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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 파산 전에도 규제 풀어 준 정부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 파산도 시작점은 지금 실리콘밸리은행 파산과 비슷합니다. 당시 저금리 덕에 단기예금을 받아 장기로 대출해 수익을 내오던 저축대부조합들이 시장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높아진 예금금리를 적은 양의 대출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위험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연쇄 도산으로 이어지게 된 거죠.
이때도 연쇄 파산 이전에 규제 완화가 있었습니다. 1982년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예금금융기관법안에 서명했는데 이는 저축 관련 금융기관들이 더 많은 돈을 수신하고 더 위험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었습니다. 70년대 말부터 투자신탁회사의 MMF가 발달하면서 은행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이와 비슷한 수시입출금 예금 MMDA를 개설할 수 있도록 했고, 예금금리 상한을 단계적으로 철폐했습니다. 금리 인상에 따라 예금금리로 쭉쭉 올리게 된 거죠. 예금보험 한도도 기존 4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늘려줬습니다.
주택 대출도 업무 영역을 더 터줘서 상업용 부동산, 기업, 농업 대출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산의 40%까지 상업용 부동산에 대출할 수 있도록 허가했는데, 이 당시 부동산업자가 저축대부조합을 매수해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결국 금리인상과 부동산 시장 급락이 맞물리면서 연쇄 부도가 일어났습니다. 1986~1991년 사이 700여 개 저축대부조합이 파산하고 미국 GDP의 6%에 달하는 3,000억 달러 이상이 사라졌습니다.
규제완화를 무턱대고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규제완화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감안한다면 규제완화 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고 규제완화 뒤에 그에 따른 파장을 면밀히 모니터해야 합니다. 어쨌든 그동안 규제완화와 관계없이 연쇄 파산이 난 게 아니라 규제완화에 따른 허술한 구멍이 부실을 키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현재 미국 은행 파산 여파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미국 당국은 은행시스템은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전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같은 논리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죠.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정부는 "동남아 외환위기 영향은 제한적이다", "미국 금융위기 영향은 제한적이다"라면서 시장을 달랬었죠. 하지만 정부의 말과 다르게 위기의 여파는 국내를 강타했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해외 여러 나라에서 금융위기를 겪었던 것처럼 규제완화에 따른 부실 발생 가능성을 철저히 체크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금융당국이 금융권 경쟁 유도를 위해 규제완화 카드를 만지고 있다는 뉴스도 전해지는데, 적어도 해야 할 시기와 말아야 할 시기는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역사적 사례와 시사점
미국의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 사태와 블랙먼데이,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을 보면
금융위기 과정에서 고위험-고수익 투기 대상의 존재, 감독상의 취약점, 그리고 투기자금 공급을 가능하게 했던
유동성 팽창 등의 공통요소를 찾을 수 있음.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 이후 유동성 팽창은 미국과 유사한 측면이 있 으나
주택담보대출 감독강화 등 선제적 조치는 미국과 차별화됨.
■ 미국발 금융위기는 19세기 이래 수시로 발생해 왔으며 이에 대처하고자
1914년 중앙은행인 연 방준비제도(연준)가 설립된 바 있음.
미국에서는 1929년 대공황 이전에 이미 1873년, 1884년, 1893년 및 1907년에 금융 위기가 있었는데,
거의 10년에 한 번 꼴로 은행들이 파산하고 인출사태(bank run)가 벌어지곤 했음.
연준이 설립된 이후 주기적인 금융위기는 잦아들었으나 1929년부터 1933년까지의 대 공황 시기에는
연준이 금리를 올리고 통화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위기가 더 욱 악화되는 사태가 발생하였음.
당시 세계경제는 금본위제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는데, 외국인들이 달러를 금으로 바꾸 어 인출해 가자
연준은 달러가치를 유지하고 금본위제를 고수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국내 통화를 환수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음.
■ 대공황 이후 상당 기간 대규모 금융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1980년대 들어 저축대부조합 사태 가 수년간 지속되고,
1987년에는‘블랙먼데이’사태가 발생하는 등 미국발 금융위기가 재연됨.
저축대부조합들은 1980년대 초 자기자본비율 완화, 이자율제한 폐지 등 규제가 완화 되면서
고수익-고위험 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하여 특히 텍사스 지방의 부동산 투기에 많은 자금을 공급하였는데,
부동산 투기업자들도 텍사스의 저축대부조합들을 인수하 여 투기자금을 조달하고자 하였음.
저축대부조합들은 투기업자에게 이자에 해당하는 자금을 다시 대출해주는 위험한 대 출방식을 유지했는데,
이는 텍사스에서 부동산 매입자금을 초과한 대출이 제도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임.
그러나 1983년 이후 부실채권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1987년에는 텍사스 소재 280개 저축대부조합 중
약 60개가 지급불능상태에 처하였으며, 이후 1988년부터 1991년까 지 전국적으로 869개의 저축대부조합들이
파산하여 정부의 자금지원과 연준의 금리 인하를 초래함.
한편 미국 주가는 1982년부터 약 250% 상승한 이후 1987년 10월 19일(블랙먼데이)
하루에 22.6% 폭락하였으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 1년 3개월이 소요됨.
■ 한편 1998년에는 러시아의 일부 국채 지불유예(moratorium) 선언에 뒤이은 LTCM 사태가 발생함.
LTCM은 개도국 채권이나 정크본드 등 고위험-고수익 채권에 투자했으나
러시아가 채무불이행 선언을 하면서 개도국 채권의 가격이 폭락하자 대규모 손실을 입게 됨.
이후 연준은 3개월간 금리를 75bps 인하하고 LTCM에 대한 출자를 주선하여 사태를 수습함.
■ 2001년 9.11 테러사태 이후에는 연준이 금리를 3개월간 175bps 인하하면서 저금리기조가 시작되 었는데,
이는 이후 수년간 자산가격의 상승과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확대되는 배경이 되었음.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주택가격의 급등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거품을 키우게 되었는데,
금리가 인상되면서 주택경기가 꺾이게 되자 대규모 부실로 연결되면서 세계 금융시장 을 불안하게 함.
■ 이상의 사례를 보면 금융위기의 발생과정에서
고위험-고수익 투기 대상의 존재, 감독상의 제도 적 취약성, 그리고 투기자금 공급을 가능하게 했던
유동성 팽창 등의 공통요소를 찾을 수 있음.
고위험-고수익 투기 대상은 텍사스지방의 부동산, 개도국 채권,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 권 등 다양한 형태를 띠었으며,
제도적으로는 고위험-고수익 투자자와 저신용자들에 대한 신용감독의 미비가 있었고,
유동성 팽창은 금융완화정책에 의해 뒷받침되었음.
그림에서 미국의 경우 80년대 초 수년간, 그리고 2001년 이후 수년간 통화정책기조가 완화되면서
동시에 유동성이 급증하여 각각 저축대부조합 사태와 서브프라임 사태의 배경이 됨.
그러나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충분한 유동성 공급이 있어야만 위기가 조기에 수습됨.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 이후 유동성 팽창은 미국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 나
주택담보대출 감독강화 등의 선제적 조치는 미국과 차별화되는 요소임.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이 자료가 옛날 자료라 현 상황과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2007)
선제적 조치에도 디레버리징 없는 장기간 초저금리 로 버블이 하늘을 치솟고
가계부채가 셰계 1위 죠.
잘 보았습니다...고맙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