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추억의 스와니 외 2편
서영처
그리워라, 당신 흔적을 따라
앨라배마 루이지애나를 거쳐 증기선을 타고 헤맨 지 수년
어디에도 머물지 못하는 당신 몸소 시퍼런 물길을 지도에 표시해봅니다
흥얼거리는 한 자락 노래 같은 집
당신은 한 번도 길을 잃지 않았더군요
어떤 이는 공원의 벤치에서 마른 빵을 씹는 당신을 보았다 하고
어떤 이는 벤조를 울리며 걸어가는 당신을 보았다 하고
외로움에 먹혀 험상궂은 짐승이 되어 금광으로 흘러갔다 하고
나는 당신이 지나간 길에서 태양과 먹구름, 천둥 냄새를 맡아요
세월이 갈수록 당신 희미해져
눈을 감아야 엽맥 같은 모습이 보이네요
켄터기 옛집엔 여름을 못 견뎌 칸나가 피고 있어요
뭉게구름 사이로 그래요, 저렇게 키 큰 칸나는 처음이에요
저 붉고 깊은 음원을 단숨에 들이킨 당신, 피 속에 태양이 흐르고
머리 위론 폭포 같은 햇살 쏟아져 내리고
태양이 최후의 악보라고 당신, 또내 귓전에 중얼거리고
그리워라 스와니,
나는 늙고 이제 당신의 장르는 슬픔이 깃들어 잠이 올 듯한 담회색
날마다 되불러보지만
고장 난 테이프처럼 혀뿌리를 겉돌기만 하네요
후미진 굴헝*
여자의 키보다 깊었다
클레멘타인, 내 사랑 클레멘타인.
그는 취한 듯 휘청거린다
왕버들 뭉게구름처럼 잎사귀 피어올리는 굴헝
들릴 듯 말듯 옛 노래 들려온다
가을이 온다
여린 별들 거미줄에 걸려 파닥거리고
그는 굴헝으로 내려간다
사수자리 피해 물고기자리로 날아가는 백조
물에 젖는 달
달에 젖는 굴헝
밤 기차가 비명을 지르며 마른 강을 달려간다
간질하듯 드러누워 흰 자갈을 토해내는 강,
부글거리는 저 강의 발작은
오래전 가련한 여자를 삼켰던 가책
그렇지 그렇지
노래를 채운 구름이 환하게 떠가고
강 건너 캄캄한 클레멘타인의 집
'빛과 향의 길'이었다고
풀벌레 소리 속에 깜박, 코를 곤다
그는 구름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남자
바지를 툭, 툭, 털고 일어나 코를 푼다
나뭇가지에 상의를 찢긴 채
비틀비틀 자갈길로 걸어 나온다
클레멘타인, 우물이 깊은 클레멘타인,
낡은 곡조 속에 처박혀 또 하염없이 잊혀져 간다
*미당의 시 「내 영원은」 에서
불면
거대한 불가사리 같은 바단지린사막이 스멀스멀 내 이부자리로 기어오른다 쩍쩍 갈라지는 등을 긁는다 타박타박 자판 치듯 낙타 떼가 옆구리를 횡단해가고 얼룩얼룩한 잠 속으로 스며드는 냄새
아주 먼 곳에서 날아오는 듯한 담배 연기, 코끝에 앉아 날개를 접었다 폈다, 누런 갱지들을 허물처럼 벗어놓고 사막은 밤새 내 등 위에서 뒤척거린다 모래 폭풍이 일고 누각이 파묻히고
― 서영처 시집, 『말뚝에 묶인 피아노』 (문학과지성사 / 2015)
서영처
계명대학교 Tabula Rasa College 교수, 시인. 영남대학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시집으로 『피아노 악어』, 『말뚝에 묶인 피아노』 논문으로 「햄릿의 피리, 셰익스피어의 음악적 설계」, 「카뮈의 '이방인', 내부로부터의 탈식민주의」 등이 있다.
첫댓글 우리에게 익숙한 멜로디가 흐르고 그 속에 자신의 먼 기억 속 이야기가 묻어 나고 , 내 이야기도 슬쩍 기대어 왠지 쓸쓸해 지는,
그런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