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도단을 에워쌌지만 하나님은 사환의 눈을 열어 불 말과 병거를 보게 하십니다. 반면에 아람 군대는 눈이 어두워져 무방비 상태로 사마리아로 끌려갑니다.
18-20절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역전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도단을 포위한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 하십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들은 엘리사의 인도를 받아 무방비 상태로 적진의 중심부인 사마리아까지 끌려옵니다. 엘리사의 기도로 눈이 열리고 나서야 포위된 사실을 알고 전의를 상실할 만큼 큰 공포에 사로 잡힙니다. 형세의 역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도하는 엘리사보다 즉각적인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5:8)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없는 것처럼 업신여기다가 침몰 중인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주권자로 삼지 않는 나를 이 세상에서 건져주고 건사헤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15-17절 밤사이에 아람 군대가 도단을 에워쌌지만 하나님의 군대가 엘리사를 보호하기 위해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보지 못하는 사환은 겁에 질려 엘리사를 찾아 아람 군대에게 포위된 상황을 전합니다. 하지만 선지자의 기도가 응답되어 사환의 눈이 열리자 그는 비로소 엘리사를 둘러싼 하나님의 군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크신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눈앞에 펼쳐진 감당하기 힘든 일보다 주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훨씬 크고 뛰어나다는 것을 믿고, 생각을 마비시키고 거룩한 상상력을 위축시키는 두려움을 떨쳐냅시다.
21-23절 이스라엘 왕은 공격 여부에 대해 거듭 엘리사의 허락을 구합니다. 그들의 처분은 왕의 조급한 기대가 아니라 엘리사의 명령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무방비상태인 그들을 치기 보다는 잘 대접하여 무사히 주인에게 돌려보냅니다. 나아만의 예물을 거절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던 게하시처럼 이스라엘 왕도 이런 처사가 불만스러웠을지 모릅니다. 예상을 깨는 자비와 선대는 당장의 승리가 아니라 아람의 전쟁 의지를 꺾었고, 얼마 동안의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은혜 없는 자리에 남는 것은 칼의 복수뿐입니다. 세상이 교회에서 다른 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은혜여야 합니다. (매일성경, 2024.09/10, p.54-55,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열왕기하 6:15-23에서 인용).
①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도단을 에워쌌지만 하나님은 사환의 눈을 열어 불 말과 병거를 보게 하십니다. 반면에 아람 군대는 눈이 어두워져 무방비 상태로 사마리아로 끌려갑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역전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도단을 포위한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 하십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그들은 엘리사의 인도를 받아 무방비 상태로 적진의 중심부인 사마리아까지 끌려옵니다. 엘리사의 기도로 눈이 열리고 나서야 포위된 사실을 알고 전의를 상실할 만큼 큰 공포에 사로 잡힙니다. 형세의 역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도하는 엘리사보다 즉각적인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5:8)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없는 것처럼 업신여기다가 침몰 중인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주권자로 삼지 않는 나를 이 세상에서 건져주고 건사헤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② 밤사이에 아람 군대가 도단을 에워쌌지만 하나님의 군대가 엘리사를 보호하기 위해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보지 못하는 사환은 겁에 질려 엘리사를 찾아 아람 군대에게 포위된 상황을 전합니다. 하지만 선지자의 기도가 응답되어 사환의 눈이 열리자 그는 비로소 엘리사를 둘러싼 하나님의 군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크신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눈앞에 펼쳐진 감당하기 힘든 일보다 주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훨씬 크고 뛰어나다는 것을 믿고, 생각을 마비시키고 거룩한 상상력을 위축시키는 두려움을 떨쳐냅시다.
③ 이스라엘 왕은 공격 여부에 대해 거듭 엘리사의 허락을 구합니다. 그들의 처분은 왕의 조급한 기대가 아니라 엘리사의 명령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무방비상태인 그들을 치기 보다는 잘 대접하여 무사히 주인에게 돌려보냅니다. 나아만의 예물을 거절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던 게하시처럼 이스라엘 왕도 이런 처사가 불만스러웠을지 모릅니다. 예상을 깨는 자비와 선대는 당장의 승리가 아니라 아람의 전쟁 의지를 꺾었고, 얼마 동안의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은혜 없는 자리에 남는 것은 칼의 복수뿐입니다. 세상이 교회에서 다른 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은혜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