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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승리의 삶, 주님과 연합, 예수 공동체
11/02목(木)
(갈 2:20-21/ 행 4:32-37/ 엡 3:3-7)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 2:20)
우리는 보통 신앙이나 삶에서 내가 강해져야 승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내가 약해져야 승리합니다. 신앙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신앙 승리의 비결은 내가 약해지고, 주님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고 합니다. 내가 약해질 때 주님의 역사하는 범위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고후 12:9).
자기고집이 강하면 주님의 능력은 머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물리적 가시를 주어 그 사람을 약하게 만들고 주님만 붙잡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2:10). ‘가시’란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장벽을 말합니다. 그러나 가시를 주실 때 주님의 능력이 머물게 되므로 가시도 감사로 받아야 합니다.
▣승리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고전 15:57). 내가 약해지면 주님이 강해집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강해지면 승리하게 됩니다.
▣승리하려면 회개를 통해 부활의 주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오셔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주님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야 예수를 주인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인 된 사람은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내가 주인이라는 것, 그리고 내 뜻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성령이 깨닫게 하셔야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주님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릇의 목적은 내용물을 담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면 내 그릇의 내용물은 사단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인이면 내 그릇의 내용물은 주님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나타내는 몸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몸의 역할을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자신이 주인인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받았다고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은혜받는 것과 예수 믿는 것은 다릅니다. 자신이 주인 되어 살면서도 은혜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주인 된 사람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면서 우리 주인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이십니다. 내가 주인으로 살아온 것은 그동안 미혹의 영에 이끌려 산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다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었습니다”(롬 14:9).
진정한 회개란 ‘나’를 쫓아내고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 그 이유는 지옥은 마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는 미혹의 영이 역사하여 자신이 주인인 줄 압니다. 불신자는 마귀, 마귀의 자식입니다. 예수께서 ‘나(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죄’란 지옥에 갈 죄입니다. “죄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요 16:9)
교회에 출석해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자신이 주인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가 주인인 사람만 구원받게 됩니다. 예수가 주인일 때 신앙과 삶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여, 도와주소서’가 아니라 ‘주여, 역사 하소서’가 옳은 기도입니다.
만일 우리가 베드로가 살던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우리는 예수를 죽인 자들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행 2:37). 지금 예수를 주인으로 믿지 않는다면 우리도 예수를 죽인 자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것은 주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행 2:38)
▣예수가 주인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예수 믿기 전에는 자신이 주인 된 마귀 자식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주인이 바뀌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주님과 연합된 자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마귀와 연합된 자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며 또 그 아비의 욕망대로 하려고 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는 진리 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요 8:44)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사단이 들어온 것입니다. 옛사람인 자신이 밀려나고, 주님이 주인으로 자리 잡을 때 새로운 피조물로 변하게 됩니다. 주님은 머리이고, 나는 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가 주인입니다. 주님은 머리, 우리는 주님의 몸입니다.
성도는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주인이 되면 우리에게 승리만 있습니다. 주님만 믿으면 승리하게 됩니다. 주님이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우리의 일은 주님이 시작하시고, 주님이 마치십니다. 단 우리가 할 일은 때에 따라 주님이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 2:20)
-새로운 피조물의 축복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부정적이고, 실패한 과거가 사라지게 됩니다.
부정적인 나의 과거는 이미 죽었습니다. 질병에서 해방되고, 가난에서 부요한 자가 되고, 무능력에서 능력으로 됩니다. 나의 모든 부정적인 환경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그 환경은 나와 상관없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이제 주님이 주인이면 내 믿음은 주님의 믿음입니다. 내 속에서 주님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해방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부활하셨고, 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우리는 승리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고후 4:7)
▣기도 응답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주님과 교제가 되므로 어떤 방법으로든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십니다. 말씀을 통해, 설교를 통해, 신앙 선배들의 말씀을 통해 레마로 전해집니다.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함께 한 사람들에게는 천둥소리로 들린 것입니다. 오직 사울에게만 주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본인에게만 들립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자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나는 부족하지만, 예수가 나의 주인이므로 나는 온전한 자입니다. 주님이 나를 온전한 자로 보십니다. 내게 흠이 없으면 사단이 침투하지 못합니다. 자꾸만 시험에 드는 것은 아직 내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혹의 영이 침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하면 책망할 것이 없는 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분의 육신의 몸으로 여러분과 화해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내세우셨습니다”(골 1:22). 예수께서 단번의 제사를 드림으로 온전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을 단 한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히 10:14).
▣이제 내 몸은 마귀의 집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주님이 주인이 되니 나는 마귀의 그릇에서 하나님의 그릇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직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못하고 자신이 주인 된 사람은 마귀의 집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내가 나온 집으로 되돌아가겠다 하고 돌아와서 보니 그 집은 비어 있고 말끔히 치워져서 잘 정돈되어 있었다”(마 12:44). 그러나 주님이 주인이 되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고전 6:19).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인 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독생자를 죽게 하여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만 깨달아도 충분히 그 사랑을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성령이 함께하지 않으면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롬 5:9)
-예수 공동체(교회)-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것은 죄에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이제 예수 믿고 세상에서 교회 공동체로 태어난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생명 공동체이며 하나님 나라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예수의 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택하신 목적은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또한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막 3:14)
▣상대는 주님 몸의 일부이므로 용서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공동체는 한 몸입니다. 예수를 머리로 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주님 몸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도 용서해야 합니다. 그 사람도 주님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주인이 주님이기 때문에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지만 내 안에서 나의 주인이신 주님이 용서했기 때문에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불순종의 죄입니다.
▣물질의 자유(초대교회 공동체)함을 누려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교회 공동체는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주인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많은 신도가 다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행 4:32).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고 믿는다면 결코 가난한 형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물질이 있다면 주인 되신 주님께 요구하면 주님이 해결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확신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언약 공동체(율법에서 은혜로)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입니다. ‘하라’는 언약은 이미 이루어진 일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 말은 나에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절대로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를 위해 기도할 때 나는 동참하는 것입니다. 참예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주님이 하십니다. 나는 주님의 일에 동참하면 됩니다. ‘나는 할 수 없다’라는 것과 ‘그 일은 주님이 하신다’라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예수 공동체를 키우는 것입니다. 예수를 머리로, 예수의 몸이 되는 지체들이 많아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지체로서 참예자가 되고, 상속자가 많아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수의 지체로서 예수의 몸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이 많아지는 그 날까지 우리의 행진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 비밀의 내용인즉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 사람들과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약속을 함께 가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엡 3:6).
And...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역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의 몸으로서 역할에 충실한 것입니다.
그분은 영이기에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분의 몸이 되어 만나기 원하는 사람을 만나고, 할 말을 하실 수 있도록 입술을 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분이 쓰기 편한 도구가 되려면 나의 옛 사고체계가 바뀌어야 합니다. 나의 선입견, 고정관념, 세상적 지식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고체계가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힐링 동산의 나뭇잎 쓸기는 석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난 듯합니다. 처음 시작은 그곳에 오르는 어르신들이 맨발 걷기를 하는 것을 보고 주님이 감동을 주셨습니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그 일을 하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이 궁굼해 했습니다. 어떤 분은 시의원에 출마하느냐고 물었고, 어떤 분은 교회 전도하려고 봉사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어느 것도 아닌, 그냥 주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제 안에 기쁨이 솟아납니다. 말씀을 들으며 비질하는 시간이 참 소중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내 안에 계신 빛 되신 주님이 사람들에게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이사 와서 처음 산에 오르던 그 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곳이란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청지기로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이곳에 오르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 기도했고, 그들이 선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곳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몇 번을 유심히 보았노라면서 청소하는 이유를 묻는 과정에 제가 목사인 것을 알게 되었고, 그분은 권사님이신데 10년 전에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되면서 뜨겁던 신앙의 열정이 사그러졌고, 지금은 교회에 출석은 하지만 믿음을 다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몸이 너무 무거워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하던 중 그분의 몸이 아픈 것은 첫사랑을 잃어버렸고, 무언가에 눌려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관계회복이 되면 눌린 것에서 풀려나고 몸이 가벼워질 거라고 꾸준히 기도하시기를 권면하였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순간 그분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마음이 평안해졌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법을 알려드리고 신앙의 기본 원리를 알려드렸습니다. 이제 자주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청소를 하라고 감동을 주신 것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제 오른손에 굳은살이 박혀있습니다. 참 자랑스런 흔적입니다. 한 영혼을 마귀의 지배에서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인도한 귀한 손입니다. 주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순종한다면 누구나 주님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것과 주님의 통로가 되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결과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과정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결론은 하나님께서 정하십니다. 그 과정에 우리의 순종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죽고 주님이 나의 전부가 되실 때 나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습니다.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귀한 그릇으로 사용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