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수여된 훈장
일터를 떠나 올 무렵에 훈장(勳章)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 이름도 확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받았던 사실 자체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동안 두 차례 이사를 다니며 꾸렸던 이사 짐 중에서 풀지도 않고 방치해 두었던 꾸러미 중에서 쓸데없는 것을 골라 버릴 요량이었다. 오늘 아침에 풀어 헤친 박스 속에 들어 있던 그것이 눈에 띄었다. 훈장의 존재가 신기해서 자세히 살폈다. 훈장증(옥조근정훈장)과 훈장이 별도의 작은 상자(case)에 담겨 있었다. 그 때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 이름은 새겨지지 않음)’이라고 시계의 뒷면에 새긴 기념품도 함께 받았지 싶다. 받은 날(2011년 2월 28일)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만으로 6년이 지난 이제 사 내가 무슨 훈장을 받았었던지 꼼꼼히 확인한 꼴이다.
여태까지 무관심했던 훈장을 살펴보고 싶었다. 우리나라 법정 훈장종류는 이랬다. 무궁화대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 12가지가 있었다. 이 중에서 최고의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제외한 11가지 훈장에는 각각 5가지 등급으로 구분하여 수여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내게 수여된 근정훈장을 되새긴다. 그 취지를 들춰봤다. 근정훈장은 공무원(군인 및 군무원은 제외) 및 사립학교의 교원으로서 직무에 정려하여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며 5등급으로 나뉘었다. 구체적으로 1등급 청조(靑條 : blue stripes), 2등급 황조(黃條 : yellow stripes), 3등급 홍조(紅條 : red stripes), 4등급 녹조(綠條 : green stripes), 5등급 옥조(玉條 : aquamarine stripes)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게는 이 중에서 최하위인 5등급의 옥조근정훈장을 수여한 까닭은 무엇일까. 일터에 적을 두었던 근무연한 33년 몇 개월(군경력 포함)로 차상위(次上位) 등급인 4등급 조건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과연 내가 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근정훈장 상훈법(賞勳法)에서 밝히고 있는 ‘서훈 원칙’의 주요 골자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으로 적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전제 조건을 충족하여 훈장을 받은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흔히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여 비불외곡(臂不外曲)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후하게 나를 평가해도 ‘나라를 위해 세웠던 뚜렷한 공적’이라는 말 앞에서는 유구무언이 격에 맞지 싶다.
훈장증을 다시 자세히 살폈다. 분명히 ‘옥조근정훈장 제48976호’라고 명기되어 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정부수립 이후 옥조근정훈장을 받은 누계(累計)로 볼 때 내가 48,976번째라는 얘기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모든 훈장을 망라하는 12가지 중에서 나머지 11가지를 제외하더라도, 근정훈장 5개 등급의 인원만 모두 합해도 어마어마한 수에 이를 것임은 불문가지이다.
지난날 나라에 공헌을 했던 유공자에게 임금이 토지나 하인 등을 하사하여 공(功)을 치하하며 격려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날에는 시류에 걸 맞는 칭찬과 격려의 방법으로 훈장을 수여하는 서훈 제도를 채택했을 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이르지 않던가. 그래도 지금 우리의 근정훈장 수여 기준인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이라는 법의 취지와 다소 괴리가 있는 게 아닐까. 정부 스스로 ‘퇴직선물’을 안기는 것처럼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고 남발(濫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큰 허물없이 30여년을 넘긴 경우는 거개가 받는 현실을 지적하는 고언(苦言)이다.
언뜻 떠오르는 기억 하나이다. 무슨 연유였는지 잊어버렸지만 그해(2004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 교육부총리(안병영) 표창장(제7573호)을 받았던 적이 있다. 달랑 A4용지 크기의 그것을 교무처로부터 전달 받았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수여받았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속된 표현으로 승급이나 승진 혹은 급여 같은 부분에 눈곱만큼의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초중등학교의 경우는 승급과 승진에 결정적인 요소로 평가되기 때문에 서로 받으려고 경쟁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다. 대학에서는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서 외부의 어느 누구의 표창도 세속적인 기준에 따른 가치가 전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버리겠다고 벼르며 나선 길에 또 다른 업보를 만들어 두 어깨에 걸머진 모양새이다. 세월이 지나도 버리지 못하고 이사를 거듭하면서도 끈질기게 끌고 다니는 애물단지 들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석사와 박사) 따위의 졸업장이나 학위기를 비롯해 이런저런 연이 닿아 받았던 표창장이나 상장을 위시해서 앞에서 얘기한 훈장 따위가 그 부류들이다. 차마 매정하게 쓰레기통에 쑤셔 박을 엄두나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이참에 그들을 아예 한 데 꽁꽁 묶어서 튼튼한 박스에 넣은 뒤에 테이프를 붙이고 노끈으로 친친 동여매버렸다. 이들 또한 허접한 삶의 흔적일 뿐인데 미련이나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틀어쥐는 어쭙잖은 꼴이 마냥 가소롭다. 이들은 내가 들추지 않더라도 언젠가 누군가의 의해서 존재가 드러나 나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우스꽝스러움이 펼쳐지리라. 아마도 내가 저 세상으로 떠난 다음의 일일 게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절대로 다시 펼쳐볼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하는 독백이다.
2017년 3월 9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