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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새벽부터 나와서 우리의 자녀들이 출국하는 모습을 지켜주었다.
새벽 5시50분에 집결하기로 하였기에 전국에서 밤잠을 설치며 모였다. 청주에서 온 경우에는 3시반 리무진버스를 이용해서 왔고, 대전도 그 시간대에 리무진버스를 이용해서 왔단다. 구미에서 온 서현과 예원이는 아예 밤 12시반 리무진 타고 버스에서 잠을 자면서 왔단다. 서산에서 온 하진이도 집에서 자동차로 출발하여 바로 아래 둘째인 여동생 우영이와 함께 부모님과 왔단다. 전국 각지에서 청소년 산티아고 순례단원들이, 그 어린 순례자들이 그렇게 모였다.
우리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딸들이 이제 산티아고 순례단원이 되어 출국 수속을 진행해야 한다.
1.7/20토- 출국과 파리도착 -
이륙 2시간반 전인 5시50분에 모이기로 하였지만, 대전팀 버스가 6시가 조금 지나 도착했고, 학림이는 지하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고 좀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결국 6시20분경 약 2시간을 남겨놓고 출국수속을 진행하였다. 아시아나 항공사 라인 그룹코너에 가서 우선 항공권을 받는 작업이 필요했다. 항공권을 받으면 다시 옆줄로 가서 화물을 부칠 사람만 다시 줄을 서서 부치라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는 시간이 부족해서 항공권 발급받는 곳에서 바로 화물도 부쳐주긴 했지만, 그동안 그런 방식은 처음이었다. 표를 받는곳에서 바로 부쳤던 기억만 있는데.....
화물로 짐을 부치는 방법과 기내로 가져들어가면 안되는 내용물에 대하여 안내를 해주었음에도, 두 명의 친구가 검색대에서 삼푸와 로션 화장품 투브용 용기를 빼앗길수박에 없엇다. 의진이는 배낭을 그대로 기내로 가져가겠다고 하면서도 안내해 주었던 액체용 물품의 한도에 대하여 잘 이해를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학림이는 처음엔 화물로 부치려고 했지만, 여권상 영문이름과 항공표의 영문이름이 한 곳 틀리는 바람에, 혹시나 해서 기내로 짐을 들고 가라고 했더니 그 과정에서 깜빡한 것 같았다. 100미리 이내로만 기내에 들고갈수 있는 액체류 물품들이 여러개 쏟아져 나왔다.
더군다나 영문이름이 잘못나온 사람이 두명이었다. 정의진 이름은 의에서 E자가 빠져 있었고, 김학림은 림에서 L로 나와야 하는데 R로 나왔다. 여권상 영문이름과 항공티켓상 영문이름이 다르게 나온 것이다. 다음카페를 통해 분명히 학부모님들과 사전공지하여 최종 확인했었는데, 학부모님들이 미쳐 사무국에 연락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경우에는 아시아나항공사 측에서 아시아나항공기는 비행기티켓에 도장을 찍어주어서 중국까지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중국에서 뮌헨, 뮌헨에서 파리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사에서 해당 공항을 경유할 때 인정하지 않았을 경우 출국이 거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해당 두 사람에 대한 각서와 서명을 요구하였고,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우선 각서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다. 사무국에 전화를 걸어 다시이티켓 재발행을 요청했고, 토요일 일요일이 겹쳐서 3일이나 걸린단다. 우선은 이번 출국동안은 어렵게 되엇고,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만약 중국 현지에서 탑승이 거부될 경우, 파리까지 가는 직항 편도를 구매해서 가는 방법도 고려해야 했다
조마조마한 출입국 수속절차가 중국 베이징공항과 뮌헨공항에서 이루어지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아시아나항공사 직원이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3장의 비행기티켓 모두가 영문자 하나가 잘못 표기되었거나, 누락되었는데, 검색대를 통과했고, 입국심사 과정에서 넘어가 주었다. 여권과 본인에 대한 검증이 주로 이루어지다보니, 항공권에 잘못표기된 영문이름은 그냥 넘어간 것이다. 여권이 본인것이 맞는지가 주로 심사의 핵심이었기에, 다행스럽게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우리는 베이징 공항에서 잠시 기다리면서 사전모임때 오지않았던 의진이 소개가 끝난후, 청문회처럼 각자 한가지 질문을 의진이게 하기로 했다. 좀 서먹하긴 했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자는 취지였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한가지 질문을 하는데 큐가 끝까지 버팅긴다. 적막이 흐르고 분위기가 싸늘해짐을 느낀다. 질문이 생각나지 않는단다. 질문할게 없다고 계속 버틴다. 질문꺼리를 이야기해줘도 자기 입으로 말을 안하려한다.
왕형으로써 모양새가 좋지않다고 판단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질문을 하도록 기다려주었다. 결국 넘어갔다.
쭌이와 잠시 면담을 가졌다. 혹시 담배를 피우는지 물었다. 검색대에서 담배가 나왔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타조 형 담배를 가지고 있었던 거였다. 담배를 배울 생각도 없단다. 잘 생각하고 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타조도 담배를 끊어보겠다고 내게 말했었다. 한번 그렇게 해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쭌이에게 미션하나를 던졌다. 사람과 인사하고 대화할 때에는 꼭 고개를 들고 눈빛을 교환할 것, 시선을 마주하고 인사하고 대화할 것을 주문했다. 이번 순례기간 내내 지켜보겠다고 했다.
혜림이는 주변으로부터 모나리자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만하다. 인상이 꼭 모나리자 닮았다. 그래서 햇살이라는 닉네임을 리자 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좀 생각하고 알려주겠단다. 잠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혜림이는 내게 '리자'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햇살'도 좋아보이는데, 난 그 닉네임이 있는줄 모르고 괜시리 제안한 것 같다. 그래도 리자가 입에 잘 감긴다.
비행기를 두번 갈아타는 동안 경유했던 베이징은 두시간의 환승시간, 뮌헨에서는 한시간 정도의 대기시간이었다. 모두들 잘 따라주어서 환승하는데에는 별 문제는 없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파리까지 직항으로 갈 경우에는 13시간이나 14시간이 소요되는데, 비행기안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중간에 짧은 환승시간이라면 경유하는 것도 나름 장점이 있었다. 베이징에서 뮌헨가는동안 8시간을 푹 자기 때문에 나머지 서울에서 베이징 2시간, 뮌헨에서 파리 1시간반은 환승하는 과정에서 운동도 되고 몸도 풀리고, 여러모로 내겐 좋았다. 비즈니스 석이 아닌 이상, 한 자리에서 13시간을 비행하며 간다는 것은 고역일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이런저런 역에서의 경험을 하며 대화도 나누고 공항 내의 구경거리가 있어서 좋을 수 있다환승하는 방법도 미리 훈련해두면 좋은 것이다. 나는 기내에서의 부족한 운동시간을 벌수 있었고 걷기를 할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는 19시30분경 예정대로 파리 샤를르드골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이 먼저 도착했기에 우리가 도착한 1터머널에서 공항내의 무료트렘을 타고 2터미널 2E 구역으로 갔다. 공항으로 입국하는 게이트로 가서 리누를 만나서 30분가량 기다렸고, 꿈틀님과 4명의 학생들을 마중하였다. 그렇게 다모인 17명의 순례단원들과 바로 택시승강장에 가서 스타렉스급 택시 두대를 잡아서 숙소로 이동했다. 총 8인까지만 탈수 있었지만, 주원이가 4학년 막내이고 체구가 아주 왜소했기 때문에 기사에게 부탁해서 9명을 태웠다. 그렇게 두 대의 대형택시가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대로 빠른길로 가지 않고, 빙빙돌아돌아 택시비를 높여 놓더니 50유로라고 했던 공항직원들 말과 다르게 100유로가 나왔다. 구글지도를 보니 완전 싸기꾼들이다..... 집을 앞에 두고 멀리 돌아서 들어가는 것을 항의해도 소용 없었다. 실랑이를 계속 벌일수 없다보니, 그냥 계산하는 방법밖에 없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주머니는 병원에 아파서 입원하고 사장님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밤예정된 시간보다 한참을 늦게 도착했는데도 사장님이 우리를 위해 특별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10시가 되었는데 삼겹살을 쓸어서 제육볶음을 주셨다. 그렇게 우리들은 저녁 식사를 푸짐히 하고 쉴수 있었다.
7/21일-파리투어 - 택시타고 저녁 늦게서야 밤 10시경 도착해서 가볍게 제육볶음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다들 시차적응이 안되어 피곤했기에 바로 잠이 들었다. 밤12시 경이었다. 그리고 새벽녘 용환이 목소리가 단잠을 깨운다. 용환이가 타임키퍼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새벽 5시즈음에 일어나 아이들을 깨운다며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푹 자면서 충분한 수면을 했으면 좋았겠는데 눈치도 없이 함께 투숙하고 있는 다른 한국인 청년들까지 잠을 깨우는 일이 벌어졌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업된 상태였다. 새벽 단잠을 깨워서 좀 짜증이 났다. 분명히 아침 8시 식사시간이라서 좀 자도록 내버려 두어도 될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끼며 몸을 뒤척였다. 아니나다를까 주의 좀 해달라는 민원접수. 옙!! 죄송합니다. 제가 잘 지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며 넘어갔다. 청소년들을 인솔하다보면 항상 주변 눈치를 보면서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기분이 들때도 있다.
잠에서 깨어나 아침미팅을 갖고 8시 식사도 했다. 한식이다. 산티아고 순례가 시작되면 김치나 기타 한국 관련 음식을 일절 맛보지 못할 터였다. 아침식사를 마친후 서둘러 루브르박물관 역으로 나갔다. 지하철 표는 10장을 한묶음으로 15유로 내고 사서, 티켓 한장당 한번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한번 입장할 때마다 한장씩 사용하면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해서 현장에서 직접 티켓을 구매하려 했더니, 현장구매는 파업중이락 운영이 안한단다. 온라인상으로 예약한 것도 벌써 매진이라서 며칠간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들은 감면혜택이 있어서 현장구매밖에 되지 않는 시스템인데 파업이라니~~~ 헐... 우리는 이번 파리여행에서 루브르 박물관 관람 계획이 부득이 취소해야 했다.
우리는 일정을 조율하여 세느강을 걷고, 에펠탑을 갔다가 개선문 샹그리제거리를 걸었다. 한참을 걸었더니 학생들이 많이 힘겨워 하는 모습이 보인다. 몽마르뜨언덕위에 있는 대성당도 둘러보며 파리시내 전경을 둘러보았다. 에펠탑에서 지하철을 타고 몸마르트 언덕으로 이용하려던 계획이 버스로 변경되었다. 501번 버스를 타고 몽마르트언덕 근처에서 내린 후 언덕위로 걸어 올라갔다.
리누가 중간에 내일 갈 박물관투어를 위해 1일박물관투어권을 구매하기 위해 학림이 병준이와 함께 동행해서 먼저 갔다. 우리는 상그리제 거리에서 쇼핑도 하면서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19시에 흩어졌던 친구들이 함께 모인후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용환이 리자가 포함된 조가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2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미팅장소를 못찾아서 주변을 돌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것이다. ..으크크
숙소에 저녁을 8시에 하자고 해서 우리가 좀 서둘르면 8시에는 도착할 것 같았지만 정작 십분이 조금 넘게 도착한 것이다. 저녁
반찬은 김치찌게였다. 시차적응을 위해 자유시간을 갖고 다들 좀 쉴수 있도록 조치한 후, 나도 돌아와 앉아 일기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7/22월-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 - 아침을 좀 서두르면 줄을 서지 않고 박물관 미술관을 갈 수있었기에 우리는 아침 조회시간을 7시에 하고 7시반에 식사후 출발했다. 그래도 8시가 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 일정은 루브르박물관을 갈 수 없게 되어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늘보가 몇번 씩이나 강조했음에도 결국 지하철 구간에서 일을 저질렀다. 지하철 티켓을 검사하는 정부검침원에게 걸린 것이다. 분실하면 벌금 백유로라고 사전에 충분히 알려주었는데도 표를 찍고 지하철 구간 플랫폼 내에로 들어와서 그냥 버렸다고 한다. 불심검문에 딱 걸렸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꿈틀님이 50유로의 벌금을 대신 내주었단다. 재형이는 차표의 마그네틱 부분이 찢어져 있어서 35유로의 벌금만 부과되었다. 그냥 장난으로 마그네틱을 살짝 찢어보았단다. 불심검문에 걸리면 이곳은 봐주지 않는 나라다. 대통령도 소용없다. 양심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이다보니 한번 걸리면 벌금이 원래는 200유로이지만 각각 50유로와 35유로만 내게 되었다. 당당샘 말만 잘 듣고 행동하면 좋을텐데, 아무리 얘기해줘도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한다. 안 걸릴줄 알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한번 걸리고 나면 이렇게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 에펠탑을 둘러보려 가려면 거의 밤 12시가 될 수 있어 피곤한 친구들은 먼저 간다 하길래 서현 재형 승원 세명의 친구들에게 여러 정보를 주면서 안내해 주고 보냈다. 우리 일행 12명도 에펠탑 안으로 들어갔다가 너무 피곤하여 10여분만 한 가운데에 앉아있다가 바로 나왔다. 에펠탑과 가까이에 있는 지하철 승강장까지 가보니 12시가 되었고, 그 쪽 라인은 언제부터인가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원래는 새벽1시까지 운영한다고 들어서 왔는데, 현지 와보니 상황이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바로 택시를 불렀다. 그러던중에 먼저 갔던 3인을 만났다. 그 친구들 사연을 들어보니 지하철 역 운행이 안되서 어쩔줄 모라 이곳저곳을 돌라보며 방황하고 있었단다. 우리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 3인은 아마 택시타고 한참 늦은 시간에야 우리 숙소로 돌아올수 있엇을 것이다. 우리는 4인만 탑승가능한 택시3대를 불러모아놓고 35유로에 5명을 태우는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시키고, 함께 5명씩 나누어 타고 출발했다.. 약 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 내가 탄 차는 기역자 코스로 구글지도에 나와있는 가장 빠른 코스로 왔기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었지만, 다른 두대의 택시는 십여분 이상 기다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 파리관광을 하이라이트인 세느강 유람선을 타러 가기로 해서 우리는 점심때 조별 미션수행(조별점심먹기와 쇼핑 관광하고 함께 숙소로 지하철 타고 돌아오기)을 마치고 오후 3~4시경 돌아와 일찍 쉬었다. 나는 그 사이에 돌아오는 길에 몽파르나스 역에 가서 다음날 기차예매 연장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녀왔다. 그리고 7시경 이 파리숙소에서의 마지막 저녁만찬을 삼겹살파티로 하기로 하였기에 많은 친구들이 삼겹살에 밥을 많이도 먹었다.
리누샘은 가장 먼저 숟가락을 들고 삼겹살과 함께 저녁만찬을 즐기고 난 후에 세느강 근처에 있는 유람선 선착장으로 먼저가서 우리 일행들의 표를 예매해주었다. 나는 리누샘보다 한시간 정도 늦은 시간에서야 모든 친구들과 숙소에서의 출발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타조이가 다리가 아프다며 안가겠다고 한다. 표를 이미 구매했는데 안가면 안된다고 했고, 작은 실강이 속에서 타조도 결구 따라나오게 되었다. 쭌이는 그냥 타조의 의견에 따라 함께 안가려고 남아있다가 타조가 나오니까 다시 얹혀져서 나온다. 자신의 의견을 내기보다는 타조의 의견에 묻혀가는 모양새다. 마음이 좀 불편했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파리여행에 대한 관심과 적극성이 안보인다. 그래서 실망감이 좀 들었다. 언제 이런 여행을 또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인지 알아차려야 할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우리는 황홀한 경지의 세느강 풍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할 말을 잃고 모두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세느강을 따라 유람선이 지나가는 곳곳의 풍경들을 잊을수가 없다. 날이 저무는 시간대를 선택하여 탑승하였기에 일몰의 전경을 볼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두워져 가는 파리 세느강의 붉은 노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저물어가는 세느강 노을풍경을 바라보며 유람선에서 멍하니 넋놓고 아름다움의 극치를 만끽한다. 말문이 막혔다. 서로가 그저 바라보며 미소로 마중한다.
에펠탑에 불빛이 들어오고 시작했다. 날이 저물면서 파이 에펠탑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빛을 발산하는 그 아우라(?)가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넋을 잃고 바라만 본다. 우리는 모두 흥겨운 시간속의 파리여행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에펠탑 공사중에 그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에펠탑 한가운데에서 본 에펠탑 내부모습.
에펠탑 안에 들어와서 너무 힘들다고 주저 앉아버린 순례단원들....
에펠탑은 꼭 밤에 와서 세느강변 녁 어느 즈음에 잔디밭에 앉아 밤12시까지 감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파리에서 보아야 할 것들중 가장 으뜸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