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36) - 어버이날에 성찰한 우정과 사랑
오늘(5월 10일)은 윤석열 20대 대통령의 취임일, 아무쪼록 국리민복의 대임을 충실하게 수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0여 년 전 재임하던 대학의 학생들이 발행하는 책자에 ‘성공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는 제목으로 역대대통령이 취임 초의 강력한 다짐과는 다르게 실패한 대통령으로 막을 내리는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 이후의 대통령들도 마찬가지, 부디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시라.
약동하는 5월의 푸르름, 지난 주말 분당 중앙공원을 바라보며
어버이날이 낀 주말, 1박2일의 다채로운 일정을 의미 있게 보냈다. 어버이날 전날이 생일이라 아들에게서 온 전화, ‘주말에 서울의 외사촌결혼식에 참석하시려면 하루 전에 올라오셔서 우리랑 함께 보내시지요.’ ‘고맙네. 기왕이면 의미 있는 스케줄을 갖도록 도와주게나.’
그래서 정한 것이 1년 전 타계한 자형의 묘소를 찾는 일과 몇 년째 거동이 불편한 희귀질환으로 투병하는 친구를 방문하는 것, 두 군데가 아들집에서 가까운 용인지역인 점을 고려한 것이다.
1. 신실함의 본이 되는 친구를 찾아서
토요일(5월 7일) 오전에 청주를 출발하여 용인의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낮 12시, 아들의 승용차로 곧장 양지면에 있는 자형의 묘소를 찾았다. 어버이날을 앞둔 주말이어서인지 공원묘지가 붐빈다. 평생을 성실과 근면으로 일관한 자형의 삶을 기리며 기도와 묵념으로 인사를 가름, 노변의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수지구청 인근의 친구 집으로 향하였다. 아내랑 함께.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 1960년 입학이니 60년 넘는 막역지우인데 코로나 여파로 만난 지 3년이 지났다. 아내와도 남매처럼 친근한 사이, 오랜만의 상봉에 눈물이 핑 돈다. 잠시 환담 후 친구가 정성들여 정리한 앨범과 20여 년 전 친구의 정년을 맞아 내가 쓴 편지글, ‘훌륭한 삶, 아름다운 정년’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내놓는다. 차분하고 꼼꼼한 성품대로 가지런히 정리한 앨범에 친구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앞부분에는 고등학교 때 교복차림으로 둘이서 찍은 사진이 선명하다. 내게는 없는 사진, 이를 스마트폰에 담았다. 내가 쓴 책자의 표지도 함께. 나는 칠순을 맞아 친구부부들과 함께 한 해외여행 사진과 기록 일부를 담은 화면을 카톡으로 건네기도.
친구의 앨범에서 찾은 고등학생 때의 풋풋한 모습
친구 부인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 자리를 비우고 인근에 사는 딸 내외가 손님을 맞는다. 연구소장의 직함을 가진 사위는 어느새 내가 쓴 편지글을 다 읽고 장인과 내가 주고받는 지난 시절의 추억담이 편지글 속에 다 적혀 있다며 우리들의 대화를 흥미롭게 경청한다. 친구는 투병 중에도 아직 어린 손자에게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전하고자 200여쪽 넘는 자서전형식의 기록을 이어가는 열정과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역작으로 마무리되기를.
내가 쓴 편지글의 일부분,
‘2004년 12월, 42년간의 공직생활을 영예롭게 마감한 자네의 노고를 위로하고 공적을 치하하는 뜻을 담아 이 글을 쓰네. 며칠 전 백남근 사장내외가 정성으로 마련한 만찬장에서 주마등처럼 흘러온 45년 우정과 60년 세월을 뜻깊게 자축하고 회상하였거니와 자네를 비롯하여 우리는 성실하고 근면하게 이순(耳順)의 나이까지 살아오지 않았는가?
소년이 늙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少年易老 學煖成)는 말처럼 60년 세월이 이처럼 빠르게 다가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터, 우리 모두 크게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떳떳하게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에 보람과 긍지를 가져도 좋으리라 여기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런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잠언 22장 29절)처럼 우리를 대표하여서 나라가 그 공을 인정하는 근정훈장을 받고 언론에서도 정년에 이르기까지의 공직생활을 크게 상찬(문화일보 2004. 8. 24, ‘41년간 “공직은 돈보다 사명감“ 소신 지켜)함이 이를 확인하는 일이라 여기네.
만리동에서 기거하며 효창공원 언덕에 살고 있던 나와 매일 등‧하교 길을 함께 하던 일, 반 대항 400미터 계주경기에 함께 뛰었던 일, 간장 팔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가 허탕했던 일 등이 오랜 세월에도 잊히지 않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음이 대견하게 느껴지네.
사랑하는 친구여,
그 동안 수고하였네.
영예롭게 정년을 맞이함이 자랑스럽네.
청렴하고 근면하게 살아온 삶이 훌륭하였네,
남은 때 더욱 건강하고 보람된 날들이기를.’
잠시 뒤 이전에 자주 만나던 친구 둘이 합류하여 두 시간 넘게 담소를 나눈 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언제 다시 만나려나.
다음날 친구가 보내온 메시지, ‘시간 내서 방문해주어 고맙네. 친구란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어제 만난 후부터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 속에 빠졌네. 방문한다는 연락 받고 가슴 설레서 밤잠을 설쳤다네. 어제 만남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네! 말로 표현을 제대로 못해서 자네들 손을 꼭 쥐며 눈물을 보여 미안하네. 모두 건강하기 바라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언 17장 17절)
정년을 맞은 친구에게 쓴 편지글의 표지
2. 가족은 행복한 삶의 원동력
분당의 아들 집에 돌아오니 오후 6시, 가족들은 외식을 권하는데 밖에 나가기가 번거로워 가까운 시장에서 사온 별미음식으로 저녁을 들며 차분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중학생 손녀의 메시지,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항상 본이 되는 언행으로 저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주셔서 감사해요~’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손자의 하트메모, ‘할아버지,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엄청 사랑합니다. 그동안 돈도 많이 주셨죠? 정말 감사합니다.’ 으레 있을법한 인사인데도 막상 글로 접하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케이크를 자르며 이어진 손자와의 대화, ‘할아버지 생일이 어버이날 바로 앞이네요. 할아버지가 태어날 때도 그랬나요?’ ‘아니, 어버이날은 그 후에 생겼단다.’ ‘어린이날은 언제부터 생겼나요?’ ‘어린이날은 100년 전에 만들어졌지.’ ‘아, 그렇군요.’ 아들은 오래전에 선물로 준 손목시계가 낡았다며 새 것을 마련하겠다고. 사랑하는 후예들아, 고맙다. 건강하고 지혜롭게 성장하라.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잠언 17장 6절)
어른의 면류관인 손자와의 대화
다음날(5월 8일) 12시, 충무로의 한국의 집에서 치르는 처남의 둘째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혼례식장이 고즈넉하고 식전의 사물놀이가 우렁찬 가운데 치러지는 백년가약의 전통혼례가 아름답다. 피로연장을 찾아 인사 올리는 신혼부부에게 인디언의 결혼축시 ‘두 사람’을 덕담으로 건넸다. 부디 행복한 가정 이루라.
‘두 사람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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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을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한국의 집에서 치른 전통혼례 모습
결혼식장에서 나오니 오후 1시 반, 용산의 국립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오랜만의 박물관 행, 역사와의 대화가 뿌듯하다. 박물관 1층에 크게 써 붙인 김구 선생의 염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그래서 진정한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박물관 옆의 한글박물관도 돌아본 후 청주에 돌아오니 저녁 7시, 알차게 보낸 주말이 값지다. 매순간 뜻깊은 날들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