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라는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소설가 류소영이 첫 소설집 『피스타치오를 먹는 여자』를 낸 뒤 두 번째 소설집을 내기까지 걸린 시간이기도 하다. 첫 소설집을 내고 그녀는 결혼생활과 육아, 교직생활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틈틈이 소설을 써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개미, 내 가여운 개미』다.
이번 소설집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상실’이다. 우울한 책이겠거니 생각하면 금물. 총 8편의 단편을 실은 이 소설집에는 상실, 부재를 다루면서도 경쾌함을 잊지 않은 작품도 있다. ‘윤미와 춤을’, ‘꽃마차는 달려갑니다’가 그렇다.
12년 만에 소설집을 낸 기분이 어떤가, 첫 소설집을 낸 이후 어떻게 지냈나.시원하고 기쁘다. 쑥스럽기도 하고. 첫 소설을 냈을 때가 결혼한 지 두 달이 지난 때였다. 이제 열한 살, 아홉 살 된 두 딸아이를 키우고, 중학교 8년을 거쳐 고등학교에서 7년째 근무하며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짬짬이 소설도 썼고. 더 바쁜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내 생애 가장 바쁘고 에너지를 많이 쓴 때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출간된 두 번째 소설집 『개미, 내 가여운 개미』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렸다. 그중 어떤 작품에 가장 애착이 가는가.첫 번째 수록작 「물소리」다. 나는 항상, 줄거리로 간추릴 것도 없는, 정말 별것 아닌 평범한 글감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글을 쓰고자 한다. 독자가 어떻게 읽을지 모르겠지만, 그 목표에 가장 근접한 글이 아닌가 싶다.
이소연 문학 평론가도 지적했듯, 이번 단편집은 ‘상실’과 ‘부재’로 가득 차 있다. 「물소리」는 댐 건설로 사라지게 될 공간을, 표제작인 「개미, 내 가여운 개미」는 폭식증에 시달리다 고인이 되어버린 형수의 동생을, 「옷 잘 입는 여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이 든 심야에 일하는 사람을, 「또 밤이 오면」은 가출한 시어머니를 그렸다. 이렇듯 상실과 부재를 집중적으로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지.무언가 결여되어 있을 때 사람이 근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고독이나 아집, 진정한 내면 같은 게 잘 드러나지 않나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도 늘 일상의 빈틈을 즐겨라, 심심해져라, 하고 말한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나이에 비해 좀 구식인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스마트폰이 싫다. 일상에서 부재한 것, 빈틈, 공허한 순간 같은 걸 아예 봉쇄시키는 괴물 같아서다.
책 표지에 나온 소개대로, ‘서울의 국립대’를 나왔고, 지금은 교단에 있다. 공부를 잘했을 것 같은데, 학창 시절이 궁금하다.머리는 좋은 것 같지 않고, 공부는 그냥 열심히 했다. 어린 마음에 억척스런 사투리를 쓰는 부산이 싫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유학비와 사립대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부산을 뜰 수 있는 방법은 국립대에 진학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한 것 같다. 하지만 문학 작품은 꾸준히 읽었다. 고등학교 연합 문학 동아리의 열성 멤버였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작품에 한 번 정도는 바다가 등장할 줄 알았다. 그런데 「꽃마차는 달려갑니다」에서 아주 잠깐 공간적 배경이 된 것을 제외하면, 작품 대부분이 건조한 도시가 배경이다.내 머릿속에 있는 부산은, 뭐 물론 지금은 어디서 부산 사람을 만나면 마냥 반갑고 기쁘지만, 지독한 교통 체증, 문화의 불모지, 밀수, 사투리, 생활의 맨얼굴…… 같은 것으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서울을 동경했고,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는 한강변에 나가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조계사, 계동과 가회동 일대의 골목길, 한강, 대학로 같은 곳들은 애착을 갖는 공간들이다.
등단 이후 두 권의 소설집을 냈다. 장편소설을 쓰고 싶은 욕심은 없는지 궁금하다.문학 활동을 시에서 출발해서인지 소설도 항상 시적인 착상에서 출발한다. 특별히 장편소설에 대한 욕심이 있다기보다는 언젠가 그에 맞는 호흡을 갖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출판계, 문학계에 ‘문학의 위기’ 담론이 심상치 않게 나온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이 점점 더 책을 안 읽고 소설을 안 읽는다는 내용이다. 12년 전에 소설집을 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이런 분위기를 체감하는지. ‘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보나.원래 구석자리가 문학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좀 섭섭하긴 하다. 남동생이 모 통신사에서 LTE 폰을 연구하는 연구원인데, 그런 거 자꾸 연구하지 말라고 농담조로 말하곤 한다. 내 소설에 대한 반응도 물론 피부로 느낀다. 연성화되어 발을 맞추기보다는 차라리 좀 더 깊어지고 치열해져서, 변화된 문화적 환경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감당해야 할 것 같은데…… 어렵다.
집필 활동과 교직 생활만 해도 매우 바쁘겠다. 혹시 특별한 취미생활이 있다면?작가 소개에도 썼듯이 야구 경기를 시청하거나, 직접 응원하러 가는 것을 즐긴다.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장 정교한 스포츠가 야구가 아닌가 싶다. 그것 말고도 인체가 건강하게 살아 움직이고, 무언가 전략이 돋보이는 경기를 지켜보는 게 좋다.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의 팬이기도 하다.
패색이 짙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응원하는 게 좋다고 했다. 올 시즌 전반기를 롯데가 6위로 마쳤다. 올해 프로야구, 어떻게 보나.이 인터뷰를 쓰는 순간 5위로 올라갔다. 올해 좋은 전력이 아닌데 항상 기를 쓰고 100%를 보이려고 하는 모습을 좋아한다. 늘 열심인 유격수 신본기 선수, 2루수 정훈 선수의 팬이고,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애증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작가와 즐겨 읽는 장르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가리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한참 열심히 쓰셨을 때의 최윤 선생님, 그리고 요즘 활발히 쓰고 있는 작가로는 편혜영, 강영숙을 좋아한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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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 내 가여운 개미 류소영 저 | 작가정신
과거에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폭식증을 앓고 있는 여성, 큰 체구에 어색한 몸매를 가졌으나 개미처럼 위축된, 신중한 몸가짐을 한 그녀의 흔적을 더듬는「개미, 내 가여운 개미」,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옷차림을 강박적으로 고수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옷 잘 입는 여자」, ‘입안에 빨대 많이 꽂아넣기’ 종목에 출전하는 한 남자에 대한 기록을 담은「기록」, 자신에게 걸려오는 유령 같은 전화의 목소리를 통해 전화번호의 전 주인 ‘강미현’의 정체를 이모저모 추리해가는「기억할 만한 지나침」등 우리의 일상을 류소영 특유의 문체를 통해 감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