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한 약속 / 이임순
잎세반 교실에서 우당탕 소리가 난다. 아이들이 다치지 않았나 싶어 얼른 유리문 밖에서 살핀다. 블럭을 쌓던 녀석들이 기싸움을 한 모양이다. 서로 높이 하려는 보이지 않은 경쟁 더 많이 쌓은 상대방의 것을 넘어뜨린 것이다. 두 손을 허리에 대고 한껏 화난 표정으로 노려보던 경일이가 하성이 블록으로 다가가더니 발로 찬다. 의기양양하게 서 있던 하성이가 사방으로 흩어진 블록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인상을 쓰고 바라보던 아이도 우는 아이도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이럴 때는 본인들이 감정을 수습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섣부른 참견은 아이의 자존감을 건드리기 십상이다.
병원놀이를 하던 슬기가 경일이한테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장난감을 먼저 모으라는 신호다. 눈치 빠른 녀석이 화가 덜 풀려 씩씩거리면서도 손이 블록으로 간다. 제법 쌓인다. 아이들도 좋아하는 친구가 속상해하면 응원하면서 지지를 보낸다.
경일이가 책상 밑에서 놀잇감을 꺼내는 사이 울고 있던 하성이가 곁에 모아 둔 블럭을 제 것인 양 옆으로 끌어당긴다. 뒤늦게 본인 것이 없어진 것을 알고 둘이 밀치락뒤치락이다. 선생님이 중재에 나서며“착한 어린이는 욕심부리지 않고 장난감을 사랑합니다.”하니 듣는 체도 하지 않는다. 하성이가 뺏기지 않으려고 블록 위에 주저앉는다. 한참을 째려보던 경일이가 더는 줄 수 없다는 듯 뒷걸음으로 장난감을 모은다. 제 것 주기 싫어하는 하성이는 다른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무턱대고 잘 가져온다. 그러면 눈동자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몸싸움이 벌어진다. 남자아이들끼리의 다툼은 싱겁게 끝나기도 하는데 성이 다른 아이의 실랑이는 오래 간다.
병원놀이 하던 슬기가 자리를 옮기더니 실뜨기를 꺼낸다. 선생님이 정리하고 새로운 장난감과 친구 하자니 가지고 놀았던 것을 상자에 담고 간호사 옷도 벗어 옷걸이에 건다. 손놀림을 싫어하는 혜서가 활동적인 슬기에게 다가가 한번 해보자고 한다. 다른 실뜨기를 꺼내주니 고개를 흔들며 입을 실룩거린다. 더는 상대해주지 않으니 혼자 머리를 감싸고 속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른 아이들이 그러면 말을 붙이며 관심을 가지는데 내버려 두니 서운한가 보다. 저마다 놀이에 빠져 즐기는데 혜서 혼자 따로국밥이다. .
하성이와 경일이는 또 블록을 쌓는다. 높이가 엇비슷하다. 경일이는 색깔을 맞춰 올리는데 하성이는 무턱대고 쌓기만 한다. 아이들은 놀이가 한창이다. 예인이가 슬기 곁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저도 해보고 싶다는 표정이다. 슬기가 한 번 해보라고 하니 혜서가 고개를 돌려본다. 그리고는 잠잠하다. 예인이가 재미있다며 슬기에게 고맙다고 한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혜서가 혼자만의 감정에 사로잡혀 운 것이. 소리도 눈물도 없이 속상해하는 그녀에게 누구도 본체만체하니 서운함이 넘쳤나 보다. 경일이가 혜서 주변을 서성대더니 선생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선생님이 혜서에게 무관심인 척 한 것은 그녀를 잘 알기 때문인데 경일이는 선생님이 모른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실 혜서는 형제가 없어서 그런지 공주처럼 대해주기를 원한다. 집에서 그렇게 해 주니 어린이집에서도 당연한 것처럼 바란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것이 무너지면 힘세고 목소리 큰 아이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심성이 고운 아이가 되어야지 공주처럼 떠받고, 억지 부리는 아이로 성장하면 안 된다는 것을 혜서가 언제쯤 알까?
원하는 것 안 해 준다고 운 혜서와 자기보다 높이 쌓은 것을 방해하다 울음을 터뜨린 하일이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다. 그런 것은 되도록 자기 힘으로 해내야지 눈물로 뜻을 이루면 그 사람은 무엇을 하든 눈물을 앞장 세운다.
점심 먹고 손을 씻으면서 선생님이 혜서에게 왜 울었는지 물었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서 실뜨기를 슬기처럼 못해 속상했단다. 선생님이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꾸 하면 잘할 수 있다고 내일 선생님이랑 같이 해보자고 했다. 정말 슬기처럼 잘할 수 있느냐고 묻고 또 물으며 좋아했다.
실외놀이를 갔다 오면서 선생님이 하성이에게 오늘 재미있는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엉뚱하게 속상한 일이 있다고 대답했다. 경일이가 블록쌓기를 더 많이 해서 화가 났다는 말에 어제는 하성이가 많이 쌓았는데 경일이는 화내지 않았다고 하니 말없이 걷기만 했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선생님 손을 꼭 잡으며 다음에는 심술부리지 않겠다고 했다. 남자가 아무 때나 울면 가벼운 사람이 된다고 하니 자기 아버지처럼 무거운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감을 가진 혜서, 심술부리지 않고 듬직한 사람이 되겠다는 하성, 둘 다 눈물로 거듭나는 아이로 성장해 줄 것을 믿는다.
첫댓글 아이들의 생활과 특성을 잘 살피고 계시네요. 아이에 맞게 잘 지도해 주시니 참 교육자십니다.
공자 앞에 문자 쓰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아이라는 생각에 앞서 미래의 주역이니 잘 이끌러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추스릴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면서 차근차근 인성 지도를 해 나가시는 선생님 모습이 크게 다가옵니다. 애 많이 쓰시는군요.
고맙습니다.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데 때로는 어른티를 내어 황당하기도 합니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인데 그 거울이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책임감을 느끼기도합니다.
내공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인성과 경험에서 나오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