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를 넘는 그란 산 베르나로도 고개부터 줄곳 따라온 여러 물줄기는 모두 포강으로 흘러들었습니다. 포(Po) 강은 서부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흘러 아드리아 해로 들어가는 650km의 물길입니다. 북으로 알프스 남으로 아페닌 산맥에서 흘러드는 지천이 141 개입니다. 원래 향사구조의 바다였던 곳을 이 지천들이 날라온 토사가 메꾸어 평원을 만들었습니다. 이 토사 이동은 18,000년 전에 어느 정도 잠잠해졌습니다. 아래 지도는 석유회사가 만든 탐사용 지질 구조[i]와 현재의 지형을 비교해서 보이고 있습니다. 옛날 바다는 매꾸어져 육지가 되었고, 토리노, 밀라노, 베네치아 깥은 도시가 생겼습니다.
이 강이 형성된 평원의 면적은 46,000 km2 (다른 기준을 적용해서 71.000 km2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면적(100,210km²)의 반에 가까운 광대한 평원입니다. 이 지역의 지질은 수자원의 관점에서 세 지역으로 구분됩니다. 암석 기반의 균열이 심해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 강을 이루는 건조 지대; 지하수가 땅 위로 솟는 샘물 지대; 그리고 강에 인접한 습지. 건조지대는 주로 목장이나 과수원입니다. 지하수가 솟는 우물 지대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1600만명이 삽니다. 토리노, 노바라, 비제바노, 밀라노 등이 대표적인 도시입니다. 이탈리아 산업의 1/3이 몰려 있는 곳입니다. 습지는 개간되어 논이 되었습니다.
천년을 넘게 도시국가로 분열되었던 이탈리아는 이 포강 평원에서 통일운동을 맞이했습니다. 19세기 토리노에서 시작된 운동은 현대 이탈리아로 결말지어졌습니다. 습지 개간의 주역 카보우르 백작이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주역이 된 것은 경제분야의 업적이 주요했을 것입니다. 물관리는 어느 나라든 정치의 기본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통일운동의 주역 세 사람은 각각 정치, 군사, 경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M. Livani, et al., "Structural and Stratigraphic Control on Salient and Recess Development Along a Thrust Belt Front: The Northern Apennines (Po Plain, Italy)," J. Geophysical Research: Solid Earth , 17 April 2018
https://en.wikipedia.org/wiki/Po_Valley
오리오 리타 마을에서 포(Po) 강을 향해 가는 길은 벼, 옥수수, 콩 등의 작물이 섞여 자라는 들판이었습니다. 키가 큰 포플러들이 람브로 강 언저리를 따라 서있었습니다. 들판을 걸어 포강 가의 작은 마을 코르테 산탄드레아(Corte Sant´Andrea)에 이르렀습니다. 인구 22명. 해발 56m. 990년 시제릭 주교가 로마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나간 마을입니다. 마을 입구에는 문 형태의 구조물을 세웠지만 별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수백 명이 살던 마을이었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진 마을. 자전거, 놀이 배 빌려주고, 음식 팔고, 재우고 하던 사람들은 가버리고 농사 짓는 사람들 한두 집만 남았습니다. 길게 늘어선 카시나 건물은 대부분 비어 있고 사람이 살지 않으니 퇴락해가는 중이었습니다. 마을 성당은 여전히 남아 주민들이 행여나 돌아올까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코로나 환난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과정에는 경제적 사회적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떠나 버린 사람들은 말이 없습니다. 다만 문학작품에서 그 모습의 일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포강 하류 습지에서 고단한 삶은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강의 여자 (La donna del fiume)”에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ii]
리카르도 바첼리(Riccardo Bacchelli: 1891— 1985)의 소설 “포강의 방앗간(Il mulino del Po)”은 3부작 소설입니다:[iii] 제1권 하느님의 축복을, 제2권 방앗간에 찾아온 불행, 제3권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19세기 중엽 이탈리아 통일운동 시기부터 제1차세계대전 사이의 이 지역 사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우리나라 천주교 박해시대부터 일제 침략 시기와 비슷한 년대의 이탈리아 사회를 보여주어 관심이 갔습니다. 힘과 돈을 가진 자들의횡포가 가져온 서민들의 비극이었으니 아마 동학란 이야기를 비슷하게 써도 무방할만큼 유사한 스토리 전개였습니다. 이 소설은 1949년에 영화화되었습니다. 당시 포강 주변 생활 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끝 장면에 이런 자막이 흘러갔습니다.
Così passa e ritorna il bene e il male degli uomini e il tempo è simile all'andare del fiume
좋은 일 궂은 일은 지났다가 다시 오고, 세월은 강물처럼 흐릅니다.
순례자 숙소에 도착해서 전화를 거니 이웃에서 아주머니가 와서 열쇠를 주고 시설 사용에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아주머니 이야기를 대충은 알아들었습니다. 며칠전 만났던 아일랜드 사람 제리와 자전거 여행자 두 사람이 들어와 넷이서 자게 되었습니다. 며칠전 파비아 근처 길에서 만났던 식당 주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식당은 문을 닫아 손님을 받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영업 중이었습니다. 잠시 어딘가 다녀올 곳이 있었을 것입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강변으로 나갔습니다. 선착장 언덕에는 간단한 기념물이 있었습니다. 포강을 건너는 이 선착장을 트란시툼 파디(Transitum Padi) 라고 부릅니다. 라틴어로 “포강을 건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작은 성모상이 있었습니다. 강둑에서 배가 있는 곳까지 철제 계단을 설치해놨습니다. 선착장에는 빈배만 있었습니다.
포강은 호수처럼 넓어 보였습니다. 눈에 띄는 물 흐름도 없어 보여 조용했습니다. 거울 같은 강물에 건너편 강변 나무들이 거울같이 반사되었습니다. 포근함과 거친 갈등이 함께 흘러가는 강물. 아오스타 골짜기를흐르는 상류 도라 발테아 강의 거친 물살과는 너무 대조적인 차분함이었습니다. 그 침착함으로 제자들이 폭풍에 시달릴 때 예수님이 나타나 달래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건너편 숲 너머 아페닌 산맥의 산줄기가 다가와 있었습니다.
강둑이 없었으면 강물이 범람할 때마다 토사가 휩쓸려서 주변이 습지로 남아 있었겠지만 지금은 개간하여 만든 농경지가 인접해 있었습니다. 거대한 강둑에는 나무들이 울창하여 본래 습지에서 자란 식물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포강 유역의 평야지대 길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 듭니다. 강이 행정구역인 주 경계입니다. 롬바르드 주에서 강 건너면 에밀리아 로마나 주가 됩니다. 모기는 없었고 포플러 나무가 가을 바람에 팔락거렸습니다. 차를 몰고 온 사람들이 강변을 걷고 있었습니다. 낚시꾼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큰 물고기들이 살고 있을 것입니다. 강변 숲에서는 지저귀는 새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 나루터에서 순례자들을 건너주고 생계를 이어가는 뱃사공 다니엘로는 손님이 없으니 어디론가 가버려 연락조차 안되는 듯했습니다. 다니엘로의 모터보트로 10분 정도 달리면 4km 하류의 소프라리보 (Soprarivo)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뱃삯 일인당 10유로. 뱃사공 다니엘로에게는 비아 프란치제나 순례자 협회에서 공인해준 서비스였습니다. 소프라리보 (Soprarivo)에는 순례길 안내용 원기둥이 있는데 시제릭의 여울(Guado di Sigerico) 이라고 부른답니다. 이곳에 뱃사공 다니엘로의 살림집이 있고 지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장부에 기록해두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이었는데 이 환난의 때에 그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강에 배들이 다니지 않는 것은 운하 같은 물류 시스템이 아예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곳 운하는 농수로 역할뿐이었습니다. 강은 육상 교통의 큰 장애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니엘로가 없으니 제방을 걸어 자동차도로를 만나면 다리를 건너서 피아첸짜까지 가야합니다. 시제릭 주교 시절에는 이곳에서 강을 직선으로 건넜을 것입니다. 그때는 홍수 때마다 강물이 지나는 물길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댐이 생기고 물 흐름이 느려지면서 토사 퇴적 량이 많아졌을 것입니다. 강이 지금의 물길로 언제까지 흐를 지는 알 수 없다. 역사적으로는 포강을 건너는 곳이 이곳 말고도 두 곳 더 있었지만 비아 프란치제나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포강에 다리가 놓이기 전에 말이나 화물을 건네주는 나룻배 선착장이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나룻배는 물살이 거의 없는 강을 직선으로 가로 질러 건너편으로 연결했으니 이제는 작은 선착장만 만아 있다고 합니다.
이 길에 관련된 조직들이 경쟁적으로 만들어 놓은 길의 모습. 길은 돈을 의미했습니다. 아마 영화 돈 까밀로에 나오는 강변 패 싸움이 벌어진 원인 정도로 보면 될 것입니다.[iv] 나그네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그런 이해관계들. 어쩌면 돈 까밀로 신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건너편 강둑에 나타날 것만 같은 … 돈 까밀로라는 신부 캐릭터를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한 곳이 이곳 포(Po)강 근처 마을이었습니다. 돈 까밀로 신부와 공산당 시장 뻬뽀네가 사냥금지 구역에 갔다가 마주쳤는데 마침 감시원이 다가오자 합세해서 때려 눕히고 도망친 후 둘이 같이 뉘우치는 모습에서 다혈질이면서도 같이 사는 친구들의 삶이 있었습니다.
오후 늦게 호스텔 주인 마우로가 와서 부엌에 있는 식재료를 마음 대로 써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식재료 값 포함 20유로 지불. 포르노보의 숙소 예약을 부탁했더니 확인까지 해주었습니다. 부엌에 있는 식재료를 써서 스파게티를 푸짐하게 삶아 저녁을 먹었습니다. 로잔에서 출발했다는 자전거 순례자들은 투스카니까지만 간다고 했습니다. 자전거로 하루 달리는 거리가 걷는 사람의 두 배 정도였습니다. 로마까지 가는 동안 이렇게 큰 물줄기는 없습니다.
[i] C. Turrini, O. Lacombe and F. Roure, "Present-Day 3D Structural Model of the Po Valley basin, Northern Italy," Marine and Petroleum Geology, 56, September 2014
[ii] Antonio Altoviti, et al., La Donna del Fiume, movie directed by Mario Soldati, Lux Film, 1954
[iii] Riccardo Bacchelli, The mill on the Po, Greenwood Press, 1975
[iv] 조반니노 과레스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이승수 역, 문학마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