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응 스님의 선가귀감
3. 조사선과 본래면목
본래면목은 순수 불성이고 법의 실상
부처님이 가섭에 3처전심 했듯
조사는 교설이 아닌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법 전승한 스승
한생각 전 소식 전함이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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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家龜鑑 선가귀감 02.
일물(一物)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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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온 것은
바람도 불지 않는 곳에서
물결을 일으킨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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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부처님과 조사란
세존과 가섭을 말한다.
세상에 나왔다는 말은
큰 자비를 근본으로 삼아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하나의 그 무엇’으로써 관찰해 보건대
사람마다 그 면목이
본래 이루어져 완성되어 있으니,
어찌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자신의 본래 모습에)
연지 찍고 분을 발라 꾸밀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와
공연히 물결만 일으켰다고 한 이유이다.
『허공장경』에
“문자도 마업10)이요, 명상도 마업이요,
부처님의 말씀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마업이다”
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이는 곧바로
본분(本分)을 들어 말한 것이니,
부처나 조사일지라도 특별히 할 역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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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하늘과 땅도 빛을 잃고,
해와 달도 광명을 잃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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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근원은
‘한 물건, ○’으로 표현하는데,
생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모양을 그릴 수 없는 본체라고 했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선의 작용을 설하니,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출현하신 것은
바람이 없는 데에 풍랑이 일어난 것이다”
라고 한다.
‘금강경 25장 분별없는 교화’에서
“아상과 법상이 끊어져
집착이 없는 근원에서는
중생도 없고 제도하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즉, 선에서 작용은 둘이 없다는 말이다.
서산의 해석은
“부처님과 조사는 세존과 가섭이다.
세상에 출현하신다는 것은
대자대비를 체로 하여 중생을 제도하신다.
그러나 ‘한 물건’에서 보면
사람마다의 ‘심성(面目)’이 본래 원만한데
굳이 남이
연지 찍고 분을 발라줄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은 세상에 출현하신 것이
파도를 일으킨 것이다.
‘허공장경’에서
문자는 마의 업이요
이름과 모양도 마의 업이고
부처님의 말씀도 마의 업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본분(본래면목)을
바로 들어 보인 것이니
부처님과 조사도 공능이 없다”고 하였다.
‘본래면목’은
깨달은 경지에서 본
모든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불성이다.
순수한 본성이고 법의 실상이다.
함허선사(涵虛得通, 1376~1433)는
“어리석은 중생은
부처님의 설법을 의지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므로
모든 부처님이 자비심으로 법을 설하셨다.
그러나 궁극의 열반,
위가 없는 바른 깨달음
(無上正等正覺, anuttarāsamyaksambodhi)
에서는
중생이라는 생각과 부처라는 생각이
본래 공적하고,
제도하는 이와 제도 받는 이
역시 공적하다”고 하였다.
부처님이란
붓다(Buddha)의 음사로서
‘깨달으신 분’을 뜻한다.
석가족의 깨달으신 분(釋迦, Śākyamuni)으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을
석가세존이라고 한다.
조사(祖師)란
‘교설이 아닌(不立文字)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법(以心傳心)’을
전승한 선종의 스승을 말한다.
즉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가섭존자와 공양을 나란히 받으신
‘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 ‘아함경 중본경’)’와
영산회상에서
연화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니
오직 가섭만이 미소 지어서
‘상이 없는 미묘한 실상 법’을 전한
‘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 ‘傳燈會要’,
1220년 悟明著)’와,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가섭에게 두발을 뻗어서 광명을 보인
‘니련하반곽시쌍부
(泥連河畔槨示雙趺, ‘대열반경 다비품’)’의
3처 전심의 법이다.
‘파사현증론시경(破邪顯證鑰匙經)’에서
“내가 지금 몸이 편안한 곳이며
옴이 없고 감이 없고
닦음이 없고 증명할 것 없는
주인공 이것이 ‘본래면목’이어서
허망하지 않고
진실한 부처님의 법당이고 고향이다.
그래서 그 묘체에는
본래 주하는 곳이 없고
유와 무에 주하지 않고
스님과 속인에 주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육조단경(六祖壇經)’ 제13강 행유품에서
혜능이 5조 홍인으로 부터
가사와 발우를 전해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4품 장군이었던
진혜명(陣慧明) 수좌가 쫓아간 이야기가 있다.
혜능이 의발을 바위 위에 던져놓고
“옷은 믿음을 표하는 것인데
힘으로 다투겠는가?”하니
혜명이 와서 잡아 가져가려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혜능이 탄식하면서
“행자여 나는 법을 가져온 것이지
의발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라고 하고
반석에 앉아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이때에 어떤 것이
그대 혜명상좌의 ‘본래면목’인가?”
라고 하니
혜명이 크게 깨달았다.
‘금강경’에서 설하는
‘일체의 상과 개념에 주하지 않는 마음’
이기 때문에
부처님과 조사가
수행하시고 증득할 것도 없는 본분이다.
만일 형상으로 보거나
소리로 듣거나 분별을 생하면
천마의 삿된 외도이기 때문에
선을 장애하는
악귀(魔羅, Māra, 번뇌)에 지나지 않는다.
요약하시길,
“하늘과 땅이 색을 잃고,
해와 달도 광명이 없구나”라고 하니
‘한 물건’의 ‘본래면목’은
하늘과 땅의 덕보다 수승하고
그 지혜는 해와 달보다 빛난다.
한 생각을 일으키기 전의 소식이
‘불립문자’로 전하는
‘이심전심’이며
조사선의 지름길이라고 가르친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첫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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