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파랑·하양·검정 깃털… 태극기 닮은 쿠바의 국조
▲ 깃털 색이 화려한 새 ‘쿠바 트로곤’. 빨강·파랑·하양을 지닌 쿠바 국기와도 색깔이 비슷하네요. /버드오브컬러위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와 우리나라가 얼마 전 국교를 수립했어요. 공산국가인 쿠바는 오랫동안 북한과 아주 가깝게 지냈고, 우리에겐 낯선 나라였기에 더욱 주목받는 소식이었죠. 미국의 흰머리수리, 프랑스의 수탉, 부산의 갈매기처럼 각 나라나 도시를 상징하는 새가 있는데, 쿠바에도 이런 새가 있어요. 바로 쿠바 트로곤(cuban trogon)이죠.
트로곤은 아메리카·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에 살고 있는 열대 조류예요. 전 세계에 30여 종류가 있죠. 하나같이 아름답고 화려한 깃털 색깔을 하고 있어서 '비단날개새'라고도 불러요. 그중 '쿠바 트로곤'은 오직 쿠바와 그 주변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종류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몸길이는 최장 28㎝까지 자라고요.
쿠바에만 산다는 것 외에도 이 새에 대해서는 "쿠바의 국조(國鳥)로 더할 나위 없다"고들 말하는 까닭이 있어요. 우선 깃털 색깔 구성이 쿠바 국기색과 아주 흡사해요. 쿠바의 국기는 '빨간색' 삼각형 안에 '흰색' 별, 그리고 '파란색'과 '흰색'의 줄무늬로 구성됐어요. 쿠바 트로곤은 머리부터 등, 꼬리에 이르는 부분은 '파란색' 깃털로 덮여 있고 배부터 다리까지는 눈 같은 '흰색으로 덮여 있어요. 그리고 다리 아랫부분은 선명한 '빨간색'이죠. 그런데 날개 바깥 부분엔 '흑백' 무늬도 있어요. 공교롭게도 빨강·파랑·하양·검정은 우리나라 태극기를 이루는 색이기도 하죠. 어찌 보면 우리나라 국기색과 더 닮았네요.
쿠바 트로곤은 서식지 부근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성격이 대담하지만, 야생이 아닌 포획 상태에서는 생존 가능성이 낮아서 길들여서 키우는 건 거의 불가능하대요. 이런 습성은 예로부터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사랑해온 쿠바인의 기상과도 닮았다고 하죠. 먹잇감을 찾아서 서식지를 옮기기는 해도 쿠바 일대를 벗어나는 일은 없어요. 오래전부터 쿠바에 살던 원주민들은 이 새를 행운의 상징이자 기쁜 소식을 가져다주는 전령으로 여겼대요.
쿠바 정부는 이전에 몇 차례 트로곤이 그려진 우표를 발행하면서 나라의 상징으로 소개했죠. 트로곤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설치류'를 뜻하는 그리스말에서 비롯됐다고 해요. 실제로 트로곤의 부리 끝은 약간 우툴두툴하게 돼 있는데, 언뜻 쥐 등 포유동물의 이빨을 연상케도 해요. 쿠바 사람들 사이에선 지저귀는 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한 '토코로로'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죠.
쿠바 트로곤은 잡식성이랍니다. 가장 즐겨 먹는 건 나무 열매고, 작은 개구리나 도마뱀도 먹어요. 또 벌새나 나비처럼 꽃밭을 날아다니면서 꽃의 꿀을 빨기도 하죠. 쿠바 트로곤은 그렇게 활동적인 편은 아니에요. 먹이 활동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나뭇가지에 앉아서 보내요. 썩 유능한 비행사는 아니랍니다. 날 때는 유독 푸드덕하는 날갯짓 소리가 크게 난대요.
쿠바 트로곤은 별도로 둥지를 만들지 않아요. 나무에 이미 나 있는 구멍이나, 딱따구리 등 다른 새들이 살았던 구멍을 제 둥지로 삼죠. 이곳에 서너 개의 알을 낳고 암수가 정성껏 돌보며 기른답니다. 트로곤은 무리를 지어 살지 않고 주로 암수가 부부를 이뤄 커플 단위로 생활을 해요. 외모만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은데 수컷의 울음소리가 암컷보다 조금 더 길대요.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