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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열리는 제17회 한국수필문학세미나 참가 신청을 해 놓고 설렘 속에 기다렸다.
여행 가는 전날 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다 보고 자느라고 새로 한시 넘어서 잤다. 긴장을 한 탓인지 세시간밖에 못잤는데도 네 시에 저절로 깨어났다. 아내도 따라 일어나서 주방에 나가고 나는 집 나설 채비를 하였다.
아내가 새벽밥을 해주어 밥 한 공기를 먹고 집을 나섰다.
남춘천역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걸어가는 길인데도 멀게만 느껴졌다. 어슴프레한 어둠속에 기차는 시동을 걸어놓고 금방이라도 떠날 기세였다. 조급한 마음으로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기차 출발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어서 뛰어 갔다. 남춘천역에 들어가니 인솔하시는 박선생님과 춘주문예반 일행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창구에 가서 잠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기차표를 사느라고 만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성북역까지 가는 기차표와 압구정역까지 가는 전철표를 샀다. 대합실에는 우리 일행 8명과 다른 손님 서너 사람 밖에 없어 한산했다. 곧 바로 기차를 타기위해 개찰구로 들어가 6호 열차 칸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열차는 이내 출발하여 중앙하이츠아파트 곁을 지나 달렸다. 아내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열차소리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기차가 김유정역을 지났을 무렵 무언가 허전한 생각이 들어 잠바주머니를 만져보다가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갑자기 뒤통수가 후끈해지며 어리벙벙해졌다. 혹시나 하고 가방속을 뒤져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기차는 계속 달려 가고 있는데 지갑은 온데 간데 없이 흔적이 없다. 지갑을 분명 잃어버렸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절망의 늪속으로 빠져 버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남춘천역에 도착하자 마자 헐레벌떡거리며 창구에서 지갑을 열고 만원 한 장을 꺼내 기차표와 전철표 그리고 잔돈을 받아서 그것을 티샤쓰에 넣은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지갑을 간수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아마 기차표와 잔돈에만 신경을 쓰고 곧 바로 개찰구를 빠져 나가느라고 지갑을 창구에 그냥 두고 온 것 같았다. 그렇다면 창구 직원이 발견하고 보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만약 창구직원이 챙기지 않고 혹시 다른 사람이 줏었다면 영영 잃어버린거라고 단정할 수 밖에 없다.
지갑안에는 신분증과 카드외에도 현금이 40만원이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차는 달리고 있는데 없어진 지갑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잠바주머니와 가방속을 몇번이고 뒤적거렸다.
나이가 들면 정신이 들락날락 거리며 건망증이 심해 진다더니 하필 지갑을 깜박 잊고 챙기지 못한 사고가 발생하였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작년에도 서울 전철역에서 지갑을 꺼내 전철표를 사면서 부주의해 잃어버렸던 지갑을 우여곡절 끝에 돈은 없어졌지만 신분증과 카드만 든 지갑을 되찾은 경험이 있었는데도 이번에 또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마침 열차 안을 순찰하는 차장이 지나 가길래 지갑을 잃어버린 사연을 이야기하고 남춘천역 창구직원이 챙겨 두지 않았을지 연락을 해 보아 달라고 부탁했다. 차장이 남춘천역으로 무선전화로 역락해 보더니 지갑은 없었다고 한다.
차장은 나를 보기에 딱했는지 혹시 기차에 탄 손님 중에 지갑을 줏은 사람이 있는지 방송을 해 보겠다고 했다. 내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우리 일행이 알고는 내 일같이 걱정을 해주었다. 여행 출발부터 불미스런 일을 저질러 분위기를 망쳐 놓아 미안스러웠다. 열차의 스피카를 통해 지갑을 찾는다는 방송이 되었지만 소식이 없었다. 지갑 속의 돈은 없어지더라도 지갑은 꼭 되찾고 싶었다.
아내의 사진과 어릴적 아이를 안고 찍은 사진 원판을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왔다.
직장선배였던 G씨가 내 곁으로 자리를 바꾸어 앉아 위로를 해주며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도 5만원을 꺼내 빌려주었다. 나에게는 만원으로 표를 사고 거슬러 받은 잔돈 밖에는 없었다.
사실 여행을 더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중간에서 내려 다시 춘천으로 되돌아 가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핸드폰으로 지갑을 잃어버린 사연을 말해주고 혹시 모르니까 남춘천역에 가서 창구직원도 만나보고 구석구석 살펴보라고 부탁을 했다. 아내가 나가보고 헛탕만 치고 돌아왔다고 한다.
아내는 나에게 내 것이 안 되려고 한 것이니까 잊어버리고 여행이나 잘하고 오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지갑을 생각하지 않고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아내가 카드분실신고를 해서 카드사고를 차단시켜 놓았다.
돈이란 돌고 도는 것인데 다른 사람이 나 대신 잘 쓰게 적선해 준셈치자고 자위해 보았지만 한편으로 바보 같았던 나의 불찰이 너무도 속이 상했다.
압구정역에 도착하여 서을팀과 합류하여 버스세대가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우리가 탄 버스에는 춘주문예반이 모두 같이 타고 서울, 구리, 인천 등지의 수필가들이 동승했다. 함양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가 함양읍에 있는 '상림'이라는 곳을 구경했다. 1,100년전 최치원선생이 조성했다는 상림숲은 시원한 그늘과 휴식공간을 제공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대전-통영간의 고속도로를 타고 통영에 도착한 것이 세시반이 넘었다.
미륵도 관광특구 도남관광지에 있는 통영시청소년수련관 숙소에 여장을 풀어놓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강당으로 모였다. 전국에서 온 수필가 250여명이 한자리에서 청마 유치환선생 탄생 100주년기념 "한국현대수필 100년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국수필문학하계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유치환선생의 수필중심으로 한 문학세계에 대한 특강이 있었고 한국수필의 발자취, 오늘의 한국수필, 한국수필의 미래라는 한국수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세가지 발제로 발표가 있었고 이에 대해 진지하고 활발한 토론과 질의가 벌어졌다. 시간에 쫒기면서 세미나를 마치고 수련관 식당에서 저녁만찬을 하였다.
식사를 마친 후 야외무대에서 전통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인 "승전무"를 관람했다. 임진왜란때 승전축하와 장졸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서 만든 것인데 칼춤과 북춤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름답게 분장한 여인들이 무대위에서 춤추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문득 임진왜란때 춤추었던 여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에 나타나서 춤을 추고 다시 과거 속으로 돌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관람이 끝난 후로는 자유시간이었지만 나는 지갑을 잃어버린 울적한 기분으로 숙소에서 지냈다.
해변의 야경을 구경한다고 다들 나가고 두서너 사람만이 거실에서 베이징올림픽중계방송을 보았다.
62kg이하 유도 남자선수 최민호선수는 결승전까지 내리 다섯판을 모두 한판승으로 이겨서 우리나라에 첫 금메달을 안겨 주었다. 어려운 경제상황과 어지러운 정국으로 힘들어 하는 국민들의 한숨을 후련하게 한꺼번에 날려 버리게 해준 통쾌한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따내어 국민들이 열광하며 시청하는 것 같았다.
수영선수 박태환은 400m 자유형에서 예선을 통과하여 내일 오전에 결승에 진출하였다고 한다.
박태환선수는 19살 어린 나이이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었고 이번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딸 수 있을지 굉장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통영시는 원래 충무시로 불리던 도시가 시군통합을 하면서 통영시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왜군의 전함을 대파한 한산대첩을 이룬 한산도 이외에도 소매물도, 비진도 등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섬들이 바다위에 떠있어서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은 곳이다.
조선시대에 수군을 관장하던 통제영을 설치하여 군사도시로서 발달하였는데 통제영의 객사인 세병관은 국보305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통영은 역사와 전통문화가 숨쉬고 있는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해양도시로 각광받고 있는 도시이다.
다음날 아침 새벽에 일어나 해변으로 걷기운동 삼아 도남 관광지에 나갔다. 일명 연필등대가 있는 곳까지 갔다. 해변의 제방에는 간이횟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어제밤에 야경을 보러 나와서 싱싱한 회도 먹으며 즐겁게 보낼 수 있었으련만 지갑을 잃어버려 쓸쓸하게 밤을 보낸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아침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보기도 하고 제방의 돌 틈 사이로 밤톨만한 게가 기어가기에 붙잡아 보려고 다가가면 눈 깜짝 할 동안 재빠르게 도망가 돌 틈 속으로 숨어 버리는 것을 보기도 하며 기분전환을 하고 돌아왔다.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아내가 전화를 했다. 어제 밤 자면서 휴대폰 전화를 꺼놓았다가 아침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서 휴대폰을 켰는데 전화가 온 것이다. 아내가 뜬금없이 지갑을 찾았다고 한다.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닌가하고 내 귀를 의심했다. 정말 기적같이 지갑을 도로 찾았다고 한다.
어제밤 열시가 다 된 시간에 지갑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와서 아들이 나가서 찾아왔다고 한다. 지갑을 보관하고 있던 사람은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인데 어제 새벽에 첫차를 타려고 역에 나갔다가 지갑을 줏었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퇴근하여 춘천에 돌아와 지갑안에 있는 전화번호를 보고 집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다행히 지갑에 돈도 그냥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례금으로 오만원을 주고 지갑을 받아 왔다고 한다. 이런 고마울 데가 있는가. 지갑을 찾았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그저 너나없이 다 고맙기만 했다. 그동안 침울했던 기분이 한방에 사라지고 깃털처럼 가벼워져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 기뿐 소식을 어서 빨리 춘주문예반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모두에게 알려주었더니 내일 같이 기뻐해 주었다. 지갑사건을 통해 이번 통영으로의 여행을 나의 추억속에 아주 깊게 각인해 놓으려는 것만 같았다. 어제의 울적했던 마음이 환한 햇살이 퍼지듯 기쁜 마음으로 가득했다. 이제부터 이번 여행의 남은 일정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어제의 하루는 지옥같고 길게만 느껴지기만 했는데 오늘은 마치 천국에 온 것 마냥 즐겁고 짧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청소년수련관 가까이에 있는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대기실 안에 통영의 전통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통영은 나전칠기, 소목, 소반, 누비등의 전통공예품이 유명하다. 지갑을 잃어버린 내가 낙심하고 여행을 포기할까 봐 오히려 나에게 위로하며 잊어버리고 즐겁게 여행하고 오라고 격려해준 고마움을 담아주려고 아내에게 선물할 나전칠기로 만든 작은 손거울 하나를 샀다.
케이불카를 타고 10분가량 올라가 전망대에서 경치를 내려다보니 섬들이 오밀조밀하게 바다 위에 떠서 멋진 풍경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전망대 위쪽에 있는 해발 461m 의 미륵봉까지 올라가서 사방의 경치를 둘러보았다. 통영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맑은 날은 멀리 대마도까지 내다 볼 수 있다고 한다.
한산도, 거제도, 비진도, 욕지도, 연화도, 사량도, 소매물도 등 많은 섬들이 한눈에 볼 수 있는 미륵봉은 옛날에는 봉수대가 있어서 북쭉 한양으로 봉화가 올라가는 첫 길목이었다고 한다.
통영시가 처음 이곳에 테이블카를 설치하려고 계획을 하자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딛쳐 8년의 기간이 걸려서 작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케이불카가 생기고 나서 통영시는 관광객이 늘어나서 경제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통영을 알리는 유명한 명소가 되어 지역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어서 지금은 환경단체들이 케이불카설치를 반대한 것을 후회하며 진작 케이불카가 추진되도록 협조하지 않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미륵봉에서 관람이 11시까지 인데 아홉시 반이 넘었기에 시간이 충분할 것 같아서 미륵산 아래 자락에 있는 미래사라는 절을 구경하기로 하고 이정표를 보고 비탈진 길을 한참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샘터가 있어서 목을 축이고 절에 당도하여 먼 발치에서 불상을 바라보며 합장하고 이번 행운의 여행을 감사드렸다. 다시 케이불카가 있는 탑승대까지 올라가는데 경사가 심해서 힘이 많이 들었다. 모이는 시간이 11시인데 30여분 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산 중턱밖에 올라가지 못하여 늦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가까스로 있는 힘을 다해 15분전에 탑승대에 도달하여 케이불카를 타고 내려와 집합장소에 뛰어가니 모두 차에 탑승하여 출발하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정각에 도착하여 버스에 올라탔다.
미륵도 순환도로를 따라 박경리모소에서 도착하여 참배를 하고 통영시내에 들어와 청마 유치환기념관과 생가를 둘러 보았다. 어제 날씨도 그랬지만 오늘도 얼마나 더운지 바깥에 나서면 불벼락을 맞는 것처럼 엄청 뜨거웠다. 춘주회원 일행중에 한 분은 어제밤 배탈이 나서 탈진상태였는데 오늘은 K씨가 배탈이 나서 점심도 못 먹고 급기야 통영시에 있는 응급실이 있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느라고 일행과 떨어져 버렸다.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점심 먹은 후 다른 일정을 생략하고 통영을 출발하여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그런데 우리차에 탄 일행중에 배탈이 난 환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출발하고 첫번째 휴게소에 들려야 했다. 뜨거운 날씨에 점심 먹은 것이 잘못되었는지 시간이 갈수록 배탈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솔하시는 박선생님마저 탈이 나셨다. 춘주문예반 8명중에 나와 김여사 두명만 멀쩡하고 6명이 모두 탈이 났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들려서 화장실 볼일을 보느라고 상경시간이 늦어졌다.
서울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강남역에서 하차하여 전철을 타고 강변역 버스터미날에 도착했다.
박선생님은 도저히 기력이 없어서 서울에 있는 딸한테 가시겠다고 머무시고 여섯명은 버스를 타고 춘천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어제밤에 찾아온 지갑을 열어보았다. 아예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지갑이 내 손에 다시 돌아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번 통영 1박 2일간의 여행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남겨 놓았다.
지옥과 천당을 경험했고 통영의 독특한 풍광을 가슴에 많이 담아왔다.
이 다음에 다시 한번 아내와 둘이서 통영으로 여행을 가서 볼거리 먹거리를 여유있게 감상하고 싶다. 끝.
첫댓글 용천 선생님 고맙습니다. 통영에서의 배려, 정말 잊지못할 추억이 되겠지요. 글 잘 읽어읍니다.
아주 세밀하게 올려 놓으셨군요 지감을 찾으셨으니 얼마나 좋으십니까.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일기 같이 나열이 되었습니다. 지갑을 잃어버린 일과 통영세서의 일을 나누어 두 가지로 쓰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