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쓰기 / 최미숙
화사하게 핀 벚꽃이 많은 사람을 거리로 불러내더니 이젠 초여름 꽃인 이팝나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직 4월 하순인데, 기온이 20도를 훌쩍 넘어 벌써 여름이 온 듯하다. 글을 쓴 지도 6학기째다. 시간도 나이만큼 빠르게 간다더니 그 말을 실감하는 요즈음이다.
42년 교직 생활도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교사는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또 젊은 후배들에게 성실한 교사로 남고 싶다. 마지막 해이기도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깨고 싶어 다른 해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맡은 일은 물론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글쓰기를 가르치고 기초 학력이 낮은 아이를 지도한다. 거기다 화요일 오후에는 영재원 학생 독서 토론과 글쓰기까지 맡아 일주일이 더 바빠졌다. 집에서까지도 노트북을 들고 씨름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작년부터 최 교장님, 후배 양 교장과 함께 동화를 공부해 보자는 말이 오갔다. 그러다 지난 연말 다른 사람 작품을 교정하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더군다나 우리는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는가 말이다. 조건은 충분히 갖췄는데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왕 할 거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자고 했다. 말이 나오기 바쁘게 발 넓은 양 교장이 아는 교수님(동화 작가)에게 부탁해 3월 초부터 매주 금요일 두 시간씩 줌에서 만나기로 날을 잡았다. 처음에는 일곱 명이 한다더니 힘들다는 이유로 둘은 빠지고 다섯 명이 남았다. 호기롭게 시작은 했으나 내 능력으로 너무 벅찬 일은 아닌지 걱정도 됐다.
3월 10일 금요일, 첫 수업날이다. 백발의 여자 교수님은 동화를 여러 편 써 상까지 받은 실력 있는 유명한 작가였다. 그동안 독서를 지도하면서 동화책은 많이 읽었지만 내가 직접 그 분야를 공부하며 작품을 쓴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좀 더 세밀하게 읽지 않았던 것이 후회됐다. 교수님이 정해준 〈뱃살이 아까워〉라는 책을 미리 읽었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소재를 다루는데 반전이 있는 내용이었다. 동화는 휴머니즘의 문학이라고 했고, 동화 창작의 12단계와 작품을 이루는 조건을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는 한 주 동안 작품을 구상하고 개요를 짜서 이메일로 보내란다. 첫 시간인데 벌써 쓰라니 부담이 됐다. 매주 각자가 쓴 글을 읽고 서평하면서 다시 고치는 과정을 거쳐 동화 한 편을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다. 화요일은 수필, 금요일은 동화 공부로 머릿속이 쉴 틈이 없다.
글을 쓰며 내가 언제부터 문학에 관심이 생겼는지 돌이켜봤다. 우리 어릴 때는 책을 읽을 곳이 학교 도서관 외에는 아예 없었다. 알다시피 6-70년대에는 다들 먹고살기 바빠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초등학생(그 시절엔 국민학생이라 했음) 때는 책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도 집 앞에 만화방이 있어 아버지에게 소리깨나 들으면서 만화 보러 다닌 것이 유일한 독서였다. 그러다 중학생 때 우연히 펄벅의 〈대지〉를 읽고는 책이 재미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극본을 썼다고 엄마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책장에는 문학 전집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루이제 린저 전집과 레마르크의 〈개선문〉, 도스토옙스키 작품, 「삼국지」 그 외 여러 고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생 때 방학이면 심심할 때마다 한 권씩 꺼내 읽었다. 아마 그때부터이지 않았나 싶다. 대학에 가서도, 교사가 되어서도 책을 놓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독서를 지도하는 밑거름으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그냥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그러다 예순도 다 된 나이에 수필을 시작했고, 이제는 겁도 없이 동화까지 손을 댔다. 그래도 어렵게 시작했는데 능력은 부족해도 설렁설렁할 수는 없다. 매주 나오는 과제는 빼지 않고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시작한 지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교수님의 지도대로 고치고 다듬고를 반복해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지만 한 편은 마무리해가는 중이다. 앉으나 서나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이야기를 꾸밀까?’라는 고민으로 가득 차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또 할 일이 많아 시간을 쪼개 써야 할 만큼 바쁘지만 완성한 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즐겁다.
동화 쓰기에 첫발을 내디뎠다. 내게는 큰 도전이다. 꼭 무엇을 이루겠다는 큰 욕심보다 배워 간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어떤 결과든 도달할 것이고, 좋은 기회도 생길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