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의 명작산책
/이미령 지음
내 인생을 살찌운 행복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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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뭉클하게 마침표를
04. 정치와 신발은 사원 밖에 벗어두라*
[비노바 바베]
- 칼린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을 앞두고
거리에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 중에는
자신은 지금 행복하지 않지만
“대통령을 (혹은 국회의원을)
갈아치우면 나아질 것이다”라거나
“다음에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는 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
라는 외침도 섞여 있습니다.
기대에 부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그렇게라도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좀 냉정하게 생각해볼 일입니다.
과연 정말 내 행복이
정치인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일까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다방면으로 느껴온 불행의 근원이
대통령 한 사람 때문일까요?
기대에 찬,
혹은 절망에 찬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자니
어떤 이름일 떠오릅니다.
그는 바로 비노바 바베.
189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인도를 개혁하기 위해 제 한 몸을 불사른
사회개혁가이자 현대 인도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그는 일찍이 정규교육이
더 이상 자신에게 의미 없다고 선언하고
사회운동에 투신합니다.
그는 간디에게서
욕망이 넘쳐나는 인간이
자기가 속한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간디는 그의 전부였고 영웅이었으며
그의 교과서였습니다.
하지만 비노바 바베는
정치적 행보를 하였던 간디와는 달리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비정치적인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토지헌납운동이라는 전대미문의 공동체 운동입니다.
생계를 위한 땅 한 뙈기조차 없고,
게다가 정치적으로 탄압받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이 많은 인도에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땅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는 인도 전역을 두 발로 걸어 다니며 호소했습니다.
“당신의 땅을 조금만 나누어 주십시오!”
인도의 일반 가정에서는
평균적으로 아들 다섯을 두는데,
비노바 바베는
가난한사람들을
여섯째아들로 여겨달라고 설득하였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
모든 자식에게 재산을 골고루 남겨주듯이
딱 그 마음으로
인도 땅의 6분의 1을
땅이 없는 빈민과 천민에게 나누어주면
그들이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되면
가장 먼저 땅값이 오른다는
요즘의 신문기사를 볼 때,
땅을 가진 사람이
무상으로 땅을 내놓는다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행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4월18일 아침,
포참팔리 마을의 하리잔(불가촉천민)들이
나를 만나러 왔다.
그들은 땅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 땅으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땅80에이커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만일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땅을 얻어줄 수 있다면,
여러분은 모두 함께 일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땅을 나누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러마고 하였고,
땅을 함께 갈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그때 거기에 동석해 있던
쉬리 라마찬드라 레디라는 사람이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내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하리잔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100에이커를 내놓겠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사람들은 땅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걸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무상으로 헌납하다니,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건 분명히 신이 행하신 일!
밤새도록 나는 잠을 못 이루고 그 일을 생각했다.
그것은 계시이었다.
사랑으로 감동받으면
사람들은 땅까지도 나눌 수 있다.
그리하여 비노바 바베는
인도 전역에 걸쳐
스코틀랜드 크기만 한 땅을 기증받게 됩니다.
이쯤 되면 비노바 바베는
민중들의 지도자로 우뚝 설 만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인품을 일찍이 꿰뚫어본 간디가
1940년에 자신의
‘비폭력저항운동’을 이끌 최고의 지도자로
이 사람을 선정하였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비노바 바베는
간디의 발자국을 따라서 걷지 않았습니다.
비노바 바베는 말합니다.
나는 변화를 원한다.
먼저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개인의 생활습관에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사회구조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나는 삼중적 변화,
삼중적 혁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변화를 원하려면
외부의 그 어떤 것보다도
자기 마음이 변해야 합니다.
아무리 자기 마음이 턱없이 작을지라도 말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
바깥의 것이 변하기만을 바랍니다.
평소에는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자기의 실리가 걸려 있으면
여지없이 밖을 향해 변하라고, 달라지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은
외부의 무엇 때문이라고 규정짓고 탓을 합니다.
자기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정치인 한 사람이
개인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절대로!
게다가 정치가 종교의 너울까지 써버린다면
세상은 자칫
악마의 소굴이 될 것이라고는 경고도
비노바 바베는 서슴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자신의 운동과 이념이
정치적으로 오염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습니다.
방법만 있다면
나는 정치와 신발을
종교 밖에 벗어두게 만들고 싶습니다.
정치는
신발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정치라는 게
인도에서나 세계적으로나
그렇게 자랑스럽게
머리에 이고 다닐 만한 것이 못 됩니다.
기껏해야
그것은 발에 신을 수 있을 정도지요.
그런 신발을 신고는
그 어떤 사원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신의 집은 악마의 소굴이 될 테니까요.
비노바 바베의 일생에 걸친 활동은
참으로 진지하고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책 후반에 이어지는
‘죽음을 향한 준비’에 대한 내용에서
말할 수 없이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비노바 바베는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철저하였듯이
나이 들어가면서
차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천천히 주변을 정리해갑니다.
모든 공식적인 활동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하면서
자신에게 네 가지의 자유를 가져다줍니다.
첫째는
외적인 행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50년 동안 사람들을 섬기는 활동에 골몰했던 그는
차츰 일을 줄여나가서 75세가 되던 해부터는
완전히 활동을 멈추었습니다.
둘째는
책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더 이상 책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셋째는
공부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평생 공부하며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이 읽거나 쓸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그는 묻습니다.
넷째는
가르치는 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는 1911년
그가 스무 살이 되기도 전부터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60년 세월을 가르쳐왔지만
이제 그 일마저도 끝을 낸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에 대해서만 계획을 세우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상쾌해졌고 동시에 경각심도 생겼다.
일주일을 계획했던 곳에서
일 년을 머물게 될지
사람의 앞일을 누가 알겠는가! …
내가 간디 선생에게서
받아들이지 않은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매일 일기를 쓰는 일이다.
“과거에 대한 일체의 집착을 버려라,
미래에 대한 일체의 염려를 떨쳐라.”
고 한
옛사람들의 말은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나는 과거를 기억하지도 않고
미래에 대해서 염려하지도 않는다. …
왜냐하면 나는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비노바’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잊어버렸고 또 계속 잊어가고 있다.
나는 과거가
나의 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평생 사명감을 가지고
널리 보급하던 책 뒤에 서명하던 일까지도 멈추고,
평생 계획을 세우고 일하던 습관을 버리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에 대해서만
계획을 세우기로 다짐하자
마음이 한결 상쾌해지고 경각심도 생겨났다는
비노바 바베.
세상의 소리를 더 듣지 않으려고
보청기마저 빼버리고,
스스로 최후를 향해
음식을 줄이고 말도 줄여간 사회개혁가였지만
그대도 마지막까지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신적인 통찰력과 과학과 믿음
이라는 세 종류의 힘이 있으며,
모쪼록 진실과 비폭력
그리고 말의 자제라는
세 가지 원칙 안에서
세상 사람들이 일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차츰 음식을 줄여나갑니다.
행위를 줄여나갑니다.
말을 줄여나갔고 생각을 줄여나갔습니다.
마침내 침묵에 돌입했습니다.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할 뿐만 아니라
글을 쓰지 않는 것도 뜻한다.
나는 매일 잠자리에 들면서 죽는 연습을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죽을 때 해야 할 일을 오늘 하라,
즉시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비노바 바베는
1982년11월15일 오전9시30분에
‘호흡을 멈추었습니다.’
인도의 정신적 지주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다수 있지만
그중에 간디는 암살당했고
암베드카르는 병사했고
비베카난다 역시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이 순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에 비해
자신의 마지막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비노바 바베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책을 덮는데 가슴이 심하게 뛰었습니다.
심장이 그야말로 둥둥 요동을 쳤습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찾아온 증상치곤 무척 드문 일입니다.
아니, 이런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나는 책을 덮고 그대로 엎드렸습니다.
마구 뛰는 심장을
바닥에 대자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다시 반듯하게 누웠습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나는 이 책의 3분의 2정도를 읽을 때까지
그리 감동받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고 책을 덮었고
그리고 불평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역자의 문체가 별로라느니,
비노바 바베가
너무 처음부터 초인인 듯 행세한다느니 하면서….
하지만 책을 다 읽고서
그 마지막 페이지 여백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2007년 12월 28일 금요일 새벽 1시 20분,
내가 70세가 넘어서
꼭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책”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