친구가 있다. 결혼 초에 친척이 자기의 금은방에서 일을 하게 해 주었다. 친척의 금과 보석을 다른 집으로 가져다주지 않고 도박으로 잃어버리고, 사기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얼마 전에 그 친구 동생을 우연히 만났다. 자기 형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 간 누나가 동생이 저지른 사기 사건으로 피해를 보아서 자살했다고 한다. 형 때문에 집안이 다 망했다고 하소연한다. 친구의 아내는 우리 동창의 동생이니, 그 오빠의 마음은 얼마나 비통할지 안타깝다.
화투를 치매 예방이나 오락으로 즐길 수도 있지만, 도박이 되어 빠져들면 손을 잘려도 나머지 손으로 한다고 한다. 도박을 직업으로 하는 조직과 전문꾼이 있다는 것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으니 모든 사행성이 있는 화투와 같은 오락은 선을 지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아는 것과 지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니 그것이 문제다.
이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