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추사는 수선화를 왜 그리 좋아했을까
출처 한국경제 :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201136068i
수선화(水仙花)
날씨는 차가워도 꽃봉오리 둥글둥글
그윽하고 담백한 기풍 참으로 빼어나다.
매화나무 고고하지만 뜰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 핀 너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 김정희(1786~1856) :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화가. 호는 추사(秋史), 완당(阮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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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 속에 수선화가 피었습니다. 제주 한림공원에는 수십만 송이나 피었습니다. 제주에 자생하는 ‘제주수선화’보다 하얀 꽃받침에 금빛 망울을 올린 ‘금잔옥대 수선화’가 더 많군요. 눈발 속에서 여린 꽃잎을 피웠으니 설중화(雪中花)라 할 만합니다. 똑같이 눈 속에 피는 꽃이지만 매화나 동백과 달리 몸체가 가녀려서 더욱 마음이 끌립니다.
8년 넘는 유배생활의 반려식물
추사 김정희가 유배 살던 대정읍 일대에도 수선화가 만발했습니다. 대정향교에서 안덕 계곡까지 이어지는 추사유배길 또한 길쭉한 수선화밭으로 변했지요. 추사는 54세 때인 1840년 이곳에 와 8년 넘게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그 외로운 적소의 밤을 함께 보내고, 간난의 시간을 함께 견딘 꽃이 수선화였죠. 그는 수선화를 워낙 좋아해서 여러 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문집에 담긴 시 ‘수선화(水仙花)’에서는 ‘해탈신선’이라고 극찬할 정도였죠.
그가 수선화를 처음 본 것은 24세 때였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연경(베이징)에 갔다가 이 꽃의 청순미에 매료됐다고 해요. 43세 때에는 평안감사인 아버지를 만나러 평양에 들렀다가 중국에 다녀온 사신이 아버지에게 선물한 수선화를 달라고 해서 남양주의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선물했습니다.
다산은 감탄하며 ‘어린 손자는 처음 보는지라 부추 잎 같다고 하고/ 어린 여종은 마늘 싹이 일찍 피었다며 놀란다…’는 시로 화답했지요.
추사는 이로부터 10여 년 뒤 유배지 제주에 닿았는데, 놀랍게도 수선화가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들판을 가득 메운 수선화를 보고는 감격해서 친구 권돈인에게 편지를 썼죠.
“수선화는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 산과 들, 밭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하기도 합니다.”
꽃이 제자리를 얻지 못하니 안쓰러워
그러나 농부들이 소와 말 먹이로 쓰거나 보리밭을 해친다며 파내어 버리는 걸 보고는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수선화를 보면서 그는 절해고도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돌아봤을 겁니다. “꽃이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안쓰럽다”고 한탄한 것도 이런 까닭이겠지요.
수선화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입니다.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했죠. 소년이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빠져 죽은 자리에서 수선화가 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꽃말이 ‘자아도취’ 또는 ‘자기애’이지요. ‘나르시시즘’도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나르키소스 신화는 수많은 이야기로 변주됐죠. 그중에서도 오스카 와일드가 각색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요정들이 찾아와 호수를 위로했죠. 그러자 호수는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아니, 그대만큼 잘 아는 이가 어디 있겠어요?” 호수는 한참 뒤 입을 열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아름다운지는 몰랐어요. 저는 그의 눈에 비친 제 모습만 보았거든요.”
나르키소스와 호수가 서로 ‘자기만’ 생각했다는 거죠. 그만큼 서로 외로운 존재였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정상적인 것과 병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너무 지나쳐 자기밖에 모르는 지경이 되면 ‘자기애적 인격 장애’에 빠진다고 분석했지요.
꽃을 피우고도 열매를 맺지 못하니…
흥미로운 건 나르키소스가 병명뿐만 아니라 약 이름으로도 쓰였다는 점입니다. 수선화의 어원인 ‘나르코’에서 진통제나 마취약을 뜻하는 나르코틱스(narcotics)가 나왔죠. 진통연고와 나르키소스유(油)도 오랫동안 쓰였습니다. 동양에서는 하늘에 있는 것을 천선(天仙), 땅에 있는 것을 지선(地仙), 물에 있는 것을 수선(水仙)이라 부르며 신선한 약으로 활용했지요.
수선화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구근식물이어서 뿌리로만 번식하지요. 아무리 꽃이 고와도 꽃가루받이를 못하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수선화는 참 외로운 꽃입니다. 씨앗 하나 남기지 못하고 땅속줄기로만 후세를 이어가야 하니 외로움이 끝도 없지요.
180년 전 추사의 심정이 그랬을지 모릅니다. 깊은 고독을 견디는 땅속뿌리의 자세로 그는 ‘세한도(歲寒圖)’를 그리고,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추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따뜻하게 달래 준 것이 수선화였으니, 둘은 한 몸에서 난 꽃과 뿌리인 셈이지요.
조금 있으면 제주뿐만 아니라 남부지방 곳곳에 수선화가 만발할 것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우리 마음의 밭에도 꽃 향이 묻어나겠지요. 그 향기 속에는 우리도 모르는 자기애의 얼룩과 세속의 먼지들이 함께 묻어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수선화 꽃잎에 눈을 맞춰 봅니다. 그해 겨울 눈 속의 수선화로 시를 읊는 추사의 모습과 올겨울 눈 속의 수선화로 새 거울을 삼는 제 모습을 그 위로 천천히 겹쳐 봅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빛viit명상
빛viit의 터
찻방 이야기 4
소박하고 그윽한 야생의 향음香音,
풀꽃차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나옹선사懶翁禪師 -
가끔 번뇌가 일어나고 짜증이 섞여 오면
고요히 눈을 감고 이 시를 더듬는다.
그러고는 뒷밭에 나가 풀꽃 한두 송이 얻어와
보글보글 끓인 물을 약간 식혀 띄우면
절로 그 향에 취해
그 소박하고 그윽한 야생의 향음香音이 지나가면서
번뇌도 짜증도 삼켜버린다.
출처 : 빛viit향기와 차茶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132
첫댓글 겨울 안에 피어난 수선화의 미소가 참 곱습니다.
그림찻방 속 여리고 작은 풀꽃에 깃든 소박하고 그윽한 야생의 향음을 떠올려봅니다.
감사로 마음에 꼭 담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수선화를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 시작도 감사드립니다.
수선화 애찬론의글과 귀한
빛글인 "소박하고 그윽한 야생의 향음香音, 풀꽃차"를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림찻방 속의 야생의 향음에 수선화가 겹쳐 떠 오릅니다. 나옹선사의 시에서 마음의 편안함을 느껴봅니다.
수선화에 대해 더 잘 알게되어 참 감사합니다.
천선, 지선, 수선의 수선화... 나르시즘에 빠진 나르키소스와 호수이야기에서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배우게된 아침입니다.
가늘고 예쁜 수선화와 추사 김정희
소박하고 그윽한 야생의 향음 풀꽃차
감사합니다.
나옹선사님의 시를
읽으며 학회장님께서
내서주신
풀꽃차의 향음에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풀꽃차의 향음을 그려봅니다 ㆍ감사합니다
추사 김정희 70세까지 사셨군요.
그토록 좋아하고 사랑한 수선화
향은 천상의 향기처럼 너무 좋습니다..
수선화 꽃색상도 흰색, 노란, 핑크,
진핑크, 보라색 여러 가지입니다...
수선화에 얼킨 이야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소박하고 그윽한야생의 향음 풀꽃차
빛글 마음에 닿아 나옹선사의 일생을 찾아 공부해 보았습니다. 감사마음 올립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빛명상 감사합니다
물 같이 바람같이… 전 빛처럼, 무지개처럼, 바람 같이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지러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빛의 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풀꽃차의 향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옹선사의 글로 마음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산에 들에 피어난 수선화 예쁘겠습니다.
봄바람에 흔들려도 아름다운 꽃송이는 든든한 뿌리가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천선 지선, 물에 있어서 수선이었네요.
겨울 눈속의 수선화가 참으로 곱습니다.
수선화 이르만으로도 신선함이
닥아오는 꽃과함께 풀꽃
마음에 따느함이 느껴옵니다
감사합니다
제주에는 겨울에 수선화가 피는군요.
수선화와 추사김정희에 얽힌이야기 ...애환이 서려있네요.
빛터에서 풀꽃차의 향음을 맛보고 싶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명상터, 그림찻방이야기... 귀한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수선화는 열매들 맺지 못하는 외로운 꽃입니다. 땅속줄기로만 후세를 이어가야 하니 외로움이 끝이 없지요.
유배지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님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풀꽃의 향음이 그윽하고 번뇌와 짜증을 삼켜버리는 찻자리가 연상됩니다.
감사합니다.
제주도에 수선화가 그렇게 지천으로 피어있었군요.
그 아름다움도 가치를 모르는 농부들에게 잡초처럼 여겨졌으니.
고귀한 꽃의 아름다움을 사랑한 추사에게 어떤 느낌이었을지...
한송이 야생화에도 사랑과 정성을 쏟아주시는 학회장님의 사랑이 생각납니다.
꽃은 우리에게 참 많은 행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자연에게 늘 고맙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풀꽃차의 향음~~*
바람결에서 실려오는 듯 감미롭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수선화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유배지에서 만난 꽃과 고뇌속의 김정희는 뛰어난 작품을 남겼습니다.
풀꽃차 향을 맡아보고 싶습니다.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주도의 수선화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림찻방의 소중한 글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마음에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선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감동합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수선화 그이름만으로도 아름다움울 봅니다
감사합니다.
수선화 사진 감사합니다.
노랗고, 하얀 수선화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우주근원에 감사합니다.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말없이 살라하고 티없이 살라하네~
소박한 야생의 향음~
감사합니다.
귀한 빛의 글 볼수있게해주셔서 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제주에서 유독 아름다웠던 수선화가 생각납니다.
꽃을 피우지못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구근식물의 외로움과 깊은 고독을 닮은 추사김정희의 삶도 떠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
번뇌와 짜증도 삼켜버리는 소박하고 그윽한 풀꽃차~ 아름다운 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