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시티 도시재정비 추진계획 오리무중
해운대 그린시티가 정부의 1기 신도시 재정비 연구용역 대상에 포함됐다고 한다. 정부가 준공 뒤 30년이 지나 노후화된 1기 신도시에 대해 종합적인 도시재정비 연구용역을 추진하는 가운데, 지방 거점 신도시 가운데 부산 좌동(그린시티), 광주 상무지구, 대구 수성, 대전 둔산, 인천 연수 등을 연구용역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해운대 그린시티는 수도권 1기 신도시와 같은 시기에 주택공급 등 동일한 목적 달성을 위해 조성된 곳이다. 부산 최초의 계획도시로서 1996년 5월 첫 입주를 시작한 이후 현재 준공 20년이 넘는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노후화되면서 재정비 여론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전임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이 구 주도로 아파트 리모델링을 적극 지원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연구용역을 실시한 바 있다. 일단 그린시티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아직 재정비 실행방안과 추진일정이 구체적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재정비 용역 결과에 따라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 도시재정비 주민협의체 추진해야
지난 9월 8일 국토교통부는 원희룡 장관을 비롯해 성남시장, 안양시장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5개 지자체장이 참석한 ‘1기 신도시 재정비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1기 신도시 재정비 특별법을 내년 2월 발의하기로 확정하고 ‘신속 추진’, ‘규제 완화’, ‘주거 혁명’ 등 3대 원칙을 제시했다. 5개 지자체장들은 정부에 지자체 권한 이양과 일정표 제시, 안전진단·용적률 등을 핵심으로 하는 특별법 제정, 주민의견 수렴 등을 요청했다.
이날 국토부는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 정비기본방침을, 각 지자체는 정비기본계획을 투 트랙으로 병행해 공동수립하는 방식으로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에 마련하기로 했다. 국토부가 수립하는 정비기본방침은 1기 신도시 등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도시기능 성장 방안과 광역교통 및 기반시설 설치 방안 등에 대한 내용을 담는다. 각 지자체가 수립하는 정비기본계획은 정비사업의 기본방향과 함께 주거지·토지이용관리계획, 기반시설 설치계획, 정비예정구역 지정, 용적률·건폐율 등 밀도계획, 이주대책 등 주거안정 등에 대한 내용을 담는다. 또한 신도시별 총괄기획가(MP) 제도를 운영하고 각 지자체별로 이를 지원할 MP 지원팀과 주민참여기구 등 주민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추진체계도 구성·운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토부와 수도권 1기 신도시들 간의 협의가 시작된 반면, 해운대 그린시티를 비롯한 지방 거점 신도시와의 소통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린시티 재정비사업 추진이 사실상 확정된 만큼 이번에 수도권 1기 신도시 간담회에서 확정된 정비계획과 추진체계가 그린시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아직까지 그린시티는 사업추진 논의의 대상에서 한 발 비켜나 있는 모양새다.
사실 그린시티가 1기 신도시 재정비 연구용역 대상에 포함된 것은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라고 보기 힘들다. 수도권 1기 신도시 재정비가 대통령선거 공약에 포함되자 지역균형 발전 차원에서 재정비사업을 논의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면서 국토부가 해운대 그린시티 등을 뒤늦게 재정비 연구용역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경위야 어쨌든 국토부는 수도권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추진 일정에 맞춰 그린시티에 대한 향후 계획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연구용역 대상에만 올려놓고 시일을 끈다면 결국 그린시티는 재정비 사업에서 들러리가 되고 그만큼 주민들의 불만과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해운대구청은 신속히 국토부에 공식적인 협의체 구성을 요청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할 주민협의체를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야 할 것이다.
◇ 주거환경 개선과 이주대책 필수
그린시티 재정비 사업은 단순히 아파트만 빽빽하게 올라가는 양적인 주거공간 확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고 도시의 구조와 기능을 재배치해 주민들이 쾌적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53사단 이전 혹은 축소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또한 해운대터널(우동~반송동)과 제2장산터널(좌동~재송동)을 건설해 차들이 해운대 도심에 들어오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린시티에서 센텀시티 방면으로 진출하는 교통 흐름이 보다 원활하게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린시티 재정비 마스터플랜에는 이주대책 마련이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정비업계에서는 수도권 1기 신도시를 순차적으로 개발할 경우 철거에만 3년 안팎이 걸릴 것으로 본다. 그린시티 역시 3만 가구 10만여 명의 주민들이 순차적으로 이주하는 데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게다가 주민 이주로 인해 해운대구 주변 전셋값이 폭등한다면 거주 주민들과 지역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 진행이 순탄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수도권 1기 신도시 가구 수만 30만에 이르는데 2024년 전까지 그린시티를 포함한 지방 거점 신도시까지 한꺼번에 마스터플랜을 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1기 신도시보다 입주시기가 빠르거나 비슷한 전국 아파트 단지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 것인지도 만만찮은 과제이다.
그린시티 재정비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부 연구용역이 끝나더라도 타당성에 대한 검증과 교통, 환경에 대한 영향 평가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난 9월 2일 상록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이 해운대구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음으로써 한발 앞서가는 아파트 단지도 생겼다. 주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국토부의 그린시티 재정비 용역은 해운대의 발전을 촉진하고 동시에 주민들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줄 수 있는 결과를 내야 할 것이다.
/ 박동봉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