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인천에서 가문의 혼사가 있었다.
집안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고향에서 관광버스 한 대를 대절했다.
그쪽 하객들은 버스를 타고 모두 함께 오셨다.
어머니도, 형님도 그 버스를 이용하셨다.
갈산역 부근 어느 호텔 웨딩홀에서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났다.
주름살 너머로 어머니의 열정적인 삶의 흔적과 세월의 성상들이 진하게 묻어났다.
늙으셨어도 내겐 세상에 둘도 없는 따뜻하고 인자하신 분이었고 제일로 예쁜 엄마였다.
어머니는 수도권에 사는 둘째 아들에게 주시려고 직접 담그신 김치 한 통을 큰 보자기에 싸서 들고 오셨다.
"허걱, 이 무거운 걸?"
고향집 앞 채전에 김장용 채소를 파종했는데 요 녀석들을 가끔씩 솎아줘야 한다고 얘기하셨다.
배추나 무은 성글어야 포기가 차고 맛이 든단다.
"아이고 어머니, 힘드실 텐데 그냥 오시지요"
못난 아들은 할 말을 잃었다.
정말로 무거웠다.
나도 자식을 키우면서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백 분의 일이라도 헤아리기 시작했다.
혼전엔 피상적이었는데 아이들을 낳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출산과 육아, 이게 절대로 만만한 게 아니었다.
수많은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기도의 다른 표현이었다.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담그신 김치 한 통을 건네받았다.
여전히 따뜻하지만 쭈글쭈글해진 엄마의 손을 잡아보았다.
애틋한 사랑과 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저릿하고 알싸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역사의 극심한 굴곡을 묵묵하게 견디며 성실과 신앙 하나로 평생을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
온갖 역경과 전쟁의 비극을 끌어안으셨고 시대의 파랑을 피하지 않은 채 열정적으로 사셨던 여인.
젊어서도 늙어서도 언제나 단아함을 잃지 않으셨던 키 작은 여인.
순수와 열정으로 가정과 교회를 극진하게 섬겼고, 희노애락의 고갯길마다 재치와 지혜로 긴 인생길을 예쁘게 수놓으며 욕심 없이 사셨던, 마음씨 따뜻하고 눈물 많은 나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로 인해 자식들도, 동네 사람들도, 교회의 성도들도, 일가친척들도 위로와 격려를 받곤 하셨다.
결혼식 마치고 어머니는 내려가셨지만 우리집 식탁엔 정성 가득한 김치가 식사 때마다 올라온다.
사람냄새가 난다.
가족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감사가 흐른다.
산다는 건 아마도 누군가의 가슴에 끊임없이 사랑나무를 심고 가꾸는 감사의 몸짓이 아닌가 한다.
언제나 댓가를 바라지 않은 채, 한 평생 진중한 헌신과 새벽예배로 하루를 여시는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오늘따라 푸른 고향 하늘이 더 그립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2010년 10월 13일.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