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는 간다 / 채복숙
회사 앞 버스 역에는 언제나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신다. 자그마한 체구에 깔끔하게 빗어 올린 머리, 쪽걸상 같은 것을 놓고 앉아 뭔가 판다. 대충 보면 신발 깔개 같은 사소한 품목들이다. 할머니는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관계없이 날마다 나온다. 언제나 느긋한 표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으로 보아 아마 장사보다는 사람 구경이 재미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가 판매하는 상품들에 품목이 하나 더 늘었으니 그것이 바로 달팽이이다. 자그마한 법랑 대야에 달팽이 몇 마리가 들어있다. 대야 언저리에는 잎채소가 몇 장 걸쳐져 있다.
달팽이를 팔면서부터 할머니의 노점은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갸우뚱하고 한없이 신기한 눈길로 달팽이를 쳐다보는 어린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같이 한 손에는 핸드백을 들고 한 손에는 채소 구럭을 든 바쁜 아줌마들도 더러 보인다. 지어 키가 껑충한 사내들마저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도 있다.
오늘도 내가 타야 할 14선 버스는 10분이 되도록 오지를 않는다. 퇴근 시간인지라 사람들은 벌써 짜증을 내는 눈치다.
‘5선 버스는 벌써 세 번째로 오고 있는데 14선은 오늘 또 웬일이야. 어디에서 막혔길래……’ 저녁이 늦어질 것 같은 근심에 나는 언녕부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길이 또 달팽이에게 가 멎었다. 달팽이는 여전히 부지런히 우로 기어오른다. 그네들은 인간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여지껏 한 번도 달팽이가 그 대야를 나온 걸 본 적이 없다. 물론 정말 대야 밖으로 기어 나온다면 할머니가 도로 주워 넣을 것이다. 하지만 달팽이는 그렇다고 하여 결코 대야 밑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때가 없었다. 하얀 촉수를 하늬거리며 부지런히 기어오르는 달팽이를 보며 나는 저들은 달팽이인 주제에 왜 저렇게 애를 쓸까 하고 부질없는 생각에 잠겨본다.
우에 있는 못 가 본 다른 세계로 나가 보고 싶어서일까? 호기심? 대야가 너무 좁아서 큰물에서 놀고 싶어서일까? 큰 포부? 대야가 자신의 발전을 속박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님 원래 그냥 그렇게 기어나가는 것밖에 몰라서일까? 행동의 관성? 아니면 일탈을 시도? 아니야, 모르겠다.
14선 버스가 왔다. 사람을 얼마나 많이 박아 실었는지 문 열기조차 곤란하다. 버스 안 승객들은 이제 발 놓을 자리도 없는데 문은 왜 여냐고 기사에게 불만을 내뿜는다. 하지만 버스 밖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비집고 오르려고 아등바등한다. 퇴근 시간이면 아무리 기다려 봤자 버스마다 초만원일 것이 분명한지라 나도 사람들 틈에 끼여 가까스로 버스에 올랐다.
드디어 버스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무거운 짐을 가득 진 사람처럼 허걱허걱 가다가도 몇 발자국 못 가 빨간 불을 만나서 한참 쉬고…… 하여간 그래도 그냥 앞으로 간다.
문득 버스가 달팽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마다 이 시내에서 허걱거리며 다니는 버스, 다른 세계에로 가보고 싶어서도 아니고, 포부가 커서도 아니고 일탈을 시도하는 건 더구나 아니다. 그냥 그러한 사명이 주어졌기에 그렇게 가고 있는 것뿐이다.
그럼 버스 안에 가득 찬 이 사람들은……?
결국은 나도 달팽이다. 내 삶의 궤적에서 날마다 바쁘지 않으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달팽이이다. 때론 기뻐하기도 하고, 때론 불만하기도 하고, 때론 일탈을 꿈꾸기도 하면서도 지구를 에워싸고 도는 저 달처럼 부지런히 내 삶의 궤적에서 움직인다.
달팽이가 부지런히 기는 것처럼 인간도 그저 사는 거다. 부지런히 기어가면 뭔가 새로운 것에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뭔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감을 안고 부지런히 간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운명에 매여 있는 것 같다.
뭔가 하지를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남에게 뒤떨어질 것 같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남보다 밑질 것 같고…… 그래서 언제나 뭔가를 하려고 시도하는 인간들, 그래서 현대인은 언제나 초조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운명의 큰 손은 그런 걸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달팽이를 파는 할머니가 현자인 것 같다. 하하하~
내 보기에 할머니는 방관자이다. 그래서 현자인 것 같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이상 할머니도 달팽이에 불과할 것이다.
달팽이는 간다. 나도 간다, 어디론가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