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을 처음 읽었던 때가 정확히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중학교 1~2학년 때였던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요상한 이름은 ‘개미’라는 책으로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난 직후여서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은 읽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그래서 아직도 읽지 않은 베스트 셀러가 수두룩 하다.) ‘개미’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상태에서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타나토노트’가 결국엔 내가 읽은 그의 첫 작품이 되었었다. 뼛속까지 무신론자인 내 입장에서 ‘타나토노트’는 상당히 흥미 있으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가져다 주었고 그 후로 베르베르의 책들은 출간이 되는 족족 구입을 해서 읽는 팬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개미, 타나토노트, 아버지들의 아버지, 뇌, 천사들의 제국을 거치며 그도 소제가 바닥이 난 건지 아니면 그저 나의 변덕 때문인지 나오는 신작들마다 차츰차츰 실망을 안겨다 주기 시작했고 그런 실망은 얼마 전에 나온 ‘천사들의 제국’ 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에 다시는 이인간의 책은 사서보지 않는다. 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신’이 나오기 한참 전의 책이기도 하지만 ‘파피용’은 자연스럽게 읽지 않게 되어버렸던 것 같다.
그래도 우연찮게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된 ‘파피용’은 나름대로 유쾌한 상상을 하게해주는 책이었다. 나무 이후로 다시 일러스트레이터 뫼비우스(기본 댓생은 비슷하지만 나무에서의 그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와 작업을 같이 한 것도 책을 읽기 편하게 해주었고, 베르베르 특유의 간결 하면서도 유들유들(표현이 어울릴레나 모르겠지만)한 문체도 4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주어 한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베르베르의 책들의 전반적인 포커스는 신보다 인간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 회의를 가지면서도 인간에게 희망을 갖는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아의 방주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파피용으로 인간에게서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도 인간이고, 고르고 골라 144000명(이것도 성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숫자이다. 144,000명은 세 천사의 기별과 관련된 백성이며(계 7:4, 14:1))이 탈출을 하지만 여기서 또 인간의 본성으로 지구의 역사를 되풀이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곳곳에서 나오는 성경의 패러디인데, 특히 144000명이라는 숫자는 의미 심장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144000명은 이기는자, 하나님의 인을 맞은자, 큰 환란에서 나온자,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자, 정절이 있는 자, 처음 익은 열매,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성도 등 결국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인데 ‘파피용’에서는 아드리앵의 대사를 통해 “제생각에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 군인, 목사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후략…” 라고 말하며 결국에 탑승 조건으로 무신론자를 조건에 둔다. 종교라는 것 자체에 상당한 회의감을 갖고 있는 개인적인 입장에선 저절로 고소가 머금어지는 장면이었다.
어쨌든 파피용을 타고 탈출하는 과정이나 사틴의 행동이나 1251년을 여행하며 도착한 행성에서일어난 일들은 모두 성경을 모티브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 같다. 아니, 더욱 정확히 말하면 성경을 교묘하게 패러디한 내용들이다. 코메디언들이 유명인사를 패러디하며 웃음을 주는 것처럼 베르베르는 지구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패러디하여 우리에게 유쾌함을 준다.
첫댓글 새로운 시각에서 느끼게 해주시는 군요 성경을 패러디한 최고의 베스트라..
영화로 만들어 진다는데 주인공이 누구일지 궁금한 소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