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가야목곡1길 15-4 (목곡리 294-7)
박해 시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이 이주하여 이룬 교우촌
박해 시기 경기도 일대와 충청남도 지역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 지역의 전라북도 고산 일대로 이주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이때 충청도 지역 교우촌에 설립된 공소 중 하나가 가야곡면 목곡리에 있는 갈매울 공소이다.
1887년에 설립되었다.
공소 이름은 마을앞 갈매산이 공소를 울타리처럼 둘러있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공소를 지을 때 동네사람 모두가 모래와 자갈을 이고 지고 날라 통블럭을 찍어내어 만들어진 사랑깊은 성당이다.
논산 일대에 복음이 일찍부터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1799년 해미에서 순교한 이보현(李步玄, 프란치스코)과 1801년 서울에서 순교한
황심(黃沁, 토마스)이 연산(連山) 출신이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도 논산 지역 천주교 신자들은 많은 순교를 당하였고, 김수환 추기경의 조부인 김보현이 1868년 무
진박해 때 충남 논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순교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논산 일대에는 일찍부터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옹기점을 운영하거나 화전을 일구며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가꾸어 나가기 시작하다가
두세(Doucet, 丁加彌) 신부가 1881년에 충청도 지역을 맡게 되면서 1884년경에 삼산 공소(성동면 삼산리)와 강경이 공소(강경읍)가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이어 1887년에는 갈매울(가야곡면 목곡리), 곰밭(은진면 토량리), 새룰(광석면 사월리), 석교동(석동면 원봉리),
움뜸(현 강경 본당 사제관) 등지에 6개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이들 공소의 신자수는 총 350여 명에 달하였다.
이듬해에는 양촌(가야곡면 양촌리), 대하리(성동면 삼산리), 가지매 등 3개 공소가 설립되면서 논산 전역으로 복음이 확대되었다.
그 후 이 공소들은 1893년에 비에모(Villomot, 禹一模) 신부가 설립한 되재 본당과 1897년에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가 설립한 나바위 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이중 갈매울 공소는 80~150명의 신자수를 유지하며 존속하다가 전라북도 고산본당 설립 이후 고산본당 관할이 되었다.
당시 한국 천주교회에서 갈매울 공소 지역은 행정구역상 충청남도에 속하나 교회의 관할 구역 구분에서는
전라도에 속하여 규모는 작지만 관할 구역의 문제점이 있던 곳이었다.
1921년 논산 본당이 나바위 본당(화산 본당)에서 분화되면서 갈매울 공소의 관할이 논산 본당으로 바뀜에 따라
비로소 행정구역과 교회의 관할구역이 일치하게 되었다.
1958년 1월 31일 논산 본당 소속이었던 마산 공소·택리 공소·화정 공소·죽평 공소·새터 공소·갈매울 공소·쇠목 공소·말목 공소 등의 지역을 받아 마산 본당이 분리되었다.
이듬해 마산 본당은 연무 성당으로 변경되었다.
마을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던 옹기 그릇을 굽던 장소는 창고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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