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세력의 후손들이 代를 이어, 국회의원을 한답시고, 역사가 바로 세워지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다.
그런데, "*묻은늠이, 겨묻은 늠을 욕하면서, 나만 깨끗하다"기에,,,,,,,,,,,,,,,,,,,,,
정*영이 니 말대로, 곧 무대에서 퇴장 할 70대 영감탱이가, 고부접주 봉준이가 다시일어나는 心情으로
잠시 지난 시절을 되새겨 본다.
......빛고을 금남로에서 5.18묘역까지 3보1배하는 심정으로.........
1.
중소지주의 장손인 정*영은 1953. 7. 27일, 전북 순창군 구림면 월북리에서 태어났다.
지주의 아들이자, 스물여섯의 나이로 순창군 "구림(구린???)면장"을 지내고, '애기면장'이라 불리던 정동영의 아버지, 정진철!
......늘 당당하고 호탕했던 아버지는 두주불사가 지나쳐 술병을 얻었다.
그런데도 술에 대한 사랑을 끊지 못하시더니 1969년 7월 20일 간경화로 돌아 가셨다.('개나리아저씨' 中에서/자작나무/정*영著)
정동영이 고교2학년이 되던 때(17살) 정진철 면장은 48세의 생을 마감한다(간경화...정동영이 건강 조심혀~)...
정진철 면장은 언제 태어났나? '1969-48=1921년' 경에 태어난 걸로 추정 된다...
1921년은 실제 출생일이고, 호적상은 1924년경으로 추정된다(1950년경, 26세에 구림면장/개나리 아저씨中에서/자작나무/정*영著...)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정진철면장은 당시 순창근처에서 가장 좋은 명문 '남원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제국주의 조선착취 최일선 기관인 "금융조합 서기"를 무려 長長5년이상 황국신민으로써 충성을 다하여
소작농민의 피를 빨아먹으며,열심히 황국신민의 역할을 다 하다가 해방을 맞이한다.
'금융조합장'의 위치에 근접했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금융조합"이란 무엇인가?
식민지조선 수탈을 위한 조선총독부의 左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 "부일장학회"를 설립한 "김지태"가 근무한곳....김지태는 동양척식회사로부터 20만평을 불하받아, 울산농장-조선 농민의 수탈 토지-을 개척하고, 이 농장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다.. 노개구리는 "부일장학금"으로 부산상고 졸업했당ㅇㅇㅇㅇ황국신민의 피를 이어 받은 늠... ),
右식산(조선식산은행)! 조선반도 산업착취의 양대 중추기관 중 조선식산은행 산하 최일선 식민지 산업(농수산업) 착취기관이다......
정진철면장이 금융조합서기로 근무하던 시기는, 중일전쟁 발발 이후의 시기로 산업동원령이 내려진 상태로, 전 농민의 80%가 소작농으로 전락하였고, 조선반도에서 산출되는 산출미의 60%이상을 공출로 착취하여, 반도의 농민들은 일본제국주의의 가혹한 착취에 견디다 못해, '개나리(?)'봇짐을 메고 처자식 이끌고 일본제국주의가 전쟁동원을 위해 설치한 경의선, 경원선 철도를 타고 만주벌판 서간도, 북간도로, 그리고 징발, 징용에 이끌려 대한해협을 건너, 북해도(홋카이도)로, 인도지나 전선으로 끌려 가던 시절이었다......
금융조합 서기는 아무나 하나?
지금도 대한민국의 짠(?) 대기업중 하나인,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는 *쌍도 함안(정확히 하면..군북) 친일매국 '금융조합장' 출신이다. 금융조합장 출신답게 기업풍토를 짜(?)게 운영한다. 정진철면장도 '덴노 헤이까(천황폐하)께서, 美國의 맥카터에게 항복하지 않았다면, 대그룹 창업주가 되었을 수도 있다...비단장수 '구'서방(L모그룹), 정미소와 천석꾼 출신 (S그룹) 창업주에 뒤지는 바 없는 가문이었다.
일본제국주의의 산업수탈과 전쟁동원이 극에 달하던 1940년대 초에는 농민의 98%가 금융조합에 가입하게 되었고, 산업동원의 일선기관 노릇을 충실히 하게 되었고, 향토 지방의 토호들의 기득권을 강화해주었고(1937년 47%의 금융조합 조합원은 전원 지주로만 구성), 결국 금융조합은 지방 최고의 파워엘리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 금융조합서기는 금융조합이 있던 남원읍 근처를 통틀어 가장 잘나가던 1등 신랑감이었다. 소위 잘나가는 임실골(한국전쟁 당시, 딘인가 뭔가 하는 낙오한 아메리카 장군을 인민군에게 신고해서 단돈 4달러(3600원)에 받고 포로로 넘겨준 마을)의 '이형옥여사(정동영모친)'가 "금융조합서기"에게 시집오는 건, 빵빵(?)한 이 여사 집안에서도 기울지 않는 혼사였다.
2.
가족사의 시간여행을 조선시대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볼짝시면....
정진철면장은 양반의 후손이다..... 조선이 망한 것은 기득권에 집착한 무식한 왕족과 양반 집권층 때문이다.......
조선백성과 범부('백범' 김구선생의 호가 '백정'과 '범부'에서 따온것이다.)들이 동학농민운동과 각종 민란이란 이름으로 무참히 쓸어져 갈때, 이 땅에 피를 뿌린 사람들 중에 양반이 과연 몇이나 있었던가?(양반중에..훌륭한 독립운동가도 일부 있었다...동래정씨 말구~..왕족은 백작, 권문세가는 남작과 자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랍시고 갖은 이권을 행사하던 슬픈 이야기들......)
나라에 세금안내던 양반의 후손!
정진철의 원조(元祖)는 조선 중종때,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의 아우이자, 안산군수를 지낸 정광좌로서, 정진철은 정광좌의 15세손이다.
정광필이 누구냐고, 정광필의 5세손은 조선 500년 사에 유일무이하게 형제가 6조판서를 모두 지냈고, 형은 영의정, 아우는 좌의정을 지낸 정태화, 정치화 형제다. 소위 명문 벌열 동래정씨 가문이다. 명문 동래정씨는 조선 500년 동안 정승을 20명이나 낸 가문이다.
.......아버지! 정진철! 나는 아버지를 누구보다 존경했다.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순창의 울타리가 무너졌다.'고 했다.(개나리 아저씨中에서/자작나무/정*영著.....)
중일전쟁 이후 식민지 조선농민의 80%가 소작농을 이루던 시절에도 집안에 일꾼들 부리고 살던 잘나가던 집안이었다. 중일전쟁 이후, 정진철이 남원고보를 졸업하고, DJ선상님이 목표상고를 다니실 무렵, 식민지 조선땅에서 나는 쌀의 60% 이상을 공출의 이름으로 징발해 갔다. 만주벌판과 아메리카와 전쟁하기 위한 전쟁물자를 충당하기위하여~
소작농도 힘들어,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은 만주로, 북간도로, 북해도로, 남태평양 전쟁터로 끌려가고, 적당히(?) 잘~먹고 잘 ~살았던 정동영의 할아버지 덕분에, 일제 산업수탈의 앞잽이 금융조합 서기 출신인 정동영의 아버지 정진철은, 광복후 '대동청년단'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친일지주나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이 대부분 '반공'의 이름으로 '서청(서북청년단)'등과 같은 이름으로 친일행적을 감추고자 하였다. 친일을 감추기 위한 방법으로 '대동청년단'과 같은 극우단체에 가입하였던 것이다. 1948년 제주도 4.3사건때, 가장 먼저 습격을 당한 곳이 '대동청년단' 간부의 집이었다.
3.
친일 매국의 앞잽이가 극우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여 '변신의 기회'를 잡고,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약관의 나이에 구림면 면장을 지내던 것이 '순창' 지방에서는 가능했다.
아쉽게도 '덴노'의 항복으로 "대지주"와 "재벌의 꿈"은 사라졌다.
인촌 김성수가 이룬 꿈을 동래정씨 정진철이 이루지 못할것도 없었는데, 단지 아메리카 맥카터에게 '덴노'가 항복하는 바람에...........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1950년 6. 25무렵에는 스물여섯의 나이로 구림면장을 지내셨다(개나리아저씨中에서/자작나무/정*영著.....)
이 당시 구림면은 '여순 반란사건' 이후로, 노령산맥 줄기를 타고 웅크리고 앉은 '회문산(순창군 구림면 소재 800고지)'등지를 발판으로 활약하던 빨치산들이 1948년 부터 지방민들을 괴롭혀 왔다. 소위 '김지회부대'가 1949년 괘멸되기 전까지 괴롭히다(구빨치), 6. 25 이후에는 1950. 9. 28 서울수복 이후 낙오병과 합세한 이현상등의 남부군이 '회문산'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도 '회문산'에는 '전북도당사령부'와 '빨치산 간부교육장'인 '노령학원'관련 흔적들이 잘 복원되어 있다. 생생한 빨치산들의 흔적과 역사의 상흔을 안고 있지만,
지금은 '회문산 자연휴양림'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을 손짓하고 있다.
.......남한 빨치산 유격대의 본거지로 소설 이태의 '남부군'의 주무대가 된 곳이 바로 순창군 구림면(구린면???)에 위치한 '회문산'이다..
노령산맥과 지리산을 배후로 높고 낮은 산들이 크고 작은 평야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 요충지로 적격이었던 모양이다.(개나리아저씨中에서/자작나무/정*영著.....)
한말, 양반가문, 일본제국주의 시대는 악질 지주의 아들, 농민의 피를 팔아먹던 "금융조합", 이승만 휘하의 "극우단체(대동청년다)",
이승만 정권 시대에는 향토지주와 극우단체 활동을 바탕으로 '애기 면장'이란은 카멜레온적인 변신의 귀재(?)로 살아온 정진철은
빨치산들에게 '밥'이 될 수 박에 없는 멋진(?) 먹이감 이었다.
덕분에 이 과정에 정진철은 할애비가 물려준 재산을 지키려고 피난도 가지 않다가, 정*영위로 태어난 4명의 자식을 잃어버린다.
구림면뿐만 아니라 순창군은 그 당시 '해방구(빨치산 치하, 경찰의 통제력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낮에는 대한민국, 밤에는 인민공화국으로 밤낮을 떠나 세상이 바뀌는 비극 속에 남자란 남자는 모두 학살당하고,
그래서 그 동네 아이들 아버지의 제삿날은 한날 한시로 똑 같았다.(개나리아저씨 中에서/자작나무/정*영著.....)
다 죽어도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최고의 지방 엘리트인 남원고보 출신 '금융조합'서기는, 해방 후에는 재빨리 변신 우익단체 대동청년단(단장 이승만) 단원으로 지주 행세를 하고, 정부수립 이후에는 약관의 면장으로 친일양반지주의 아들은 살아 남았다. 하물며, 이현상 잔당의 '신빨치산(여순반란후 입산한 6. 25 이전의 빨치산과 구별)' 쯤이야......단지 4명의 자식을 잃은 시대가 가슴 아프고, 지주의 힘으로도, 대동청년단 출신 '면장'의 힘으로도 빨치산 앞에서는, 정진철 면장의 '기회주의'도 자신의 생명을 겨우 보신하는데 그칠 뿐이었다....... 위로 네 명의 자식을 빨치산 치하에서 잃어버리고, 아직도 낮에는 '서남지역전투경찰사령부' 산하 '공비 토벌대'가 마을을 뒤덮고, 밤이면 '전북도당사령부' 예하의 '이현상 잔당'들이 위세를 부리던 시절인 1953. 7. 27일에 정동영이 태어났다.
잘나가는 남원고보 출신 금융조합 서기, 대동청년단, 6. 25 전부터, 6. 25동란 중의 '해방구'하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국부(國父) 이승만 박사의 은혜를 입으셔, '애기면장'에 '도의원'까지......'우리'의 장하신 면장님! . '우리' 장하신 '전북 도의원님!'....................개혁의 화신! '천신정' 중에서 '정'의원의 짧은 가족사다.....
4.
가족의 역사는 계속되야불고~......
1952년 4-5월경 제 1회 지방선거 및 도의원 선거가 있었지만,
빨치산 전북도당 위원장 이현상과 그 잔당들의 손아귀를 벋어나지 못한 '순창군'은 선거도 치르지 못했다. 빨치산 해방구 였으니까....
다만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사령부'가 열심히 '공비소탕작전'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가?
이 당시,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사령부' 제 3대 사령관이 누구냐?
이현상을 잡은'차일혁 총경'의 윗분이자, '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사령관'이 '辛相默(신기한 의원 아버님)'경무관이다.
경무관계급은 경찰계급에서 무지 무지높은 계급이다...
자료를 뒤져보니 1950년 전쟁 발발 당시 경무관이 겨우 20명~21명 뿐 이었다..
신상묵 경무관 제주도 좋아....
신기한 아드님 주장대로라면, 화순초등학교 2종 훈도(1937년 경 2종 훈도 월급: 42전, 구림면장 월급: 38전..황국신민화의 첨병 2종훈도!)를 하시다...
언제, 경무관까지 되셨을까? 박정희 대통령 대구사범 5기 동기동창이신대????
하옇튼, 신상묵 경무관님은 이후 제주 도경국장(지금의 지방경찰청장,1953-1954. ???), 전북 도경국장(1954?-1955??, 전북도경국장 재직시절, 극영화 아리랑을 기획하시고...))
강원도경국장(17대, 1957. 10. 18 ~ 1958. 8. 7), 충남 도경국장(18대, 1958. 8. 7 - 1959. 4. 1) 이후 경기도경국장(지금의 인천???)을 마지막으로 1960년 경 경찰을 떠나셨다..
신기한의원은 정진철 면장이 빨치산 치하에서 4명의자식을 잃을때, 신상묵경무관이 남원에 설치된 서남지구전투사령부 사령관으로 근무할때 남원에서 태어났다.
신의원의 형은 신상묵 총경(당시는 총경)이 경북도경보안과장 할 때 태어났고,
손아래 동생은 제주 도경국장(지방경찰청장, 계급 경무관) 재직시,
막내는 대전 도경국장 재직 시태어났다.
홈페이지에 "국민 통합형"이라는데, "한국근대사"의 "본 모습-생생한 역사-"이다.
전북 익산 출신의 신상묵 경무관은 자유당 정권 시절 무엇을 하셨을까????
간단하다.
1950년 5월 30일에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선거...당시 계급 총경...
1952년 8월 5일 정·부통령선거 최초로 직접선거..당시 계급 경무관...
1952년 ― 제2대 대통령 및 제3대 부통령선거(정진철/정*영애비가 면장하던..구린면은 해방구(ㅋㅋ)라서 당시 선거도 못했음/民서방기억)...당시 계급 경무관...
1954년 ― 제3대 국회의원선거....당시 계급 경무관...
1956년 ― 제3대 대통령 및 제4대 부통령선거.....당시 계급 경무관...
1956년 ― 지방자치단체선거.....당시 계급 경무관...
1958년 ― 제4대 국회의원선거.....당시 계급 경무관...
1960년 ―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선거 (무효된 선거).....당시 계급 경무관...
당시 경찰이 무슨 역할을 하였던고????
민중의 지팡이?ㅋㅋㅋ
들어나 봤나 자유당 고무신 선거!~
들어나 봤나 자유당 막걸리 선거!~
1956년 1월 30일 아침, 김창룡 육군 특무부대장(요즈음 말하는 기무부대장)은 출근길에 피살된 후 모든 임무를
민중의 지팡이 자유당 경찰이 했다는걸 잘 들 모르지~
4. 19이후, 장면 정부 시절, 사업해서 말아먹은 신상묵 경무관이 국회의원 공천해도 자유당 민중의 지팡이(ㅋㅋㅋ)라고 공천도 안해줘서,
무소속으로 나왔다. 아드님(신기남의원님) 출세하셨수~ 아버님 한 풀어 들였네..대한 경찰 화이팅...
정진철이 이놈은~
남원부에서 최고의 명문 남원고보를 나와서 할애비(정진철의 父) 후광(後光..ㅋㅋㅋ.)아래,
일꾼들 땀으로 배불리고, 금융조합에 약관 20대 면장으로 떵떵그리며 살다가, 도의원까지는 되얐지만,
국회의원이 되지 못한 향촌 토호 지주라서 착한 분(?)이라구?*&^%%$#@#@!
5.
民서방의 생각............
'해방구'하에서 이현상이가 차일혁 총경의 매복부대에게 콩알세례를 받아서 공비잔당으로 처리되었다.
내무부 치안국에서 발행한 '경찰10년사'에 조금 과장되어 나타나 있지만,
전북 금산군(현, 충남 금산군) 출신 이현상('반일' 공산주의자, 이진사 아들, 400석지기 집안,
이현상의 형과 부친 이진사가 일제시대 면장을 10여년 연이어 했다....)을 팔아서,
무공훈장 받은 경찰최고위중 한명인 당시 '경무관'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이현상은 평양 애국열사능 1호구역에 묻혀 있다......
이현상을잡은 사령관은, 제주도경국장(경찰청 이전에는 내무부 치안본부, 치안본부 이전에는 내무부 경무국/현재의 지방경찰청),
전북 도경국장, 충남 도경국장 및 강원 도경국장을 두루두루 역임(?)한 辛相默경무관이다..'서남전투경찰대' 사령관이었다.
4. 19이전까지 경찰계에서 한 '끝발' 했다..
경무대(청와대 전신)에서 매 선거후에 각하(이승만)와 오찬도 하고(전국 도경국장/지금의 지방경찰청장),
전국 경찰 총수들이 기념사진도 크다랗게 찍었다.....왜? 전국 경찰청장들을 경무대에 초청, 오찬과 기념사진을 찍었냐고?
옛날에는 오늘날 처럼 우매한 대중을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심상(image)조작이 필요 없이
그냥 투표함만 바꿔 치기 하면 되야 부렸다.....
가끔식 '해공'이 한강 백사장에서 30만 군중을 모으면(혹자는 100만), 그냥,
'비내리선 호남선'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 지기도 했다.
그래도 민중의 힘과 정신이 깨어 있으면, 4. 19처럼 역사는 바른 물줄기를 타고 흐른다.
5.
이승만 '자유당' '독재' 시절에 각 지방 도경국장(지방경찰청장)을 두루 지낸 그분이,
순창군 일대 구림면 '회문산' '해방구'를 해방(?)시켜 주셨다......
빨치산 잡던 사령관, 辛相默경무관!
'안산' 군수 정광좌의 16세손 정*영의 동지(?)이자, 천신정 중 첫번째 의원의 지역구도 '안산'이다.....인연이 묘(妙하다.
전라도 서남단 섬마을 신안군 암태도.......
암태도 소작쟁의(1923)가 일어나 소작민 600명이 배타고 나가 1년이나 굶주림과 권언과 싸울때(당시 동아일보 기사 참고),
신안군 암태도 그 손바닥만한 작은 섬에서 1500평의 畓과 3000평의 田을 가지고 정미소를 운영하던 천**의원(홈피에서....),
낙향한 선비집안(모르긴 몰라도 암태도 까지 낙향할 정도면 중죄인(?))인, 머리좋은 천**의원도 실력으로 성공(ㅋㅋ...)했다.....
두번째 의원-서울 양천의 새(?)인물 신**의원-의 부친이 빨치산 잡던 사령관이다.....
비록 대구사범에서 박정희대통령과 같이 공부를 했지만, 가는 길이 달라 박정희대통령은 큰칼차고 싶다며 쿠데타로,
빨치산 때려잡던 신기남 의원의 부친인 辛相默경무관은 4. 19 이후에 국회의원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가산을 거의 탕진했다.
물론 그전에 사업하다 실패했지만, 아들代에 이르러 꿈(?)을 이루었다......
이후 정진철은 수 년의 도의원 생활을 지주의 '금력'으로 헤쳐나가고,
타고난 두주불사에, 몸이 쬐끔 망가져서 고향에 내려와 쉬게 되었다.
잠시 쉬어가자.....(손가락 아프다)..........다 끝나 간다.....
7.
정*영이가 초등학교 3학년 가을에 父정진철이 신병으로 정계를 은퇴하게 되고,
고향인 구림면 ‘회문산’ 자락 율북리로 돌아온다.........1962년의 일이다...
1962년 5. 16 이후 정진철은 국회의원에 나서고자 노력했으나,
친일 악질 지주와, 빨치산 부역 혐의(재산 지키려고 면장이 피난도 가지 않고 자식 4명 빨치산에게..)와 대동청년단을 지내고,
빨치산 '해방구' 치하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면장의 시대는 지나 갔고, 천명은 다해 갔다..
두주불사의 음주와 시조를 읊조리던 친일 양반 지주의 후손으로 1969년 7. 20일 생을 마감한다.
국회의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1963년 어느 봄!(1961년 대한민국 GNP 76$, 필리핀 156$이던 시절......) 그 옛날로 돌아가 보자!
.......산골 친구들은 대부분 가난했다. 도시락은 꽁보리밥이었고, 반찬은 고춧가루를 섞어 기름에 볶은게 고작이었다. 그나마도 싸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여기서 부터가 걸작이다.......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에서 주는 꽁보리 밥을 넘기지 못하고 쩔쩔매기도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개나리 아저씨 中에서..........)
그래!......지주의 아들은 그렇게 자라왔다.....'보릿고개'가 다반사였던 그 시절! 친일 매국 지주에, 양반 토호의 손자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산업착취의 최일선 기관인 금융조합 서기의 아들이 보리밥을 어찌 드실 수 있으랴? ........할아버지가 지은 시골학교 다니시는 '면장'님, '도의원'님 아들이신데...................
'빨치산' 해방구 아래서 네 명의 아들을 잃은 한국근대사의 산 증인 정진철 '애기면장'이 아들을 어떻게 키웠는지 살펴보자!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독특했다. 외람되지만 한마디로 친구 같다고나 할까?
아버지는 불 같은 성격을 갖고 계셨지만 자식교육에 대해서만은 너그럽고 민주적이었다.
지금 유행하는 자율교육(?..방치)을 아버지는 40년 전 그때 실행하셨던 것이다(개나리 아저씨 中에서/자작나무/정*영著........)
....국회에서 집어던지고, 생각나는대로 주절되는 버릇은 친일 지주면장의 어릴 적 가정 교육의 산물.....
어린 시절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재봉틀(지주의 상징)과 맷돌만 빼고 집안의 모든 살림을 내 장난감으로 삼아 온 집안을 어지럽혀 놓아도 어머니(현 83세, 이형옥여사...책임이 커유~)가 아들을 혼내지 못하도록 막아 주셨다(개나리 아저씨 中에서)....(친일 매국, '자유'당 독재의 앞잽이, 향토 토호 지주인 정**의 父, 정진철의 과오가 오늘의 정**을 만들었다).........."60 ~ 70대 분들 쉬셔야지! 곧 퇴장하실 텐데~"
8.
大韓國人이여!
역사에서 배워라!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자는, 배우고도 실천에 옮길 용기가 없는 자는, 다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
오늘의 우리 역사는 정*영이 존경(?) 하는 '언론인'인 '장선생'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설파한 사설을 전국에 배포하였지만, '민주'를 배신한 정똥*이처럼, '장지연'선생도 어줍짢은 '사회진화론'의 '약육강식' 논리에 함몰되어 국권 침탈 후
1915년 이후에 얼마나 많은 친일 논고를 신문지상에 발표했는지는 모르고 있는 같다....
역사는 '배신자'에게 영광을! 역사는 '기회주의자'에게 성공을! 주었지만, 진정한 역사는 '위선자'의 '가면!'을 벗길 것이다.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60대 ~ 70대분들 쉬시죠~........"
양반 지주의 아들,
일제하 남원명문 남원고보(ㅋㅋ)의 수재,
지방 최고의 신랑감,
금융조합직원은 광명의 해방에 눈뜰 길 없었지만,
'대동청년단'으로 살아남았고, 재벌2세의 꿈과,
인촌김성수와 같은 대지주를 꿈꾸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기회주의자에게 '기회'는 온다(?).
빨치산 '해방구'아래서 아들 넷을 잃으며 지킨 집안과 재산을,
국회의원을 못한 그 한풀이를, 꾸지람 한번 안 하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동래정씨의 장손 정동영!'
안성군수 정광좌의 15세손! 순창 구림면장 정진철은.....
이제 자식 代에 이르러 꿈이 이루어 지는 듯하다.
정광좌의 16세손 정똥*은 국회의원를 2번이나 하고 당의장(?)도 되야 부렸다...이제는 똥일*짱!~이 되야 부렸다....
'엠바C', '게이(?)B에수' 등 狂미디어와
그 하수인 '너마이'와 전위대인 '노란잠바 진리교도', '촞불'등을 이용하여 '대중심상조작'에 성공하고,
어느 정도 "꿈은 이루어 졌다!"......
9.
LA특파원 38개월, 브리티시 킹덤(110년전 거문도를 불법점거하고, 일본의 조선 침략을 물심양면 제공했던.....)
대영제국 '웨일즈' 공짜교육 13개월,,.....덕분에 큰아들 '정욱찐2'는 '대원외고' 졸업해서 '스뗀뽀드' 다닌다.....
"이놈도 나중에 잘 배우고 좋은 학교 나오신 분이 되면 한강물에 뛰어들어야 하나?".....南相國 曰......어여와....욱찐아!.....어여!...
그래도 지놈(욱찐2) 할애비가 가르쳐 준 한국근대사, 공부 안한 애비(경성제대의 후신, 문리대 72학번, 공부도 안 한 국사학과 출신)의 산 모습을 반추해 보면 세상사는데 문제가 없을것이여~.............
한 해에 수천 만원 들어가는 유학비용도, 친일 악질 지주의 후손에게는 문제없다.....
그 정도야 '개나리 아저씨' 인지 수입만해도 되는 거야~ 아님, 돼지저금통으로 의원후원회 한번만 하면 되부러~.....
'정' 안되면 롯데호텔 지하 1층 돈까스하시는 노가비이 형님 형수한테 손좀 벌리지 뭐!...아참, '큰집'에 계시남....................
DJ 선생님이름 팔아서, 당선되고 지금까지 왔는데, 이제는 '동닙'해서 큰 꿈을 키워야지!
암! '정광필', '정광좌' 할아버지! 6조판서에 영의정 좌의정을 모두 지낸, 동래정씨의 자랑 '정태화', '정치화' 할아버지!..
.그리고, 순창의 울타리(ㅋㅋ..)! 아버지~ 정진철!
전통 50년 '민주당'을 탈당하여 '배신'의 역사와 '기회주의' 역사의 토대를 마련하였고,'열린' '너희'들을 위해 '엠바C'와 '게이(?)B에쑤'를 동원하여, 히틀러의 괴벨스보다 더 무자비한 선동선전으로 '뇌무식'으로 똘똘뭉친 '멍*남'과 '*성근(문성근 애비 )'같은 '노옴진리교도'를 發狂하게 하는가?
大韓의 아햏들아! '역사에서 배워라'..."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자는, 다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
1여 년간 '노동쟁의'가 일어난 손바닥만한 '암태도'의 중소지주(자칭 소작농???정미소, 1500+2000평의 전답) 출신이자,
좋은 학교(목포고+경성제대법대) 나오시고 많이배우신,
똑똑한 수재 변호사인 천정배의원이 달콤한(?) 권력을 매개로,
'노동'운동을 했다는(?%$#@ㅋㅋ) '인권밴호사'와 권력을 매개로~ 삶을 공유하고.......
빨치산 때려잡던, 전투경찰대 사령관의 아들(신기한의원)이,
훌륭하신 부모님덕분에 좋은 학교(경기중/고 + 경성제대법대)나오시고 많이 배우신 분이 달콤한(?) 권력을 매개로,
빨치산 사위(월간조선 2002 6월호)와 ~삶을 공유하고.......
악질 친일 지주출신에, 식민지 착취의 최일선 기관인 "매국 금융조합출신"에,
극우정치 홍위병이던 해방후의 '대동청년단'을 거쳐서,
낮에는 '서남지구전투경찰사령관'의 편에서고,
밤에는 '신빨치' 전북도당사령부의 활동물자를 공급해야하는 상황에서,
자식 넷을 잃으시고 피난 안가시고, 모질게 살아나신 악질 토호 지주 면장이자 '자유당'의 높으신 '도의원'님의 아들과,
요트 타는 자칭 '서민', '세무' 변호사가 '민주'의 이름으로 달콤한(?) 권력을 향유하는.....
개혁을 외치는 '천신정'이 우리의 현실이라는게 안타깝다.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율북리 소작민 / 古嬉지난 民서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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奠邑東泳! 그렇게 살면, "개나리 아저씨!"가 아니라, "사꾸라 아자씨"가 되야 불지!
조언을 해볼라씨면, 큰 인물 '김끈태의원님'이 힘을 쓰셔야 될 시기여,
"살고자 하면 되야질것이고, 되야질라고 용쓰면 고것이 바로 사는것이여~" ........"ㄲ~ㅡㅌ".....
첫댓글 대단하심니다."일필휘지" 위선(정)자들꼭"벌"받을것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