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들의 공통된 인사 특징이 있다. 사전에 총리, 장관직에 오를 것이란 소문이 언론을 통해 구체화하면 유력 인사라도 결국엔 후보에서 낙마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를 가리켜 ‘찍히면 죽는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역대 정권은 내각 구성과 관련해 함구했고, 유력 후보들도 “제발 날 거론하지 마라”며 손사래를 치게 마련이었다.
최근 야구계 공식 ‘감독 후보는 곧 낙마’
‘찍히면 죽는다’는 비단 정치계만의 일은 아니다. 야구계도 마찬가지다. 감독 인선 때가 그렇다. 구단이 감독 인선을 놓고 고민할 때 ‘누가 유력 후보’라는 말이 도는 순간 그들 가운데 ‘열이면 아홉’은 후보군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2011년 NC는 창단 감독을 선임하려고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런 NC를 보며 야구계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과 김인식 전 한화 감독, 김재박 전 현대 감독을 유력한 감독 후보로 꼽았다. 세 감독 모두 베테랑 사령탑인 데다 능력이 출중해 유력 후보로 꼽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세 감독이 유력 후보로 꼽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NC는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을 창단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당시 NC 관계자는 “세 전 감독이 여러 통로를 통해 유력 후보군으로 지목되면서 되레 세 분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 쪽에서 부담을 드린 것 같아 죄송했다”며 “세 분께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혹여 ‘감독 내정설’ 같은 소문이라도 날까 봐 조심스러웠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화 감독 선임 때도 ‘설’이 파다했다. 야구계와 언론은 김성근 원더스 감독, 김재박 전 현대 감독, 조범현 전 KIA 감독, 이정훈 천안북일고 감독을 유력 후보로 봤다. 두 김 감독과 조 전 감독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고, 젊은 선수 육성에 일가견이 있어 ‘무리가 없다’는 평이 많았다. 이 감독은 “모그룹이 점찍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며 한때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새 사령탑은은 김응용 전 삼성 감독 차지였다. 한화 관계자는 “사전에 언론을 통해 이런저런 야구인들의 이름이 회자되며 후보군에 변화가 생긴 게 사실”이라며 “김응용 감독의 이름이 전혀 회자하지 않아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같은 해 넥센, 롯데 감독 선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김인식, 김재박, 조범현 전 감독 등 단골 후보들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때도 단골 후보들은 낙마했고, 넥센 새 사령탑은 ‘의외의 인물’로 불린 염경엽 주루코치로 결정됐다. 롯데 감독 역시 새 사령탑으로 김시진 전 넥센 감독이 선임되며, 언론에 회자된 단골 감독 후보들은 또 한 번 물을 먹어야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야구계와 언론이 지목한 감독 후보들은 최종 낙점에서 제외되는 것일까. 모 단장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통 단장, 사장이 감독 후보군을 추려 모그룹에 보고한다. 모그룹 회장이 이 가운데 한 명을 낙점하는데 대개 구단 수뇌부의 의견을 많이 참조한다. 헌데 보안이 깨져 감독 후보군이 누설되면, 여기저기서 ‘그 사람은 안 된다, 이 사람이 적격자다’하면서 비토와 추천이 동시에 들어온다. 중간에 예상 밖 인물이 감독이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언론의 반대다. 2011년 롯데 감독으로 김재박 전 감독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 때 연고지 언론사에서 이른바 ‘김재박 불가론’을 펼쳤다. 양승호 감독이 선임된 것도 그러한 움직임과 분명히 관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구단이나 모그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인사’가 감독으로 선임되는 걸 반긴다. 그래야 ‘참신한 인사’라는 평을 듣기 때문이다.”
단골 감독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는 야구인들이 “더는 내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이유는 자명하다. 단골 후보로 거론되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만년 감독 후보로 꼽히는 모 야구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감독 후보 기사를 쓸 때 앞으로 내 이름은 빼달라”고 요청했다.
“감독 선임 기사에 내 이름이 나갈 때마다 기자들은 나보고 ‘감독님을 도와드리려 기사를 썼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역으로 ‘정말 날 도와주고 싶으면 내 이름은 거론하지마라’고 부탁한다. 왜냐고? 떨어지는 것도 한 두번이지, 자꾸 (감독이) 안 되면 사람들이 ‘저 사람 무슨 하자가 있나?’ 생각하지 않겠나(웃음).”
감독 후보로 꼽히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몇 년째 감독 선임 때마다 ‘유력 후보’로 등장하는 김재박 전 감독은 “감독은 해당 구단의 최고 결정권자(구단주)가 결정할 문제”라며 “자꾸 감독 후보에 오르고, 떨어지길 반복하다 보니 다소 아쉬울 때도 있지만, 주변에서 날 좋게 평가하니 자꾸 이름이 거론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진 않다”고 밝혔다.
다른 단골 후보 감독 역시 “감독 후보로 오르는 건 그만큼 내 지도력을 높이 산다는 뜻이 아니겠느냐”며 “지도자로서 무능력했다면 후보군에도 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두 감독 모두 입을 모아 “자칫 감독직에 연연한다는 인상을 줄까 봐 항상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KT 초대 사령탑을 둘러싸고 야구계는 여전히 단골 감독 후보들을 유력 후보로 꼽고 있다. 과연 이번에도 단골 후보들이 낙마할지, 아니면 이번엔 야구계의 예상이 맞아 떨어질지, 결과는 8월이 되면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