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를 부른 나의 신발이여!
김귀영
어머나 왠일이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커다란 신발들이 나란히 정리가 되어있다.
“오늘 고생했네” 신발장이 다이어트를 했다. 그런데 불현 듯 나의 뇌리는 찬바람에 서리가 내려 앉는 것 같은
싸늘함이 여자의 직감에 찬물을 끼엊고 말았다.
눈동자가 360도 회전을 하며 박스에 슬리퍼가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니 시골에 보낼 것 같은데 ...... 벽에 붙여 있는
신발장을 훑어보았다. 나의 신발들이 많이 사라지고 없다.
일단은 딸이 신었던 헌 운동화, 바자회에서 구입한 운동화가 없다. 높은 굽의 구두가 없다. 있는 구두는 발바닥이 낡고
굽이 다 닳아져 굽을 갈아야 만 신을 수 있는 구두와 옆구리 터진 단화만 있다. 편하게 신던 샌들도 없다. 고무가 좋아
태국에서 사 온 슬리퍼 종류도 없다. 아뿔싸 설마 신발을 다 버린 거야!!!!
소중한 모임에 신고 가는 신발, 나의 능력으로 살 수 없었던 신발들, 감히 명품이라 이름하는 신발들이 사라지고
내 취향이 아닌 다른 취향의 신발들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있는 것을 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의 프라다, 게스, 구찌 신발 다 어디에 두었어? 다 버린 거냐?”
딸이 대답을 했다. “아빠랑 신발정리하면서 엄마가 못 신을 것 같아 다 버렸어
그리고 한번도 신는 것을 보지 못했거든” 얄밉게 버린사람보다 버렸다고 인상을 쓰는 내가 무안할 정도로 쏘아 붙였다.
“뭐야! 너가 어떻게 알고 너는 서울에서 학교 다녀서 못 본거지 그리고 다리가 부러져서 못 신었는데 신발들을 다
버린거냐고 너가 얼마나 엄마를 아는데 당장 찾아와”
“못 찾아 오는데” 비아냥거리는 투로 들린다
“왜” “헌옷 버리는 곳에 버렸어. 어차피 안 신을 건데 뭐하러 놔 두냐고 제발 버리고 살어”
‘허어억’ 집안에 있는 그 남자와 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현기증이 나며 췌장밑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받아 말했다.
“빨리 가서 다 찾아와 엄마에게 물어나 봐야 할 거 아니야 왜 맘대로 버리냐고” 소리를 지른 후 서있는 사람들을
보기 싫어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엄마라고 다 버리고 좋은 신발 안 신고 싶을까마는 딸보다는 남편이 더 미웠다.
명품이라는 신발은 집주인 권사님이 딸이 미국에서 안 신고 가지고 왔다고 신발 문수를 묻더니 열 켤레 정도 가져다
주셨다. 정리를 하고 명품만 남겨 두었고 굽이 10cm라 신을 수가 없는 것(임자 만나면 주려고)이었지만 프라다 신발은 어느 옷에도 잘 어울리고 굽도 3cm정도여서 신고 다녔다. 작년에 오른발 중족골이 부러지는 바람에 못 신고 놔
두었는데 딸이 신발을 신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폼을 잡기 위해 두었던 신발들을 아주 모조리 다 버리고 없었다.
딸은 못찾을 거라 하고 아빠는 찾아오라고 하고 눈치빠른 아들들이 후다닥 나가는 소릴 들었다.
샤워하다 들으니 이미 다 가져가고 없다는 것이다. 괜히 성질대로라면 소리도 지르고 퍼 붓기라도 할 터인데 분통이
터져 나를 가장 길게 감고 있는 핏줄의 열기가 머리꼭지까지 불을 지폈다. 찬물에 열기를 식혀도 나의 속상함의 극치가 화풀이로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당장 나가면 나의 분노가 눈가의 이슬이 되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수돗물을 틀고 가장 억센 거친 솔로 타일을 문지르며 변기를 박박 닦고 화장실 천장에 물 뿌리고 타일들의 빈틈을 손목이 아플정도로 닦았다.
속을 몰라주는 새깽이와 그 남자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애먼 눈동자만 고생시켰다.
성질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그래도 청소를 하니 머리꼭지를 태울 것 같은 속상함도 하수구를 타고 정화조로 떠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그 남자는 마누라 줄려고 김치부침개를 붙여 밥 안먹었으니 빨리 먹으라고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접시에 들고 왔다. 헐 그 어떤 걸 갖다 주어도 내가 넘어갈까 속도 지지리도 없다.
“안먹어 내가 먹겄냐, 너나 많이 드세요” 나는 부아가 치밀어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너무 더워 방바닥에 두꺼운 뱃살을 붙이고 생각없이 낱말맞추기 게임을 했다.
눈치도 코치도 없는 나와 다른 성을 가진 인간들은 게임과 tv에 열광하고 있다.
‘결국 신발은 다른 주인을 찾아 갔겠지, 그래 그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거야’ 라고 애써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하지만 자기합리화가 체한 듯 소화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더더욱 화가 나는 것은 아름다운가게 30주년 행사로 명품을 모은다고 하셔서 이 참에 프라다만 빼고 아름다운가게에 갖다 주면 진품이라 최소 5만원이상 받는다고 하셔서 약속을 하였는데 말이다.
속절없는 나의 기분은 무거운 몸뚱아리를 일으켜 잠이 안 올 때 한 잔씩 먹으라고 동생이 보내 준 포도주에 화를 달랬다. 아들녀석이 근육을 키운다고 사다놓은 닭가슴살을 포크로 북북 찢어 안주삼아 야금야금 홀짝홀짝 맘을 풀 겸 세 잔을
마셨다. 생각없이 잠을 자기 위해 마신 포도주가 아궁이의 장작불에 달구어진 얼굴색이 되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낮에 누룽지만 먹고 저녁을 먹지 않고 마신 포도주가 방바닥으로 나를 이끌었다.
거실의 대자리에 몸을 누인 나를 본 새깽이들은 얼굴을 보더니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치킨이 배달왔다. 참 나 할말이 없다. 먹으라는 소리에 말 대꾸도 안했다.
그렇게 마신 포도주는 어지러움과 울렁거림으로 골을 때렸고 다음날까지 미식거림으로 나를 괴롭혔다. 퇴근후 찬찬히 신발장을 보니 없는게 많았다. 화장실에 있는 슬리퍼도 없다. 뒷 베란다에 있는 슬리퍼를 화장실에 놓고 슬리퍼를 찾으니 그 많던 슬리퍼는 누가 다 먹었는가? 집에는 허드렛일로 슬리퍼를 직직 끌고 집 앞 슈퍼 갈 때나 계단 물청소를 할 때 신어야 하는데 진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시렁 궁시렁 퍽퍽거리며 어제의 뒷풀이를 하였다.
나만 불편한 진실을 가지고 사는가 싶다. 새로 사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고 하는데 돈이 없지가오가 없냐!
나와 성이 다른 한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나랑 다른가 싶다.
나는 가끔 외친다. 성이 다른 나를 내 보내 달라고......
엄마의 지질구레한 이런 모습이 그 남자와 자식들은 싫었나 보다. 버리고 살아야지
말없는 포도주는 가끔 절친이 될 것 같아 안심이고, 글이 받아 주니 평정심을 찾는다.
포도주를 너무 사랑할 까봐 걱정이 된다.
2020년 9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