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https://theqoo.net/1415836395
조선 초기 왕들은 다들 캐릭터도 확실하고 개성이 넘치지
1대왕 태조 이성계, 말해뭐해 고려 조선 최고의 장수이자 조선을 세운 왕
3대왕 태종 이방원, 잔인한것 같기도하지만 인간적이며 브레인+정치+자식농사 성공한 종잡을수 없는 매력 뿜뿜 카리스마 왕
4대왕 세종 이도, …업적과 행적 요약 불가능 “하늘이 내린 군주”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안되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아왔고 존경받을 왕
5대왕 문종, ‘그’ 세종의 아들이며 능력있지만 다사다난했던 왕
6대왕 단종, 조선역사상 가장 정통성있는(최초로 세손-세자-왕 코스 밟음)왕이자 비극적인 소년군주
러프하게 요약하면 이런 느낌일거야
그런데 여기서 2대왕인 정종이 생략되었는데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정종은 비교적 존재감이 없어ㅠㅠ

(힝..ㅠㅠ)
🤔정종은 단지 뛰어난 아버지와 뛰어난 동생을 둔 사람이었을까?
ㄴㄴㄴ절대 아니야 그는,

가장 이성계의 무인적 기질을 물려받은, 이씨가문의 명맥과 권력을 이어갈 차남이었으며

유교적 이념에 걸맞는 효도, 우애, 부부간의 의리를 지키는 왕이었으며

(전국온천여행 해피라이프~)
말년은 행복하게 보낸 왕이었어
정종이 어떤사람이었는지 알아보쟈~🤗🤗
1. 기질과 영향력

먼저 정종은 형제중 아버지 이성계의 기질을 가장 많이 물려받아 체구가 곰🐻처럼 강건했다고 해
그리고 이성계는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동북에서 활동했는데, 그래서 이성계의 아들들은 두가지 역할을 해줘야 했어
☝️첫번째는 수도인 개경에서 가문의 수장역할을 하며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영지인 동북에서 군사를 통솔하는 것을 물려받아 계속해서 가문의 명맥과 권력을 유지시키는 것이었어

첫번째는 장남인 이방우가, 두번째는 차남인 정종(이방과)가 수행했어
정종이 이 역할을 수행한데는 차남이어서도 있겠지만 단연 그 역할이 잘맞기도 했기 때문일거야

전쟁터에서 아버지와 동거동락한 방과의 영향력은 절대 작지 않았으며, 이성계가 유고시 군사들이 따를 사람들은 당연히 정종 이방과였어
물론 왕위에 오른 것은 태종의 뜻을 따른것이지만, 그게 무시받을만한 힘없는 형이여서는 아니란 얘기지
2. 소문난 효자
정종은 특히 효심이 깊었어ㅋㅋㅋ

1차 왕자의 난 때문에 밖에 난리가 났을 때 정종은 조상님께, 앓아누운 이성계의 쾌유를 비는 제사를 드리고 있다가 몸을 피했어ㅋㅋㅋㅠㅠㅠ
후에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이성계가

“방원이가 붙인 시위군이 말이 시위군이지 간수나 다름이 없다ㅠㅠ서러워ㅠㅠ”
이렇게 호소하자,

“우리 아버지가ㅠㅠ 말년에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이러는게 상왕에 대한 도리냐ㅠㅠ”
정종은 재상을 불러 눈물을 흘리며 설득해서 시위군을 철수시켰어ㅋㅋㅋ

이에 감동한 태조는 또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어ㅋㅋㅋ
“주상은 성격이 본래 순해서 이전에도 내 속을 썩인적이 없었지ㅠㅠㅠ(어떤 ㅅㄲ랑은 다르게..ㅠㅠ)”
* 아니 무슨 무인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울어? 너무 과장아닌가?라고 생각했을 수 있는데,
옛날에는 눈물은 감정이 격해지면 나오는것으로,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었음 (ex.기쁨이 극에 달함->기쁨의 눈물을 흘림)
그래서 조선시대 기록보면 선비들이 울며, 왕이 울며와 같은 눈물에 관한 기록이 많은데 과장이 아닐가능성이 높음
3. 남다른 우애
2차 왕자의 난때, 군사를 일으킨 이방간에게

“당장 군대를 해산하고 홀로 입궁해라. 내가 목숨만은 보장해주겠다”
라고 했어

하지만 형이 이정도 얘기한다고 포기할거면 애초에 난을 일으키지도 않았겠지.. 결국 이방원한테 지고, 이방원이 정종에게 그의 처분을 물었어
정종은 한참을 고민한뒤,
그래도 어려울 때 기댈 것은 피붙이 뿐이다 라며 선처를 구했어
결국 방간은 유배를 갔는데 유배가면서 토지와 백성들도 받았기 때문에 그냥 지역유지 된거임;
토산으로 유배갔다가 후에 안산으로 옮기도록하며, 정종이 방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진심으로 동생을 염려하는 마음을 느낄수 있어
“토산은 원래 우리의 영향력이 미치던 동북과 왕래하는 곳이고, 네가 전에 영솔했던 군사들이 사는 곳이, 네가 오랫동안 머물면 후에 반드시 말이 나올것이다. 안산에서 잘 지낼수 있도록 식읍을 줄 테니, 그곳에서 편히 지내도록해라, 정월 초하루면 서울로 와서 서로 생각하는 정을 펴도록 하자”
(=네가 원래 부리던 군사들이 있는 지역에서 유배하면, 뒷말이 나오지 않겠니? 안산에서도 잘 지낼수있도록 땅과 백성들을 줄테니 그곳에서 편하게 지내며 가끔 서울에서 형제끼리 얼굴보고 그러자~)
방간은 이 편지를 받고 갓을 벗고 머리를 두드리며 통곡했대ㅠㅠ 나같아도 현타올 타이밍에 손절해도 할말 없는 형이 왕인데도 이렇게 살뜰히 챙겨주면 포풍감동일 듯ㅠㅠㅠㅠ
4. 본처가 불임이었어도 끝까지 의리를 지킨 애처가

정종은 정안왕후 김씨와의 젊은 시절부터 함께한 정 때문에 아내를 더 얻을수 없다 하여 평생 해로한 애처가야
정종은 태종이 뭘하든 별 간섭이 없는 사람이 었는데 딱 한번 싫은 소리를 했다고 해
태종이 원경왕후 민씨와 사이가 나빠져 후궁을 또 얻겠다고 난리치자,

“나는 아들이 없어도 젊었을적의 정을 생각해 장가들지 않는데, 아들도 많으면서 왜그러냐?”
한마디 했다고 해
물론 한마디해도 태종은 후궁을 들였어 걸걸
그리고 정종의 본처인 정안왕후 김씨가 사망하자 태종은 정종을 위로하기 위한 잔치를 열었는데, 정종은 그 잔치에서 아내가 떠올라 잔치를 즐길 수 없다며 잔치를 파하고 돌아갔다고 해
아 물론 지금의 가치관과 그때의 가치관은 달랐기 때문에 아내와의 금슬과는 별개로 정종 첩실 소생의 자식은, 조선 왕조 랭킹 4위로 15남 8녀, 총 23명이었어👍 걸걸걸
이렇게 아버지에 밀리고, 비상한 동생에게 밀려 존재감 없는 조연으로 종종 묘사되곤 한 정종은 사실은
뛰어난 무장이었으며, 부모님을 섬기고 형제들을 챙겼어
아내를 사랑하고 의리를 지켰으며, 어쨌든 태종의 정통성에도 기여했고(만약 태종이 정종에게 양위받은 형태가 아니라 바로 왕에 올랐으면 모양이 썩 좋지 않았을 듯)
말년에는 전국을 재밌게 여행 다니며 해피라이프를 살았어ㅋㅋㅋㅋ
(태종이 세종이 세자가 된지 얼마 안되어 양위한 이유에 분명히 기여했다고 생각해ㅋㅋㅋ 권력을 그렇게 바랬던 태종이 행복하게 지내는 형을 보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하고 한번쯤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ㅋㅋㅋㅋ)
암튼 정종 이방과는 자신의 신념대로 열심히 살고, 잘산 왕이었어
끝~
첫댓글 흥미돈이다..! 여샤 재밌게 잘 봤어!!!! 근데 정종 첩실이랑 후궁이랑 다른거야?? 본인은 첩이랑 자식 23명이나 낳아놓고 태종한테 후궁 또들인다고 한마디하는게 내로남불같아서..
@행복한 죠르디 아하.. 그런거구나 ㅠ 첩실은 그냥 자손번식때문이었네..
정종...인생 따뜻하고 알차게 살았네..인생은 정종처럼..
내 꿈은 양녕대군이었는데 정종으루 바꼈어
맞아 정종도 멋있음 이성계가 하는 일에 항상 함께하고 ㅠㅠ
재밌다ㅋㅋㅋ정종 인생 부럽
정종은 확실히 태조를 따라서 제대로 된 무인 기질 있었던 듯. 게다가 우애도 좋고 효심도 깊으니 태종도 형님대우 한 것 같음..,, 아버지랑 동생이 너무 강렬한 서사여서 그렇지모...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