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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진흙을 물기 시작하면 따뜻한 봄날이 시작된다. 언 땅이 풀리고, 집집 처마마다 재잘대는 소리가 시끄럽다. 지난해 찾았던 집을 다시 찾아주면 그것이 고맙고 새로운 제비가 찾아오면 그것이 또 반갑다. 당시(唐詩)에 이런 것이 있다.
꽃 피자 나비들 가지에 가득터니
花開蝶滿枝
꽃 지자 나비는 다시금 안 보이네.
花謝蝶還稀
다만 저 옛 둥지의 제비만이
惟有舊巢燕
주인이 가난해도 돌아왔구나.
主人貧亦歸
염량세태(炎凉世態)는 인간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비가 꽃을 찾아다니는 것은 본시 나무랄 일이 못 된다. 좋은 기와집 다 놓아두고, 굳이 누추한 초가집을 마다 않고 찾아준 제비를 보며 씁쓸한 세상에서 작은 위안을 품었더라는 말이다. 화암(華嵓)의 「쌍연도(雙燕圖)」는 떨어지는 꽃잎을 좇아 나는 한 쌍의 제비를 경쾌하게 그렸다.
제비는 귀소성이 강한 새다. 오카 나오미치(丘直通)라는 일본 학자는 1931년부터 1936년까지 6년 동안 6014마리의 제비에 표시를 매달아 그들의 귀소성을 실험한 일이 있다. 이 가운데 412마리가 돌아왔다. 돌아온 제비 가운데 다 자란 상태에서 떠났던 새는 무려 47.1퍼센트나 원래 제가 살던 둥지를 찾았다. 또 배우자끼리 그대로 원래 살던 둥지를 찾은 경우도 여럿 있었다.
김익(金熤)의 「연래(燕來)」라는 작품을 보자.
주인의 초가집 깊은 것도 마다 않고
不厭主人茅屋深
해마다 봄만 되면 옛 둥지 찾아오네.
年年春至舊巢尋
인간 세상 명리 좇아 헤매는 자들아
可笑世間趨勢子
사람으로 저 새만도 못함을 비웃노라.
以人不若彼微禽
해마다 잊지 않고 가난한 초가집을 찾아주는 제비를 보고, 문득 그만도 못한 세상 사람들을 떠올렸다. 신의도 의리도 없이 어느 쪽이 내게 이익이 되겠는가만 따지는 인간들은 참으로 제비만도 못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조선 후기 정범조(丁範祖, 1723~1801)의 「신연(新燕)」도 위 시와 비슷하다.
강 언덕에 좋은 집들 많고 많건만
江岸多華屋
언제나 초가집을 찾아오누나.
歸飛每草堂
겹겹의 주렴 뚫기 겁내지 않고
重簾穿不怕
같이 앉아 무슨 말이 그리도 많니.
竝坐語何長
추위 겪어 날개도 많이 상했고
翅爲經寒損
새끼 칠 때 가까워 마음 바쁘네.
心因近乳忙
헌 둥지를 기워서 수리하여라
敗巢須補綴
시내 비에 마름 진흙 향기롭단다.
溪雨荇泥香
으리으리한 솟을대문 집을 굳이 마다하고 초라한 내 집을 찾아주니 그것이 고맙다. 옹색한 살림 가리자고 여기저기 쳐둔 발도 겁내잖고 굳이 옛 둥지를 찾아들었다. 나를 그만큼 믿어준다는 것이겠지. 네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니 내 마음이 안쓰럽구나. 날개는 그 먼 곳을 날아오느라 상처가 깊다. 제비가 제 짝을 만나려면 늘씬한 꼬리를 지녀야 한다. 깃털이 초췌하면 어느 암컷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배우자를 만나 알을 품을 때가 가깝고 보니 상한 깃털 때문에 마음이 쓰여 공연히 부산스럽다고 했다. 때마침 시냇가에 비가 흠뻑 내려서 마름풀과 진흙이 향기롭다. 그것을 어서 물어와 헌 집을 고쳐 새 보금자리를 꾸미려무나.
청나라 때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고기 중에는 금붕어가, 새 중에는 제비가 사물 중의 신선이라 말할 만하니, 동방삭이 금마문에서 벼슬하며 세상을 피하여 사람들이 이를 해치지 못했던 것과 꼭 같다 하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금붕어는 빛깔이 곱지만 삶으면 맛이 써서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도 금붕어로 매운탕을 끓여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비가 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도 사람들은 오히려 제 집 찾아준 것을 고마워할 뿐 참새처럼 이를 잡아 구이를 해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살아 별다른 근심이 없고 듬뿍 사랑만 받으니 신선의 삶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한 무제 때 동방삭은 벼슬 속에 몸을 감춘 이은(吏隱)이었다. 우스갯소리 잘하고 낄낄대며 한 세상 건너갔기에 그 험한 시절에 제 한 몸 다치지 않고 삶을 마칠 수 있었다.
또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도 『관물편(觀物篇)』에서 제비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제비는 집 들보에 둥지를 틀어 사람과 가깝다.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 벌레와 짐승의 해를 피할 수가 있다. 벌레와 짐승을 피하면서 사람을 피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어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제비는 고기가 도마 위에 오르지도 않고 날개가 장식으로 꾸미는 데 쓰이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죽이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제비가 문득 그렇지 않음을 환히 깨달았다면 또한 높이 날아가버렸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비보다 지혜로운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제비는 사람이 저를 해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집 들보에 둥지를 틀어 짐승의 해를 피한다는 얘기다. 제비가 집 들보에 둥지를 틀면 주인에게 길한 일이 있다 해서 그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잡아먹는 일은 없다.
다음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노래한 「제비의 하소연」이다. 원래 따로 제목은 없고 고시(古詩) 27수 가운데 하나다.
제비가 강남 갔다 처음 와서는
燕子初來時
지지배배 쉼 없이 조잘거리네.
喃喃語不休
말뜻은 비록 분명찮으나
語意雖未明
집 없는 근심을 하소하는 듯.
似訴無家愁
“느릅나무 홰나무 늙어 구멍 많은데
楡槐老多穴
어째서 거기엔 머물질 않니.”
何不此淹留
제비가 다시금 조잘대는데
燕子復喃喃
마치 내게 대꾸라도 하는 듯하다.
似與人語酬
“느릅나무 구멍엔 황새가 와서 쪼고
楡穴鸛來啄
홰나무 구멍엔 뱀이 와 뒤집니다.”
槐穴蛇來搜
지붕 위에서 조잘대는 제비가 자꾸 내게 무어라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가만히 들어보니 집이 없어 걱정이라는 하소연이다.
“저기 저 느릅나무나 홰나무에는 둥지로 쓰기에 꼭 알맞은 구멍도 많은데, 거기에 깃들면 될 것을 왜 걱정하니?”
제비가 대답한다.
“그러면 편한 줄을 모르는 바 아니지요. 그렇지만 느릅나무 구멍에는 이따금씩 황새가 쳐들어와서 제 집이라며 그 날카로운 부리로 콕콕 쪼아대지요. 홰나무 구멍 속에는 구렁이가 슬금슬금 기어 들어와 새끼들을 다 잡아 먹는답니다. 그러니 어째요. 열심히 진흙을 물어 처마 밑에 둥지를 지을밖에요.”
아마 다산 선생께는 제비가 황새나 뱀 같은 힘 있는 자들에게 짓눌려 자기 터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가엾은 백성처럼 보였던가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도처에 함정과 덫이 발목을 노리고 있다. 수월하겠다 싶어 이미 만들어진 것에 파고들면 황새가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고 이마를 쪼고, 뱀이 너 잘 걸렸다 하며 꿀꺽 삼킨다. 그러니 힘들어도 진흙을 한 톨 한 톨 물어다 거꾸로 매달린 처마 밑에 둥지를 지을밖에.
하지만 이 제비집도 이제는 보기가 힘들어졌다는 소식이다. 농약으로 곤충들이 다 죽어 먹이사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제비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었을뿐더러 그나마 알을 까고 나온 새끼의 생존율도 먹이 공급의 문제 때문에 갈수록 낮아진다는 소식이다.
「유연도(柳燕圖)」는 청나라 때 화가 운수평(惲壽平, 1633~1690)이 그린 것이다. 일렁이는 봄바람에 날개를 꺾어 방향을 트는 제비의 날갯짓이 경쾌하다. 운수평의 호는 남전(南田)으로 설계외사(雪溪外史)란 별호도 있었다. 집이 가난하여 과거에 응시도 못 하고,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런 그는 시 짓는 솜씨가 빼어나며 글씨 또한 뛰어나서 당대에 삼절(三絕)로 일컬어진 인물이다.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임진왜란 때 중국 사람 황백룡을 만났다. 그가 유몽인에게 조선 사람은 몇 가지 경서를 공부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삼경 또는 사경을 읽지요. 심지어는 제비나 개구리, 꾀꼬리도 경서 하나쯤은 읽을 줄 압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제비는 『논어』를 읽을 줄 안답니다. 그래서 ‘지지위지지(知之謂知之), 부지위부지(不知謂不知), 시지야(是知也)’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라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소리대로 빨리 읽으면 마치 지지배배 하고 조잘대는 제비의 울음소리와 비슷하게 들리기에 한 말이다.
개구리도 『맹자』를 읽을 줄 안다는 얘기는 『맹자』 「양혜왕(梁惠王)」 하편 가운데 ‘독락악여중락악숙락(獨樂樂與衆樂樂孰樂)’이란 구절을 또박또박 소리대로 읽으면 개구리의 개굴개굴 하는 소리와 흡사하기에 하는 말이다. 이것은 “혼자 풍류를 즐기는 것과 무리가 풍류를 즐기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즐거운가?”라는 뜻이다.
또 꾀꼬리는 『장자』를 잘 읽는다. 『장자』에 “이지유지지비지(以指喩指之非指), 불약이비지유지지비지(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 이마유마지비마(以馬喩馬之非馬), 불약이비마유마지비마야(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란 구절을 빨리 읽으면 꾀꼬리의 재잘대는 소리와 흡사했던 까닭이다. “엄지를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엄지가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만 못하다. 백마를 말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백마가 아닌 다른 동물을 가지고 말이 아니라고 하는 것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조선의 제비는 능히 『논어』를 읽을 줄 알았고, 꾀꼬리는 그 어려운 『장자』를 암송할 줄 알았다.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그는 「조어십삼편(鳥語十三篇)」 연작 가운데 「제비」란 작품을 또 남겼다.
제비 조잘조잘 무슨 소리를 내나
燕燕作何辭
아는 것 안다 하고 모르는 것 모른다 하네.
知知之不知不知之
깃털도 고기도 가죽도 쓸데없으니
毛不用肉不用皮不用
인가에 둥지 쳐도 두려울 것 없어라.
托巢人家吾何恐
마당에 떨어진 한 알 콩 삼키니 비리고 배리도다
庭有一粒黃豆落呑之醒且甘
비리고 배리거늘 하루 종일 어이해 조잘대느냐.
醒且甘終日何喃喃
제비는 깃털도 쓸데없고 구워도 먹을 것이 없으며 가죽도 쓸모가 없어 사람들이 잡을 생각을 않는다. 제비가 그 눈치를 알고,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열심히 『논어』를 외우고 있다. 그러다 마당에 떨어진 콩 한 알을 날름 주워 먹으니 비릿한 것이 또 들큰하기도 해서 이번엔 도대체 무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대며 하루 종일 지지배배 지지배배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개화기 때 최영년은 「백금언(百禽言)」에서 제비를 이렇게 찬미했다.
사람들은 안다고 말하며
人之爲知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하지.
未有不知
아는 것도 안다고 하고
知而爲知
모르는 것도 안다고 하네.
不知亦知
그 이른바 안다는 것은
其所謂知
모두 알 수 있는 것이 아닐세.
都未可知
너의 ‘앎’을 배움은
爾之學知
성인의 앎이로다.
聖人之知
세상 사람들은 조금 아는 것은 젠체하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한다. 정작 아는 것 하나 없는 인간들은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제비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제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공자가 준 ‘앎’의 가르침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사람이 영 제비만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앞서 유몽인의 시에서 콩알을 주워 먹으니 비리고 배리다는 말은 민요의 가락을 그대로 차용해온 것이다. 제비를 노래한 함경남도 이원 땅에 전하는 민요 중 이런 것이 있다.
뒷집 김서방네 집에 갔더니
부뚜막에 콩 한 쪽 떨어진 것을
시어멈도 안 집어 먹고
애나리도 안 집어 먹기에
내가 집어 먹었더니
비리고 배리고 빼로드뜩.
황해도 신천에서 전승된 민요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머리개 개 빗구서
고둑배기 산야물에
올채범벅 개가지구
응마이마장 가잣구나.
붓조박을 얻으러
옛집에를 갔다가
부뚜막에 콩 한 알
흘렀기로 먹었드니
비리기두 비리다
지리기도 지리다.
지지배배 우는 제비 울음소리를 ‘비리배리’ 또는 ‘비리지리’쯤으로 들어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이렇듯 새의 울음소리를 가지고 갖은 연상을 일으키는 것이 참 재미있다.
한시 속에는 인간에게 자꾸만 시비를 거는 제비의 형상도 있다.
온갖 일 유유하게 한 웃음에 부쳐두고
萬事悠悠一笑揮
초당 봄비 속에 사립을 닫아거네.
草堂春雨掩松扉
얄밉구나 주렴 밖 강남 갔던 제비야
生憎簾外新歸燕
한가한 사람더러 시비를 말하다니.
似向閑人說是非
이식(李植)의 「영신연(咏新燕)」이란 작품이다. 앞서 제비가 『논어』를 읽을 줄 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갑자기 제비가 이건 옳고 저건 그르고 하면서 시비를 따져온다는 이야기다. 무슨 연유에서일까?
제목에서 ‘새로 온 제비를 노래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봄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 것을 보고 마음에 무슨 느낌이 일어 시를 지었던 모양이다. 세상만사를 한 웃음에 부쳐둔다고 했으니 뭔가 언짢은 일이 있었던 듯도 싶다. 겨우내 먼지만 풀풀 날리던 초당에 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솔잎으로 가린 사립문도 닫아걸고, 세상일 상관 않고 앉아 지내겠다는 다짐이다.
사립문을 닫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주렴까지 내리고 앉았는데, 아까부터 자꾸만 제비가 내 심사를 건드린다. 한가히 세상 잊고 지내겠다는 날더러 그렇게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고, 나만 편하면 좋은 거냐고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보자는 듯이 따지고 들더라는 것이다.
제비가 ‘지지배배 지지배배’ 하며 우는 것을 시인은 ‘시시비비 시시비비’로 들었다. 뭔가 바깥세상과 불편한 일이 있어 들어앉기는 했지만 나만 편하자는 것은 아닌지 싶어 은근히 자의식이 발동하던 참에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시시비비 시시비비 하고 울어대기에 공연히 해본 소리다.
조선 후기의 유명한 서예가 이광사(李匡師)의 「영연(咏燕)」에도 이와 비슷한 심상이 나타난다.
먹이 줘도 곡식은 마다하면서
營食違粱稻
시비를 사절한다 말을 하누나.
多言謝是非
미운 것들 원래부터 오지 않건만
嫌猜元不到
하루 종일 들보 둘레 날아다니네.
終日繞梁飛
벌레 먹는 새라 벼나 기장 같은 곡식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끊임없이 조잘대지만 시비를 가려 따지는 것은 사양한다.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곡식을 손대지 않고, 시시비비, 즉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니 사람들이 제비를 사랑하는 까닭이다. 사람 사는 집 들보 위에 있는 둥지니 다른 짐승이 해칠 일도 없을 텐데, 제비는 하루 종일 들보 둘레를 떠나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한다. 새끼가 걱정되어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제비가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새이다보니 인간과의 교감을 이야기한 설화가 적지 않게 전한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석담일기(石潭日記)』에는 송인수의 지극한 효성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가 어려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애통해 흘린 눈물로 엎드린 자리가 다 젖었다. 마침 처마 밑에 집 짓던 제비가 새끼를 치니 모두 흰색이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송인수의 효성이 신명에 미쳐 효감으로 희게 변했노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송와잡설(松窩雜說)』에는 또 최극성의 얘기가 있다. 그는 어머니를 효성으로 섬겼는데 어머니가 병이 들자 의원이 제비 고기를 먹어야 낫는다고 했다. 계절이 겨울인데 제비를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그런데 한밤에 제비가 품속으로 날아들어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믿거나 말거나.
한 쌍 제비 주림 참고 벌레 물어와
雙燕銜蟲自忍飢
부지런히 왔다 갔다 제 새끼를 먹이누나.
往來辛苦哺其兒
날개 자라 높이 높이 날아가게 되어도
看成羽翼高飛去
부모의 그 사랑을 능히 알진 못하겠지.
未必能知父母慈
숙종 때 김이만(金履萬, 1683~1758)의 「쌍연(雙燕)」이란 작품이다. 새끼를 기르는 부모 마음이야 사람이건 미물이건 다를 것이 없다. 제 배도 고플 텐데 제비 부부는 큰 입 벌리며 저 먼저 달라고 아우성치는 새끼들을 먹이느라 하루 종일 쉴새없이 둥지를 들락거린다. 한 입 가득 벌레를 물어와 새끼들 입에 털어 넣는 그 사랑을 지켜보다가 그는 문득 결혼하여 제각기 가정을 마련해 떠난 자식들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저렇게 애를 써서 키워봤자 그 은공을 알기나 하랴. 제 부모가 날라다주는 벌레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 날개에 깃이 돋아 허공을 훨훨 날게 되면 언제 보았느냐는 듯 뒤도 안 돌아보고 제 갈 길들을 서두를 것이 뻔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강재항(姜再恒, 1689~1756)의 문집에는 「현조행(玄鳥行)」이라는 시가 실려 있다. 현조(玄鳥)는 제비다. 이 이야기는 새로 얻은 아내에게 정신이 팔려 새끼를 모두 죽인 비정의 제비를 노래하고 있다.
사는 집 서북편 모서리에다
縣齋西北隅
제비가 그 위에 둥지 틀었네.
玄鳥巢其上
기르는 새끼가 다섯 마리라
一乳擧五子
둥그런 둥지가 가득하구나.
宛轉滿門閌
암수가 나란히 돌아 날다가
雌雄共翶翔
화답하여 울면서 오르내리네.
和鳴聲頡頏
고양이가 문가에서 숨어 있다가
烏圓當戶伏
몰래 엿봐 멋대로 잡아 죽였지.
潛伺肆殺掠
수컷이 암컷을 잃고 나서는
其雄失其雌
외로이 혼자 날며 서러워했네.
孤飛獨愀愴
깃털도 부러지고 추레해져서
毛羽何摧頹
제 짝 잃고 상심한 사람 같더니
如人失侶伉
어느새 새 짝 찾아 함께 살면서
俄然復雙棲
짝이 좋아 혼자서 펄펄 날았네.
歡侶自飛颺
그 새끼 갑작스레 죽어버리니
其子忽已死
다섯 마리 발로 차서 모두 던졌지.
五雛俱擲踼
입 더듬어 먹은 물건 살펴봤더니
探口見食物
날카로운 가시가 배에 가득해.
棘刺滿腹臟
내 마음 이 때문에 구슬퍼져서
我心爲之惻
한동안 손에 들고 못 놓았다네.
歷時久未放
지붕에 불지르고 우물을 덮었다던
塗廩與浚井
예부터 전하던 말 헛말 아닐세.
古來傳不妄
하물며 어여쁜 짝과 더불어
况與已奇儔
새끼의 죽음을 속이려드니.
及彼伋申喪
이 모두 미물이기 때문일 텐데
皆由是物耳
그때엔 어이해 못 깨달았나.
當時何不諒
미물도 오히려 이와 같거니
微物尙如此
하물며 사람의 같잖은 꼴이랴.
矧人之難狀
뒷사람에게 대단히 사죄하노니
多謝後之人
경계하여 삼가서 잊지를 말라.
戒之愼勿忘
처마 밑에서 새끼 다섯 마리를 기르던 제비 부부가 다정하게 화답하며 부지런히 새끼를 길렀다. 고양이란 녀석이 문 뒤에 숨어 노리다가 어미 제비를 잡아먹었다. 짝을 잃은 수컷은 외로이 날며 슬퍼했다. 깃털도 빛을 잃고 추레한 모습이 몹시 측은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새 새로운 짝을 불러다가 즐거이 화답하며 노니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짝이 오자 새끼들이 갑자기 죽어버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아비는 죽은 제 새끼를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발로 차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이 아닌가? 놀란 내가 죽은 새끼의 주둥이 속을 살펴보았더니 새끼들의 주둥이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 가시가 새끼들의 배를 찔러 잘 자라던 다섯 마리 새끼가 한꺼번에 죽었던 것이다. 어미 잃은 새끼가 거추장스러웠던 걸까? 아비는 제 새끼들에게 벌레 대신 죽으라고 가시를 물어다 먹였던 것이다.
그 옛날 순임금의 아버지 고수도 새 장가를 든 뒤 아들을 죽이려고 곡식 창고를 고치라며 지붕에 올라가게 해놓고 아래서 불을 지르고, 우물을 치게 하고는 이를 덮어버려 아들을 죽이려 했던 일이 있었다. 이제 아비가 제 짝이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새 살림 차리는 데 거추장스럽다며 제 새끼에게 날카로운 가시를 먹여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발로 차서 땅에 떨어뜨리는 비정의 부정(父情)을 보며 그는 새삼 세상을 개탄했다. 미물이 이러할진대 인간의 참혹한 일들이야 일일이 말해 무엇 하겠느냐는 것이다.
이광정(李光庭, 1674~1756)도 「망양록(亡羊錄)」에서 이와 비슷한 언급을 한 것이 있다.
제비는 하찮은 새다. 사물에 있어서는 다투는 바가 없지만 성품에는 선한 놈도 있고 악한 녀석도 있다. 예전 한 장로가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홀아비가 되어 첩과 더불어 살았다. 제비가 와 들보 위에서 새끼를 길렀다. 암컷이 죽자 한 놈이 혼자 날면서 새끼를 먹이며 보호하였다. 하루는 제비 한 마리를 데리고 오더니 두 마리가 같이 먹이는 것이었다. 얼마 있다가 새끼 한 마리가 땅에 떨어졌다. 가져다 살펴보니 입속에 가시가 있었다. 이로써 그 사람이 첩을 경계하였다. 또 예전에 한 벼슬아치가 죽어 첩이 홀로 안방을 지키고 있었다. 제비가 있었는데 한 마리가 죽자 그 암컷은 다시 다른 제비를 맞이하지 않고 그 둥지에 살면서 홀로 날며 울었다. 대개 다시는 알을 품어 기르지 못함을 슬퍼한 것이다. 대저 제비는 미물이지만 착한 것은 곧은 여인과 더불어 절개를 같이하고 착하지 않은 것은 도리어 그 지아비의 새끼를 쪼아댄다.
그러나 이들 글에 보이는 제비에 대한 관찰은 새의 생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서 인간의 기준으로 바라본 잘못된 것이다. 제비는 번식 기간 내에 두 번의 번식이 가능하고, 한 번에 새끼를 네댓 마리 기른다. 부모가 쉴새없이 먹이를 날라도 새끼를 배불리 먹이기가 힘들다. 이 경우처럼 어미나 아비 가운데 도중에 어느 하나가 죽으면 번식을 포기하고 만다. 그러니까 시에 나오는 제비는 새끼를 죽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양육을 포기한 것이 된다. 두 글에서 모두 입안에 가시가 가득한 것을 애비가 새끼들 죽으라고 일부러 가시를 먹인 것으로 본 것도 오해다. 새들은 이가 없어 통째로 삼키므로 먹이의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 목구멍 속에 가시처럼 뽀족뾰족하게 솟아오른 기관이 있다. 이것을 그는 가시를 먹인 것으로 잘못 알았던 듯하다. 어쨌든 새의 생태를 관찰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람 사는 문제에 비추어 교훈을 얻고 스스로를 경계했던 선인들의 자세만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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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잘보고갑니다