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내 딸”
부천‧춘천 유가족, 당사자 눈물로 호소
국제규범의해 격리‧강박 “즉각 폐지해야”
정신의료기관 문제점‧인권옹호 위한 토론회
서미화‧김예지 의원 정신건강법 개정안 발의
‘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의 문제점 및 인권옹호시스템의 필요성’ 국회 토론회에는 정신병원 사망자 유가족과 당사자들이 직접 참석하여 현실을 고발하였다. 사진 김진이
“제 딸은 안타깝게도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다가 부천 W진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방송에 나오는 유명 의사가 있다는 곳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우리 딸은 입원한지 2주일만에 죽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딸이 입원 당일부터 1인실에 감금하고 묶인 채로 있었으며, 죽는 날까지 묶인 채로 약을 먹이는 모습을 병원 영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사망 당일 딸이 너무 아프다며 ‘119를 불러달라’고 하였는데도 1인실에 가두고, 소변을 쌌을 때도 부모에게 기저귀를 사오라고 시켰던 곳이 이 병원입니다.”
‘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의 문제점 및 인권옹호시스템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토론회가 국회 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토론회에서 부천 W진병원 사망자의 유가족은 “병원에 있는 환자나 정신질환자, 노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인권이 결박당하는 치료 시스템을 개선해야한다”며 딸을 잃은 엄마의 고통과 아픔을 전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법안 개정과 정부의 정책 변화를 이끌기 위한 노력을 약속했다. 사진 김진이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참석한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정신병원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김진이
이날 토론회는 민주당 남인순‧서미화, 국민의힘 김예지, 조국혁신당 김선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이 주최하고 (사)온율,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법무법인 디엘지,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가 주관했다.
토론회에는 부천 유가족에 이어 춘천예현병원 격리‧강박 사망 피해자 유족들도 참석하여 증언하고, 진상규명과 정책 변화 등을 요구했다.
“저는 춘천예현병원에서 251시간 50분을 강박당해 격리실 침상에서 호흡정지된 채 발견되어, 2022년 1월 8일 6시 50분 사망한 피해자의 유가족입니다. 춘천예현병원은 사망의 위험이 높은 장시간 강박에 대해, 피해자가 투약을 거부하며 자해 위험이 있어 강박이 불가피했고, 정당한 치료였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2차 가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CCTV 영상을 확인하면 피해자의 자해 위험은 없었고, 의료진 다수가 인권유린을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을 밝히기 위해 CCTV 영상을 확인 확보하는 데도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 2022년 1월 8일 일어난 사건이 2024년 7월 1일이 돼서야 언론을 통해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부천 W진병원 희생자 가족은 조속한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사진 김진이
춘천 정신병원 희생자 유가족은 “강박의 문제는 단순히 의료수가, 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이용하여 생명을 경시한 춘천예현병원의 의료진의 비윤리적 인권 인식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증언문은 신석철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센터장이 대독했다.
조현병 환자로 격리‧강박을 경험한 박혜원 송파동료지원쉼터 이용당사자는 “2024년까지 8번의 입원을 경험했다. 동물을 가두는 곳처럼 작은 철창이 있는 독방에 악취가 진동했다”며 “갇혀있는 3일 동안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어머니가 실종신고를 하고, CCTV를 통해 찾지 않았다면 계속 그 격리실에 갇혀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당사자인 반희성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센터장은 “두번의 강제 입원을 경험하였다. 경찰서에서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부터 팔다리를 사정없이 꺾어서 꽁꽁 묶어 병원으로 가면서 화물이 된 기분이었다”며 “후유증으로 은둔형 외톨이로 10년 가까이 지내다가 지금 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강박은 인권을 말살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김예지 국회의원은 “2022년 사이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정신의료기관 내에서 격리시키거나 묶는 등의 신체적 억압으로 인한 인권 침해 사건 관련 결정례는 총 22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또한 2022년 2, 3차 한국정부 심의에서 격리시키거나 묶는 등의 신체적 억압문제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를 즉각 중단시킬 것을 권고했다”며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토론회의 의견을 듣고 입법적, 정책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서미화 국회의원은 “2019년부터 최근 발생한 정신병원내 사망사건과 관련한 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는 정부가 정신의료기관에서 정신질환자에게 행해지는 격리와 강박의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신체적 제한의 사유와 해제조건을 명확히 고지하도록 하며, 관련 규정을 위반할 경우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며 “최근 발생한 춘천, 부천의 정신병원에서 격리‧강박으로 사망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발제자로 참여한 정제형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국제인권규범에 따라 격리와 강박은 모두 폐지돼야 한다. 특히 강박은 과도한 신체적 제한이자 쉽게 학대와 폭력으로 연결되어 2차적인 피해를 양산하고, 치료적 방법으로서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의료적 전문가에게만 접근이 허용된 정신의료기관에 대해 강제입원된 환자들의 처우, 강제적 치료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그 실태를 점검받고 감독받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23일 정신의료기관 격리‧강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토론회는 많은 피해자, 시민, 기자들이 참석하여 관심을 나타냈다. 사진 김진이
김강원 법무법인 디엘지 공익인권센터 부센터장은 “정신질환자 권익옹호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신의료기관에 대한 모니터링, 인권침해 상담 및 조사, 법률지원 등을 담당한 권익옹호프로그램을 제안”하며 “시스템이 정착되기까지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 유사 옹호체계의 선례를 참고하고, 관련 연구 용역을 발주할 것” 등을 정부 당국에 요청했다.
유가족 등 당사자들의 발언에 이어 위은솔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정책위원장(‘정신병원 사망사건의 내용 및 문제점’), 정제형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장애인 권리협약에 비춰본 국내 격리‧강박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김강원 법무법인 디엘지 공익인권센터 부센터장(‘정신질환자 권익옹호 시스템의 필요성 및 내용’)이 발제를 맡았다.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 박제우 정신건강사회복지혁신연대, 배광열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전략기획본부장, 유기훈 종로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센터장, 전명숙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 등이 지정토론을 이어갔다. 토론자들도 격리‧강박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처벌 조항을 만들고, 인권기반적인 비강압치료, 당사자 중심의 지역사회 지원체계의 필요성 등을 제시했다.
이정하 대표는 “정신의학적 응급상황에 대한 관행적 처치로 사용되어온 도구강박은 심리적 트라우마, 의학적 후유증, 당사자와 종사자의 부상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며 “세계보건기구는 고조완화기법 등의 중재기술을 활용한 비강압치료를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결 전략기획본부장은 “임신 5주차에 여성 당사자가 임신 사실을 알리고 약물 복용을 거부했으나 27일간 격리실에 강박하고, 강제 약물복용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면서 “강박을 법으로 금지, 격리실의 최저기준을 정하고 처벌조항을 만들 것, 부당한 입원‧이송‧노동 등 인권침해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독립적 기구의 필요성” 등을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다.
서미화 의원 등은 9일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법률안은 정신의료기관에서 정신질환자에 행하는 격리‧강박에 대한 실태를 관계공무원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격리 등 신체적 제한을 하는 경우 신체적 제한 사유와 해제 조건에 대해 정신질환자 등과 그 보호의무자에게 고지 의무를 신설함과 동시에 신체적 제한 외의 방법을 우선 적용하고, 관련 규정을 어길 경우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