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쌍용차 해고 정당 판결...해고자들, “무참하다”
- 재판부, 정치적 판결로 2,000만 노동자에 비수 꽂아은 셈
▲ 사진은 트위터에서 퍼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이창근씨는 거짓말이길 바랬다고 했다. 옷자락을 헤집고 불어오는 찬바람에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제대로 들은 건지 몇 번이나 묻고 또 물었다고 했다. 눈을 찌를 듯한 밝은 대낮에 동료들의 얼굴엔 검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법정에서 나왔다. 2000일을 끌어온 긴 기다림이 허무하게 꺾여졌다. 그 사이 25명의 동료들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갔다.
13일 대법원 3부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사측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등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해고 노동자들의 정리 해고는 유효하다며 사측인 쌍용자동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6년여 동안 끌어온 복귀의 길은 이렇게 암초에 부딪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제금융위기와 경기불황에 덧붙여 경쟁력 약화, 주력 차종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세제 혜택 축소, 정유가격 인상에 따른 판매량 감소 등 계속적·구조적 위기가 있었다”며 “해고를 단행할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존재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의 적정 규모는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만큼 경영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사후에 노사대타협으로 해고인원이 축소됐다는 사정만으로 사측이 제시한 인원 감축 규모가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 위 글은 이창근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트위터에서 퍼옴
이에 노조는 쌍용자동차 측이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지난 2008년도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과다 계상했다고 주장했다. 본래 1861억 원이었던 당기순손실이 회계법인의 감사를 거쳐 7110억 원으로 재작성돼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무려 5176억 원이나 뻥튀기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법원은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회사의 예상 매출수량 추정이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창근씨는 이날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무참하다”고 말했다. “정치적 편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대로 대법원이 스스로 자기 권위를 무너트리며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씨를 비롯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비극은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됐다. 판매부진과 금융위기로 기업회생절차를 밟게 된 쌍용자동차는 이듬해 2009년 4월 전체 인력의 37%에 달하는 2646명의 구조조정을 노조에 통보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4월은 그렇게 잔인했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경기도 평택에 있는 공장을 점검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이 씨도 그해 여름을 공장에서 보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압도적인 물리력과 공권력을 동원한 전방위적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맨몸으로 싸웠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파업 2개월만에 1666명이 희망퇴직을, 나머지 980명은 정리해고 됐다. 이 씨는 경찰의 공권력 집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이후 노조는 6년간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등에서 농성 투쟁을 벌였다. 해고노동자가 돼버린 가장과 함께 가족들도 파업 이후 암흑 같은 터널을 걸었다. 그러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사측과 경찰이 해고 노동자들에겐 47억 원이라는 손해배상이 걸었기 때문이다. 해고는 말 그대로 ‘살인’이었다.
▲ 위 사진은 창근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트위터에서 퍼옴
그러나 일터로 향한 길은 계속 걸어야 했다. 이 기간 중 진행된 1심은 “금융위기 등으로 유동성 부족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 회생절차를 밟게 된 사측이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용 절감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해고를 단행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지난 2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는 “정리해고 당시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거나 사측이 해고 회피 노력을 충분히 다했다고 볼 수 없다. 해고는 무효”라며 1심을 뒤집었다. 그러나 13일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면서 해고 결정이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을 듣고 법원에서 나온 해고 노동자들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터트린 이도 있었다. 법정 밖에서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던 30여명의 눈과 손끝도 붉게 달아올랐다. 이 씨는 “6년 동안 함께 살자는 주장을 해왔다. 그러나 그것을 끝내 거부한다면 결국 회사가 문을 닫느냐 안 닫느냐에 대한 존망의 문제로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예요. 6년이란 긴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어요. 재판부는 쌍용차 노동자뿐만 아니라 2000만 노동자에게 비수를 꽂았어요.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
이 씨는 스물아홉에 쌍용자동차에 입사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회사 로고가 그려진 점퍼를 그리워 하는 평범한 가족의 가장이다.
* 참조 : 고발뉴스 강주희 기자님(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