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
📍10년 최초의 상설 영화관 경성 고등연예관 개관 📍19년 재미 한국부인회, 윌슨 대통령에게 독립 청원 📍29년 원산 노동연합회가 총독부의 노동운동 탄압에 항의 📍49년 한-미 우편물 교환협정 조인 📍51년 부산 전시 연합대학 개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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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좌익계 폭동 발생.
1952년 2월 18일 오늘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좌익계 폭동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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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김성수 국회부의장(전 부통령)사망(24일국민장) . 조경규 부의장이 됨. 📍59년 28사단장 서광철준장, 대대장 정헌중령에게피살 📍63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2.18성명(민정 불참 선언 및 정국수습 9개 방안 제시)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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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까막딱따구리 1쌍, 10년만에 경기도 용인군 에서 발견됨
1973년 2월 18일 오늘 까막딱따구리 1쌍, 10년만에 경기도 용인군 에서 발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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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최규하 대통령, 각계 원로ㆍ중진 23명으로 국정자문회의 구성(22일 첫 회의) 📍81년 포항제철, 제4기 설비확장공사 준공(연 조강 생산 850만t) 📍83년 국세청,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을 비롯, 전국 36개 아파트 단지를 부동산 투기억제 지역으로 고시 📍83년 상공부, 전자공업 육성을 위해 외국인 투자 및 기술도입에 대한 단계적 자유화 조치 검토 📍84년 금융단, 부도 또는 1000만원 이상 대출금을 6개월 이상 연체한 거래처에 은행거래를 금지 📍85년 전두환 대통령, 12개 부ㆍ처장관 경질(총리에 노신영 안전기획부장) 노태우 대표위원 임명 📍85년 중금속 공해병 '비중격천공' 환자 국내 처음 발생 📍85년 신민당 당선자 대회, 개헌 등 민주화 투쟁 다짐 📍86년 노태우 민정당 대표, 국회내에서 헌법논의를 회피할 생각없다고 의원총회서 밝혀 📍87년 민정ㆍ신민ㆍ국민 3당 대표, 임시 국회소집 등 정국타개 4개항 합의 📍87년 정부, 6대 해운회사에 대한 금융지원 등 해운산업합리화방안 발표 📍89년 경찰, 재야·학생·노동자대회 원천봉쇄. 2565명 연행 조사 📍90년 일본 총선 자민당 승리-제39차 중의원 총선 512석중 276석 📍90년 완료된 89년산 추곡 수매량은 1174만 3000섬으로 당초 계획량 1200만섬의 97.9%. 📍91년 북한,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25∼28, 평양)을 앞두고 팀스피리트 훈련을 구실로 일방중단 선언 📍91년 노태우 대통령,부총리에 최각규- 건설장관 이해원 임명 개각. 민자당 원내총무에 김종호의원 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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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정원식 총리 및 연형묵 북한총리, 남북고위급 회담(평양)에서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 등 합의서 교환 📍92년 동력자원부,각국의 석유 소비실태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석유 소비증가울은 90년 22.9%로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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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서울 용산 한남동 순천향병원 앞길에서 이철용 국회의원(무소속)이 괴한의 흉기에 찔려 경찰에 신고.
1992년 2월 18일 오늘 서울 용산 한남동 순천향병원 앞길에서 이철용 국회의원(무소속)이 괴한의 흉기에 찔려 경찰에 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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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서울지검,92ㆍ93학년도 대입부정을 주도한 혐의로 광운대 金昌煜 부총장을 구속 📍93년 한국,제9차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일본정부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피해보상을 촉구 📍93년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시중 6개사 11개 제품 우황청심환에서 납 수은 등 검출 밝혀 📍93년 각의, 비 평준화지역 고입시 자율화. 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 📍93년 유공 생물공학연구팀, 일본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곰팡이 제거제 개발에 성공 📍94년 정부, 75개 公기업 민영화 확정, 94년 47개, 📍95년 5개, 나머지는 97년까지 📍94년 종교운동가 탁명환 씨 피살-대성교회 운전사- 피의 보복 📍97년 통상산업부, 96년 수출 1297억1500만달러, 수입 1503억3900만달러로 밝혀 📍98년 김동수 유엔 식량농업기구 주재 북한대표부 3등서기관, 귀순 기자회견(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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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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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大邱地下鐵火災慘事)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大邱地下鐵火災慘事)는 2003년 2월 18일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에서 김대한의 방화로 일어난 화재 참사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명 피해가 큰 철도사고로 1995년 바쿠 지하철 화재, 1995년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와 함께 세계 3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 꼽히며 전 세계 철도 화재 사고로는 1995년 바쿠 지하철 화재에 이어 인명피해 수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명 대구 지하철 참사, 2.18 참사, 김대한 방화 사건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로 인해 2개 편성 12량(대구도시철도 1000호대 전동차, 118편성 1079열차, 130편성 1080열차)의 전동차가 모두 불타고 뼈대만 남았으며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그리고 151명의 부상자라는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와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한 중앙로역도 완전히 전소되어 2003년 12월 30일까지 복구를 위해 10개월 동안 영업을 중지했다.
2003년 2월 18일 9시 30분. 50대 남성이 대구지하철 1호선 송현역에서 안심행 1079호 열차에 탑승했다. 그는 열차가 중앙로역에 들어서자(9시 53분) 준비한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같은 시각 대구역을 출발한 대곡행 1080호 열차가 현장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중앙로역으로 진입했다. 화재로 검은 연기가 가득 찬 승강장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1080호 열차는 발차를 시도했지만 이미 전력이 차단된 뒤였다. 긴급한 상황, 기관사와 대구지하철공사 종합사령실이 대처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1079호에서 시작된 화재는 1080호로 옮겨붙었다. 1080호 기관사는 “전동차가 곧 출발할 예정이므로 전동차 안에서 대기하라”고 승객들에게 방송했다. 맹렬한 화염이 두 열차를 집어삼켰다. 이 사고로 192명(신원 미확인 6명 포함)이 사망하고, 151명이 부상을 입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