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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동시들로 가득하다
http://sjbnews.com/news/news.php?number=77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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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동시
박예분(아동문학가. 전북동시문학회장)
1.
권옥 시인은 13년 전부터 동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필자가 최명희문학관 파견작가로 활동할 때다. 동시를 좋아하고, 쓰고 읽고 싶은 이들을 대상으로 '너의 동심(動心), 나의 동심(童心)‘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동시의 저변확대를 위해 6개월 동안 전국 동시 작가들의 동시 1,000여 편을 함께 읽고 감상하며, 동시가 품고 있는 메시지를 우리 삶과 연결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동심으로 소통했다. 또한, 속성의 시대에 숨 가쁘게 사느라 놓쳐버린 동심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동시를 통해 어린이들의 세계를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면서 각자 동시를 한 편씩 써서 동시화전(展)을 개최했다.
그때 권옥 시인은 동시의 맛에 제대로 매료되었다. 매주 어린이들의 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는 짧은 동시를 읽으며 행복했다. 이후 어린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싶어서 재미와 감동을 주는 동시를 꾸준히 써서 <서정문학>으로 등단, <전북동시읽는모임>에서 다양한 동시를 읽고 배우며 동시의 맛을 함께 나눈 문우들과 동시집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청개구리, 2019)를 출간했다.
권옥 시인은 교육현장에서 어린이들과 동시로 즐겁게 놀고 싶어서 ‘동시인형극’을 기획하였다. 초등학교와 도서관, 교육문화회관 등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놀이처럼 동시를 몸으로 즐기고 있다. 동시극을 처음 만난 어린이들의 입에서 동시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동시는 어린이들과 함께 뒹굴 때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이문화연구소 ‘책놀이터’ 대표인 권옥 시인은 어린이들이 어떻게 하면 책으로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연구하는 ‘책놀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책놀이 교재 『스토리텔링과 책놀이2』(공저), 책놀이 활용서 『일 년이 행복한 초등 책놀이』(공저), 그림책 『거미는 거미야』, 『호랑이의 눈물』을 냈다.
권옥 시인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부대끼며 느끼는 다양한 생각과 고민이 무엇인지, 자연 속에서 발견한 동물과 식물, 모든 사물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첫 동시집 『나무들이 알을 낳는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어린이들이 신나게 놀고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동시 놀이터가 되기를 바라며, 나무가 알을 낳듯이 설렘 가득한 동시집을 낳았다.
권옥 시인의 첫 동시집 『나무들이 알을 낳는다』는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2022년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일부 보조금을 지원받아 발간하였다.
2.
권옥 시인은 어린이들이 이야기와 시를 즐기고, 힘들 때 문학에 기대어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동시를 쓴다고 했다. 어린이들의 답답한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고, 재미와 감동을 주는 동시를 쓰기 위해 어린이들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여긴다. 그래야 어린이들과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옥 시인은 어린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어른들의 다양한 잔소리에 많은 관심을 두었다. 어린이들이 자고 일어나면 “밥부터 먹으라고” 소리치는 엄마의 잔소리가 “아침 햇살처럼 교실까지 따라”오고(「밥부터 먹어」),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현관문 열자마자 “쏟아지는 잔소리 폭탄”은 택배 아저씨가 “띵동 띵동” 벨을 누를 때 그친다(「잔소리」). 심지어 엄마가 집에 없는 날에도 “식탁 위에 냉장고에 현관문에” 붙여 놓은 엄마의 쪽지가 홍길동처럼 “가는 곳마다 먼저 달려와서 기다”린다(「홍길동 엄마」). 공부하기 싫고 잔소리도 듣기 싫어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도 없”는(「난감하다」) 잔소리가 어느 때는 싫고, 어느 때는 견딜만하고, 어느 때는 격려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멀리멀리 던져버리고 싶다.
아장아장 아가 배낭
엄마 아빠 뽀뽀 한 가득
부럽다
노랑노랑 유치원 가방
소꿉놀이, 블록놀이, 재미 한 가득
들어가고 싶다
시커먼 중학생 형 가방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깨비 한 가득
얼른 닫는다
알록달록 내 가방
학교 숙제, 엄마 잔소리, 아빠 고함 ……
멀리 던져버리고 싶다
-「가방」 전문
잔소리를 멀리 던져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통쾌할까. 바라건대, 저 멀리 던져버린 잔소리들이 메아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몸을 쉼 없이 움직인다. 그것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걷고 달리고 방방 뛰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기 때문이다.
몸이 날아오른다
방방~
시험 스트레스 날아간다
방방방~
날아간다 친구들 미워했던 마음
방방방방~
엄마 잔소리도 멀-리 날아간다
방방방방방~
-「방방」 전문
무거운 몸과 마음을 덜기 위해 신나게 방방을 탄다. 온몸에서 스트레스가 빠져나갈 때까지, 풍선처럼 가벼워질 때까지 하늘 높이 뛰고 또 뛴다. 권옥 시인은 어린이들이 방방을 타며 “방방~” “방방방~” “방방방방~” “방방방방방~” 점점 높이 더 높이 신나게 날아오르는 장면을 점층법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어린이들이 힘들어하는 스트레스를 아주 멀리멀리 시원하게 한 방에 날려 보내 준다.
이것이 바로 권옥 시인이 동시를 쓰는 목적이다. 권옥 시인의 동시는 어린이들의 무거운 마음을 개운하게 하는 것, 어린이들의 움츠린 어깨를 활짝 펴주는 것이 주특기다.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잔소리들을 모아서 ‘동시극’을 만들고, 극을 통해 어린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어린이들과 동시극으로 소통하며 유쾌 통쾌한 시간을 선물한다. 어른들이 몰라주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감 없이 그대로 읽어준다. 엄마가 “학교 가야지, 학원 가야지, 일찍 자야지” 끝없이 참견하며 “내 시간을 맘대로” 울리고(「엄마 알람」), 낚시 잘하는 아빠를 따라서 룰루랄라 “제주도 여행 왔는데/자전거 일주 극기훈련이란다// 나도 덜컥 걸렸다.” (「낚시꾼 아빠」), 잡초를 쏙쏙 뽑는 엄마가 “-언니 공부하잖아/ TV 끄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 나도 잡초처럼/가끔 엄마한테 뽑힐” 때가 있고(「꽃밭에서」), 맛없는 잔소리를 먹고 자라지만(「자란다」), 가끔 엄마한테 듣는 한마디의 말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 어이쿠, 예쁜 내 강아지
언니도 듣고
나도 듣고
동생도 듣는다
엄마가 할머니한테 들은
기분 좋은 말
-「물려주는 말」 전문
말 한마디가 어린이의 미래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다정하게 “예쁜 내 강아지”라고 자식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사랑을 먹고 자라는 어린이는 부모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며 자존감이 높다. 반면에 부정적인 말은 어린이에게 좌절감을 안겨주고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도 한다.
권옥 시인은 어린이들의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며 “언니도 듣고/ 나도 듣고/ 동생도 듣는” 사랑이 듬뿍 담긴 말을 대대로 물려준다. 그것은 “엄마가 할머니한테 들은/ 기분 좋은 말” 이다. 물고기가 연못 속에서 살랑살랑 헤엄치듯 어린이들은 부모의 품에서 간질간질 헤엄치며(「헤엄친다」), 사랑을 많이 받는 마음 부자가 되길 원한다.
엄마가 안아줄 땐
땡그랑 한 푼, 저금통이 채워지고
엄마한테 혼날 땐
주르랑 두 푼, 저금통이 비워진다
땡그랑
주르랑
채워지고
비워지는 저금통
엄마, 저도 부자 되고 싶어요
-「마음 저금통」 전문
사랑을 받을 땐 “땡그랑 한 푼, 저금통이 채워지고” 혼날 때는 “주르랑 두 푼, 저금통이 비워” 진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마음 저금통을 사랑으로 가득 채운 마음 부자가 되고 싶다. 권옥 시인은 단순히 어린이의 눈높이로 동시를 쓰는 게 아니라, 부모와 세상의 어른들을 향해 유연하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어린이들의 마음 저금통은 부모의 지지와 격려와 사랑으로 빵빵하게 채워진다고 강조한다.
권옥 시인은 동시를 통해 어린이들이 형제자매, 남매사이에서 자신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가족 구성원과 친구, 학교, 이웃 어른들은 어떤 영향을 주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공작 뒤에 가려진 닭처럼 “항상 잘난 언니 뒤에 가려진 나”를 보고(「동물원에서」), 화난 누나의 “쾅! 문 닫는 소리”를 듣고 (「나도 그랬다」), 외국으로 “배낭여행 떠난 누나”를 기다리며(「퍼즐 가족」), “심심해서 동생 좀 괴롭히려는 순간”/ 마음이 말리고(「마음속 선생님」), 질투 나는 친구에게 “내 마음 감추려고” 안 그런 척 따라 웃고(「웃음 화장」), 갈 곳이 없어 “여기저기 기웃기웃” (「젓가락 산책」), 쉬는 시간 수업시간 종소리에 마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시소」), 때로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어찌할 줄 모른다.
싫어하는 시금치가 나왔다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보고 있어서
꾸역꾸역 먹었다
뱃속이 부글부글
화장실로 달려가 비웠더니
시원하다
학원가는 길에 친구가 부른다
야, 왕재수 시금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마음이 부글부글
소리똥은
어디에 비워야 시원할까
-「소리똥」 전문
급식시간에 먹기 싫은 시금치가 나왔는데 선생님이 보고 있어서 꾸역꾸역 먹는다. 결국, 부글부글 끓는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가 시원하게 비우고 나니 살 것 같다. 학원 가는 길에 친구가 별명을 부른다. 그것도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 “왕재수 시금치”라고. 마음이 부글부글 폭발할 것 같은데 비울 곳이 없다. “소리똥은/ 어디에 비워야 시원할까” 고민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며,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다른 사람에게 똥처럼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누구를 만나건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향기 좋은 말의 씨앗을 머금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15층 아저씨
- 고놈 참 씩씩하게 생겼네
10층 할머니
착하게 생겼구나
8층 아주머니
- 어머, 공부 잘하게 생겼네
6층에서 내리며 나는 속으로
보는 것하고 달라요.
누구나 겉만 봐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짐작만 할 뿐이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어린이는 자신을 씩씩하게 생겼다고 보는 아저씨, 착하게 생겼다고 말하는 할머니, 공부 잘하게 생겼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보는 것하고 달라요” 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좋게 봐주는 어른들의 시선이 그다지 싫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린이가 큰 소리로 말하지 않고 속으로만 말한 걸 보면 말이다. 어린이가 함께 탄 사람들이 몇 층에 사는지 모두 아는 것을 보면, 그동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서로 안면이 있는 이웃이다. 그래서 친근감 있는 어조로 아이에게 칭찬처럼 말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 멀뚱멀뚱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싶다. 보는 것하고 다르지만, 아이는 그래도 세상의 맛 중에 “칭찬받는 맛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맛」), 달리는 차가 없는 빨간 신호등 앞에서 “건널까 말까 망설이다” 멈춘 것처럼(「횡단보도 앞」) 스스로 자신을 키운다.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
아침밥 놓쳤다
친구들과 컴퓨터 게임하다
학원 차 놓쳤다
유튜브 영상 올리다
친구와 약속 시간 놓쳤다
놓친 시간들이
또 다른 나를 키운다
-「나를 키우는 시간」 전문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어서 뭉그적거리다 아침밥을 놓치고 지각하고, 친구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다 학원 차 놓치고 엄마한테 들켜서 혼나고, 유튜브 영상 올리는 재미에 빠져서 친구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신뢰가 깨졌다 해도, 그것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놓친 시간들이/ 또 다른 나를 키운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어쩌다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해도 괜찮다는 말이다. 어린이들은 그 과정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새롭게 수정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해보고, 실패해 보아야 이루어낸 성과가 더욱 값지고 소중할 것이다.
권옥 시인은 동시를 쓰면서, 순간순간 다르게 보이는 사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이 삶에 커다란 즐거움이라고 한다.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거의 모든 사물과 대화한다. 이것이 바로 동심이다. 모든 사물을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명을 불어넣는다. 동시에서 의인화는 동심을 기반으로 표현하는 핵심요소이다.
권옥 시인은 자연의 사계와 동물과 식물을 통해 발견한 이야기에 상상력을 입혀 재미있게 표현했다. 권옥 시인의 봄은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따라가 보자.
똑, 똑,
땅 속 지렁이 집에 찾아 온 씨앗 손님
꿈틀꿈틀 방을 만들어주고
포근포근 이불 덮어주는 지렁이들 덕분에
씨앗 손님 깊은 잠에 빠졌다
무슨 좋은 꿈 꾸는지
얼굴이 방긋방긋
입술이 삐죽삐죽
겨우내 꿈나라 여행에 빠진 씨앗 손님
드디어 작은 발가락 꼼지락꼼지락
긴 잠에서 깨어날 때
궁금한 지렁이들 질문 쏟아진다
넌 이름이 뭐니?
어디서 왔니?
씨앗 손님 땅 위로 얼굴 빼꼼히 내밀며
난, 민들레야!
-「씨앗 손님」 전문
땅속에 사는 지렁이 집에 씨앗 손님이 찾아왔다. 지렁이들은 포근한 이불을 덮어주고, 씨앗들은 깊은 겨울잠에 빠진다. 긴 잠에서 깨어난 씨앗들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때, 지렁이들은 참고 참았던 질문을 쏟아낸다. 도대체 어디서 온 누구인지 궁금해서 이름이 뭐냐고 물어본다. 씨앗들은 땅 위로 얼굴을 내밀며 “난, 민들레야!”라고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권옥 시인은 어디선가 겨자씨처럼 작은 씨앗 하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그 씨앗을 바라보며 어떤 꽃을 피울지,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는 어린이들을 떠올리며, 봄의 전령으로 노란 민들레꽃을 피우는 동화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 동시를 완성했다.
권옥 시인은 “어린 시절 수줍음이 많았고, 함께 살았던 고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심심함을 달래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고 한다. 그때 이야기의 맛을 알게 되었고,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TV에서 인형극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에 빠져들며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했다. 그 덕분인지 권옥 시인은 모든 사물에 상상의 옷을 입히는 뛰어난 재주가 있다.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꽃잎 팝콘을 튀기고(「요리사」), 손님들로 북적북적한 봄꽃 백화점에서 봄옷을 고르고(「꽃밭」), 봄꽃들이 달려나간 운동장은 향기로 가득하고(「봄학교」), 개미들이 볼볼볼 기어 나와 봄을 맛본다.
동백나무에
빨간 사탕이 주렁주렁
발 빠른 개미가
먼저 맛본다
핥아도 핥아도
닳지 않는 빨간 사탕
동네 개미들 볼볼볼
모두 와서 맛본다
-「꽃봉오리」 전문
동백나무에 열린 꽃망울을 빨간 사탕에 빗대어 쓴 시각적 이미지가 선명한 동시이다. 동백꽃망울의 특징을 잘 포착하여 티 없이 맑은 동심으로 사탕을 핥고 있는 개미들을 통해 달달한 미각까지 담아냈다. 만약 학교 운동장에 가지가 휘어지도록 사탕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가 있다면 어떨까. 아마도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너도나도 손에 든 사탕을 쪽쪽 빨며 달달한 봄을 맛볼 것이다.
권옥 시인이 포착한 여름은 소나기다. 고추밭의 농부에게 뙤약볕을 가려 줄 조각구름이 세상 구경에 빠져 있다가 먹구름한테 잡혀 “손들고 서서/ 눈물이 빗물 되어//주룩주룩/ 주룩주룩”(「소나기」), “비비비/ 해해해” 하늘이 잠깐 웃고(「장마철」), 키가 큰 선인장은 햇빛 드는 길 따라가느라 “허리가 구불구불”하고 「반지하 우리 집」), 고추잠자리 날던 하늘이 높아지면 가을 산에 도토리가 익어간다.
가을 산에서 도토리 주웠다
주머니마다 불룩불룩
나무 위에서 지켜보는
다람쥐 볼 홀쭉하다
낙엽 밑에
도토리를 듬뿍 넣어주었다
주머니가 홀쭉해졌다
-「다람쥐 밥」 전문
산에 올라가 가을을 담는다. 주머니에 도토리도 불룩불룩 주워 담는다. 그러다 볼이 홀쭉한 다람쥐와 눈이 마주친다. 양심상 다람쥐의 겨울 양식을 가져갈 수 없어서 다시 주머니를 비운다. 낙엽 밑에 도토리를 듬뿍 넣어주고, 돌아오는 길은 주머니가 홀쭉하다. 욕심 대신 나누면 마음이 절로 가볍다. 가을이 주는 선물이 어디 그뿐인가.
빨갛게 물든 단풍
눈에 담고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귀에 담고
국화꽃 향기
코에 담고
달콤한 홍시
입에 담고
우리 가족 가을 여행
추억에 담는다
-「가을을 담는다」 전문
자연 속에서 오감을 활짝 열고 가을을 만끽하는 가족여행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가을빛에 곱게 물드는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절로 마음을 열게 하는 가을빛, 그 고운 빛을 가슴에 담는 순간 두고두고 아름다운 추억여행으로 남을 것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자동차 바퀴를 따라 “폴폴폴 폴 포오올” 날개 달고 날아가고(「가을 나비」), “빙글빙글 뱅글뱅글” 바람 타고 신나게 달릴 때(「바람개비」), 나무들은 묵묵히 알을 낳는다.
알밤 한 알
톡
도토리 두 알
톡 톡
대추 세 알
톡
톡
톡
나무들이 알을 낳는다
-「알 낳는 나무」 전문
잎 떨군 나무들이 알을 낳는다. 한 해의 수확이다. 나뭇가지에서 땅으로 “톡, 톡, 톡”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알 속에 든 작고 야무진 씨앗은 겨우내 땅속에서 잠들고, 새봄에 싹을 틔우고 줄기를 세워 가지를 힘차게 뻗어 나갈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은 생존과 종족 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쌀 한 알도 그렇고, 콩알 하나도 그렇다. 그래서 열매를 맺기까지 온 힘을 다해 숱한 비바람을 꿋꿋이 이겨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장 발달기에 따라 추구하는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딱 그만큼만 힘을 쏟으면 된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짧은 기간에 ‘빨리 이루라’고 다그치는 건 아닌지, 그래서 아이들이 주어진 현실을 버거워하며 끙끙거리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마지막 잎을 다 떨군 나무가 겨울방학에 들어갈 때, 쉼이 필요한 우리 아이들도 방학을 맞는다.
아침 먹고, 기-지-개
점심 먹고, 딩-굴-딩-굴
간식 먹고, 하-아-품
나무늘보가 되었다
-「방학」 전문
권옥 시인이 아이들에게 특별히 선물한 방학이다. 얼마나 평화로운가. 학교 에 갈 일 없으니 세수 먼저하고 아침을 먹을 필요가 없다. 실컷 잠자고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기지개를 켜고 세수를 해도 된다. 점심 먹고 5교시, 6교시 수업 안 하고 방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놀아도 좋다. 엄마가 해주는 간식을 맛있게 먹고, 졸리면 입 크게 벌려 늘어지게 하품을 해도 좋다. 누가 흉볼 사람 없다. 며칠은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게으름 피워도 좋다. 그것은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게 아니라, 내일을 위한 에너지 충전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집안 이곳저곳에 시선을 두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참새 떼를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참새 떼
꼼짝하지 않았다
추워서 꽁꽁 얼어붙었을까
참새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며
나만 꽁꽁 얼었다
-「걱정 하나」 전문
어린이들이 학교, 학원, 집으로 쉼 없이 쳇바퀴처럼 돌다가 맞은 방학이다. 평소에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쏙쏙 들어 온다.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꼼짝 않는 참새 떼들을 걱정하는 어린이, 추워서 꽁꽁 얼어붙었을까 봐 걱정하며 참새들이 움직일 때까지 꼼짝 않고 지켜본다. 그러다 자기 몸도 꽁꽁 얼었다. 따뜻한 동심이 아니면 걱정할 수 없는 일이다. 어른들은 다 안다. 참새들이 얼어 죽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성장하는 어린이는 아직 모른다. 저 작은 생명체가 추운 날 얼어 죽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다. 자기보다 작은 약자인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그것은 아이가 사는 집 처마 밑에 사는 제비도, 텃밭에 집을 짓고 사는 개미도, 대문 옆에 집을 짓고 사는 강아지(「집」)도 다를 바 없다.
장염에 걸린
우리 집 강아지 하루
밥도 못 먹고
굶는 게 약이란다
기운 없이 축 처진 강아지
나는 게임도 축구도 안하고
강아지만 지켜봤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와, 드디에 쌌다
- 하루, 똥 참 잘 쌌네.
진짜 이뻐, 냄새도 좋아
이제 다 나았나 보다
고마운 똥
-「반가운 똥」 전문
하루하루 보태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같이 살자고 지어준 이름 ‘하루’(「하루), 강아지 하루가 아프다. 장염에 걸려서 밥도 주면 안 되고 굶는 게 약이라니 답답할 노릇이다. 기운 없이 축 처진 하루를 걱정하며 좋아하는 축구도 게임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루가 낫길 지켜본다. 그런 하루가 똥을 싸도 이쁘다. 냄새도 안 난다. 이제 나은 것 같아서 하루가 싼 똥마저도 고맙다. 하루를 사랑하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랑은 모든 것을 너그럽게 포용한다. 사랑이 가득한 아이는 삶도 행복하다.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아이, 마음이 따뜻한 아이는 자기 삶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4.
권옥 시인은 어린이들이 이야기와 시를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그래서 동화구연, 인형극, 책놀이, 동시극을 통해 어린이들의 답답한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며 즐겁게 소통하고 있다. 동시로 재미와 감동을 주고 싶어서 어린이들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을 커다란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다.
권옥 시인의 첫 동시집 『나무들이 알을 낳는다』에는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부대끼며 느끼는 다양한 생각과 고민을 읽어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동시로 가득하다. 자연 속에서 발견한 모든 사물에 상상의 옷을 입혀 쓴 풍성한 이야기들은 어린이들의 정서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어린이들이 신나게 놀고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동시 놀이터가 될 것이다. 동시집 『나무들이 알을 낳는다』를 읽은 어린이들은 동물을 사랑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따뜻한 마음으로 다 함께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박예분(아동문학가, 전북동시문학회장)
첫댓글 재미있는 동시가 듬뿍~
동시 맛집 다녀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